[U.P.G의 적을 섬멸하라] [U.P.G의 적을 섬멸하라] [U.P.G의 적을 섬멸하라]
규칙적으로 기계음을 내고 있는 블러디 레드의 붉은 안광이 에델바이스 제 0 특수부대에게 향했다. 열차 안에서 기관총을 떼어냈기 때문에 팔 파츠가 되어있는 1호차와 7호차 부분에선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그나마 무장 두 개를 해체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거대한 거체가 멈출 것 같진 않아보였다.
이내 블러디 레드의 몸통 가운데 부분이 열렸고 그 안에서 거대한 레이저 발사 장치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머리 부분에서 안테나가 튀어나왔고 그 안테나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는가 싶더니 블러디 레드의 몸통 부분에 총 두 겹의 푸른색 베리어가 씌워졌다. 얼핏 봐도 쉽게 깨질 것 같지 않은 베리어 속에 있는 레이저 발사 장치에 에너지가 모이고 있었다. 허나 그 끝은 에델바이스 멤버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아..아아..아아..."
3호차에서 구출된 아이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로 추정되는 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레이저 발사 장치의 끝이 향하는 곳은 에델바이스 멤버들이 구출한 세븐스 어린아이 7명이었다. 우선적으로 아이들을 먼저 제거하려고 하는 것일까. 아무튼 이대로 있으면 저 장치에서 레이저가 발사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번 전투부터 보검의 힘을 얻은 여러분들은 hp가 30으로 늘어나게 된답니다. 그 외의 전투 룰은 다 동일해요! 공격을 하실때 반드시 블러디 레드의 어느 부위를 어떻게 공격할건지를 정확하게 써주세요. 그냥 능력으로 블러디레드를 공격했다. 이렇게 해버리면 그 부분은 처리할 수 없어요.
이스마엘의 모습이 변한다. 다리에 달린 역관절형 파츠와 꼬리로 보이는 파츠가 생겨나더니 그대로 열차에서 뛰쳐나간다. 그것이 레이저를 쏘기 이전, 열차가 변신하던 순간의 상황이다. 등에 매달린 야구배트를 손에 쥐지 않고 뒤로 추락하듯 착지한 지점은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의 앞이다. 이스마엘은 주변을 둘러보며 팔을 뻗었다.
지키는 사람은 따로 있고 공격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닌데도. 이스마엘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염력으로 막을 만들어 방어하려 들었다.
"무슨...무언가 숨겨진 기능이 있을거라곤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는걸요?!"
충격받은듯한 어조에 한 손으로 입을 가리기까지 했지만, 그 사이에서 희열의 감정이 흘러나오는 목소리. 빈말로도 평범하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이송 열차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 거대한 기계로 변한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였다. 그 점이 더욱 더 그녀의 마음을 자극한 것일테고.
"굳이 저희들이 아닌 저 아이들을 노린다는 점은..발사 장치를 공격할 수 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건가요?"
어쩐지 던져진 미끼를 무는드는 듯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조금 꺼림칙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런 걸 따질 새는 없었다. 이대로 아무 행동도 하면 저 아이들은 레이저에 정통으로 맞아 죽어버리고 말 테니.
"어쩔수 없네요. 일단 저것부터 처리하는 수밖에!"
후우, 하며 한숨인지 숨을 고르는건지 구별이 가지 않는 소리를 내뱉고선, 발사 장치부분을 꺾어버리는 것을 노리고 능력을 전개합니다.
비상탈출장치를 누르기 전 3호차에서 나오기 전에 봤던 그 붉은 안광. 그 안광이 착각이 아니라는 듯 열차는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함체 로봇이 되었다. 마리는 얼른 아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만큼 끌어안고 등 뒤로 날개를 펼쳐 동료들과 함께 아이들을 대피시켰다.
그리고 기괴한 소리를 내며 우리를 향해 소리를 내는 거대한 기계를 보며 마리는 이를 악물었다. 거대한 안테나, 그리고 몸통 부분에 나오는 거대한 레이저 발사 장치. 그 끝이 아이들을 향했을 때 마리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단 안테나 쪽을 노릴게.”
아무래도 수상쩍은 느낌이 든다. 본래 로봇의 약점은 머리이곤 하니까. 일단 머리부터 공격해보려고 한다.
마리는 거대한 매로 변신해 거대 로봇의 머리 쪽으로 세차게 날아갔다. 붉은 방어구가 가슴, 머리, 날개뼈 부분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새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솟구쳤다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른쪽 안테나 쪽으로 하강, 안테나에 닿으려는 순간 큰 몸집의 무장한 고릴라로 변해 양 손으로 안테나를 꽉 잡았을 것이다. 철제 장갑을 끼고 있는 것 같은 고릴라는 속도의 힘을 이용해서 안테나를 부러뜨릴 셈이다.
망설임 없이 바로 공격을 준비한다, 인가. 그것도 무방비한 아이들을 향해. 너는 침착하게 블러디 레드의 움직임을 살폈다. 저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면 다소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야겠지. 누군가는 방어할 준비를 해줘야 할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보다는 저 공격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 역시 든다. 문제는 저 배리어, 얼핏 보아도 쉽게 깨질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의 배리어를 보고 있자니, 자신의 힘으로는 배리어를 뚫고 공격을 저지할 만한 경우가 잘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 대신.
"...안테나."
순서상 안테나가 등장하고 배리어가 씌워졌다. 그러니까... 저 안테나를 부순다면 배리어는 무력화되지 않을까? 고글 주변으로 검은 빛의 금속이 얼굴을 감싼다.
결정했으면, 움직여라. 박차오르는 소리와 함께 너는 공중에 떠올랐다, 헬멧과 마찬가지로 검게 빛나는 톤파를 양 손에 쥔 채 너는 안테나에 뛰어들었다. 이 정도의 힘으로도 충분할까? 그런 생각도 잠시, 네 양 팔의 움직임에 따라 톤파는 있는 힘껏 안테나를 내리찍으려고 하고 있었다.
이제 탈출만 남았나 싶은 시점에서 1호칸을 뒤지던 레레시아는 갑작스러운 열차의 변화에 이상을 감지하고 긴장했다. 미리 독액을 깔아두었다가 느닷없이 벽에서 튀어나온 촉수를 맞받아치며 피하고보니, 열차칸이 움직인다? 이대로 내부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감이 퍼뜩 들어 분리된 열차칸에서 탈출했다. 어찌어찌 밖으로 나와보자 열차는 거대한 로봇으로 변해 있었다.
"뭐야 이게-"
이런 걸 상대하라고? 시작부터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산 넘어 산이네. 그래도 이제 무장을 완벽히 적응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이 드는 것도 같고-
"머리 아픈 건 질색이야-"
몸통에서 레이저를 꺼내고 배리어까지 치는 거대 로봇을 보며 한마디 중얼거린다. 손에서는 무기가 모습을 바꿨다. 그 때까지 들고 있던 양 손의 클로에서 매우 긴 검으로, 그 검은 다시 조각조각 나뉘어 늘어져 검의 조각이 달린 채찍과 같은 모습이 된다. 이걸로 통할까. 그녀는 무기에 금속을 부식시키는 독성을 추가해 두른 후, 거대 로봇의 오른쪽 다리를 휘감아 균형을 무너뜨리려 한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레레시아였다. 자신의 세븐스를 무기에 두른 후 오른쪽 다리를 휘감아치자 블러디 레드의 움직임이 흔들렸고 이내 블러디 레드는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그렇기에 블러디 레드는 안테나로 향하는 마리와 쥬데카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고 이어 니나의 세븐스 능력까지 더불어 안테나를 공격당했다. 꺾여버림과 동시에 베리어의 강도가 약해졌고 이어 멜피의 봉 공격과 선우의 소총 공격이 날아들어 각각 베리어 두 장을 깨뜨리는데 성공했다. 이어 스메라기의 버프를 받은 엔의 지시에 이어 침식된 기관총이 베리어가 있는 곳을 공격했고 자연히 그 기관총 공격은 레이저 발사 장치에 명중했다. 펑펑펑펑. 여러 발이 명중함에 따라 레이저 발사 장치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일어났고 모이던 에너지는 사라졌다. 아무래도 일단 당장의 공격은 어떻게든 상쇄시킨 모양이었다. 한편 이스마엘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아이들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블러디 레드도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듯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안테나를 노린 마리와 쥬데카를 떨어뜨렸다. 이어 블러디 레드는 두 팔을 앞으로 천천히 올렸다. 뒤이어 팔목 부분이 열렸고 그 안에서 미사일을 여러 발 연쇄적으로 쏘았다. 그 미사일은 특별히 누군가를 조준한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거기에 있는 전원을 노리고 있었다.
즉 아이들 역시 미사일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미사일 폭격 - 데미지 8 처리.
9시까지에요! 당연하지만 아이들은 한 명이 방어를 하게 되면 지킬 수 있답니다. 단 회피하면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참고해주세요!
사전에 말을 맞추거나 합을 맞춘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의 행동이 맞아 떨어지는 걸 보고 휘익- 휘파람을 분다. 이런 재미도 있으면 좋네에. 그러나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고 거대 로봇은 이번엔 미사일을 발사했다.
"아이쿠야."
레레시아는 로봇의 다리를 감은 채찍을 당겨 미사일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이건 아무래도 전원을 노래는 듯 했지만, 혼자 있는 것도 아니니 알아서 해주겠지. 대신 그녀는 독 채찍을 휘둘러 미사일의 일부를 붙잡아 궤도를 거대 로봇에게 되돌려주려 한다. 목표는 안테나가 있는 제일 윗 칸.
"응- 너나 많이 먹어-"
그대로 독 채찍의 일부를 끊어서 같이 보냈으니, 제대로 되돌아가 맞는다면 폭발 이상의 효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님 말구우.
발사 장치가 파괴되었으므로 아이들이 레이저에 휩쓸릴 위험은 사라졌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블러디 레드가 대체 무슨 기능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므로, 한 시라도 눈을 뗐다가는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되는것은 물론이며, 저 거체의 기술을 낱낱이 살펴볼 수 없어진다.
"오...미사일 장치도 탑재되어 있는건가요?"
미사일들의 궤도를 보아하니, 딱히 특정한 대상을 노리고 쓰는 것 같지는 않다. 그 말은 즉 자신과 저 아이들도 공격 대상에 포함된다는 뜻일 터. 아이들은 아까 확인했을 때 이스마엘이 지키고 있으니 아마 자신이 신경쓸 일은 아닐 것이고-게다가 능력이 타인을 지키는 데 걸맞지도 않고 말이다-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고싶기도 했지만, 그랬다간 일이 커질 수도 있으니..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을 가볍게 피하고, 반격을 위해 능력을 전개할 준비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에게 레이저가 닿는 일은 없었다. 이스마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새하얀 연기가 같이 새어나온다. 열이 올라 재머에 오류가 생길까, 무장 자체에 탑재된 냉각 장치 때문이다. 뒤를 돌지 않는다. 여러 발 쏘아지는 미사일을 막아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단 하나도 손댈 수 없을 것이다. 이스마엘이 입을 벌렸다.
"페이시." [여러분의 친절한 페이스 재밍 서비스 AI, 페이시입니다. 부르셨나요?] "재밍 서비스, 분류는 동물, 강아지. 유지 모드로." [알겠습니다.]
노이즈가 뭉쳐 홀로그램 강아지 얼굴로 변한다. 굳이 우스꽝스러운 강아지 얼굴로 바꾸는 것은, 아마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이스마엘은 그대로 자신의 힘을 믿어보자는 듯, 다시금 막을 펼쳤다.
네 공격뿐만 아니라 마리, 그리고 니나의 공격까지 안테나에 명중했고. 베리어는 눈에 띄게 강도가 약해졌다. 이후의 공격에 사정없이 깨졌으니.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대로 노출된 레이저 발사 장치는 연기를 내뿜으며 공격을 멈췄다. 성공이다,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던 너는 블러디 레드의 움직임 때문에 그 위에서 떨어져 가까스로 착지했다. 맨몸이었다면 어딘가 부러졌을지도 모르지만 보검 덕분이었을까, 외골격은 확실히 튼튼했다.
"휴, 하마터면... 어?"
일어선 게 전부가 아니다. 다음 순간 양 팔을 앞으로 들어올린 블러디 레드는 양쪽 팔목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처럼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격추하겠다는 듯한 그 미사일의 세례에 네 동공이 확장된다. 피할까? 피할 수 있으려나? 빠르게 주변을 둘러본다. 아이들은? 아이들은 이스마엘이 지키고 있었다. 너는 다시 시선을 옮긴다. 다들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간다. 단 한 명, 제자리에 서 노래하는 아리아를 제외하곤. 아마 움직였다간 노랫소리가 끊길 테고,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너는 이를 악물고 땅을 발로 걷어차듯 튀어나갔다. 애초부터 너를 노린 미사일이 너를 따라오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리아! 고개 숙여요!"
그녀의 앞으로 박차듯 뛰어올라 땅에 발이 닿았을 때, 땅에 박아넣을 듯 다리에는 온 힘을 다했고, 양 팔은 두 발 이상의 미사일을 막아내기 위해 들어올려졌다. 팔에 형성된 칠흑의 무장이 마치, 강철로 된 우산처럼 펼쳐진다. 제발 버텨다오!
미사일은 그야말로 무차별적으로 비가 내리듯이 쏟아져내렸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이스마엘이 지켰다. 허나 아리아의 세븐스가 이스마엘을 지키려는 듯, 그를 감쌌고 생각보다 그는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았다. (이스마엘 방어 데미지 1/2+송 오브 아리아의 방어 버프로 인해 1/2= 데미지 2 처리) 그리고 그런 아리아를 지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쥬데카였다. 아슬아슬하지만 미사일을 막아낼 수 있었다. (쥬데카 데미지 8처리)
한편 다른 이들은 모두 제각각 미사일을 가볍게 회피하는데 성공했다. 폼으로 레지스탕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이 이내 반격이 시작되었다.
레리시아는 미사일을 잡아채며 미사일을 돌려주었고 이내 그 미사일은 원래 발사된 오른쪽 팔목으로 돌아갔고 폭발을 일으켰다. 그에 뒤지자 않고 멜피 역시 낫으로 왼쪽 팔목을 노렸고 이내 거기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선우의 소총 공격이 그 미사일 포트들을 노렸고 니나의 세븐스 역시 그 발사장치를 노리며 압박했다. 이내 양쪽의 미사일 발사 장치가 박살이 났는지 장치는 그대로 폭발을 일으키면서 땅으로 철푸덕 떨어졌다. 어디 그뿐일까. 코뿔소로 변신한 마리는 레레시아가 공격했던 다리를 노렸고 이내 강력한 일격에 블러디 레드는 또 다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데미지를 2번이나 강하게 받아서 그런 것일까. 블러디 레드의 오른쪽 다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이내 머리의 위치가 낮아지자 엔의 명령을 받은 침식된 기관총이 블러디 레드의 머리 부분을 노렸다. 이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 부분에서도 연기가 모락모락 일어났다.
[U.P.G의 적을 섬멸하라] [유격 모드 시행]
또 다시 AI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그 거구는 공중에 붕 떠올랐다. 뒤쪽에 부스터라도 달려있던 것일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몸의 파츠들이 일제히 분리되었다.
