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 본 스레다! 아무튼 다들 다시 한 번 시트를 내주셔서 반가워요! 좀 더 있고 싶지만 제가 내일도 출근을 해야하기 때문에..(주르륵) 이 인사만 남기고 가보도록 할게요.
레이주도 이스마엘주도 다시 한 번 반갑고... 일단 여러분들의 캐릭터 설정은..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가 세워진지 3년이 되었으니 본 스레 시작 시점 이전에 이미 에델바이스에 들어와있었다는 설정도 괜찮고 이제 막 들어왔다는 설정도 괜찮아요.
일단 여러분들의 캐릭터는 이전부터 있었건, 지금 막 들어왔건 일단 대기명령이 떨어진 상태에요. 그러니까 지금은 임무에 나가는 일 없이 그냥 자유롭게 숨겨진 작은 시골 마을에서 그냥 이것저것 여러분들의 상상을 동원해서 하면 될 것 같아요. 일단 있을 것은 다 있긴 하니까요. 대도시보다는 조금 덜하긴 하지만.
아무튼 마을 안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도 자유이긴 한데 어디까지나 여러분들의 캐릭터는 대기명령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 임무에 나가거나 하진 않는다는 점만 알아주세요.
혹시 선관을 짜야겠다 하시는 분들은...임시 스레를 이용해서 거기서 짜시면 될 것 같아요.
>>105 와 신기하다 하는 느낌이지 않을까? 마리도 동물로 변하곤 하니까 인간이 떡이 된다고 해도 그렇구니 정동일 것 같고. 먹으라고 주면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 ㅋㅋㅋ 깊은 선관이라 하면 음 마리가 11살인 이전에 만난적이 있다거나 아니면 에델바이스 들어가기 이전에 만난적이 있다거나 그런 거? 원하면 임시스레 먼저 다녀온 뒤에 일상하고~
유루주도 어서 오세요! 그리고 제 인사 못 받은 분들도 다들 안녕하세요! 그리고 멜피주는 고마워요! 다른 분들도 고마워요!
그런 김에 아직 >>3을 못 본 분들은 다들 >>3을 봐주세요!
그리고 NMPC는... 딱히 선관을 깊게 짤 생각은 없는지라 그냥 알고 있는 사이로 설정하고 싶으면 알고 있는 사이로 설정해도 괜찮아요. 사실 셋 다 평소에는 그리 얼굴 보기 힘든 이들이기도 하니 그냥 이런 이가 있구나 식으로 알긴 안다..정도로만 설정하는 것을 제일 권장해요.
>>168 2주 이내로 자유롭게 설정하셔도 괜찮아요. 어차피 첫 일상은 그냥 본 스토리 시작 전의 시점이라는 개념이니까요. 주로 하는 것은 위험에 빠져있는 세븐스의 보호 및 해방, 그리고 때로는 가디언즈와 교전을 하기도 하고, 다른 레지스탕스를 지원하기도 하고, 수용소에 있는 세븐스를 구조하기도 하고 그냥 자잘한 레지스탕스로서의 일을 했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들의 캐릭터는 아주 좋은 것을 받게 되고 그에 따라서 조금 더 위험한 미션들에 투입될 예정이에요.
에델바이스가 거점으로 세운 마을은 작지만 활기차다. 이 산 너머에 있을 대도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있을 건 다 있으니 불편할 일도 없다. 이스마엘은 입단한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을 공터에 앉아 너머의 일상을 보고, 인사하는 것을 즐겼다. 비능력자와 세븐스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지나가는 모습도, 바쁘게 물자 보급을 위해 뛰어가는 모습도, 그러다 넘어지는 순간까지도. 그런 구경도 고작 사흘 차지만, 적어도 사흘 동안 벌써 이 마을의 전경에 질리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볼 수 있겠다.
이스마엘은 불과 며칠 전, 입단하게 된 존재였다. 입단까지는 좋았지만 첫인상은 제법 엉망인 몰골이었다. 닳아 헤진 운동화는 앞코가 다 해져 양말 신은 엄지발가락을 드러냈고, 등은 페이스재머로도 가릴 수 없는 이리저리 뻗친 긴 생머리가 굽이쳤다. 그런 괴상한 녀석이 금세 섞일 수 있는 이유는 당당하고 활발한 성격 탓이었다. 오늘도 새로 온 사람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는 몇 수다쟁이에 소식통이 쑥덕거리는 이야기가 판을 쳤다. 또 구경을 하고 있겠거니, 매일 같은 걸 보는데 질리지도 않느냐느니…….
놀랍게도 둘의 예상은 빗나갔다. 오늘 이스마엘은 공터에 앉아있는 건 같았지만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건설을 하다 자재가 남아있는 무더기에 양반다리를, 정확히는 한쪽 무릎을 세운 채로 앉아있다. 그리고 무얼 하고 있느냐 묻는다면 고개와 흉골 쪽을 스트레칭하듯 쭉 한쪽으로 늘려 그 길고 굽이치는 머리채를 꽉 부여잡고 있었다.
