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세븐스를 고용했다. 돈으로 고용한 보디가드. 그가 배신할 줄이야. 지켜야할 상대를 오히려 팔아넘길 줄이야. 배신, 조롱, 어찌하여 그는 배신했는가. 어찌하여 그들은 나를 붙잡았는가.
"그 건 아가씨가 세븐스가 아니었을 때 이야기고. 우린 세븐스의 호위는 안해 아가씨"
냉혹한 표정의 사내는 곰같은 체구로 그녀 앞에 숙여 앉아서 지켜보다가 이야기했다. 패드를 움켜쥐고 바닥에 내려친다. 거슬린다는듯이.
"그럼 우리는 댁들과 합의본대로 넘겼수. 돈 주쇼"
그늘에서 누군가 걸어나온다. 뒷골목의 풍경을 비추듯 빛의 사각지대에 서있던 이는 서서히 빛 앞으로 나온다. 비열한 표정을 짓고있는 20대 중반 정도로만 보이는 사내. 보디가드에게 돈을 넘긴다. 그러며 그 사내는 그녀를 내려본다. 그녀가 그 사내와 마주보고 있자 그 것이 심기가 불편한듯 이내 그녀를 걷어차버린다.
"어딜 세븐스 주제에 우리를 쳐다봐?"
세븐스 혐오 단체의 수장 이름은 안 알려져있으나 별칭으로 '레드럼'이라고 불리는, 듣기로는 사람도 몇명 담가버렸다고 전해지는 사내. 쿨럭 쿨럭하고 아리아가 기침을 하며 입에서 물이 고인 것 같은 기분이 들자 뱉는다. 그러자 나오는 것은 선홍빛 피.
"알겠어? 세븐스는 돌연변이 X끼들이야. 즉 인간이 아니라고. 근데 너희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게 많잖냐."
헛소리, 그녀는 그리 생각하고 그를 다시 쳐다보려고 하자 한번 더 걷어찬다. 마치 짐승이 어딜 인간을 쳐다보는 것이냐는듯
"즉 짐승 새X들 주제에. 인간인 척하고 인간의 자리를 노린다니까? 그러니 싹다 죽여버려야지 않겠냐?"
마침 '높으신 분'들도 바란다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비아냥대듯 그리 이야기하자 사내 근처에 있떤 이들이 킬킬하고 웃는다.
"이번엔 혀부터 잘라버리자고!" "맞아 레드럼! 그 X새X들이 우리랑 같은 말 하는것부터가 불쾌하잖아?"
처음에는 오히려 두 사람의 성격이 반대에 가까웠을텐데. 어느샌가 이런 느낌이 되어버렸지만. 결국 사람이라는게 쉽게 변하는게 아니라고 겉보기에는 많이 변한 두 사람도 실제의 관계는 그다지 바뀐게 없었습니다. 그것이 한결같다고 해야할지, 성장하지 못했다고 해야할진... 모르겠지만요.
"뭐어~? 나 그래도 꽤 인기있는 편인데."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삐졌다는듯 뿌뿌- 하고는 옆머리를 넘겼습니다. 굳이 그녀뿐 아니라 그냥 대부분의 멤버들은 알게 모르게 인기가 있지만.. 그건 비밀로 해둡시다.
"글쎄~ 로맨틱하게 영화라도 볼까. 아니면 오락실 갈까?"
그녀는 어차피 기분만 풀리면 장땡이니 아무데나 가자면서 먼저 발을 옮기는 당신을 따라 나섰습니다. 일단은 선택지는 제시했지만 당신이 끌리는곳에 갈 생각인지 여전히 가까운 거리감으로 비스듬히 옆에서 걷기 시작했죠.
에스티아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렸다. 자신이 있었던 곳은 다름 아닌 지옥이었다. 철이 들었을 땐 이미 자신에게 부모가 없었다. 아직 어린 나이였음에도 에스티아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세상은 자신 같은 '세븐스'를 배척하고 미워했으니까.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사람으로서 취급해주지 않았다.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하루하루를 살았다. 허나 어린 나이의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제대로 숨을 쉬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 지금의 자신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04번. 폐기처분 처리. -05번과 14번. 아직 .....사용을 ......부족... 차후 지켜보고 ....할 것.
자신이 있었던 곳은 숨을 쉬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만 하고, 뭔가를 먹을 수 있는 것도 힘든 곳이었다. 주변에서 진한 붉은 냄새가 진동을 하고 비명소리가 들렸다. 쓰러진 또래의 아이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들쳐졌고 이내 어딘가로 던져졌다.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가운데, 그 아이가 들어간 칸 안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본 에스티아는 두려움을 느꼈다. 살고 싶어. 싫어. 살려줘. 눈물이 뚝뚝 떨어지나 아무도 자신을 구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올라와."
검은 옷을 입은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린 소녀는 올라가는 것을 거부했다. 저 위로 올라가면 자신의 운명은 뻔했다. 누군가에게 설명을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저 위로 올라가는 순간 어떻게 될지 그녀는 확신했다.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단 말인가. 손에 쥐고 있는 검을 집어던지면서 그녀는 몸을 웅크렸다.
싫어. 살려줘. 싫어. 무서워.
-....거부.... -....패배자.. 처리..
뭔가 말을 하는 것이 들렸으나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엔 아직 어려운 말들이었다. 허나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일어날 일들이 없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이가 천천히 다가왔고 그녀의 목덜미를 붙들었다. 깜짝 놀라 몸부림을 치지만 개미가 공룡 머리 위에서 발버둥을 친다고 한들, 공룡에게 어디 타격이 가겠는가. 어린아이 하나의 몸부림 따위에 흔들릴 이는 없었다. 덜컹. 어딘가의 뚜껑이 열렸다. 저 안에 이 사람은 그것을 넣었고 이어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왔어. 속으로 중얼거리며 에스티아는 눈물을 흘렸다.
-...필요없는 존재. -다음 테스트....
그 이후의 일들은 그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가자. 이제 괜찮아. 아. 너 말고 한 명 더 같이 갈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는 여성의 목소리에 따라 에스티아는 옆을 바라봤다. 뒷편에서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매우 차갑고 차가워서 얼음처럼 뾰족한 무언가였다. 에스티아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같이 있었던 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괜찮아. 돌아보지 마. 괜찮아. 그렇게 중얼거리는 여성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가득했다. 실제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에스티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패배자들 주제에...
그런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 에스티아는 눈을 꽉 감았다. 싫어. 듣기 싫어. 차마 말은 못하면서 머릿속으로 목소리를 울리며 에스티아는 눈을 꽉 감았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어림잡아 10년이 훨씬 넘은 옛날 이야기지만. 에스티아에겐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광경은 아직도 마음 속에 유리조각이 되어 콕 박혀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