-끊임없이 질주하는 강철의 거구 -그 어떤 장애물도 파괴하며 -끊임없이 질주하고 또 질주하라
-스피딩 데스트로이
이내 그 로봇은 맨 처음의 열차 모습으로 돌아갔다. 허나 땅에 착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부상열차가 된 양 공중에 떠 있었다. 이내 1호차의 맨 앞 창문 부분에서 홀로그램 영사기마냥 빛이 켜졌고 이내 블러디 레드의 앞쪽에 주황색 빛으로 만들어진 철로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2호차와 4호차의 옆면이 열렸고 그 속에서 가스가 분출했다. 2호차와 4호차에 있었던 이들은 느껴봤을 그 가스는 정확하게 에델바이스 멤버들을 향하고 있었다. 밀폐되지 않은 공간이 아니었기에 가스 성분은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을지도 모르나 문제는 시야가 가려진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대처하지 않으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블러디 레드의 스페셜 스킬. 스피딩 데스트로이 - 방어 불가 데미지 20. 단 시야를 가리는 가스의 효과로 회피 가능성은 25%로 저하. (1~4 다이스. 1만 회피 성공) 단 가스를 누군가가 대처하면 다이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 가능. 그리고 특수한 조건 만족시 스페셜 스킬 파훼 가능
아아, 당신은 여전히 절 지켜주는군요. 역시 영웅씨는.. 그럼 이제 조건은 충분히 체워졌다. 모조 보검을 소환해 허공에 띄우고는 그 것에 감싸여 모습을 변화시킨다. 잠깐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갑옷처럼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진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내 눈을 떠 조용히 노래를 시작했다.
야 저거 로봇도 쓸 수 있는거였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닫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막는건 아무래도 불가능하겠죠 저 질량이라면.. 그렇기에 그녀는 유심히 살폈습니다. 분명히 저것도 어딘가 약점이 있을겁니다. 그 훈련처럼.. 뭔가 방법이 있을겁니다.
"그래, 좋아 다소의 중독정도는 감안해주지."
아마도 돌진하는 계통의 기술. 그녀는 홀로그램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생성된 철로와 창문을 보며 짐작했습니다.
"자 그럼 철로가 없는 열차는 어디로 탈선하려나~?"
그녀는 생각이 끝나자마자 그림자로 마스크를 만들어 아주 약간이지만 독에 대한 대비를 하고. 부스터를 집중해 달려나가듯 가속했습니다. 자기부상 열차와 비슷한 정도로밖에 떠있지 않지만 그 대신 부스터에 집중해 속도를 최대한 가속. 그림자로 이루어진 대낫이 땅에 끌리며 철로를 손상시키려 하고. 독가스를 돌파해 블러드 래드의 선두 부분에 다가갈 수 있다면. 그녀는 영사기마냥 빛이 켜져있는 맨 앞 창문 부분을 낫으로 박살내려 했을겁니다.
미사일 되돌려주기도, 다른 팀원의 공격들도 모두 잘 들어갔다. 구출한 아이들도 무사한 듯 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저 거구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도 시간 문제다. 라고 생각한 순간, 거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저 개XX..."
레레시아는 남들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 지금 팀원들 중 부양 세븐스는 없다. 이럴 때 왜 아스텔은 여기 없는 건가! 별별 생각을 다 해도 지금 대처할 수 있는 건 여기 있는 인원 뿐이다. 공중에 뜬 거대 로봇이 기술을 준비하는 사이, 들어본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가스가 분출되고 있었다. 가스? 아까와 같은 독가스인가? 그렇다면 할 일이 아예 없지는 않다. 레레시아는 채찍검을 거둬들여 모양을 바꿨다. 검고 길다란 장죽의 형태로.
"독쟁이 앞에서 독가스를 또 쓰니- X신아-?"
신랄한 한마디를 내뱉고 검은 장죽의 끝을 살포시 문다. 그대로 숨을 내뱉자 장죽의 끝에서 진보랏빛 연기가 포르르 피어오른다. 폐에 공기가 다 빠져나갈 정도로 숨을 내뱉어 만들어낸 독의 안개는 어떤 기류에도 흔들리지 않고 날아가 거대 로봇이 독가스에 섞여든다. 그리고 독가스를 같은 색이자 레레시아의 지배 하에 물들인다.
"이제 못 숨을 걸-"
독가스의 제어권을 쥔 후 더한 상공으로 모아 팀원들의 시야를 밝힌다. 저 거대 로봇이 앞으로 얼마나 독가스를 생성하든 전부 그녀의 제어에 물들 것이다.
블러디 레드의 거체가 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호기심 넘치는 눈동자로 지켜보며, 감정이 전부 드러나는 목소리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거기다 뒤에 정말 상상 이상이네요~합격이에요.하는 혼잣말까지 붙여가면서. 하지만 그녀도 이것이 지금까지 썼던 기술들과는 위력 자체가 차원이 다르며, 무언가 대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가스는 어느 쪽에 있어서도 방해만 되네요."
2호차와 4호차였던 부분에서 뿜어져나오는 가스는 그녀에게 있어 해만 끼치는 것이였다. 열차 형태에서 사용했던 것과 별반 형태도 다르지 않고 말이다.
"이 정도 대처려면 되려나요?"
가볍게 혼잣말을 중얼이고서, 능력을 전개해 2호차와 4호차를 밀폐한 뒤 찌그러트려 더이상 가스가 뿜어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콜록, 폭발의 여파와 연기로 기침을 연신 내뱉던 너는 문득 네 뒤에 있을 아리아의 신변을 떠올린다.
"아리아, 괜찮아요?"
헬멧과 함께 펼쳤던 무장을 돌려놓으며 충격에 덜덜 떨리는 팔에 힘을 주어 애써 떨림을 멈추고 돌아본 자리에, 아리아는 다행히 멀쩡한 모습으로 있었다. 아니, 단순히 멀쩡한 게 아니었으니. 그녀는 보검을 소환했고, 드레스와 같은 무장을 입은 채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리아, 이 노랜..."
신비로운 느낌이 네 몸에 감돌았다, 눈과 귀는 더욱 밝아지는 듯했고, 공기의 질이 변하는 것을 느낄 만큼 네 촉감 역시 곤두세워졌다. 그리고... 미지의 감각까지도 열렬히 고개를 들고 있었으니, 너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열차를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전력으로... 임해보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다음 순간 다시 네 얼굴을 감싸듯 펼쳐진 헬멧 너머로 너는 재빠르게 땅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차 앞의 창문을 노렸다, 아마 저 선로를 무효화하거나 하는 게 목적이겠지, 그렇다면 네가 할 일은 아마... 그들이 순조롭게 공격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눈 앞을 흐리는 건 안될 말이죠."
빠르게 내딛은 발이 땅을 걷어차며 튀어오르고, 너는 양 옆으로 열린 열차의 위로 도약했다. 올라설 수만 있다면, 그 곳에 숨겨져 있을 가스를 분사하는 장치를 박살낼 생각이었다, 맨몸으로는 턱도 없겠지만, 무장과 아리아의 도움을 받은 지금이라면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게 아니라면 중간의 전류를 끊어주겠다. 라는 각오로 너는 열차의 천장을 내리찍으려고 했다.
유독가스가 나오고 있는 2호차의 옆면과 4호차의 옆면은 철컹,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니나의 세븐스에 의해서 다시 닫혔다. 그리고 빠져나온 유독가스는 레레시아가 자신의 세븐스를 이용해서 저 위로 날려보냈다. 그리고 일부 빠져나온 가스들은 이스마엘이 자신의 세븐스를 이용해 날려보내는데 성공했다. 적어도 아이들은 일단 무사할 수 있었다. 허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철로의 불빛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었고 기차 특유의 출발 엔진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마리가 변신해서 먹물을 뿜자 1호차에 있는 창문이 검게 물들었고 그 때문에 빛이 약하게 비쳤고 철로도 그만큼 희미해졌다. 그 뒤를 이어 멜피의 낫이, 엔의 세븐스 능력이, 레이먼드의 검이 창문에 부딪혔다. 이내 창문이 와장창 깨져버리고 그 뒤에 있을 영사기 장치 역시 박살이 났다. 허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선우가 열차의 옆부분을 총으로 쏘기 시작했다. 엔진이 명중이라도 한 것인지 소음이 살짝 줄어들었고 때마침 발동한 아리아의 스페셜 스킬이 쥬데카의 몸을 감쌌다. 이내 쥬데카는 빠르게 자신의 몸이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어 몸이 빛나고 있는 쥬데카는 열차 위에서 열차의 천장을 내려찍고 그로 인해 열차에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스파크가 파직 튀었고 에델바이스 멤버들은 아마 거리를 띄우지 않았을까?
한편 그럼에도 블러디 레드는 질주하려는지 엔진 소리를 크게 키웠다. 허나 내부에서부터 폭발소리가 들려왔고 앞으로 달리려던 블러디 레드는 철로가 연결되지 않아 그대로 탈선되어 땅이 처박혔다. 굉장히 강한 데미지를 입었는지 블러디 레드의 전신에선 강한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열차 모양의 블러디 레드의 파츠가 분리되고 하나하나 다시 떠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자폭 시스템 가동] [U.P.G의 적을 섬멸하라]
이마 전투로 많은 부분이 파괴된만큼 자폭 시스템이 가동했는지 파츠들은 일제히 붉게 빛나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둔다면 연쇄적으로 폭발해서 이 근방을 날려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끝을 내야만 했다. 스스로를 위해서. 그리고 이 싸움을 끝내기 위해서.
/스피딩 데스트로이 파홰 성공! 블리더 레드 대 데미지 판정
자폭 시스템 - 1턴 후 일제히 자폭. 전원 데미지 100. 허나 터지기 전에 파괴해버리는 것으로 파훼 성공.
다행히 열차의 커다란 공격은 무산된 것 같았다. 마리는 날개짓으로 열차의 가까이에서 떨어져 폭발을 피했다.
“휴…. 이제 마지막인가?”
보검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스페셜 스킬. 뭔가 시도하기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마리는 부끄러움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에 마리는 안전한 곳으로 조금 떨어져 숨을 집어 삼키며 바닥에 선 채로 집중했다. 붉은 색으로 빛나는 무장이 점점 뜨거워지는지 김이 올라왔고 이내 마리가 눈을 내려깔자 그녀의 머리에서 무언가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검고 진한, 악마의 것과 같은 뿔이 자라고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파충류의 붉은 피막같은 것이 자랐다.
마리의 등 뒤로 펄럭, 소리를 내며 펼쳐진 것은 박쥐가 가질 것 같은 커다랗고 붉은 날개, 그 밑으로 공룡의 것을 닮은 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이내 마리가 내려깔았던 눈을 들자 붉은 눈동자에는 징그러울 정도로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빛날 것이었다.
날개를 펼쳐 공중에 떠오른 그녀는 무언가 혼자 중얼거렸을 것이었다. 그 공격할 대상을 바라보면서.
- 만들어진 지옥에서 실존하는 자여 - 내 몸을 빌려 드러내라 - 그 숨결의 위엄을!
“드래곤 브레스—”
양 팔을 감싸고 있던 방어구로 입가를 감싸고 있던 마리가 손을 내리자 마리의 입 앞에 모여든 거대한 화염구가 숨결처럼 퍼져나가 이내 거대한 화염을 뿜어냈을 것이었다.
스읍. 후우- 장죽을 만든 김에 독안개를 허공에 생성하던 레레시아는 팀원들에 의해 선로에서 탈선하는 거대 로봇, 아니, 블러디 레드를 보았다. 한 번 열차로 돌아갔던 블러디 레드는 다시 로봇으로 바뀔 여력은 없는 듯 했다. 여기 저기 파직거리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더라니-
"순순히 빼앗기지는 않겠다 이건가?"
자폭 시스템을 알리는 경고음에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자폭할 거라면 그 잔해조차 필요 없다. 어느 것도 필요가 없다면, 철저히 부숴줄 뿐.
레레시아가 한 손을 들자 날려버린 줄 알았던 독안개가 돌아와 그녀의 발밑으로 액체화한다. 이미 참방일 정도로 고여있던 독액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표면이 일렁거린다. 뭐든 삼키고 싶어 안달인 독액의 위로 들고 있던 장죽을 떨어뜨리자 퐁당 하며 집어삼킨다. 그녀의 주변에 고여, 그녀의 무기를 삼킨 그녀의 독액. 그 위로 레레시아는 한 쪽 무릎을 꿇는다.
- 절망에서 태어나 - 원념을 먹고 자란 짐승이며 - 여기 네 머리를 치켜들 시간이 도래하였으니
촤르륵- 일사분란한 소리와 함께 수십, 아니 수백의 독액 사슬이 그녀를 감싸며 솟아오른다. 사슬들은 아스텔과의 대련처럼 하나로 뭉치는 듯 했으나 하나의 거대한 몸체에서 다시 여러 갈래의 머리를 나누었다. 마치 전설 속의 마수- 히드라처럼. 거대한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짐슴의 모습으로 현현하여 소름끼치는 쇳소리를 거하게도 울렸다.
"폴링 커스."
그녀의 신호와 함께 아홉 사슬 머리가 폭파 직전인 블러디 레드에게 돌격한다. 열차를 구성하는 모든 소재를 분해하고 부식하는 독을 지닌 독의 짐승이 무력한 열차를 거대한 뱀이 물어뜯듯 무자비하게 유린한다.
열차의 공격은 무사된 것 같으나 자폭 시스템이 문제다. 아이들을 지켜내긴 했어도 마지막까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건지, 이스마엘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다시금 흰 연기가 새어나온다. 냉각 시스템이 몸의 체온을 떨어뜨리는 느낌이었다. 손에 쥔 야구배트와 함께 이스마엘은 한 번 뒤로 돌았다. 짧은 흰 머리카락과 무언가가 아이들에게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스마엘은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다들 저렇게 나서니 원, 내가 할 일은 없는 느낌입니다. 이 정도만..!"
이내 손에 무언가가 뭉친다. 흙먼지, 잔해, 그런 것이 뭉치더니 그대로 위로 던지고는 거세게 야구배트로 쳐낸다. 뭉쳐 만든 공이 강한 염력이 덧붙여져 쐐기처럼 크림슨 레드를 향해 날아간다. 이스마엘은 후, 하고 숨을 몰아쉰다.
"도와도 되겠지요."
스페셜 스킬은 알 수가 없다. 아마 쓸 일도 없을 것이다. 만약 쓴다고 해도. 이스마엘은 천천히 노이즈 사이의 눈을 휘었다.
힘이 강해진게 느껴진다, 내리찍었을 때 감각이 분명히 느껴졌다. 이건 분명히 들어갔다. 분명하게 충격이 들어갔다. 네 생각을 증명하듯 열차는 크게 흔들리고 스파크를 마구 튀기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온전히 모든 걸 해낸 게 아니었으니, 동료들의 집중공격으로 선로는 사라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진하려던 블러디 레드는 땅에 나뒹굴었다. 너 역시 그런 처지가 될 뻔했지만 무사히 땅에 착지하는 데 성공했고, 너는 고갤 들어 다시금 떠오르려는 열차의 부분들을 쳐다보았다.
"...자폭이라, 대단원이라는 이야기겠죠."
