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흉터들에 고정시킨 채 그가 중얼인다. 그 말대로다. 레지스탕스라는 조직에 제 발로 걸어들어온 이상, 능력 사용은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한 능력이라거나, 불완전한 능력이라는 생각은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가, 그렇겠지."
그도 자기 능력에 다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보긴 했었다. 하지만 제 것과는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진 않고 그저 소년의 말을 긍정할 뿐.
"뭐, 방법이라고 해도 여기 의무실 덕이지만."
사실 그리 오랜 시간이 된 것도 아니다. 카넬리안이 손을 들어 엄지로 의무실 방향을 가리킨다. 이전에 몸담았던 곳에서는 이런 성능 좋은 약을 얻을 수조차 없었다. 상처가 덧나는 건 일상이었고. 이 청년이야말로 에델바이스 의무실의 최대 수혜자가 아닐까… 이젠 납작히 눌린 연고를 주머니에 대충 쑤셔넣고, 그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먼저 바른 왼팔은 상처가 서서히 아물고 있었다.
"쥬데카, 리오. 그래, 반가워. 앞으로도 잘 부탁하고."
소년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본다. 그리고 형식적일지라도 빈말은 아닌 인사를 꺼낸다. 이런 친절도, 제게 웃어보이는 소년도 마냥 낯설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하기사, 진정 배가 고팠다면 이곳 자판기가 아닌 슈퍼마켓으로 올라갔을테니. 꼭 임무 종료 직후가 아니더라도 때때로 식사가 모자랐다고 느끼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그곳이었다. 그것은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로, 그녀는 강도를 방불케하는 재고털이의 주범으로 유명한 것이었다. 여하튼 굶주린 상태의 그녀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는 정도로 얌전하지 않다는 것이리니. 그러니 이렇게나 캔을 대량으로 뽑은 것도, 단순히 이건 그녀에게 보통의 양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런 그녀가 이제 음료를 먹으려고 하는데, 무심코 한다는 행동이 무슨 캔을 과일 잡듯이 끄트머리를 집어서는- 그대로 캔 통째로 입 안에 넣으려 하는 것처럼 허공에 번쩍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의 눈과 마주치자, 하던 기묘한 행동을 멈추고 캔을 따서 평범하게 음료를 들이켰다. (그렇다고는 해도 완전히 털어넣는 모양새였지만.)
자판기 앞에서 음료를 들이키는 두 명의 여인이 생겼다. 그녀야 원래 상식이 모자른지라 그렇다고 해도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마시고 있었을까. 그녀는 그것을 궁금해 하는 일도 없이 벌써 캔 하나를 순식간에 다 비웠는지 꿀꺽 소리내며 제 입가를 손등으로 무신경하게 슥슥 문질렀다. 와중에도 눈은 당신을 향하고 있었는데,
스스로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내고, 그걸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결국 온전히 본인의 몫이라고 너는 생각했다. 타인의 말을 통해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채더라도,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더라도 그대로 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그는 적어도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은 사람이었다. 라고 너는 생각했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그의 말에, 너는 다시 한 번 잘 부탁하겠다은 말을 했다. 그러면...이제 어떡할까. 처음에 그에게 말을 걸게 된 이유는 오해였고, 통성명도 했겠다. 사실상 용건은 끝났다,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이렇게 떠나기는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앉아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너는 바로 그의 곁에 앉는 대신, 주변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손에 들고서야 앉았다. 그리곤 가만히 그가 팔에 연고를 바르는 걸 쳐다보았다, 뭔가 이상한 취향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뭔가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그에게서 받았기 때문이랄까.
"음료수, 드시겠습니까?"
음료 하나, 그가 달콤한 것을 좋아할지 몰라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네 손에 들린 초코라떼 한 캔을 그에게 보여주며 묻는다. 조금 강요하는 게 됐으려나, 받지 않으면 하나는 숨겨야지.
"그, 괜찮습니다. 대화는 없어도... 저도 잠시 쉴 장소가 필요했거든요."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좋다, 안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을 또 다른 이야기로 채울 만큼 여유롭지 않았으니. 그저 조금, 날카롭지도,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이거나 조금 과할 정도로 호의를 보이지도 않는 그의 곁은 조용히 생각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의 상처를 보면서 드는 생각도 있었고. 너는 괜시리 미소지으며 캔을 만지작거렸다.
//사실 대화는 더 나누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뭔가 카넬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한 분위기에 취해 썼습니다... 그러니까 음 사실상 막레라고 보셔도 괜찮아요, 막레로 받으셔도 되고, 아니면 더 잇더라도 저는 좋습니다!만... 편한 대로 부탁드릴게요!
빠져나오고 싶다면 그냥 팔을 풀면 될 것이지 꼭 요란하게 푸드덕거리는 이유는 뭔가 싶다. 하여간에 과한 사람이다. 그 짓을 하고서는 다시 돌아 멜피를 쳐다보는 폼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했다. 아니다. 대답을 듣자 또다시 히죽 웃는 상이 되어서는.
"하여간 너도 살벌한 새*다. 근데 *, 나도 그렇게 생각 중이라 할 말이 없네."
거슬리고 방해가 될 인물이라면 치울 뿐이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면면이 다르듯, 멜피의 이유가 적에 대한 무자비함이라면 그는 마땅한 당위만 있다면 누군가를 해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 쪽이다. 그 수상한 자에게 유감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유가 성립되는 데 거창한 조건이나 격렬한 감정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래야 한다면 응당, 그 정도의 일이지. 그러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능청스레 한숨을 쉬었다.
"헌팅? 그거 씨* 진짜로 총 쏴서 잡는다는 뜻 아니고?"
멜피가 헌팅에 당할까 걱정이라니, 차라리 진짜 총질 당할까 걱정하는 게 더 맞겠다. 그런 소리를 하며 눈썹 한쪽만 치켜올리는 표정이 영 불손했다.
"그래, 뭐. 어디 갈 건데?"
공들여 꼬시지 않아도 사실상 거의 다 넘어가버린 상태에서 술자리라는 조건도 빠졌으니 승낙하는 건 당연지사다. 기분전환이라면 그도 환영이라는 입장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는 털레털레 발부터 먼저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