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은 찾아내는것이라. 그녀는 이렇게 일상속에서 툭하고 지나가듯이 나오는 좋은 말을 좋아했습니다. 단순히 본인은 그런걸 잘 말하지 못하는편이라 그런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눈에 띄게 재밌어하며 그녀는 다시 볶음밥을 한입 떠먹었죠. 음, 역시 가격대에 비해 상당히 괜찮은 퀄리티입니다.
"제복이라, 뭐 괜찮은 발상이긴 하지만 매번 제복만 입고 돌아다니기도 그러니까."
그녀만해도 제복은 잘 안입고 다니는 편이기도 하고. 일단 공공하게 드러내고 다닐수도 없는것이 현 레지스탕스들의 현주소니까요. 그래도 처음 입은거치고 제복이 잘 어울린다고 덧붙이며 그녀는 작게 웃었습니다.
"일단은 바닥보다는 앞을 볼것, 그것만으로 꽤 많은게 바뀔지도 모르지."
본래 남에게 필요이상의 참견을 하는건 그녀의 스타일이 아닙니다만. 처음이니까 조금만이라는 느낌으로 그녀는 말했습니다. 물론 자신은 눈앞의 상대방에 대해서 아는거라곤 나이와 이름밖에 없습니다만. 그렇기에 주접정도로 넘겨도 상관없습니다. 도움이 된다면 그것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상관없는 거리감이지 않습니까.
"만족했다면 다행이네."
아무리 그래도 기껏 데려왔는데 입맛에 안 맞으면 뻘쭘하니까요. 그녀는 마저 식사를 하기전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너무 밥먹으면서 떠드는것도 안 좋으니 느긋하게 먹어볼까요..
// 뀨웅~ 요걸 막레로 하셔도 되고 마무리 해주셔도 되구용. 여자처자 밥먹고 해산했다고 해주시면 감사합니다~ 약 기운이 돌아서 조금 자고와야겠다요..
조용히 그려지고 있는 소나무들을 보며 마리는 조금 딴생각을 해버렸다. 그린우드. 제 성이었지만 저에게는 초록색이란 하나도 없었다. 우드라고 할 수 있는 갈색도 하나 없었다. 저에게 있는 색은 새빨간 화염과 같은 붉은색과 그로 인해 다 타버려 재만 남은 듯한 흰색에 가까운 잿빛이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색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색도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물었을 때 아마 증조부 위의 조상에서 섞여진 색이 나에게서 나온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그린우드를 잡아먹으러 태어난 저주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11살 이후부터 자꾸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런 허튼 생각을 하며 그림을 구경하던 중 마리는 그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웃음이 번지는 그의 얼굴을 눈을 깜빡깜빡거리며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자 그는 캔버스를 든 채 자신의 앞으로 다가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리는 금새 그가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얌전히 그 앞에 앉아 있었다. 그가 뭔가 곤란한 기색을 띌 때까지. 마리는 작은 몸집을 움직여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먼저 눈에 닿은 것은 그가 그리고 있던 그림이었다. 제 모습을 담은 것은 꽤나 사실적이었으나 그 색이 자신의 색과 달랐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돌려 무언가 곤란한 기색의 그를 바라봤다. 그는 하나의 색깔을 다른 물감을 꺼내 비교하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색이 틀렸어요. 내 눈 색은 이 색인 걸?”
마리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며 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곤 목소리를 내어 벽돌같은 붉은색의 물감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사실 물감의 붉은 색보다는 그려진 고양이의 갈색 눈동자가 더 마음에 들기는 했다. 그린우드의 우드색일까.
사실 원작의 보스들 중에서는 진짜 어쩔 수 없이 보스로 대치하는 이들도 있다보니. 그런 이들은 뭔가 좀 안타깝긴 하죠.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보스로 나왔다가 죽게 되는 거니. 아무튼 그런 케이스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의 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이제 여러분들의 몫이 되는 거고.. 꼭 필수적인 것은 아니니까 그냥 그런 것도 있긴 하다 정도로만 생각해주세요! 정말로!
이스마엘은 장난에 약했다. 당황해 본 적은 20년 짧다면 짧고 길면 긴 삶을 살며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누군가 이렇게 신체에 숨을 불어넣는 등 접촉이 있는 부류의 장난은 겪어본 적도 없었다. 기껏해야 간지럽히기 정도면 모를까. 아니, 애초에 이런 장난 자체가 겪기 흔한 것은 아니었다. 짓궂은 장난에 뒤를 돌아볼까 여러 번 생각하던 이스마엘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상대는 가위를 들고 있으니 실수라도 했다간 큰일이 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노, 놀랐습니다.."
때문에 불평은 아니지만 제법 솔직한 감상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멋쩍게 목덜미라도 만지고 싶은지 장갑 낀 손가락이 꼼질꼼질 움직였다가 서로 깍지를 낀다. 잘 참았다. 이제 다시 머리에 집중할 요량인 듯 이스마엘 입 꾹 닫고 기다린다. 머리를 자르는 건 아주 오랜만의 일이다. 언제 머리를 잘랐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 기억은 유년 시절이다. 그때 자세가 어땠더라? 기억날 리가 없다. 기억나는 것은 적다. 매체에서 보던 머리를 다듬는 모습은 어땠더라. 다행스럽게도 떠오른다. 최대한 자르기 편한 자세를 떠올리고 몸을 움직인다.
긴장한 듯 꼿꼿한 자세가 풀리지 않는다. 아니면 그만큼 버틸 재간이 있을 수도 있다. 아마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머리를 자르는 소리가 들려도 동요하지 않고 얌전히 앉아있었다. 머리가 잘릴수록 가벼운 느낌이 든다. 끝부분을 잘랐음을 느끼긴 쉬웠다. 목 뒷부분이 휑한 느낌이 들고 바람이 불듯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홀가분하다. 이스마엘은 이 허전한 느낌이 어색한 듯 가위가 떨어지고 자매의 대화가 시작될 적에 잠시 어깨를 스트레칭하듯 가볍게 으쓱였다. 가벼운 느낌이 영 익숙하지 않다.
"와.. 가볍습니다.."
생경한 듯, 혹은 떨떠름한 듯 오토튠에 잠식된 목소리가 느릿하게 떨어진다. 잘라낸 머리 다발은 얼추 당신의 머리 길이와 맞먹는다. 아니, 그보다 조금 더 길었다. 언제 머리를 자르지 않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런 세월의 흔적이 뚝 잘려 한편의 추억으로 남는다. 각을 잡는단 말에 "예, 알겠습니다!" 하고 경쾌하게 어조를 바꾸고 머리카락을 온전히 당신에게 맡긴다. 일자로 다듬듯 사각거리는 소리와 찰캉대는 가위 소리가 울린다. 머리가 거의 다 잘렸을 때, 이스마엘은 보이지 않는 입을 벙긋거렸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였다면 아마 망쳤을 겁니다."
제 주제는 잘 아는 것이었다. "제가 있던 곳은 신원상 머리를 자를 수 없었거든요." 이건 무슨 말이람.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