떠오르게 내버려 둘까보냐, 그 발악에 쓰러져 줄까보냐. 너는 땅에 손을 짚고 무릎을 굽혔다.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고안한 자세, 스프린트를 위한 그 자세. 머릿속으로 숫자를 센다. 셋, 둘, 하나. 실제로는 들리지 않는 게 분명한 신호탄의 소음을 떠올리며 너는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담아서 땅을 박찬다.
"...찾았다."
아무리 단단한 갑옷이라도 틈은 있는 법, 하다못해 피부에도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뿐, 수많은 틈이 있다. 촘촘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는 인간의 피부와 질긴 짐승의 가죽이라도 그럴텐데, 저렇게 거대한 열차에 어떠한 균열도 없을 리 없지. 그런 균열이 네 눈에 보였던가. 아니면 그저 느낌이었을까. 어쨌든 너는 그 균열로 곧장 달려들었고 그 사이로 톤파를 있는 힘껏 찍어넣었다, 남은 건 이 균열로 말미암아 블러디 레드가 파멸을 맞이하게 하는 것 뿐, 짧은 기합과 함께, 균열에 파고든 무기는 방향을 틀었다. 있는 힘껏, 스파크가 튀어오르는 그 균열을 비틀어 찢기 위해서.
자폭 카운트에 들어갔다는 녀석을 보고, 제이슨은 목을 우둑우둑 꺾었다. 과연, 이대로 두면 큰일 나겠는데. 아무래도 여기선-
[최대 화력이란 녀석인가.]
제이슨은 손을 짝 겹쳐 합장하고,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기합을 넣었다. 집중하는 듯 보이는 그 눈동자는 타오르는 듯이 떨렸고, 머리카락처럼 보이던 것은 불타다 못해 하얗게 새기 시작했다. 이윽고 양반다리로 앉은 제이슨은, 전극을 아래로 내뿜어 반발을 일으키는 것으로, 조금 공중에 뜬다.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육신은 곧 철이며 철은 곧 영혼이니 -천둥의 연꽃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깨달음의 겁화 업보를 불사른다
천천히 제이슨의 팔과, 보검의 힘으로 생겨난 팔이 몸에서 분리되고 나눠져 6개의 손처럼 보이는 유닛이 된다. 이윽고 그것은 제이슨의 주변을 둘러 싸 그 손바닥 부분을 적에게 향한다. 그 모습은 마치 신화의 아수라 같다.
[성불해라... -초전하업화포!!]
그 말과 함께, 질끈 감았던 눈을 번쩍 뜨자. 주변에 떠있던 손바닥 유닛들에서, 마치 불타는 꽃과 같은 에너지를 터트리며 노랗고 붉은 광선을 상대에게 쏟아냈다.
배가 고프다. 블러디 레드의 질주는 저지했지만, 길어지는 작전으로 공복이 심해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블러디 레드는 자폭까지 감행하는 듯 했다.
'대장. 열차 확보는 실패한 것 같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안함에 고개를 숙였다. 확보했었더라면 지금쯤 에스티아가 개조를 하는 중이었을지도. 블러디 레드와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파츠 하나하나가 폭탄이 되어 에델바이스를 터트리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블러디 레드를 삼키는 것도 참고 있었는데.
...하지만 블러디 레드가 폭탄이 되기로 했다면 참을 필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자 미안함은 곧 호기심과 공복으로 전환되어, 그녀의 안에서 욕구로써 치밀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엔-"
- 열차는 무슨 맛이지? - 열차는 무슨 맛이지? - 열차는 무슨 맛이지?
"블러디 레드를 삼켜라."
그녀의 복부에 균열이 생긴다. 아스텔의 칼에 베인 것처럼 선을 이뤘던 균열은 점점 벌어져, 그녀의 몸뚱이를 젖히고 짐승의 아가리의 형상으로 이빨을 드러내었고-
모두의 장렬한 공격. 스페셜 스킬이나 그 외 기타 공격등으로 인해 블러디 레드는 그야말로 산산조각 나며 폭발했고 이내 파편이 되어 여기저기로 떨어졌다. 당연하나 안에 잡혀있었던 가디언즈 병사들 역시 밖으로 튀어나오듯 여기저기로 떨어졌으나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보아 아무래도 마지막까지 열차의 벽에 달라붙어 에너지를 제대로 착취당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누군가는 파편없이 소멸시키려고 한 이도 있고 먹어치우려고 한 이도 있을지도 모르나 어쨌건 차량이 한개만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파편이 남아있던 것도 있었을까.
지금까지 통신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블러디 레드의 AI였던 것일까. 방금 전까지 다른 곳으로 통신을 할 수 없었던 단말기의 통신기능이 다시 돌아왔다. 아이들도 모두 무사했기에 이제 아이들을 데리고 복귀한 후에 보고를 하면 될 일이었다. 아마 본부에 있는 에스티아에게 연락을 하면 근처에 포탈을 열어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근처에 있는 나무에서 노이즈 흔적이 나타났다. 마치 허공에 아지랑이가 핀 것처럼 그 노이즈는 서서히 커졌고 이내 그 뒤에서 긴 붉은 머리 여성이 나타났다. 재밍 장치를 이용해서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붉은 머리 여성의 붉은 눈동자는 에델바이스를 묵묵하게 바라봤다. 그러다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다가간 후, 근처에서 나뒹굴고 있는 블러디 레드의 파편 몇 조각을 바라봤고 오른손에 끼고 있는 렌즈가 달려있는 기기를 작동시켰다. 마치 스캔하듯이 파편을 바라보고 있던 여성은 이내 장치를 끄고 앞을 바라봤다.
허나 그 시선은 절대로 호의적인 표정이 아니었다. 그 뒤의 아이들은 물론이며 에델바이스 멤버들 중에서는 강한 살기를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눈빛은 상당히 차갑고 매서웠다. 먼저 공격을 할 것인가. 아니면...
멀리서 스크린 등을 통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은 해봤지만 그것도 아니고 이 근처에 사람이 남아있었다니, 전혀 상정하지 못한 상황이였다. 심지어 저 행동과 눈빛에서 느껴지는 살기...어쩌다 휘말려 든 일반인일 미연의 가능성조차 없을 듯 하다. 하지만 블러디 레드와의 싸움으로 인해 기력이 소진된 인원도 많을터고, 저 여성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이상...
휘몰아치는 독액의 중심엔 그녀가 있었다. 무참히 부서지는 파편을, 그 사이 죽어나가는 가디언즈 병사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그녀가 있었다. 굳은 것처럼 표정이 없던 얼굴은 이내 눈매를 휘고 입을 크게 벌렸다. 독과 사슬의 짐승이 날뛰는 한가운데에서 그녀는 웃었다. 미친듯이 웃었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웃음을.
"...후-"
무사히 블러디 레드의 자폭을 저지한 후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평온하게 일어선다. 기분 좋은 탈력감이 전신에 느껴지니 이대로 돌아가면 정말 꿀 같이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제 돌아가자며, 본부로 연락을 취하려는 순간,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서늘한 살기도 함께.
"어라-"
느닷없이 나타난 붉은 머리의 여성을 보고 레레시아는 천천히 돌아섰다. 아직 무장을 해제하진 않았지만 무기는 들지 않았다. 단지 방어구의 무장만 갖춘 채로 천천히 붉은 머리의 여성 쪽으로 걸어간다.
"누구시길래- 그런 인성 나락간 눈으로 꼬라보는 걸까나아. 어?"
안부라도 건네듯 가볍고 살가운 말투에 비해 내용은 전혀 그렇지 못 한 말을 건네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본다.
시간 차 공격인가, 모두 상태가 최고는 아닐터. 헌데 전투에 항상 최고의 컨디션이랄 보장은 없지. 상대가 약해졌을때 노린다, 이것 또한 당연한 것. 오장육부가 움츠러드는 기분이 든다. 물감은 공중에서 두 개의 단도의 형상을 맺어가고, 여성의 목과 심장 부위를 향해 돌진하듯 날아간다. 물체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
멜피의 말에 답을 하듯 아이들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긴다. 이런 상황에선 후퇴가 알맞겠다마는, 그는 그러고 싶진 않았다.
폭풍이 지나간 가운데, 배를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시는 그녀가 있다. 그녀가 움찔거리며 자세를 낮춘 것은, 이 현장에 있어서는 안 될 정체 불명의 여성의 등장 때문이었다. 로벨리아가 알려주지 않은 사람이 이런 현장에 있을 리는 없을 뿐더러, 그 여자에게서는 피부가 따가울 만큼 매서운 살의가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 그렇지 않아도 동물적인 감이 날카로운 엔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엔은 공격하겠다."
짐승이 적의를 느끼면 공격하듯, 그녀의 그것도 순전히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엔, 길쭉길쭉이 되어라."
그녀의 등 뒤로 고기촉수가 휘어져 나온다. 촉수는 대기하는 일도 없이 곧장 여자를 꿰뚫기 위해 돌진했다.
블러디 레드는 파편이 되어 여기저기 떨어졌다. 이스마엘은 그 사이에서 가디언즈 병사 하나가 발치로 떨어지자 시선을 내렸다. 생존자는 없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자 이스마엘은 자연스럽게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손발목이 뒤틀린 병사였다. 이스마엘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 사람이다. 이상향을 위해서라면 뭐든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일이 끝나버리니 죄책감과 공포가 물밀듯 치고 들어왔다. 만약 이스마엘이 이 사람의 손발목을 뒤틀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며 죽지 않았을까? 이 사람도 꿈을 꾸고, 생각을 하며, 하루를 살아갔을 텐데. 오늘 하루가 이렇게 될 거라 믿지 않았을 텐데…….
아이들의 앞이었으나 도망치며 신을 부르짖고 싶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다시금 얼굴을 확인한다. ……이스마엘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여성이 나타나며 살기를 느꼈을 때도. 네가 죽였느냐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Nein."
이스마엘은 하나의 단어를 제외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다시 내리자 무언가 겹쳐 보이는 듯싶었다. 이스마엘은 소스라치게 놀라듯 숨을 황급히 들이키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부들부들 몸이 떨린다.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자 얼굴을 덮듯 장갑을 낀 손이 노이즈 너머로 사라진다. 눈을 비비듯 팔이 움직인다. 손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못했다. 살이 그새 짓무르기라도 했는지 눈두덩이 시큰거렸다. 이스마엘이 다시금 뱉었다. Nein.
열차는 박살났다. 너는 숨을 몰아쉬었고, 그에 반응하듯 헬멧은 모습을 감췄다. 네 얼굴에 남은 건 걸쳐진 고글 뿐, 고글 너머로 죽어가는, 이미 죽어버린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전원 가디언즈였지만. 너는 말없이 시선을 돌린다. 이제는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에스티아에게 연락하기 위해 단말기를 만지던 차에 갑자기 이상한 느낌에 근처에 있는 나무를 바라본다. 분명히 부자연스러운 노이즈, 그리고 노이즈 너머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붉은 머리의 여성, 누구지? 너는 갑자기 털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이건 위험해. 정도가 심한 살기에 너도 모르게 흐르는 식은땀에 너는 마른침을 넘겼다.
어떻게 하지? 적? 저렇게까지 살기를 내뿜는다는 건 뭔가 하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선수를 쳐? 어떻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떨림에 너는 움직일 자신이 없었다. 공격도, 도망치는 것도 섣부르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가는 멜피, 정확히는 그녀도 살기를 느낀 거겠지. 그뿐만 아니라 유루, 엔까지 여성에게 공격을 가하자 너는 손발이 차가워지는 듯한 감각에 몸을 떨었다.
저 셋을 전부 막아낼 수 있을까? 생각은 길지만 그 시간은 찰나, 너는 반사적으로 땅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잠깐만, 이건 아닌 것 같아. 섣부른 행동인 것 같아. 말하지는 못했다, 이미 꽤 숨이 찬 상태에서 너는 공격을 가하는 아군과 여성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럴 수 있는 위치가 아닌데, 단순한 핀잔, 경고를 넘어 의심과 퇴출로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네 위치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더군다나 저 중에는 껄끄러운 사람도 섞여 있었다, 그때 나눈 대화를 떠올리니 다시금 속이 쓰려온다. 미사일을 막기 위해 펼쳤던 방패가 이제는 아군을 막기 위해 펼쳐진다, 이미 늦었다. 어느 쪽이든, 살기는 코 앞에 있다.
살기를 느낀 멜피는 빠르게 그 여성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그녀는 낫을 정말로 가볍게 공중제비로 회피했고 유루가 날린 두 개의 단도를 발로 걷어차서 막아냈고 엔의 촉수를 바라보면서 가볍게 몸을 옆으로 굴려 회피했다. 그 몸동작 하나하나는 절대로 어설픈 이의 동작이 아니었다. 이내 중간에 쥬데카와 마리가 막아서긴 했으나 그 살기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 대원들 중에서는 경계하는 이들도 있었고 후퇴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허나 딱히 싸움이 일어날 일은 없었던 것일까? 아무튼 가깝게 있던 이들은 아마 그녀가 공중제비를 하면서 보였던 뒷목에 7 표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U.P.G와 같은 팀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그리고 너희들과도 같은 편은 아니지."
"여기서 너희들을 상대하기엔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못하고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어."
이내 그녀는 단번에 공중제비로 거리를 띄웠다. 그리고 오른손을 높게 들었고 렌즈가 달린 장치에서 붉은색 빛이 솟구쳤고 그 빛은 그 여성을 감쌌다.
"레인. ...기억해둬라.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스피딩 데스트로이!"
이내 그 붉은 빛은 방금 전에 있었던 블러디 레드의 모습으로 변했고 그 형체는 공중으로 살짝 떠올랐다. 그리고 단번에 앞으로 철로를 형성했고 빠르게 그 자리에서 이탈하듯 사라졌다. 그것은 틀림없이 방금 전 상대했던 블러디 레드의 기술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허나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일단 임무는 완료되었다. 열차는 비록 회수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송될 예정이었던 세븐스 멤버들은 구출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초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내 누군가가 에스티아와 연락을 했다면 곧 포털이 열렸을 것이다. 그 포털을 이용해 다시 아지트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회색 청안의 여성은 자리에 앉아 가디언즈 병사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영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듯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블러디 레드는 카시노프 박사가 만든 신무기잖아. 그걸 어떻게 아스텔도 아니고 패배자 테러리스트들이 파괴할 수 있단 말이야?"
"그것이... 믿을 수 없지만 보검 같은 것이 사용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블러디 레드가 마지막으로 남긴 영상을 보면... 무장이 마치 보검을 해방했을 때 나오는 형태라고..."
"보검?"
글라키에스라고 불린 여성은 자신이 지금 손에 쥐고 있는 하얀색 긴 검을 바라봤다. 그것은 아스텔이 가지고 있던 녹색 보검과 비슷한 디자인의 보검이었다. 가만히 그 검을 손으로 만지던 글라키에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청색 눈동자는 상당히 차가웠으나 딱히 살기를 보이진 않았다. 다만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직접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보검은 총 9개. 그런데 보검 해방과 같은 무장이라니. 있을 수 없어. 아. 한 가지 가능성은 있긴 한데 역시 직접 봐야만 알 수 있겠네. 좋아. 그럼 직접 봐야겠어."
