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인줄 알고 손대려고 했는데 알고보니 미성년자가 아니었다! 이런 막장스러운 전개도 아니고. 그녀는 어차피 나이가 많든 적든 큰 상관없지 않냐며 가볍게도 말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종업원이 주문한 메뉴를 가지고 오고 있는게 보였죠. 볶음밥 냄새에 기분이 좋아지는것도 잠시.
"물론 여자랑은 느낌이 다른건 알아, 남자는 키라던가 그런거에 신경이 꽤 가는 모양이니까."
그녀는 미묘하게 말꼬리를 흐리는 당신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습니다. 물론 여자라고 꼭 그런것도 아니고. 개개인의 컴플렉스 같은건 그녀로서는 뭐라고 말해줄 수 없는 이야기. 그러니 그녀는 적당한 분위기를 조절할 뿐으로, 당신에 대해 깊게 참견하지는 않았습니다.
"리오군은 어때? 역시 좀 더 성숙해보이는게 좋은편?"
볶음밥을 한숟가락, 떠 올릴뿐 아직은 먹지 않은채 그녀는 턱을 괴고서 당신을 바라봤습니다.
딱히 불손한 의도를 지니고 있던 게 아니라면 그다지 놀랄 일이...아닌가? 이런 일에도 놀라는 사람이 꽤 있었던 것 같지만 어째 그녀의 태도를 보고 있자면 그녀는 그런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뭔가 보통의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묘한 감각을 느끼고 있을 때쯤, 종업원이 들고 온 볶음밥의 냄새에 저절로 긴장감이 조금 풀어진다.
"하하...네,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입니다."
부정할 마음도 없었거니와, 그녀가 자신의 의중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의외로 순순히 웃으며 인정하고 말았다. 음식이 앞에 있으니 조금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그러다 그녀가 볶음밥을 한 숟가락 뜨자 그제야 그 역시 숟가락을 집어들었다.
"저...말씀이십니까? 성숙해보이는 게 좋다는 얘긴..."
잠깐, 취향에 대한 질문인가? 아니지, 갑자기 흐름이 그렇게 넘어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좀 더 생각을 해 보자... 아마 어려보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 성숙해보이는 걸 선호하느냐는 이야기겠지. 그렇담... 그는 집어들었던 숟가락을 살짝 내려놓고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순순히 수긍해주는 모습에 그녀는 기분이 좋아진듯 미소지었습니다. 그녀는 아무한테나 마구잡이로 말을 거는편이지만. 당연히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더 편한법입니다. 대화가 안 되는 사람하고 대화하고 있어봐야 시간을 날린 기분밖에 들지 않으니까요.
"그런가.. 뭐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가끔 그것도 장점이라던가 그러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말이지~"
분명 키가 작거나 동안인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일 수 있지만. 그게 컴플렉스인 사람한테 그렇게 말한들 그걸 쉬이 받아들이는게 더 어려울것인지라. 그녀는 잘 찾아보면 이런 저런 방법이 있지 않겠냐며 놀리는 톤은 아니지만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가령 키가 커지는 능력이라던가, 한둘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세상이니까요.
"나는 남자는 아니니까, 공감해주긴 어렵지만. 그런것도 있잖아? 패션이라던가 행동이라던가."
지금 당장 키나 얼굴을 바꿀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옷차림이나 행동같은걸로 커버를 한다~ 같은 느낌이라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물론 그런 느낌이란거지 그녀는 정말 모릅니다. 어떻게하면 그 나이대의 남자처럼 보일지.. 같은건 말이죠.
"하지만 나쁘지 않겠네, 목표점 같은걸로 좋지 않아? 누구에게나 멋진 남자로 보이기 같은거."
오늘의 도구는 평범한 흰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이다. 다양한 미디엄을 소화하려는 의도 반, 그리고 그저 오늘따라 아크릴의 유연한 질감을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 반. 임무 대기 기간동안 그는 단어 몇개로 표현 안 될만큼 자유자재로 살았다. 새로운걸 시도도 해보고, 가고 싶은 곳도 가 보고. 그의 인생에서 그나마 일관적인 활동을 꼽자면 훈련과 미술 정도일까. 그런 변덕스러운 대기 기간 중, 오늘은 제자리로 튕겨져나온 기분이 든다.
