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가 끝나고, 결국 블러디 레드는 확보하지 못했지만 잃은 사람 없이 7명의 세븐스들을 무사히 구출해서 데려왔다. 그것만으로 대성공인지도 모른다.
내용이 어떠하든, 임무가 끝난 뒤는 항상 고요함이 찾아오거나 복도가 멤버들의 소리로 시끄러워진다. 그러나 엔은 그것에 상관없이, 항상 자판기에 들러 갈증과 배고픔을 채우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 그 앞을 지나가는 당신이라면, 자판기 버튼을 연신 꾹꾹 누르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지 않았을까.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당신을 본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니나. 수고했다."
그녀가 당신을 향해 아는체하며 인사한다. 그러는 한 편, 그녀의 버튼에 반응한 자판기 안쪽의 음료수가 요란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덜커덩 덜커덩. 그녀가 자판기 아래에 쪼그려 앉아 음료를 꺼내는데- 당신이 오기 전부터 얼마나 눌러댔는지 계속해서 캔이 투출구에서 튀어나온다. 척보아도 다섯은 넘는 것 같다. 그것을 모두 혼자 마시려는 건지는 몰라도. 꺼낸 캔들을 품에 끌어 안은 상태로 그녀는 당신을 빤히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캔 하나를 집어 당신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자신의 임무는 끝났다. 다만 자신이 맡았던 일이 끝났다고 해서 사건 전체에 종결부가 찍히는건 아니다. 두려웠을 아이들도 누군가는 진정시키고 새로운 사회에 스며들게끔 해야하고, 누군가는 보고를 올려야 한다. 자신이 알기론 부상자가 없으니 일은 좀 줄었지만.
“아이스크림 사러 갈래?”
이제부터 살게 될 곳을 구경시키는 것도 좋겠지. 아이들을 좋아하는지라 일이 생겼다는 기분은 안 든다. 능력을 그닥 많이 쓴 것은 아니라 다른 대원들에 비하면 팔팔한 자신이 일을 도맡는 것이 옳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겁을 먹고 있다가도 아이스크림 소리에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세 명. 나머지 네 명은 인상을 쓰고 있던 유루에게 겁을 먹었던 건지 더욱 떨며 고개를 젓는다.
“난 눈이 안 좋아서 너희들을 자세히 보려면 얼굴을 무섭게 해야해. 이해 해줘.”
자못 웃으며 긍정을 표했던 여자아이 두명과 남자아이를 데리고 기지 밖으로 향한다. 날은 선선하니 아이스크림 먹기 딱 좋은 날씨다. 윗 층의 마트로 걸음을 향하며 그저 아무런 영양가 없는 말만 부드럽게 읊조린다. 여자아이 한 명과 남자아이는 조금씩 긴장이 풀리는지 함께 조잘거린다.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걷던 여자아이는 마리가 있는 방향을 흘깃 쳐다본다. 유루는 여자아이가 걸음을 멈춘 것을 느꼈는지, 내딛던 발을 우뚝 세운다.
“저 누나도 너희랑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가 봐. 가서 같이 먹자고 물어볼래?”
그의 손을 잡고 있던 여자아이는 쥔 손에 힘을 주었다가, 손을 놓고 마리 쪽으로 조심스레 걸어가본다. 사회성은 이렇게 기르는 거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 했을 이들한테는 이 정도로 시작하는게 좋다. 사실 모르겠다, 그저 그렇다고 읽었을 뿐. 여자아이는 마리에게 다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웅얼이듯 물음을 던진다.
“...저도, 언니랑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유루의 말을 확신삼아, 아이는 마리에게 겨우 말을 건다. 자신을 구해주었다는 사람 중 하나였다는걸 인지하고 있는지, 마리를 똑바로 올려다보는 아이의 두 눈엔 생기와 동경으로 가득 차 있다. 마리가 유루 쪽을 보면 그는 맑은 눈웃음을 치며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고 있을 것이다.