"설마 글라키에스님?! 직접 나가실 생각입니까?"
"보검 부장을 하고 있다면서. 그럼 너희들로는 상대가 안돼. 그러니까 내가 직접 나서서 확인하고 짓밟아주겠어. 그것이 진짜 보검을 해방할때 나오는 무장이라면... 그건 말이야. 패배자가 가질 물건이 아니야. 분수를 모르고 기어오르는 이들은... 빠르게 짓밟아버리는게 당연한거야."
글라키에스는 싱긋 웃어보였다. 허나 그 웃음이 무서웠는지 가디언즈 병사는 머리를 내리고 벌벌 떨기 시작했다. 이내 차가운 냉기가 그 방에 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방 저편에 있는 투명한 꽃병에 꽂혀있는 꽃은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었고 이내 얼음조각에 금이 가더니 가루가 되어 테이블에 사르르 눈이 내리듯 하얗게 떨어졌다.
"...그래. 노력조차 하지 않고 승리자의 힘을 얻으려고 하는 이들을 이 세상에 그냥 둘 순 없는 법이야." "이 힘은 승리자의 것이니까."
이스마엘: 032 기억에 남는 생일 파티는?(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음.. 아홉살 무렵에 이제 전자기기를 다룰 수 있는 나이라면서 선물로 받았던 신소재 플라스틱 태블릿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어. 지금은 고장이 났는지 켜지지 않지만..
048 사탕이 주어진다면? (사탕의 맛은 딸기, 초코, 커피, 계피, 레몬, 메론맛이 있다.) 주변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남은걸 먹지 않을까?
152 흑역사가 있나요? 음.. 그러니까.. 에델바이스에 오기 직전에, 눈이 돌아서 사람을 패본 적이 있어... 본인은 자제하지 못했다며 얼굴을 싸쥐면서 후회하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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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은 정당하다?" 이스마엘: 정당합니다. 이상향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이상향을.. 위한 일이었으니까..
"왜 그애를 죽였어! 그애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스마엘: ……아닙니다, 살렸습니다. 살렸습니다.. 그러니까, 살렸습니다.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건 블러디 레드가.. (이스마엘은 잠시 멈춰서더니 머리를 쓸어넘기듯 하며 한숨을 쉬었다. 마음을 다잡기로 한 모양이다.) 이스마엘: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낙원을 위해서였습니다.
"자신을 살려 달라 애원하는 악인에게?" 이스마엘: 살려줄 겁니다. 아무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죽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당연한 것이고, 우리는 많은 선택 중에서 나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 선택을 싫어할 권리는 있지만, 그렇다고 박해할 권리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싫어할 권리가 아닌 박해할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 순간부터는 학살을 보기 좋게 포장한 변명일 뿐입니다. 당신의 주장은 처음부터 학살자의 것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겁니다. 선택하십시오. 이스마엘: 하지만, 다음에도 같은 선택을 하신다면.. 그 이후는 이제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선이 아니겠지요. 타인의 선택도 있으니 말입니다.
임무가 끝났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고 구출한 세븐스 아이들이 남았다. 새로운 인물은 레지스탕스도 가디언즈도 아닌 제 3의 인물. 다른 이의 스킬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듯 했다. 다른 이의 능력을 흡수한다니 그거 반칙 아닌가?
마리는 그런 생각을 했다가 이내 주변 동료들을 돌아봤다. 이내 에스티아에게 연락을 해서 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도 차례차례 에델바이스의 지하기지로 이동했다. 마리는 떨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따끔따끔했다. 자신이 가디언즈에게 부모님을 잃고 잡혀가게 될 것을 다른 레지스탕스에게 구해진 게 바로 십년 전 쯤, 저 비슷한 나이였기 때문이었다.
작전 내용을 들었을 때, 아마 마을 사람들은 다 죽었다고 했던가. 그럼 이 아이들의 부모도 다 사망한 걸까? 마음이 착잡했다. 하지만 차마 어린애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진 못하고 이내 그 주변을 맴돌았다.
그 중 의외인 점은 유루가 아이들에게 말을 걸면서 애들을 편하게 해주려는 건지 에델바이스 내부를 구경시켜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마리의 마음 속에 유루에 대한 이미지는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애들에게 해코지를 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의심의 시선으로 유루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었다.
이내 유루가 아이들 두세명을 데리고 기지 밖으로 나왔을 때에도 마리는 그 뒤를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졸졸 쫓아가고 있을 것이었고.
>>479 크윽... 너무 많아... 이건 바로 대답하긴 좀 그렇고, 정확히 누구의 인상을 듣고 싶으신지 앵커 달아주시면 열심히 답해보겠습니다...
>>480 복각이 있으니 그때를 노려보시죠!(?)
>>485 수영장에 간다면 평범하게 수영하지 않을까요? 수영 실력은 괜찮으니 상급자용 레인에서 수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가 안전요원에게 걸려서 코스가 강제로 바뀔 수도... 발이 안 닿으니까..(옆눈 으음 머리카락을 건드리면 조금 곤란해하긴 하겠지만 대놓고 하지 말라고는 못할 거에요,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편은 아니라서 그걸 이야기하면서 만지는 걸 자제해달라고는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만진다면 포기하겠지만...
>>489 어떻게든 엔딩은 볼 거라고 생각해요, 하다가 도중에 이걸 하는 의미가 뭘까 하고 스스로 시간과 정신의 방에 들어가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클리어는 할 겁니다! 만약 벌칙이라면 울면서 할지도...
>>493 (촉감도 별로 안 좋은 머리를 왜 자꾸 쓰다듬지?)(내가 작아서 그런건가?)(쓰다듬는 이유가 대체 뭘까?)등등 생각풍선이 퐁퐁 하고 나올거에요! 그...왜 그러시죠? 하고 물어보고 뭔가 이유가 있다면 차마 하지말라고는 못할 것 같네요.
레레시아는 경험이나 운의 차이라고 말하는 아스텔을 보며 말꼬리를 길게 늘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 대련의 결과가 무엇의 차이라고 명확히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갖은 요소들이 맞물려가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온거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레레시아로선 얻은게 많았다. 무장의 혀용, 기술의 확인, 그리고...
"천만에. 의료반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빠르게 아스텔의 치료를 마친 라라시아는 고맙다는 말에 대답한 뒤 돌아서 레레시아에게로 갔다. 그 새 레레시아도 모조 보검의 무장을 해제하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얼굴에 흐르는 피를 소매로 벅벅 문지르고 있었다. 다쳤을 때 그러지 말라니까. 그치만- 어린애를 달래듯이 라라시아가 레레시아의 팔을 붙들고 앉아 치유를 시전한다. 서서히 상태가 나아지는 도중에 레레시아가 아스텔의 말에 대답랬다.
"에- 그러엄 나중에 음료수 사줄 때 말할게- 지금은 피곤-해-" "아 좀 가만히 있어!"
꾸물거리며 라라시아에게 앵긴 그녀가 어깨 너머로 아스텔을 보며 덜 아픈 쪽 손을 흔들었다. 나중이라 하는 말이나, 훈련장인데도 늘어진 걸 보면 음료수를 얻어마시는 건 다음이 될 것 같다.
"아스테루- 바이바이비-"
그녀의 인사를 끝으로 아마 각자의 행동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후일담.
훈련장에서 나가는 건 아스텔이 먼저였을 것이다. 가벼운 발소리 뒤로 문이 여닫히고 나면 넓은 훈련장에 쌍둥이 밖에 남지 않는다. 기묘한 정적 속에 레레시아가 작게 앓는 소리만 들린다. 그 앓음이 멎어갈 쯤. 라라시아의 나직한 목소리가 묻는다.
"레레, 너, 아까 그 모습." "으응-? 그거 왜애?" "그거... 포기 안 한 거야?" "...."
레레시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라라시아의 품에서 나와 마주보고 앉았다. 같지만 다른 얼굴. 같았지만 이제 다른 사람. 쌍둥이는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금빛 눈동자가 말한다.
"포기, 했을 리가 없잖아. 나한텐 이제 그거 밖에 없어." "그럴 리가 없" "아니, 그것 뿐이야. 나는."
단호함을 넘어 완전히 닫아버린 눈빛에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그녀는, 그리고 그녀도.
"...올라갈까? 가서 간식이나 먹자." "에- 난 간식보다 술 마시고 싶은데에." "그래. 간만에 마시고 죽자. 너나 나나." "와-"
어장 첫 스토리를 진행하자마자 과연 이 충격과 공포의 개인주의 가디언즈는 몰살이다! 열혈 어장(농담)에서 끝까지 살려야 합니다, 누구도 죽어서는 안 됩니다를 염불 외듯 하는 태양캐로 남을 수 있을까.. 생각은 들었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노선 꺾어버리고 역시 '배트맨식 불살'을 행하는게...
임무가 끝나고, 결국 블러디 레드는 확보하지 못했지만 잃은 사람 없이 7명의 세븐스들을 무사히 구출해서 데려왔다. 그것만으로 대성공인지도 모른다.
내용이 어떠하든, 임무가 끝난 뒤는 항상 고요함이 찾아오거나 복도가 멤버들의 소리로 시끄러워진다. 그러나 엔은 그것에 상관없이, 항상 자판기에 들러 갈증과 배고픔을 채우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 그 앞을 지나가는 당신이라면, 자판기 버튼을 연신 꾹꾹 누르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지 않았을까.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당신을 본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니나. 수고했다."
그녀가 당신을 향해 아는체하며 인사한다. 그러는 한 편, 그녀의 버튼에 반응한 자판기 안쪽의 음료수가 요란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덜커덩 덜커덩. 그녀가 자판기 아래에 쪼그려 앉아 음료를 꺼내는데- 당신이 오기 전부터 얼마나 눌러댔는지 계속해서 캔이 투출구에서 튀어나온다. 척보아도 다섯은 넘는 것 같다. 그것을 모두 혼자 마시려는 건지는 몰라도. 꺼낸 캔들을 품에 끌어 안은 상태로 그녀는 당신을 빤히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캔 하나를 집어 당신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자신의 임무는 끝났다. 다만 자신이 맡았던 일이 끝났다고 해서 사건 전체에 종결부가 찍히는건 아니다. 두려웠을 아이들도 누군가는 진정시키고 새로운 사회에 스며들게끔 해야하고, 누군가는 보고를 올려야 한다. 자신이 알기론 부상자가 없으니 일은 좀 줄었지만.
“아이스크림 사러 갈래?”
이제부터 살게 될 곳을 구경시키는 것도 좋겠지. 아이들을 좋아하는지라 일이 생겼다는 기분은 안 든다. 능력을 그닥 많이 쓴 것은 아니라 다른 대원들에 비하면 팔팔한 자신이 일을 도맡는 것이 옳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겁을 먹고 있다가도 아이스크림 소리에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세 명. 나머지 네 명은 인상을 쓰고 있던 유루에게 겁을 먹었던 건지 더욱 떨며 고개를 젓는다.
“난 눈이 안 좋아서 너희들을 자세히 보려면 얼굴을 무섭게 해야해. 이해 해줘.”
자못 웃으며 긍정을 표했던 여자아이 두명과 남자아이를 데리고 기지 밖으로 향한다. 날은 선선하니 아이스크림 먹기 딱 좋은 날씨다. 윗 층의 마트로 걸음을 향하며 그저 아무런 영양가 없는 말만 부드럽게 읊조린다. 여자아이 한 명과 남자아이는 조금씩 긴장이 풀리는지 함께 조잘거린다.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걷던 여자아이는 마리가 있는 방향을 흘깃 쳐다본다. 유루는 여자아이가 걸음을 멈춘 것을 느꼈는지, 내딛던 발을 우뚝 세운다.
“저 누나도 너희랑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가 봐. 가서 같이 먹자고 물어볼래?”
그의 손을 잡고 있던 여자아이는 쥔 손에 힘을 주었다가, 손을 놓고 마리 쪽으로 조심스레 걸어가본다. 사회성은 이렇게 기르는 거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 했을 이들한테는 이 정도로 시작하는게 좋다. 사실 모르겠다, 그저 그렇다고 읽었을 뿐. 여자아이는 마리에게 다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웅얼이듯 물음을 던진다.
“...저도, 언니랑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유루의 말을 확신삼아, 아이는 마리에게 겨우 말을 건다. 자신을 구해주었다는 사람 중 하나였다는걸 인지하고 있는지, 마리를 똑바로 올려다보는 아이의 두 눈엔 생기와 동경으로 가득 차 있다. 마리가 유루 쪽을 보면 그는 맑은 눈웃음을 치며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고 있을 것이다.
아, 존* 뒤지게 힘들다. 아니, 힘들기보다는 피로감이 일정 정도를 넘어서니 미묘한 불쾌감이 되었다 함이 옳다. 탈력감이 몸 위에 내려앉아 짓누르는 듯하고, 둔해진 감각이 머리를 쿡쿡 찔러댄다. 그는 욕 나오게 힘들다고 생각을 하려다 제 평소 언어습관을 돌아보고 속으로 정정했다. 욕이야 기분 좋을 때도 하니 말이 안 된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잡념도 거기에서 끝이 난다.
일이 있었던 시간은 그다지 길지도 않았건만 격렬한 활동을 그 짧은 시간동안 몰아서 했으니 피곤을 호소한대도 무어라 할 자 없을 테다. 그러나 불쾌할 정도의 피로를 느끼면서도 그는 어디에 들어가 뻗거나 얌전히 쉬는 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별달리 큰 이유는 없지만, 그냥. 실내에 있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다. 언제부터였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에겐 떠돌길 좋아하는 몹쓸 버릇이 생겨버리고 말았더란다. 그렇게 눈은 힘 풀려서 하품을 하고, 종착지 없이 이리저리 걸음 옮기던 여승우가 멈추어선 것은 그때였다. 익숙한 인영의 바로 앞 자리였다.
"표정이 완전 개** 났는데."
그리 말하는 그도 꼴이 양호하지는 않다. 양손과 얼굴, 몸 여기저기에 그을음을 묻힌 몸에서는 미미하게 탄내가 났다. 불덩어리를 펑펑 터뜨려 대고 이리저리 굴러다녔으니 고운 몰골 유지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가뜩이나 기분 좋아 보이지 않는 사람 앞에서 웃는 낯짝이란, 밉게 보일만치나 속없었다.
제발 화풀이 좀 그만하자. 그녀는 복귀하고나서도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아까의 상황을 떨쳐내지 못하고 한손에는 커피를 든채로 벌레를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방금전에는 그냥 말없이 넘어갔지만..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녀도 알고는 있습니다.. 나쁜 의도로 막은건 아니란걸.
아니, 모르고 있나요?
"아, 젠장..! 적당히 하자 진짜!"
그녀는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짜증을 떨쳐내려 했지만 영 마음대로 안되는지 분노를 넘어 울상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익숙한 목소리와 욕설이 귀에 들려오자 그녀는 그쪽을 바라보더니 입을 삐쭉하고 내밀었죠.
"그래 아주 개xx 났다. 알고있으면 어서 이 미인을 위로해줘야하는거 아냐?!"
살짝 느껴지는 탄내가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만약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그녀는 그저 적당히 넘기든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다른이들보다 조금 더 친한 당신이었기에, 그녀는 투정을 부리며 양팔을 벌렸습니다.