이젤 위에 캔버스를 대충 던지듯 놓고선 팔레트엔 라벨이 붙어있는 물감을 몇개 짜낸다. 소량의 녹색, 황색, 그리고 아주 약간의 청색을 곁들이고 나선 붓으로 물통의 표면을 찍는다. 조금 녹아 부드러워진 연한 초록을 캔버스 위에 덧칠하면 그려지는건 그의 눈 앞에 있는 어린 소나무의 실루엣. 그 후로 보이는건 반복적인 물감 짜기와 섞기, 그리고 가끔의 주춤거림 뿐. 그려지는 과정을 보아하면, 실물과 굉장히 흡사한 소나무가 형태를 찾아가고 있다. 정상적인 눈으로 보아도, 실물과 그림의 색 차이는 미세할 뿐일 것이다.
어느샌가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살짝 뒤로 하면, 그에 눈에 비치는건 흑백 뿐. 어디는 조금 덜 어둡고, 그와 반대로 다른 쪽은 더 밝고. 다 거기서 거기인 색들이지만 어떤 색인지 짐작은 간다. 전에도 본 것들이니까. 시선의 중앙에 꽂힌 초면의 고양이는 무슨 색인지 통 알수 없다만. 무표정이었던 얼굴에 웃음이 그려지고 보조개가 패인다.
캔버스를 이젤에서 내려 고양이 근처로 다가온다. 그는 털석 앉더니, 상체만 움직여 팔레트와 물감통, 그리고 붓을 집고선 다시 그림을 그린다. 이번에 형태를 잡아가는건 눈 앞의 고양이. 크림빛 털과 같은 밝기의 주황색 털과, 그 붉은 홍채와 같은 어두움의 갈색 눈을 그려넣는다. 색만 배제하고 본다면 실물과 똑같이 생겼다 해도 과언이 아닐터.
고양이가 물감통을 본다면 그 안에 담겨있는건 꽤 많은 양의 물감 튜브들, 그중 몇개는 중복되어 있다. 은은한 미소를 띄며 붓을 움직이던 그 남성은 거의 끝나가는 그림을 두고선, 물감 통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의 손에 들려 나온것은 라벨이 깔끔히 지워진 튜브. 그는 얼굴을 살짝 구기고선 팔레트 위에 물감을 짜 본다.
물감의 색은 벽돌같은 붉은색이다만, 그는 그걸 보고도 모르겠다는듯 통 안에 들어있던 라벨이 붙어있는 파란 물감을 꺼낸다. 두 색을 흘겨보고선 파란 물감을 도로 던져넣고 다른 튜브를 꺼내려 손을 움직인다. 일일히 대조해보려는 움직임이다.
자신의 답이 마음에 든 건지, 아니면 이 대화 자체가 마음에 든 건지 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에 그 역시 조금 긴장이 풀린 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컴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말에 그런 말도 있었다면서 고갤 살짝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겠지.
"장점이란 건, 찾아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점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려보이는 것도 장점이 있는 거고, 성숙해 보이는 것도 단점이 있는 거겠지,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장점을 찾아내고 단점을 찾아내는 건 아닌만큼 어디까지나 그냥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해야 했다. 정작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 문제지. 수단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절박한 건 아니라면서, 농담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그 역시 비교적 가벼운 톤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곤 성숙함에 대해, 부연설명이라고 볼 수 있는 그녀의 말에 확실히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음을 깨닫고 속으로 안도했다. 괜한 말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고.
"옷차림이라... 확실히 신경을 쓰고는 있습니다만 그다지 그런 쪽에 지식이 있거나 한 게 아니라서, 그래서 지금도 제복을 입고 있습니다."
제복은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는 옷이니까요. 라고 덧붙이다가, 행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행동이라... 행동이 미숙하게 보여서 그렇게 판단하는 건가? 어떤 부분이 그렇게 보이는 거지, 하고 생각하다가 당장 답이 나오지 않았기에 그만둔다.
"그렇군요, 목표점이라..."
목표가 있다면 노력하게 된다고들 하지, 그렇기 때문에 뭔가 하고자 할 때 그 도착점을 확실하게 해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들었던가. 뭐, 아무래도 좋았지만. 그는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말끝을 흐리곤, 음식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한 숟가락 떠 입에 가져가니, 고소한 기름향이 코를 간질인다. 한 입, 숟가락에 얹힌 밥을 입 안에 넣고 씹으며 음미하자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린다. 예민한 자신의 미각에도 괜찮은 걸 보니, 주방장이 실력이 좋은 걸까 싶다. 아니면 기호에 맞춰서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