손에 쥐인 것은 가위다. 혼자 낑낑대며 머리라도 자르고 있던 건지. 남이 볼 때 필히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미용실을 놔두고 머리를 자른다니, 상식이 있긴 한 건가?
"이게.. 왜... 안 잘리지? 어! 안녕하십니까!"
안간힘을 쓰다 당신을 발견하고 활기차게 인사하던 것이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문제다.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는 것을 기점으로 싹둑 소리가 들렸다. 아무렇게나 땋인 백발을 밧줄마냥 꽉 부여잡던 손에 힘이 풀린다. 이스마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땋인 머리의 반이 뚝 잘려 덜렁거리는 모습에 재머가 지직거리며 얼굴 자체를 !로 만들듯 이모티콘이 떠올랐다.
>>181 음, 딱히? 얘가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말을 자주 하는데 근본은 낙천주의자에 가깝고 세상에 악의가 없는 애라서. 당장에 가디언즈를 향해서 사냥개라던가 하는 표현을 곧잘 쓰는데 딱히 적의가 담겼다거나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그런 느낌을 받아서 그렇게 부르는 정도고. 대놓고 이중인격 수준으로 텐션이 바뀐다 하더라도 신경 안 쓸 걸?
아니면 서로 딱 얼굴만 아는 사이라는 것도 괜찮겠네. 둘 다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이잖아? 세혁이도 딱히 장소 안 가리고 붓을 드는 스타일이고. 서로 오가면서 그림 그리는 모습 구경한 적이 있지 않을까? 묘하게 내적친밀감은 있는데 별로 대화를 해본 적 없는.... ...어라..?
..세혁이는 오히려 못 하는 게 아닐까..? 온갖 핍박을 다 받고서도 희망을 못 버리는 거니까? 암울한 현실을 알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뭐랄까, 미련한 애니까! ..근데 세혁이 능력은 왜..? 색맹문제가 있나..?
모든 이들이 다 건볼트를 한 것은 아니기에 아마 필살기 영창이나 이름이 뭔가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정말로 가볍게 이야기를 하자면 건볼트 시리즈에선 보스들마다 각각 페이즈가 3개가 있는데 3페이즈에 들어가면 보스 컷인과 함께 3줄 정도의 중2병 느낌이 팍팍 드는 문구와 이어 필살기 명과 함께 필살기가 발동하는 개념이랍니다.
조직 속 한켠이 며칠 전 들어온 신입으로 왁자지껄 하는 사이, 나나리 쌍둥이는 매일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훈련실을 가고 삼시세끼에 간식까지 야무지게 챙겨먹고 남는 시간은 어딘가에 숨어있고- 그러다 서로 간식이 떨어졌음을 깨달으면 같이 사러 나가기도 했다. 오늘처럼.
"뉴-페이스? 신입?" "응. 좀 많이 특이해. 그리고 말이 엄청 많아." "아- 며칠 전부터 못 들은 목소리 들은 거 같아- 그치만 만난 적은 없는데. 라라는?" "나도 지나가면서 본게 전부야. 어, 생긴 것도 신기하긴 했지만." "신기해?" "응."
작지만 구성이 알찬 가게에서 한바탕 쇼핑을 마친 쌍둥이는 각자 커다란 봉투를 품에 안고 재잘거리며 걸어가던 중이었다. 곧장 돌아가자고 레레시아가 말하자 모처럼 둘이 나왔으니 가까운 공터에서 초콜릿 하나 까먹고 들어가자는 라라시아가 제안했다. 그래. 그래애. 쌍둥이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걸음의 방향을 조금 틀어 도착한 공터에 예의 신입이 앉아있었다.
"아, 잘렸다." "잘려버렸다아-"
이름도 모를 신입이 인사를 하며 머리를 싹둑 해버리는 걸 보고 쌍둥이는 각자 한마디씩 했다. 녹은 초콜릿처럼 늘어지는 레레시아와 깔끔히 뚝 떨어지는 라라시아의 톤이 동시에 울렸다. 쌍둥이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서로에게 묻는 것처럼 서로를 마주보았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똑같은 행동으로 서로를 보고 다시 공터의 신입 씨를 보았다. 일단 인사부터 할까아? 그래.
"안녀엉. 신기한 신입-?" "안녕. 그런데 여기서 뭐 해."
쌍둥이는 이 상황의 이해를 신입 씨의 설명에 맡기기로 한 건지 인사와 함께 물었다. 뭐 하고 있는거냐고.