뒤에서 유루를 관찰하고 있던 마리는 유루가 자신을 대했던 것과는 아주 딴판으로 아이들에게 잘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린 애들을 좋아하는 편인 걸까? 의외네. 처음 보는 여자에게 손키스를 날리는 무뢰한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 한 여자아이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에 마리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깜빡였다. 유루가 아이스크림 핑계를 대며 여자아이를 자신에게 보내자 마리는 조금 긴장했다. 생각해보면 구출된 이후로 제 또래는 물론이요, 자신보다 어린 애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응. 같이 아이스크림 먹을까?”
마리는 작은 미소를 띄우며 아이의 손을 잡고 유루의 쪽으로 향했다.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을 때 그가 맑게 눈웃음을 치며 손짓하는 것에 뚱한 표정을 지었겠지만서도.
어떻게 유루와 마리와 여자애 2명과 남자애 한 명이 같이 기지의 위쪽의 슈퍼마켓으로 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묻는 말에 대답하면서 걷다보면 슈퍼에 도착할 것이었고,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머리를 파묻을 듯이 하며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동안 마리는 유루에게 말을 걸었을 것이었다.
그녀가 에델바이스에 들어온 것은 대략 2개월 남짓 전. 꽤나 최근에 들어온 멤버였기에 수행한 임무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그녀는 임무가 끝나고 나서는 다시 돌아가 자신이 할 일만을 했다. 그 말은 즉슨 그녀는 임무가 끝난 후 에델바이스의 공기를 느껴보지 못 했다는 것. 처음 느껴보는 임무 직후의 공기에 어딘가 어색해하며 복도를 거닐던 중, 끼리끼리 얘기를 나누거나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남들과 다르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자판기의 버튼을 누르고 있는 당신을 발견했다.
하긴 엔씨의 능력엔 자신의 육체 그 자체가 소모되니까 임무 후엔 보충이 필요하겠지-하는 생각을 하고서, 그녀의 허기를 채우는데 보태줄까하며 자신 역시 자판기로 다가가려던 도중, 엔에게서 먼저 말이 걸려왔다.
"앗, 감사해요 엔씨! 이번 임무는 뭔가 상당히 힘들었는데..엔씨도 수고하셨어요!"
그녀가 생긋 미소를 지어보이며 엔이 건넨 인사의 답례를 한 직후, 자판기 아래에서 울리는 소리에 반응해 그쪽을 바라본다. 대체 얼마나 많이 뽑은 건지 한 눈에 봐서는 그 수를 알 수 없을 정도의 물량에 그녀는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걸 다 마시시는 거에요? 이번 임무가 꽤 힘들긴 했지만, 많이 지치셨나 보네요~"
악의라곤 섞이지 않은 순수한 질문을 건네곤, 엔이 지금 자신에게 그러는 것처럼 자신도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서 엔을 말 없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엔에게서 돌아온 말은 그녀를 조금 놀라게 했다. 그도 그럴게 따지고보면 그녀가 지금 이 자판기에 접근한 목적은 임무에서 체력을 많이 소비해서 그런지 배고파보이는 엔에게 음료를 사주기 위해서니까.
"네? 그거 엔씨가 마시려고 사신거 아닌가요?? 많이 배고프실텐데 전 괜찮으니까 엔씨가 드시는게 어떠세요? 아 참, 잠시만요..."
놀란 얼굴로 엔이 자신에게 건넨 음료를 거부하고, 본래 그녀의 의도대로 잠시 주머니를 뒤적뒤적하더니 지갑을 꺼내들었다.
오늘의 레레시아는 제법 기분이 좋았다. 자고일어나니 몸이 정말 가뿐하고 상쾌했고, 바깥의 날씨가 매우 좋았으며, 산책하러 나간 거리에서 평소 쉽게 못 구하는 한정판 쿠키를 무려 두 통이나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곧장 기지로 돌아와 쿠키 한 통은 라라시아의 방에 두고, 남은 한 통과 최근 읽는 중인 소설책을 꺼내 휴게실로 갔다. 개인실을 두고 굳이 휴게실로 간 건 가끔은 휴게실의 소파가 더 편할 때가 있어서였다.
"게엑."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휴게실 문을 열자마자 쇠냄새가 제일 먼저 느껴졌다. 누가 신성한 휴게실에서 유혈 사태를 일으켰는가? 그럴 사람은 기지 내에 몇 없었다. 일단은 안으로 들어가 누가 있는지 확인한 그녀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레-몬- 또- 의무실 안 가고 혼자 그러는 거야아? 라라가 알면 화 낼 거라구-"
라라, 그녀의 쌍둥이인 라라시아는 의무실 소속인지라 그곳과 관련된 얘기도 조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주사가 무서워서 싫다던가? 그렇다기엔 자잘한 부상도 치료하러 오지 않아서 이상하다는 얘기도 서로 했었지. 참 별별 사람이 다 있다는 말도.
"아무트은 피 냄새 싫으니까- 빨리 하고 치워 줘-"
지금은 그녀의 용건이 좀 더 중요했으므로 빨리 하고 치워달라며 손을 휙휙 내저었다. 그리고 남는 소파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누워, 배 위에 쿠키통을 올려놓고 소설책을 펼쳤다. 그대로 느긋한 휴식 시간을 즐길 것처럼.
당신은 그녀의 행동에 놀란 반응을 했지만, 그녀는 평소와 같은 얼굴로 멀뚱히 눈을 깜빡이며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엔은 괜찮다. 이번에는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녀를 오래 보지 않은 당신은 잘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그녀는 남의 먹을 것을 탐냈으면 탐냈지, 아무래도 자신의 음식을 선뜻 내어주는 사람은 못됐다. 그런 그녀가 당신에게 자신의 음료를 이렇게 건네주는 걸 보면, 그 행동이 어떤 예절상의 이유에서 나온 것은 분명 아닌 것 같았다.
그러고보면, 임무 마지막 쯤에 그녀의 근처에 있던 블러디 레드의 파츠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도 같다. 만약 당신이 임무 도중 그것을 눈치챘다면 말이다. 그게 지금의 그녀가 괜찮다고 하는 이유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당신이 지갑을 꺼내들며, 그녀에게 음료를 사주려고 하자-
"엔은 정말 괜찮다."
그녀는 당신에게로 불쑥 다가가 지갑을 붙잡고서, 당신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거리감이라는게 없는 것처럼 확 가까워진 거리다. 드리워진 그림자 안에서 검붉은 눈동자가 빛을 띄고 있었다.
누가 들어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지금이 환자가 넘쳐나는 비상시도 아닌데 치료 못 받는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하지만 저 말이 핑계인 걸 알고 있듯, 재차 말해봐야 계속 안 가고 혼자 저럴 것도 안다. 그러니 더 많은 말은 하지 않고 가져온 소설책에나 신경쓰기로 했다.
"엇. 뭐야. 으엑."
처치를 마친 레이먼드가 방향제 타령을 하며 진짜로 뿌리길래 급하게 책으로 얼굴을 가린다. 쿠키통은 아직 안 열어서 다행이었다. 치익대는 소리가 지나가고 책을 슬쩍 내리자 강렬한 방향제 향이 위에서부터 솔솔 내려온다. 으와- 책으로 부채질 몇 번을 해서 주변의 향을 좀 옅게 만든 후, 이제 괜찮겠지 싶어서 쿠키통을 열었다. 뽈칵. 둥그런 양철캔을 배 위에 두고서 하나씩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음. 버터쿠키 맛있어.
"임무 다녀온지 얼마나 됐다고- 뭐 했길래 그 모양이래애. 혹시 싸움-? 밖에서-?"
된통 깨졌다고 하니 밖에서 민간인과 싸우고 로벨리아에게 잔소리라도 들었나 싶었다. 기억하기론 블러디 레드 임무에서 그렇게 큰 부상자는 없었던 걸로 알고 있었으니까. 뭐든 아무래도 좋지만.
"임무에서 발목 잡으면- 안 도와줄 거야아. 몸 간수 좀 해애. 레몬-"
앞으로 더 험한 임무에 나가야 할 텐데. 시작도 전에 팀원이 너덜너덜한 꼴이면 발목잡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 걸리적거리지 말라는 의미로 말하곤 쿠키를 와작와작 먹는다.
사실 거짓말이다. 의무실 담당이 지금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다. 안다고 해봤자 딱 한명, 레레시아의 쌍둥이 정도. 하지만 그쪽이 내 타입이라고 하면 좀... 그렇잖아? 심지어 똑 닮았는데.
"그럴리가. 대신 좀 돌아다니느라. 로프 하나 없이 절벽 위에서 번지점프해서 양 다리로 착지하는건 솔직히 좀 힘들었어."
심지어 양 다리로 착지하는것조차 실패하고 나뒹굴었다. 세븐스를 사용해서 순간적으로 몸을 강화하지 않았으면 즉사했겠지. 덕분에 잔소리도 좀 듣고 했다. 비전투 손실을 좀 줄이라고 말이다.
"아, 당연하지. 뭣하면 쓰러져 있는걸 파묻어버리고 먼저 가도 난 괜찮아. 정말로."
레몬. 이쪽은 날, 아니 대부분의 인원들을 특이한 별명으로 불렀지. 나쁘진 않다. 뭐 그렇게 끔찍하게 부르는것도 아니고. 어... 생각해보니, 지금 이 방향제도 레몬향이군. 우연의 일치인가? 그래도 이 화학적인 레몬향을 조금 덮어둘만한게 필요한 참이다. 심신을 리프레쉬 했으니 안정도 좀 시켜볼까.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찬장에서 티백을 하나 꺼내 물을 올렸다. 천천히 찻물을 우리자, 휴게실 안은 쇠비린내, 방향제, 그리고 이제 다시 은은한 차 향으로 변해갔다.
첫 만남때 존댓말 쓰라고 한 마디 들었던건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말로 응수하는건 불쾌하게 느껴질수도 있는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 새초롬한 표정의 마리를 힐끔 내려다보며 대답하는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번져있다.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아이들에게 “우리 것도 아무거나 골라줘,” 라며 한 마디 덧붙이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마리에게 말을 나지막이 걸어본다.
“첫 인상이 안 좋았던거 같아 사과할게. 너도 이곳까지 온 걸 보면 힘들게 살았을 텐데, 내가 너무 애취급을 했네. 미안.”
전투 중 막아선 것에 심기불편한 것과 자신이 잘못한 것은 별개다. 더군다나 지금 화 내면 아이들 정서에 안좋은 것도 잘 알고 있다. 세븐스로 태어나 사람 대접 못받는 세상에서 정서 운운하는것도 이상하지만. 축 내리앉은 눈썹과 더붙어 내려가있는 눈꼬리는 답지않게 순해보여서 그의 속사정과 좀..많이 대비하고 있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다 고른듯 자신과 마리를 쳐다보자 아이들을 앞세워 계산대로 향한다. 돈을 지불하고선 아이들이 고른 아이스크림- 남자아이는 스크류바, 남자아이와 꼭 붙어있던 여자아이는 죠스바, 마리에게 말을 건 여자아이는 쌍쌍바. 그렇게 아이들이 골랐던 아이스크림을 나눠주자, 남자아이는 계산을 끝마친 하겐다즈 하드바 하나를 들곤 마리한테 겅중거리는 걸음거리로 향한다.
“이거 누나꺼야!”
그걸 보는 유루는 귀여워하는지, 여전히 웃고 있다. 그것보다 저 비싼걸 내돈 주고 샀는데 지가 생색내는거 보소. 싹수가 노오랗다. 그런 상반되는 생각(진정성은 없었다…아마…)을 잠시 하면서 여자아이가 건네주는 하겐다즈 바를 하나 받는다. 아이에게 고맙다고 답하고선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곤, 아이가 아까 골랐던 죠스바의 포장을 뜯어준다. 뜯은 하드바를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기 무섭게, 아까 마리와 손을 잡았던 여자아이가 그의 코트자락을 잡아 끈다. 그가 허리를 숙이자 아이는 그의 귀에 뭔가 속삭인다.
“직접 말하면 언니가 더 좋아할텐데-”
눈높이가 낮아진 채, 마리를 쳐다보며 아이에게 답해준다. 말꼬리를 늘리며 말하는것이 퍽 다정해 보일지도. 아이는 유루를 가만 보다가도 이내 마리에게 살며시 다가가선 마리의 다리를 안으려 한다.
귀여운 걸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떤 대상을 귀엽게 여기고 말고는 꽤나 다른 부분이었기에 마리는 눈만 깜빡였다. 존댓말 관련해서 한 말은 그저 트집잡기에 불과했었기 때문에 반말을 하는 것에 대해 별 감흥은 없었지만 유루가 순순히 사과해 오는 것은 놀라워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괜찮아요.”
그리고 마리는 순순히 그 사과를 받는다. 이전에 봤을 때는 조금 무표정한 느낌이 강했는데 오늘 봤을 때는 꽤나 웃는 낯이라 신기했다. 아이들이 있어서 그런 걸까?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다 고르고 눈을 반짝이며 서자 유루가 계산을 했다. 남자아이 한 명이 자신에게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건네자 마리가 작은 웃음을 띄우며 “고마워”라고 말하며 받았다.
아이스크림을 받아서 입에 물면서 아이들과 있는 게 익숙해 보이는 유루를 바라봤다. 아이들을 대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마리는 계속 유루 쪽을 쳐다보게 되었다. 아마 배운다,에 가깝지 않을까.
여자애가 유루에게 한 말은 자신에 대한 말이었나보다. 마리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가 이내 자신에게 다가온 아이를 깜빡깜빡 바라본다. 안아달라는 그 말에 마리는 조금 마음이 울렁거렸다. 제 어릴 적 모습 같았다. 그래도 마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 팔로 아이를 안아올렸다. 어릴 때부터 레지스탕스에서 훈련한 몸은 작지만 꽤 근력은 있었다.
“저 아저씨한테는 뭐라고 말했어?”
하고 아이에게 묻는다. 조금 장난스러운 말이기도 했다. 유루를 아저씨라고 지칭한 건 조금의 심술이었을지도.
외곽의 슬럼은 온갖 인간 군상이 모여있다. 학살의 현장에서 도망친 레지스탕스의 잔당, 엇나가는 불량한 세븐스 범죄자, 숨어 지내고 싶은 세븐스, 어제까지는 정상적이나 오늘은 신체를 개조하려다 불법적인 일에 당해 신체 일부를 잃은 피해자……. 이스마엘은 그곳에서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재머로 얼굴을 가리고, 구석 좋은 자리를 얻어 웅크려 숨어있다. 며칠 전에 이 자리에 있던 사람이 밀고를 받아 끌려갔다고 했다. 밀고 한 번이면 나흘간 먹을 수 있는 국수 세 봉지를, 두 번이면 신선한 야채를 살 수 있는 포상금을 받는다고 했던가, 그 사람은 배곯던 누군가의 좋은 식량이 되었을 것이다.