아, 존* 뒤지게 힘들다. 아니, 힘들기보다는 피로감이 일정 정도를 넘어서니 미묘한 불쾌감이 되었다 함이 옳다. 탈력감이 몸 위에 내려앉아 짓누르는 듯하고, 둔해진 감각이 머리를 쿡쿡 찔러댄다. 그는 욕 나오게 힘들다고 생각을 하려다 제 평소 언어습관을 돌아보고 속으로 정정했다. 욕이야 기분 좋을 때도 하니 말이 안 된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잡념도 거기에서 끝이 난다.
일이 있었던 시간은 그다지 길지도 않았건만 격렬한 활동을 그 짧은 시간동안 몰아서 했으니 피곤을 호소한대도 무어라 할 자 없을 테다. 그러나 불쾌할 정도의 피로를 느끼면서도 그는 어디에 들어가 뻗거나 얌전히 쉬는 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별달리 큰 이유는 없지만, 그냥. 실내에 있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다. 언제부터였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에겐 떠돌길 좋아하는 몹쓸 버릇이 생겨버리고 말았더란다. 그렇게 눈은 힘 풀려서 하품을 하고, 종착지 없이 이리저리 걸음 옮기던 여승우가 멈추어선 것은 그때였다. 익숙한 인영의 바로 앞 자리였다.
"표정이 완전 개** 났는데."
그리 말하는 그도 꼴이 양호하지는 않다. 양손과 얼굴, 몸 여기저기에 그을음을 묻힌 몸에서는 미미하게 탄내가 났다. 불덩어리를 펑펑 터뜨려 대고 이리저리 굴러다녔으니 고운 몰골 유지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가뜩이나 기분 좋아 보이지 않는 사람 앞에서 웃는 낯짝이란, 밉게 보일만치나 속없었다.
제발 화풀이 좀 그만하자. 그녀는 복귀하고나서도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아까의 상황을 떨쳐내지 못하고 한손에는 커피를 든채로 벌레를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방금전에는 그냥 말없이 넘어갔지만..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녀도 알고는 있습니다.. 나쁜 의도로 막은건 아니란걸.
아니, 모르고 있나요?
"아, 젠장..! 적당히 하자 진짜!"
그녀는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짜증을 떨쳐내려 했지만 영 마음대로 안되는지 분노를 넘어 울상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익숙한 목소리와 욕설이 귀에 들려오자 그녀는 그쪽을 바라보더니 입을 삐쭉하고 내밀었죠.
"그래 아주 개xx 났다. 알고있으면 어서 이 미인을 위로해줘야하는거 아냐?!"
살짝 느껴지는 탄내가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만약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그녀는 그저 적당히 넘기든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다른이들보다 조금 더 친한 당신이었기에, 그녀는 투정을 부리며 양팔을 벌렸습니다.
뒤에서 유루를 관찰하고 있던 마리는 유루가 자신을 대했던 것과는 아주 딴판으로 아이들에게 잘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린 애들을 좋아하는 편인 걸까? 의외네. 처음 보는 여자에게 손키스를 날리는 무뢰한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 한 여자아이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에 마리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깜빡였다. 유루가 아이스크림 핑계를 대며 여자아이를 자신에게 보내자 마리는 조금 긴장했다. 생각해보면 구출된 이후로 제 또래는 물론이요, 자신보다 어린 애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응. 같이 아이스크림 먹을까?”
마리는 작은 미소를 띄우며 아이의 손을 잡고 유루의 쪽으로 향했다.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을 때 그가 맑게 눈웃음을 치며 손짓하는 것에 뚱한 표정을 지었겠지만서도.
어떻게 유루와 마리와 여자애 2명과 남자애 한 명이 같이 기지의 위쪽의 슈퍼마켓으로 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묻는 말에 대답하면서 걷다보면 슈퍼에 도착할 것이었고,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머리를 파묻을 듯이 하며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동안 마리는 유루에게 말을 걸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