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하고 손가락을 당기기만 하면, 사용자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는 상관없이 충분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무기. 그렇지만 역시 숙련되기 위해서는 적당한 근력도, 거리와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감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는 직접 손에 쥐거나, 자신의 신체와 가장 가까운, 마치 제 몸처럼 쓸 수 있는 무기가 좋겠지. 그게 아니라면...음.
"그건... 말하기가 조금 어렵네요, 미안해요. 마음을 좀 더 정리하고 말씀드릴게요."
가디언즈에서, 라고 말하기가 두려웠다. 그것도 배신해서 도망쳐왔다는 걸, 가디언즈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도망쳐왔는지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어서였고, 그걸 말하기가 두려웠다. 너는 또 비겁했다.
"그렇지만 여기에 있는 한, 아마 절 찾아내지는 못하겠죠. 어쩌면 한참 전에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저는 그렇게까지 힘을 들여서 쫓을 만큼 중요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러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마치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듯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실은 네가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누렸던 특권을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그리운 게 아니었다. 그저 사실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건... 생각해보지 못했네요, 마리의 말을 듣다 보니, 저 역시 그랬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만약 그렇게 살아가다가, 내게 소중한 사람이 세븐스였다면, 나는 갈등했을까,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너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묘하게 우울해지는 감정을 애써 떨쳐냈다. 그리고 그녀가 '운이 나빴다면' 가디언즈에 있었을거라는 이야기를 하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네요, 마리는."
감상은 짧은 말 두 마디. 조금 피곤한 듯, 정말 대단한 네 앞에 있는 나는 이렇게 초라하구나, 하고. 그렇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너는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자신의 능력을 이야기해 줬다, 잘못될 수도 있다는 부분, 즉 약점까지도. 이건 신뢰일까, 아니면 그저 별 이유 없는 이야기였을까. 적어도 너는 조금의 신뢰라고 생각했으니, 신뢰에는 신뢰로 답을 한 것 뿐이라고. 그런 느낌을 실어 이야기했다.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황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팀원들이 함께 있는 거라고도... 생각하니까요."
그게 팀이라고 너는 생각했다. 혼자서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무리짓지 않겠지. 적어도 너는, 그리고 네가 본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때문에 혼자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상황이라도 둘, 셋이라면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자신은 그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하... 좋은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뭐든지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법, 마찬가지로 단점이 두드러진다고 한다면 장점 역시 충분히 두드러질 수 있다. 너는 가볍게 웃으며 그의 말에 대답하고는, 네 경험에 대해 계속해서 묻는 그의 눈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더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갑자기 선을 긋는 것 같아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신과 같은 레지스탕스와 맞붙어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폭격과도 같은 공격 속에서 레지스탕스들이 죽어가는 모습과 그 공격의 충격을 피부가 찢어질 듯이 느꼈다는 걸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은 용기가 없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당신과 같은 사람들을 짓밟는 자리에, 짓밟는 사람들 중 하나로 서 있었다는 걸.
할 수 있다면 계속한다. 이스마엘에게 있어 놀라운 일이다. 이런 문화생활이 계속된다는 것도, 세븐스가 그 문화생활의 주축이 된다는 점도. 세븐스라는 존재는 원래 탄압받고 사는 것이 정상이지 않던가! 이렇게 세븐스가 가디언즈의 길을 걷지 않은 채, 자신을 드러내고 환호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상향의 첫걸음이나 마찬가지다.
"Rice cake? 아! Reiskuchen!"
라이스 케이크, 그건 안다. Reiskuchen! 그걸 떡이나 모찌라고도 하는 건가? 신기하다! 신체가 떡처럼 변한다니, 오늘 새로 알게 된 사실만치 신기한 세븐스다. 떡 하나? 고개를 기울였는지 노이즈가 움직인다.
"정말 받아도 됩니까..?"
손에서 떠오른 떡. 이스마엘은 제법 놀랐는지 작은 탄성을 뱉었다. 신기하다. 세븐스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왜라는 질문이 돌아오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듯, 너는 당연하게 이유를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말문은 그대로 막혔다. 죽지 말아야 한다는 데 이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일까. 너는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으면서.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건 무슨 이유였을까?
너는 그녀의 말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세븐스였기 때문에 세븐스의 차별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건 세븐스 전체의 신장이라는 목적 앞에, 그들의 딸이 살아갈 세상, 그러니까 결국 딸이 차별받지 않았으면 하는 갈망이 있었을 터, 만약, 만약에, 그들에게 모든 걸 버리고 떠나 차별 없이 셋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러니까 그런 말은 안 하는게 좋겠어요, 살아서 화합하는 모습을 봐야죠."
각오의 표현이라면 말이 조금 다르지만, 그런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어쩐지 진심이 느껴졌기에 너는 굳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생각해보니, 마리에게는 스턴건이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작은 건 숨기기에 좋으니 방심을 유도할 수 있고, 봉 형태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쓸 때 유용하겠죠."
저지력은 뛰어나지만, 살상력은 떨어지는. 그러니까... 강하지만 상냥함이 담긴 무기라고나 할까. 스턴건에 쓰러지는 사람을 생각하면 상냥하다는 말에 조금 의문이 생기기는 했지만 인체란 가벼운 전류에도 경련하는 법, 결국 목숨을 빼앗지는 않으니 상냥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너는 생각하며 웃었다.
아스텔을 보내 얻어낸 정보에 따르면 현재 특정 지점에서 죄없는 세븐스 다수가 붙잡혔고 그 세븐스 다수는 조만간에 열차로 이송될 예정이었다. 듣자하니 붙잡은 시기는 꽤 이전인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이송을 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로벨리아로서는 이송되게 둘 순 없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대원들을 파견해서 다 구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로벨리아는 잠시 작전을 떠올렸다. 이런 정보가 쉽게 세여나오는 것은 보통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첫번째는 아스텔이 너무나 뛰어나서 이런 기밀 작전을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올 수 있다거나, 혹은 두번째는 일부러 정보가 빠져나가는 것을 의도하고 있다던가. 첫번째라면 역으로 기습을 할 수 있으나 두번째는 오히려 기습을 당할 수도 있는만큼 그 움직임을 신중하게 정해야만 했다.
"좋아. 정했어."
노트북을 바라보며 여러 방향으로 작전을 짜던 로벨리아는 마침내 계획을 마치고 쭈욱 기지개를 켰다. 이어 일단 바람을 쐬야겠다고 생각하며 지하 1층에 있는 자신의 방 밖으로 나와 계단을 통해 슈퍼로 나왔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저녁 노을이 지는 것이 꽤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걷는 와중, 엔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좋은 저녁이야. 엔. 뭐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
딱히 의도는 없었다. 그냥 길을 가다가 발견한 것이 그녀였으니까. 가볍게 묻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