이스마엘이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는 간단했다. 도망쳐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쿵쿵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나고 자라 능력을 사용하는 법을 스스로 깨친 이래 단 한 번도 능력을 지칠 때까지 써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도망칠 때가 되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이 지배한 뒤로는 능력을 어떤 방식으로 썼길래 그 삼엄한 경계를 뚫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기억나는 것은, 어찌어찌 이곳까지 온 뒤로 지쳐 쓰러지자마자 곯아떨어졌다는 사실이다. 비쩍 마른 더벅머리의 세븐스 남성이 가엾다며 이스마엘을 슬럼의 중심인 이곳까지 질질 끌어다 주지 않았더라면 추운 날씨에 얼어 죽었을 것이다.
이스마엘은 요 며칠 지내보며 이곳은 허울 좋은 도축장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잘 지내다가도 사소한 앙금이 쌓이면 이 사람을 먼저 잡아가라며 밀고를 했다. 그리고 빈자리를 대신해 새로운 사람이 흘러 들어오고, 순환되고 있었다. 딱 도축을 기다리는 짐승과도 같았다. 아마 이스마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이곳에 온 사람 대다수가 이곳을 패배자의 영토라고 입을 모아 말했기 때문이다. 비록 패배자의 영토이자 도축장이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서로 싸우지만 않으면 좋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무엇으로 만든지도 모를 대체 식량을 먹고, 건물의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해 대신 네온사인의 색이 바뀌는 것으로 시간을 쟀다. 이따금씩 환경 제어 시스템이 먹통이라 비가 내리긴 했지만 그럴 때면 서로의 세븐스로 버텼다. 그리고 누군가 사라지면, 그 자리를 새로운 누군가 채웠다. 이스마엘이 이곳에 조금 익숙해질 적, 비쩍 마른 남성이 이스마엘에게 말을 걸었다. 듣자 하니 이 사람은 레지스탕스 출신인데, 단원이 본인 빼고 전멸을 해 이곳에 오게 됐으며, 일주일 정도 이곳에 있었다 했다. "미친 곰 윌리에게 찍히지 않게 조심해라, 꼬맹이." "그게 누굽니까." "저 사람." 이스마엘은 저 멀리서 거들먹거리며 걸어오는 남성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풍채에, 반들반들한 민머리에는 곰의 이빨이 이식돼 있었다. 아마 저 이식 수술 때문에 미친 곰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남성은 목소리를 낮췄다.
"매매업자야. 이곳에서 너 같은 어린애는 인체 개조업자에 넘기고, 어른은 밀고하는 녀석이지. 지금까지 그 녀석이 밀고한 사람 수만 세어보면 이곳의 사람 중 절반은 될걸." "걱정하신 겁니까?" "그래, 네가 호구 같아서 그렇지." "……윌리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다? 그걸 생각하진 못했는데. 아마 슬럼이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윌리의 횡포만 아니라면 서로 돕고 사니까." 이스마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상자를 끌어안은 채 무릎을 몸 쪽으로 더 가당기자 비쩍 마른 남성은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들겨주었다. 이내 먹을 걸 구해오겠다며 자리를 떴고, 이스마엘은 불편한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한참이고 앉아있으니 온몸이 뻐근했다. 관절이 풀리듯 똑똑 대는 소리가 목에서 들릴 때, 윌리가 소리를 들은 듯 고개를 돌렸다. 이스마엘은 자신의 노이즈 때문에 윌리가 자신의 얼굴을 볼 수는 없겠지만, 분명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훑는 듯한 시선에 기분이 이상했다. 윌리는 휙 자리를 떴다. 시간이 지나 남성이 돌아왔고, 대체식량으로 때우는 하루가 지나갔다. 새벽, 이스마엘은 잠에 들었다가 눈을 떴다. 추위 때문이다. 새벽 공기가 쌀쌀하고 폐 드럼통에 피어오르는 모닥불은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추위에 깨면 번거로울 테니 이스마엘은 스스로 장작을 가져오기로 했다. 이 주변에 폐자재는 많았기 때문이고, 이스마엘은 받은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단잠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혼자 해내고 잠들면 될 일이다. 그리고 오늘이 지나면 능력도 어느 정도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체력이 채워지면 감사 인사를 전하고 떠나야겠다. 그 뒤엔 어떻게 할까? 일단 많은 곳을 돌아보며 사람들에게 평등할 권리가 있다고 얘기해 볼까? 어려운 일이지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일어설 때 엉덩이를 뗀 부분에 바람이 휭 불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네온사인이 어스름하게 깔린 뒷골목엔 폐자재가 많았다. 순환 시스템이 고장 났는지 공기 주입 밸브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사가 빠진 것 같은데 왜 아무도 고치지 않는 걸까? 고치고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폐건물의 잔해를 주울 적, 네온사인이 가려졌다. 빛이 사라지자 이스마엘은 시선을 자연스레 올렸다. 미친 곰 윌리였다. 그가 이스마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뭘 하고 있었지?" "모닥불을 피울 잔해를 줍고 있었습니다." "곧 죽을 사람들인데 내버려 두지." "생명은 어느 하나 버려선 안 됩니다." "이 슬럼의 법칙을 모르나 보군." "예, 모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정보고, 시체는 내다 팔면 돈이 된다. 넌 지금 이곳의 당연한 경제를 무너뜨리려 하는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다들 잔해를 주웠습니다만." "그런가?" 윌리가 이스마엘을 흥미롭게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스마엘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스크린으로 갔다. 거대한 스크린에는 수배령이 내려진지 오래다. 이스마엘은 저 얼굴을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저 얼굴보다 이 슬럼의 철칙이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으면 고객이고 죽으면 상품이다. 이게 세븐스의 현실인 걸까? 허튼 생각을 뒤로 고개를 돌렸을 때, 어느새 윌리가 이스마엘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그러니 돈이 되겠구나." "무슨 소리십니까?" "요 며칠 전에 레지스탕스 잔당 하나가 이곳에 왔다던데." "모릅니다." "진짜 몰라?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걸. 꼬맹이. 아니면 개조 업자에게 넘기는 수가 있어." "모른다고 했습니다." "꼬맹이, 잘 생각해." "뭘 말입니까." "이 슬럼을 순찰하던 가디언즈도 처형을 당한 판국인데 레지스탕스 하나가 죽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거." "……." "잘 죽었지. 그 녀석. 이 슬럼을 돌면서 순찰을 해대니 뭘 제대로 팔아 넘길 수가 있어야지." 그 순간 이스마엘이 총구에 손가락을 댔다. "뭐야, 꼬마. 죽고 싶어?" 윌리는 방아쇠를 당기려 했으나, 기계로 만들어진 불법 개조 총은 발포되지 않았다. 대신 덜덜 떨리더니 이내 부품이 하나하나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잔해가 후드득 떨어졌을 때, 윌리는 놀란 눈으로 이스마엘을 쳐다보려 했다. 하지만 시야가 닿는 곳엔 이스마엘이 없었다. 윌리는 땅에 머리를 처박으며 컥 소리를 냈다. 이스마엘이 자신보다 체구가 큰 윌리의 목을 다리로 휘감듯 부여잡더니, 순식간에 땅에 머리를 처박게 만든 것이다. 윌리는 순간적인 일에 당황하며 상황을 파악하려 무진 노력했으나, 이미 이스마엘이 무릎으로 등과 팔을 눌러 윌리를 제압한 지 오래였다.
"너 뭐야." "다시 한번 말해보십시오." "너 뭐냐고!"
순간 턱 밑으로 손이 쑥 들어왔다. 무시무시한 힘이 고개를 강제로 들어 올리게 했고, 목에는 서늘한 것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칼이었다. 아까 떨어진 총의 잔해 중, 그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무려 1세기 전의 전쟁에 쓰이던 칼날이 이렇게 쓰일 줄 알았더라면 커스텀에 추가하지도 않았을 텐데! 윌리는 부들부들 떨었다.
"꼬마, 진정해. 난 이제 아무것도 몰라, 너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 할 테니까……." "다시." 윌리는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이 상황이 멈추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아니면 죽거나. 윌리가 목에서 비집고 나오는 신음과 함께 부들부들 떨었다. 점점 목을 향해 칼날을 누르는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정보를.." "다시." "가, 가디언즈, 그 녀석이…?" "……." "잘.."
그 순간 별이 보였다. 퍽 소리와 함께 시야가 아찔했다. 힘이 빠졌는지 몸을 움찔대던 윌리의 몸은 손쉽게 뒤집혔다. 이스마엘이 그 위에 걸터앉으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다시." "살려주세요.." "다시." 이스마엘이 주먹을 들었다. 한 대. 원하는 답은 나오지 못하고 살려달라는 소리가 계속됐다. 그 뒤로 다시,라는 말이 반복되는 순간마다 일방적인 주먹질이 오갔다. 다시, 다시, 다시……. 윌리의 코 뼈가 부러지고, 그가 쇼크에 경련하며 꺽꺽 소리를 내다 기절한 듯 늘어지는 순간까지 주먹질은 멈추지 않았다. 이스마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덧 동이 트고 있었다. 슬럼의 치안만 유지할 생각이었는데, 눈이 돌아버린 것 같다. 새벽의 소란에 잠이 깨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성이 마른침을 삼켰다. 네온사인 밑에서 이스마엘은 뺨에 묻은 피를 슥 닦더니, 고개를 돌리고 환히 웃었다. 이지러지는 노이즈 사이로 고른 치열을 내보이는 미소가 환했다. "이제 슬럼은 안전할 겁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 때, 윌리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진 가디언즈 병사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스마엘은 눈을 떴다.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있었다. 이불을 거세게 그러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손으로 얼굴을 덮어 가리자 떨림이 잦아들었다. 대체 왜 이런 꿈을 꿨지? 이런 과거를 가져놓고 사람을 죽였다며 벌벌 떨던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라도 하는 건가? 하지만 그때는 슬럼에서 사람이 죽어나갔지 않은가. 아니! 지금도 어린 세븐스 아이들이 죽을뻔했다.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지금의 자신이 잡아야 하는 길이 무엇인지, 무엇이 자신을 괴롭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모두 같은 정의를 위해서인데, 무엇이 앞길을 막는 걸까?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눈을 감자니 가디언즈 병사의 얼굴이 아른아른 떠오르고, 그렇다고 눈을 뜨자니 귀에서 도망치라는 목소리가 쟁쟁했다. "Ich bin nicht falsch……." 이스마엘은 몸을 웅크렸다. 새벽 동이 트는 것이 괴로운 하루였다.
관을 따라 흐르는 녹색의 배양액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나의 입 속으로 옅은 단맛이 퍼졌다. 이 코코아, 합성 분말을 섞은 저급품이잖아. 미간 사이를 찌푸리며, 머그컵을 내려놓고 책을 다시 펴든다. 책이라고 해도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노인과 바다 같은 멋진 문학은 아니다. 개조당한 남자가 로봇에 탄 채로 마왕과 싸우는 만화책이다.
"좋단 말이지. 이게." 책의 안쪽은 공상과 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너에게 이 세상을 넘겨주지 않겠다며 소리치는 정의의 히어로, 멋진 필살기. 애틋한 사랑에 눈물 나는 희생. 문득 나는 책에서 시선을 떼고, 커다란 배양액 탱크를 바라보았다. 개조인간이라니, 잘 생각해보면 바로 눈 앞에 있나.
조금 기다리자 마스크를 쓴 팀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작합시다." 라고 무뚝뚝하게 말하는 그들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살균한 위생 장갑을 끼고, 제어판의 버튼을 눌러 탱크에 들어 있던 그것의 뚜껑을 연다... "오늘은 대퇴부까지." 내가 말하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숭고하기보단 잔인하고 역겨웠다. 근육을 천천히 가르고 찢은 다음, 안의 체액의 손실을 막기 위해 바로 따로 보관한다. 종래의 3배 정도의 강도와 힘을 가진 인공 근육으로 대체한다. 관절은 분리가 가능한 특주품으로 교체한다. 인간이 그 틀을 벗어난 뭔가로 변하는걸 보면서, 묘하게 착잡한 기분이 들었기에 힙 플라스크에 들어있던 위스키를 한모금 마셨다. "작업 중에 음주는-"이라며 놈들은 뭔가 말하려 했지만, 가볍게 머리를 쳐주자 조용해졌다. 인고의 시간이 흐르고, 이제 사람의 부분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관 뚜겅을 닫아주었다.
"수고했어. 가."
꾸벅, 하고 고개를 숙인 그들은 금세 사라졌고, 다시 이 공간엔 나와 그것만이 남는다. 제어판을 두드려서 안정 프로그램을 주입하고, 뇌 부분의 과부하 수치를 낮춘다. 괴로워했단 걸까?
"너도 나도, 고생이구나."
어두운 공간 속의 작은 빛이 내 가슴에 달린 이름판을 비췄다. 소피아 이브. 하, 이름만 보면 만화의 여자 주인공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말이야. 다시 앉아서 책을 꺼내든 내 시야에, 재미있는 내용이 잡혔다.
주인공인, 인격을 가진 로봇은 꿈을 꾸고 있었다. 자신이 사람이 된 꿈을. 그리고 여성에게 꽃다발을 주는 꿈. 나는 다시 그 잘 짜여진 관으로 시야를 돌렸다. 안의 그것은 마치 곤히 자는 듯, 아무 미동이 없었다.
>>732 상황이라면 무난하게 본부에서 마주쳤다거나 하는게 떠오르는군요! 사실 카넬주가 재밌는 상황을 떠올리기가 힘듭니다() 혹시 쥬데카주는 생각나는 상황 있으실까요! 선관은 딱히 접점이 있어보이질 않으니 초면으로 가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오며가며 몇 번 본 적은 있는데 이름까지는 모르는 사이라든가요!
>>739 그러면...레지스탕스 활동을 오래 해왔고, 과격파이기도 했으니 과거에 한번쯤은 전장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네요... 선관까진 아니고 본 기억이 있다 정도로만! 일상 상황은 음, 카넬리안이 능력 때문에 팔에 흉터?가 많으니 그걸 보고 오해를 한다거나 하는 건 어떨까요! 겸사겸사 카넬리안보다 작은데 나이는 많으니 관련해서도 해보고!
에델바이스 기지 내부. 모두가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오후. 방금 막 의무실에 다녀온 카넬리안 또한 그렇다. 그치만 지금부터 할 일은 썩 유쾌하진 않다. 아무데나 풀썩 주저앉은 카넬리안의 손에 두툼한 연고 하나가 들려있다. 의무실에서 받아온 것이다. 그가 제 양 소매를 조심스레 걷어올린다. 흰 팔뚝에 불그스름한 흉터가 수없이 많이 새겨져 있다. 능력 때문에상처를 입을 일이 많은 탓이다. 이걸 바르면 빨리 낫는다고는 하지만, 상처가 아물어도 다시 생기기 때문에 별로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덜 나은 상처가 터져서 덧나는 것보다야 낫다. 하여튼 상처 돌보는 걸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연고를 짜서 덜어낸 뒤 상처에 바른다. 다친 피부는 연고가 닿자마자 격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아파라."
환부가 따끔거린다. 거듭된 상처 탓에 피부 상태는 굉장히 좋지 않았고 통증도 평소보다 더하다. 능력 사용 중에야 피가 진통제 역할을 해주지만 지금 능력을 쓸 순 없으니. 그래도 카넬리안은 묵묵히 연고를 바른다. 이 정도의 통증이야 별 거 아니다. 이것보다 심한 일도 많았었는데. ─왜 하필 이런 능력이 생겨가지고, 그가 괜히 혀를 차댄다. 덕분에 제 팔엔 상처가 멎을 날이 없다.
임무가 끝나고 얼마 뒤, 아이들도 마을에서 살게 됐으니 걱정거리는 일단 없었다. 그저 임무에서 행동이 엇갈렸던 동료들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을 할 뿐. 너는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기지 내를 천천히 돌아다녔다, 슬슬 구조가 눈에 익고 발걸음이나 느낌으로도 충분히 익어가고 있다고 느낄 무렵 너는 사람 한 명을 발견했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남성, 뭘 하고 있는 걸까. 호기심이라기보다는 그저 시야에 들어오고 있는 그의 모습을 살펴보던 너는, 그의 팔뚝에 붉은 흉터가 잔뜩이라는 걸 알아챘다. 머리카락 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흰 빛깔의 피부와 대비되어 흉터는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
저렇게나 심한 수준의 흉터가 팔뚝에 가득하다니, 너는 대체 무슨 일로 저런 흉터가 생길지를 생각했다. 차마 다가가서 묻지는 못하고... 전투에서 다쳤나? 그렇다기엔 다른 부분에는 흉터의 흔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스스로 상처를? 설마...
"...실례합니다, 저기..."
생각이 조금 극단적으로 미치자 너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고, 보기만 해도 통증이 느껴지는 듯한 팔을 지닌 남성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본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의 손에 들린 연고가 눈에 들어왔다, 아, 어떤 이유든간에 지금은 치료를 하고 있는 걸까.
속 긁어대는 소리에도 싫은 소리 돌아오지 않자 그가 씩 웃어 보였다. 얄망궂으면서도 어찌 보면 시원스럽게도 느껴지는 미소다.
"이런 건 원래 급한 쪽이 존* 뛰어와야 하는 거랬어."
그렇게 말은 하지만, 안 들어주려는 듯한 눈치는 아니다. 그는 순순히 멜피에게로 다가가 그 앞에 섰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열없이 제 뺨을 긁적인다. 이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싫은 건 아닌데, 남이 저를 안아오는 건 몰라도 제 쪽에서 누굴 안는 건 좀처럼 해보지 않은 일이라 잘 모르겠다. 고민하다 선택한 방법은 몸을 휙 돌려서 뒤로 기대는 것이다. 뒤에 선 멜피가 비켜버리면 분명 뒤통수부터 자빠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무덤덤한 얼굴로부터는 별달리 의심하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대로 안겼다면, 그는 그 상태로 고개를 들어 멜피를 올려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믿음의 포옹이 실패했더라도 욕이나 좀 뱉다 똑같이 물었을 거고.
"그러게 뭐 때문에 빡쳐 있고 그러냐. 마지막에 나온 그 *** 때문에?"
***이 가리키는 말이라면 당연히 정체모를 그 여자였다. 혹시나 하고 말 꺼냈는데 뱉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짜증나는 눈빛이나 하고, 게다가 잘은 몰라도 다 잡은 로봇에서 뭘 털어간 것 같은데─ 아, 생각해보니까 나도 좀 열받네? 이 ** **** 다시 만나면 가만 두나 봐라. 그는 잘 가다가 속으로 급발진해서는 또 험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녀는 씩 웃는 당신을 향해 매우 뻔뻔하게도 말하면서 얄밉게도 웃어보였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하는것에 비하면 살짝 다른 느낌의 질척거림이지만 이건 이것나름대로 당신을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물론 그걸 그녀가 자기 입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오?"
그러나 그녀는 장난은 쳤지만 당신이 자신을 안아줄리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ㅡ 항상 보통 움직이는 쪽은 자신입니다. 굳이 당신에 한해서가 아니라 ㅡ 기대하지 않았지만 당신이 다가오더니 이내 등을 돌려 기대오는 모습에 당신치고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꼭 안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가보면 소녀인줄 알겠다며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맞을거 같으니까 참도록 합시다.
"뭐어~ 그렇지."
마지막의 여자라. 그 이유가 아예 없던건 아니지만 그녀의 텐션이 내려간 이유의 중점은 그게 아니었죠. 하지만 아무리 당신이라해도.. 그녀가 속터놓고 모든걸 이야기할리 없기에 적당히 넘기듯이 말한 그녀는 부비적거렸습니다. 중얼거리듯이 열차 키우고 싶었는데.. 라고 들린거 같은데 좀 가지고 싶긴 했나봅니다.
그렇게 잠자코 상처를 돌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연고 바르던 손을 멈추고 카넬리안이 시선을 옮긴다.
"—응?"
머리 긴 소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카넬리안은 상대에게서 기시감을 느꼈다. 그의 눈이 묘하게 날카로워졌다. 괜한 느낌일까?
"아니, 별 거 아니야."
그것도 잠시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 보면 팔의 이 상처들, 에델바이스 내에선 목격한 사람이 없었던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놀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한텐 일상이라서."
다시금 팔뚝으로 시선을 내린 카넬리안이 나직하게 내뱉은 말이다. 일상적으로 자해를 하는 거라든가,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카넬리안에겐 딱히 별 감흥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라서…일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소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자세히 뜯어보니 더 그런 것 같다. 그는 연고를 마저 바르는 것도 잊고 소년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백발의 남성이 지닌 붉은 눈이 너를 바라본다. 마치 흰 도화지에 떨어진, 혹은 유리구슬 속에 담신 핏방울 같은 색의 눈을 너는 마주보았다. 잠깐만... 어디선가 봤던가? 그렇게 생각하기를 잠시, 아마 그저 기시감일 뿐이라고 넘긴다. 그가 특징적인 외모를 지녔으니 외려 낯선 느낌에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일상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몸을 아끼지 않으면 안되는 거잖습니까."
안 그래도 자해한 건 아닐까, 혹시 삶을 비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습관에 이른 그런 행위일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별 것 아니라며, 일상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말에 조금, 강하게 반응하고 만다. 물론 얼마나 주제넘은 행동이었는지 알았기 때문에 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그, 제가 참견할 만한 일은 아니었겠죠, 죄송합니다."
그가 갑자기 널 빤히, 마치 못 박은 듯 시선을 고정하자 잠시 그 눈을 마주보다가 기분이 나빴겠지... 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눈을 내리감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 이유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시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시선을 옮겨 제 상처들을 바라본다. 왜 하필 이런 능력일까, 차라리 능력이 없었더라면, 한탄한 적도 많았지만. 이젠 그냥 현실을 받아들인 지 오래다. 의외로 도움될 때도 있고…? 소년의 반응은 격했다. 그게 못내 미안한 모양인지 급히 눈을 내리깔자, 카넬리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한다.
"아니? 뭐라 하려던 건 아니고… 그냥 어디서 봤나 싶어서."
소년의 외모는 확실히 익숙했다. 익숙하다곤 해도 몇 번만 본 게 전부겠지만. 흔하다면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생김새였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걸 보면, 역시 이전에 마주친 적이 있었나. 이내 카넬리안은 잡생각을 멈춘다.
물론 능력으로 인해 상처를 입는, 즉 부상을 입는 경우가 드문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능력의 출력에 따라 크고 작은 부상을 입으며 지낸다. 그렇지만 저 정도로 심한 상처를, 그것도 일상적으로 스스로에게 입히는 능력이라는 건 본 기억이 없었기에, 너는 걱정스러운 듯 네 상처를 쳐다보았다. 결국 다시 상처가 생긴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아,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그렇군요, 그... 저는 짚이는 바가 없습니다...만."
과거에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눴거나, 적어도 에델바이스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은 기억하지만, 그는 네 기억에 없었기에(정확히는 안개 낀 것 같이 흐린 기억으로 남아있는 기시감이었지만) 너는 어쩔 수 없이 짚이는 바가 없다고 대답했다. 혹시 다른 곳에서 마주쳤었나? 에델바이스 내에서 돌아다니던 모습을 본걸까 생각하다가도 그 정도의 인상이라면 저렇게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 결국 확실한 결론을 보류해 버렸다.
"그게, 음... 붕대는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혹시 연고가 모자라지는 않을지..."
괜한 참견이고, 오지랖임을 알았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그렇지만 일단은 동료라고 생각했기에 어떻게든 불편한 걸 도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너였다.
엔에게 괜찮다는 답을 두 번이나 들었음에도 방금 전 자판기를 연타하던 그녀의 모습에서 어딘가 사소한 의문이 들었기에, 의문스럽단 표정으로 한 번 더 되물었다. 이윽고 그녀가 자신의 지갑을 붙잡으면서 거절하자 그렇게 말하신다면 그러신 거겠지-하는 마음으로 다시 주머니에 지갑을 집어넣었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정도는 친절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도 해야될 테니.
"정말 전 제가 직접 사먹어도 되는데...그렇게 말하신다면 잘 먹을게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선, 엔에게서 캔을 받아들었다. 과거에 그녀의 주거 집단 내서 주어지는 양식은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 것이 덕목이라는 것을 배운 적이 있었기에, 에델바이스에 들어오고 나서도 음식은 간단한 감사를 표한 후에 바로 먹는 일상이 지속되었다. 단순히 예절로서 배운것이 아닌, 종교적 규칙이 연상될 정도로. ..그리고 정말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 것이였기 때문에 캔의 뚜껑을 따고, 입에 가져다 대면서도 엔과 밀착한 상태로 그녀의 검붉은 눈동자를 올려보고 있는 상태였다.
카넬리안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피를 다루려면 피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피를 직접 봐야하는 것이 능력의 단점이다.
"이상한 능력이지?"
문득 그가 소년을 바라보며, 덧붙인다. 은근히 자조하는 투다. 그야 이런 능력은 세븐스 중에서도 드물지 않을까…
"그럼 내가 잘못 봤나보네."
그는 그렇게 치부하고 간단히 넘겨버린다. 어디서 봤다고 해도, 아니라고 해도 문제될 건 없다. 어차피 자신과 이 소년은 같은 배를 탄 동료. 스쳐지나갔을지 모르는 과거의 인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카넬리안이 말을 마치고 입을 다물었다. 굳이 이 주제를 더 이어나갈 필요는 없는 듯해서.
"연고는 충분하고, 붕대도 어차피 금방 아물어서."
카넬리안이 마저 연고를 바른다. 연고의 성능이 좋은 것도 있지만, 붕대를 감을 때 느껴지는 이물감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이 호의가 싫지 않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걱정어린 말을 듣는 것이─
어차피 사람은 서로 이해하지 못 한다. 있는 힘껏 이해한 척 할 뿐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흉내조차 포기한다. 레레시아가 그랬다.
"앞으로 스릴 만점인 나날일 텐데에. 굳이 찾아서 해-?"
제 0 특수부대가 생기고, 첫 임무부터 거대 로봇과 싸웠다. 시작이 이런데 앞으로는 어련할까. 늦던 빠르던 진짜 보검을 가진 실력자들하고도 맞붙을 거다. 그런 앞날을 상상만 해도 당장은 늘어져 있는게 제일인데. 꾸역꾸역 스릴이니 뭐니 찾는 사람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알고 싶지도 않고.
"그럴 거 같으면- 아예 임무에 나오지를 마아. 팀에 개민폐잖아-"
다시 이어지는 가벼운 발언에 신랄한 소리를 꽂는다. 도중에 버려질 거 같다면 아예 나오지 말라고. 팀원이 그녀 뿐이라면 적당히 걷어차놓고 가버릴 수 있지만, 블러디 레드 건에서 팀원들이 보인 모습을 생각하면 절대 못 할 거다. 분명 어떻게 할지 서로 떠들겠지. 그런 시간 낭비는 한 번이면 족하다.
"달달한 차도 있던가아. 뭐 아무거나- 주는 거 마실게-"
괴식만 아니라면 못 먹을게 무얼까. 레레시아는 쿠키통을 배 위에서 치우고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부스스하게 일어난 머리를 손으로 밀어 넘기고 소파에 푹 기대서 기다리다가, 툭 한마디 내뱉었다.
"스릴 즐기는 거- 대련으로는 부족하려나아?"
회복할 수 있는 훈련장에서의 대련이라면 다쳐도 곧 나을거고. 무엇보다 실시간으로 회복되니 목숨이 아슬아슬하게 밀어붙여도 괜찮을테니까.
멜피가 제 말을 맞받아치자 걸음걸이가 더 설렁설렁 대충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썹 비딱하게 기울이자 웃음소리가 픽 새다 말았다. 뭐, 따지자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많은 부문에서 그는 대체로 부족한 쪽이었으니, 갖지 못한 것을 바라려면 어지간히도 달려야 했으니까. 그가 지금 이 상황을 간절하게 바랐느냐면 논점 이탈이지만. 다리에 힘 빼고 뒤로 비스듬하게 기댄 채라 평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아진 키가 되었다. 생각 외로 안락하니 좋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한 기분도 들었다.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익숙지 않은 자세를 하는 데서 오는 답답함 말이다. 그는 한동안 그러고 있다 잡혀 있던 동물이라도 되듯 푸드득 몸을 털며 빠져나오려 했다.
"그 **, 그놈 ** 꼭 우리랑 다시 볼 것처럼 말하던데. 어때?"
'어때?'라는 말이 담은 뜻은 해석하기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레인이라는 녀석을 다시 보면 어떻게 할 거냐, 그 정도 뜻이었지 않을까. 해석은 적당히 상대에게 맡겨버리는 화법은 여전했다. 여승우의 급발진이 분노 대상에게 난데없이 화를 갈기는 것이라면, 멜피의 급발진은 결이 달랐다. 문제는 그 방법이 그가 영 즐길 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싫은데."
말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즉답이다. 그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우선은 술에 약해서고, 둘째는 술이라는 음료 자체가 별로라서다. 맛 자체도 이상하고 식도와 위장이 달아오는 느낌도 좋지 않았다. 즉 그는 술 마시는 법을 몰랐다. 기껏 마시더라도 도수 1%~3%의 술이나 홀짝거리는 알쓰이자 술알못이라 그 말이다. ……그렇지만 딱 잘라 말하고 나니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매몰차게 거절하기엔 약간의 무안과 미안함을 느낀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기분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했지만. 시선이 흘끗 멜피의 눈치를 살피다 아닌 척을 한다.
"가주면 뭐 좋은 거 있냐?"
이 남자, 쉽다……. 하는 꼴을 봐선 굳이 공들여서 꼬시지 않아도 쉽게 넘어갈 것만 같다.
피를 흘려야만 사용이 가능한, 그러니까 피를 조종하는 능력이라. 꼭 자신의 피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상대방이 피를 흘리지 않는다면 사실상 능력이 봉쇄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는 출혈이 되겠구나, 하며 이해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야만 쓸 수 있는 능력이라니, 능력을 사용하며 상처를 입는 게 아니라 상처입지 않으면 능동적으로 쓸 수 없는 능력이라는 사실에 너는 조금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이상하지는... 않은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었겠죠."
그 점이 이상하다면 이상한 거지만, 너는 그가 자조하듯 하는 말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능력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상처를 내 왔다는 거겠지.
"자신의 능력으로 다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으니까요."
미숙함이나, 능력의 과격한 정도 등. 스스로에게 부상을 입힐 여지는 많았다. 그러다가 그가 잘못 본 모양이라고 이야기하자 너는 말없이 하하...하고 웃을 뿐이었다, 확실하지 않다면 그렇게 되겠지.
"그렇군요, 하긴... 오랜 시간동안 관리해 오셨으니 방법을 찾으신 거겠죠."
더 이상 도움을 줄 게 없을까 묻는 건 그만두자, 그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쓰고 있으니까. 대신이랄까, 자신을 카넬리안이라 밝히는 남성의 목소리에, 너는 눈을 깜빡이다가 아, 하고 입을 열었다.
캐릭터랑 상관 없는 tmi: 욕쟁이캐 타이틀 치고는 여승우씨 욕이 좀 찰지지 못한데 그 이유는 오너랑 쓰는 말이 달라서입니다,,,, 왜냐면 저는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욕은 원래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옮겨야 맛이 살지 않습니까 근데 '저 ** 점마 ** 뭐라 쳐주께쌌노'라는 말은 해도 그걸 표준어에 부합하게 하려니까? 좀? 잘 안 되고??? 크아악 사투리캐 설정 붙일걸(?)
한창 부비부비하고 있던 찰나에 당신이 몸을 작은 동물이 빠져나오려고 하는것마냥 푸득대자 그녀는 얌전히 당신을 놓아주었습니다. 스킨십에 누구보다 진심이지만 그렇다고해서 또 그 이상은 넘어가진 않고. 사실 타인이 보기에는 스킨십의 빈도 자체가 선을 넘은것처럼 보일테지만 아무튼 오묘한 여성입니다.
"글쎄~ 다음에 만나봐야 알겠지.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를 적대하는게 맞다면 죽이고 봐야지."
그녀는 적에게는 한없이 정이 없었으니까요. 평소의 질척거림따윈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나서 단칼에 거절당해버린 자신의 술자리 신청에 짐짓 상처받은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였습니다. 당연하지만 실제로 상처받은건 아니에요. 그녀는 당신을 흘끗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턱을 괴곤.
"으음~ 나랑 데이트를 할 수 있다? 그 이상의 메리트란게 필요한가~?"
그러면서도 그녀는 아~ 그래도 싫으면 혼자 술마시러 갔다가 이상한 사람한테 헌팅 당하겠네~ 라며 당신에게 말했습니다. 뭐 이곳에 그런 사람이 살고있는지는 둘째치고.. 본인이 헌팅을 하면 할텐데 말이에요. 그러나 그녀는 농담은 여기까지라는듯 씩 웃고는 손을 저었습니다.
"농담이고, 이런 날 술마시다가 사고날라. 그냥 놀러가자구. 적당히 때우다가 밥이나 먹고."
시선을 흉터들에 고정시킨 채 그가 중얼인다. 그 말대로다. 레지스탕스라는 조직에 제 발로 걸어들어온 이상, 능력 사용은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한 능력이라거나, 불완전한 능력이라는 생각은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가, 그렇겠지."
그도 자기 능력에 다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보긴 했었다. 하지만 제 것과는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진 않고 그저 소년의 말을 긍정할 뿐.
"뭐, 방법이라고 해도 여기 의무실 덕이지만."
사실 그리 오랜 시간이 된 것도 아니다. 카넬리안이 손을 들어 엄지로 의무실 방향을 가리킨다. 이전에 몸담았던 곳에서는 이런 성능 좋은 약을 얻을 수조차 없었다. 상처가 덧나는 건 일상이었고. 이 청년이야말로 에델바이스 의무실의 최대 수혜자가 아닐까… 이젠 납작히 눌린 연고를 주머니에 대충 쑤셔넣고, 그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먼저 바른 왼팔은 상처가 서서히 아물고 있었다.
"쥬데카, 리오. 그래, 반가워. 앞으로도 잘 부탁하고."
소년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본다. 그리고 형식적일지라도 빈말은 아닌 인사를 꺼낸다. 이런 친절도, 제게 웃어보이는 소년도 마냥 낯설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하기사, 진정 배가 고팠다면 이곳 자판기가 아닌 슈퍼마켓으로 올라갔을테니. 꼭 임무 종료 직후가 아니더라도 때때로 식사가 모자랐다고 느끼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그곳이었다. 그것은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로, 그녀는 강도를 방불케하는 재고털이의 주범으로 유명한 것이었다. 여하튼 굶주린 상태의 그녀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는 정도로 얌전하지 않다는 것이리니. 그러니 이렇게나 캔을 대량으로 뽑은 것도, 단순히 이건 그녀에게 보통의 양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런 그녀가 이제 음료를 먹으려고 하는데, 무심코 한다는 행동이 무슨 캔을 과일 잡듯이 끄트머리를 집어서는- 그대로 캔 통째로 입 안에 넣으려 하는 것처럼 허공에 번쩍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의 눈과 마주치자, 하던 기묘한 행동을 멈추고 캔을 따서 평범하게 음료를 들이켰다. (그렇다고는 해도 완전히 털어넣는 모양새였지만.)
자판기 앞에서 음료를 들이키는 두 명의 여인이 생겼다. 그녀야 원래 상식이 모자른지라 그렇다고 해도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마시고 있었을까. 그녀는 그것을 궁금해 하는 일도 없이 벌써 캔 하나를 순식간에 다 비웠는지 꿀꺽 소리내며 제 입가를 손등으로 무신경하게 슥슥 문질렀다. 와중에도 눈은 당신을 향하고 있었는데,
스스로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내고, 그걸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결국 온전히 본인의 몫이라고 너는 생각했다. 타인의 말을 통해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채더라도,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더라도 그대로 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그는 적어도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은 사람이었다. 라고 너는 생각했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그의 말에, 너는 다시 한 번 잘 부탁하겠다은 말을 했다. 그러면...이제 어떡할까. 처음에 그에게 말을 걸게 된 이유는 오해였고, 통성명도 했겠다. 사실상 용건은 끝났다,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이렇게 떠나기는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앉아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너는 바로 그의 곁에 앉는 대신, 주변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손에 들고서야 앉았다. 그리곤 가만히 그가 팔에 연고를 바르는 걸 쳐다보았다, 뭔가 이상한 취향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뭔가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그에게서 받았기 때문이랄까.
"음료수, 드시겠습니까?"
음료 하나, 그가 달콤한 것을 좋아할지 몰라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네 손에 들린 초코라떼 한 캔을 그에게 보여주며 묻는다. 조금 강요하는 게 됐으려나, 받지 않으면 하나는 숨겨야지.
"그, 괜찮습니다. 대화는 없어도... 저도 잠시 쉴 장소가 필요했거든요."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좋다, 안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을 또 다른 이야기로 채울 만큼 여유롭지 않았으니. 그저 조금, 날카롭지도,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이거나 조금 과할 정도로 호의를 보이지도 않는 그의 곁은 조용히 생각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의 상처를 보면서 드는 생각도 있었고. 너는 괜시리 미소지으며 캔을 만지작거렸다.
//사실 대화는 더 나누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뭔가 카넬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한 분위기에 취해 썼습니다... 그러니까 음 사실상 막레라고 보셔도 괜찮아요, 막레로 받으셔도 되고, 아니면 더 잇더라도 저는 좋습니다!만... 편한 대로 부탁드릴게요!
빠져나오고 싶다면 그냥 팔을 풀면 될 것이지 꼭 요란하게 푸드덕거리는 이유는 뭔가 싶다. 하여간에 과한 사람이다. 그 짓을 하고서는 다시 돌아 멜피를 쳐다보는 폼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했다. 아니다. 대답을 듣자 또다시 히죽 웃는 상이 되어서는.
"하여간 너도 살벌한 새*다. 근데 *, 나도 그렇게 생각 중이라 할 말이 없네."
거슬리고 방해가 될 인물이라면 치울 뿐이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면면이 다르듯, 멜피의 이유가 적에 대한 무자비함이라면 그는 마땅한 당위만 있다면 누군가를 해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 쪽이다. 그 수상한 자에게 유감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유가 성립되는 데 거창한 조건이나 격렬한 감정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래야 한다면 응당, 그 정도의 일이지. 그러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능청스레 한숨을 쉬었다.
"헌팅? 그거 씨* 진짜로 총 쏴서 잡는다는 뜻 아니고?"
멜피가 헌팅에 당할까 걱정이라니, 차라리 진짜 총질 당할까 걱정하는 게 더 맞겠다. 그런 소리를 하며 눈썹 한쪽만 치켜올리는 표정이 영 불손했다.
"그래, 뭐. 어디 갈 건데?"
공들여 꼬시지 않아도 사실상 거의 다 넘어가버린 상태에서 술자리라는 조건도 빠졌으니 승낙하는 건 당연지사다. 기분전환이라면 그도 환영이라는 입장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는 털레털레 발부터 먼저 옮겼다.
비세븐스를 고용했다. 돈으로 고용한 보디가드. 그가 배신할 줄이야. 지켜야할 상대를 오히려 팔아넘길 줄이야. 배신, 조롱, 어찌하여 그는 배신했는가. 어찌하여 그들은 나를 붙잡았는가.
"그 건 아가씨가 세븐스가 아니었을 때 이야기고. 우린 세븐스의 호위는 안해 아가씨"
냉혹한 표정의 사내는 곰같은 체구로 그녀 앞에 숙여 앉아서 지켜보다가 이야기했다. 패드를 움켜쥐고 바닥에 내려친다. 거슬린다는듯이.
"그럼 우리는 댁들과 합의본대로 넘겼수. 돈 주쇼"
그늘에서 누군가 걸어나온다. 뒷골목의 풍경을 비추듯 빛의 사각지대에 서있던 이는 서서히 빛 앞으로 나온다. 비열한 표정을 짓고있는 20대 중반 정도로만 보이는 사내. 보디가드에게 돈을 넘긴다. 그러며 그 사내는 그녀를 내려본다. 그녀가 그 사내와 마주보고 있자 그 것이 심기가 불편한듯 이내 그녀를 걷어차버린다.
"어딜 세븐스 주제에 우리를 쳐다봐?"
세븐스 혐오 단체의 수장 이름은 안 알려져있으나 별칭으로 '레드럼'이라고 불리는, 듣기로는 사람도 몇명 담가버렸다고 전해지는 사내. 쿨럭 쿨럭하고 아리아가 기침을 하며 입에서 물이 고인 것 같은 기분이 들자 뱉는다. 그러자 나오는 것은 선홍빛 피.
"알겠어? 세븐스는 돌연변이 X끼들이야. 즉 인간이 아니라고. 근데 너희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게 많잖냐."
헛소리, 그녀는 그리 생각하고 그를 다시 쳐다보려고 하자 한번 더 걷어찬다. 마치 짐승이 어딜 인간을 쳐다보는 것이냐는듯
"즉 짐승 새X들 주제에. 인간인 척하고 인간의 자리를 노린다니까? 그러니 싹다 죽여버려야지 않겠냐?"
마침 '높으신 분'들도 바란다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비아냥대듯 그리 이야기하자 사내 근처에 있떤 이들이 킬킬하고 웃는다.
"이번엔 혀부터 잘라버리자고!" "맞아 레드럼! 그 X새X들이 우리랑 같은 말 하는것부터가 불쾌하잖아?"
처음에는 오히려 두 사람의 성격이 반대에 가까웠을텐데. 어느샌가 이런 느낌이 되어버렸지만. 결국 사람이라는게 쉽게 변하는게 아니라고 겉보기에는 많이 변한 두 사람도 실제의 관계는 그다지 바뀐게 없었습니다. 그것이 한결같다고 해야할지, 성장하지 못했다고 해야할진... 모르겠지만요.
"뭐어~? 나 그래도 꽤 인기있는 편인데."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삐졌다는듯 뿌뿌- 하고는 옆머리를 넘겼습니다. 굳이 그녀뿐 아니라 그냥 대부분의 멤버들은 알게 모르게 인기가 있지만.. 그건 비밀로 해둡시다.
"글쎄~ 로맨틱하게 영화라도 볼까. 아니면 오락실 갈까?"
그녀는 어차피 기분만 풀리면 장땡이니 아무데나 가자면서 먼저 발을 옮기는 당신을 따라 나섰습니다. 일단은 선택지는 제시했지만 당신이 끌리는곳에 갈 생각인지 여전히 가까운 거리감으로 비스듬히 옆에서 걷기 시작했죠.
에스티아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렸다. 자신이 있었던 곳은 다름 아닌 지옥이었다. 철이 들었을 땐 이미 자신에게 부모가 없었다. 아직 어린 나이였음에도 에스티아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세상은 자신 같은 '세븐스'를 배척하고 미워했으니까.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사람으로서 취급해주지 않았다.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하루하루를 살았다. 허나 어린 나이의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제대로 숨을 쉬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 지금의 자신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04번. 폐기처분 처리. -05번과 14번. 아직 .....사용을 ......부족... 차후 지켜보고 ....할 것.
자신이 있었던 곳은 숨을 쉬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만 하고, 뭔가를 먹을 수 있는 것도 힘든 곳이었다. 주변에서 진한 붉은 냄새가 진동을 하고 비명소리가 들렸다. 쓰러진 또래의 아이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들쳐졌고 이내 어딘가로 던져졌다.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가운데, 그 아이가 들어간 칸 안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본 에스티아는 두려움을 느꼈다. 살고 싶어. 싫어. 살려줘. 눈물이 뚝뚝 떨어지나 아무도 자신을 구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올라와."
검은 옷을 입은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린 소녀는 올라가는 것을 거부했다. 저 위로 올라가면 자신의 운명은 뻔했다. 누군가에게 설명을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저 위로 올라가는 순간 어떻게 될지 그녀는 확신했다.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단 말인가. 손에 쥐고 있는 검을 집어던지면서 그녀는 몸을 웅크렸다.
싫어. 살려줘. 싫어. 무서워.
-....거부.... -....패배자.. 처리..
뭔가 말을 하는 것이 들렸으나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엔 아직 어려운 말들이었다. 허나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일어날 일들이 없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이가 천천히 다가왔고 그녀의 목덜미를 붙들었다. 깜짝 놀라 몸부림을 치지만 개미가 공룡 머리 위에서 발버둥을 친다고 한들, 공룡에게 어디 타격이 가겠는가. 어린아이 하나의 몸부림 따위에 흔들릴 이는 없었다. 덜컹. 어딘가의 뚜껑이 열렸다. 저 안에 이 사람은 그것을 넣었고 이어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왔어. 속으로 중얼거리며 에스티아는 눈물을 흘렸다.
-...필요없는 존재. -다음 테스트....
그 이후의 일들은 그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가자. 이제 괜찮아. 아. 너 말고 한 명 더 같이 갈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는 여성의 목소리에 따라 에스티아는 옆을 바라봤다. 뒷편에서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매우 차갑고 차가워서 얼음처럼 뾰족한 무언가였다. 에스티아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같이 있었던 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괜찮아. 돌아보지 마. 괜찮아. 그렇게 중얼거리는 여성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가득했다. 실제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에스티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패배자들 주제에...
그런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 에스티아는 눈을 꽉 감았다. 싫어. 듣기 싫어. 차마 말은 못하면서 머릿속으로 목소리를 울리며 에스티아는 눈을 꽉 감았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어림잡아 10년이 훨씬 넘은 옛날 이야기지만. 에스티아에겐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광경은 아직도 마음 속에 유리조각이 되어 콕 박혀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