>>190 신경 안쓰는구나! 악의 없는 귀염둥이... 세혁이랑 대화하면 어째 힐링될거 같네 말하는 표현이 좀 그렇다 해도 귀여움은 세어나오니까(산으로 노젓기)
딱 얼굴만 아는 사이도 좋다! 아싸냄새가 모니터 너머까지 나는 관계 매우 좋아해!! 서로 그림 그리는 모습 구경하는거 너무 귀여운데,,? ㅋㅋㅋ 그림 그릴때는 항상 기분이 좋으니까 웃으면서 손인사 정도는 할듯..? 텐션 낮은 상태일때도 어쩌다 마주치면 목례하고 갈길 갈듯 와 숨막히는 어색함.... 같은 미술인이니까 내적친밀도 더 많이 쌓일듯 이 아저씨
우린 그걸 미련하다 부르지 않고 강인하다 부르기로 했어요!! (총) (만약 대화한다면) 유루는 그런 세혁이 보게 되면 내색 안하지만 바보같단 생각 할거 같네, 본인은 희망 없음맨이라... 미안 얘 썩었어~~~
그냥 본인 가치관이 그림엔 염원이 담겨있다 생각해서, 그게 현실로 나와버리면 실현 가능한 이상이 되는것 같아 조금 불쾌한거라고 생각해! (네 다음 중2병)
그럼 저도 위키 작업을 어느 정도 마쳐놓았으니.. 가볍게 일상이나 한번 굴려봐야겠어요. 선관은 그냥 어쨌건 에델바이스 초창기 멤버 3명이기도 하니... 그냥 아는 사이 정도로 설정해도 무방해요. 아무래도 평소에 자주 보이는 인원들은 아니니까 깊은 관계는 굳이 없었을 것 같고..
제이슨은 원래 그냥 블래스터 마스터에서 따온 개조인간을 만들자 하고 만든 캐릭터인데 시트 짜다가 건담 게임을 하는 바람에 팔이 분리되고 손가락 끝에서 레이저를 쏘고 "겁내라! 움츠려라! 세븐스의 능력을 살리지 못 한 채 죽어라!" 하는 캐릭터가 되었다는 뒷 이야기가 있어요.
마리는 에델바이스에 들어온지 몇 주 되지 않았다. 마리가 보호받고 있던 레지스탕스는 세븐스들만 모여있던 단체였기 때문에 에델바이스처럼 비능력자와 능력자가 섞여있는 풍경은 꽤나 낯설었다. 그래서 에델바이스 거점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돌아다니는 모습은 어디에 놔둬도 특이하지 않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말이다.
줄무늬가 인상적인 치즈태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색은 일반적인 노란빛이 아니라 연한 크림빛이라는 것과 그 눈동자가 붉은색이라는 것이 일반 고양이들과 달랐을까? 다른 고양이들과 다른 털빛에 고양이에 관심 있는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길고양이의 등장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을을 돌아다니던 마리는 어느 순간 코에 익숙한 냄새가 맡아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이곳에 아는 냄새가 있을리 없는데. 하는 의아함에 마리는 그쪽으로 발을 옮겼고 그리고 도착한 장소에는 한 능력자가 몸을 기이이일게 늘리고 있었다. 달콤한 냄새를 풍기면서.
그러던 중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마리는 아, 하고 깨달았다. 아주 어릴 적 부모님과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 사이에 남아있던 한 사람이 생각났다.
찹쌀떡맨이 자신을 보며 묻는 말에 마리는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야옹 하며 울었다. 꼬리가 자연히 잔디를 쓸며 살랑거렸다. 마리는 오랜만에 만난 찹쌀떡맨이 퍽 신기했다. 그냥 지나가는 인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레지스탕스에서 만나게되다니 신기한 우연이지 않은가.
마리는 붉은 눈을 깜빡이며 키가 커다란 그를 올려다보며 과거의 그와 어떤 점이 달라진 건지 찬찬히 살폈다. 조금 나이가 든 것 같기도 했고ㅡ그야 10년 전이었으니까ㅡ, 키가 더 큰 것 같기도 했고ㅡ고양이의 모습이라 더 커보이는 착각이었다ㅡ, 하지만 당시의 냄새는 그대로였다. 그건 오감이 예민한 마리이니까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래. 수고했어. 꽤 길었지만 보급만 할 수 있다면 지금 상황을 조금 변화시킬 수 있겠지. 힘들었을텐데 고생했어."
"에이. 아스텔의 협력도 있었고 언니의 허락도 있어서 가능했는걸. 하지만 역시 원본보다는... 조금 출력이 낮아. 그래서 원본만큼의 힘을 꺼내긴 힘들 것 같아."
"상관없어. 그 정도로 구현해낸 것만으로도 잘한거니까. 아무튼 좀 쉬어. 에스티아."
에스티아는 지하에 아지트를 숨기고 있는 슈퍼마켓 건물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슈퍼마켓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숨겨져있고 그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에델바이스가 사용하는 지하 아지트가 있었다. 원래라면 그 안의 연구소에서 이것저것 연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겠지만 자신의 언니인 로벨리아가 휴식을 명했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좀 더 이것저것 만들고 싶은데 말이야."
하지만 지금 또 들어가서 연구를 하거나 개발을 하면 필시 언니인 로벨리아가 말릴 것이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화를 낼지도 몰랐다. 화를 낸다면 그것만큼 또 무서운 것도 없었기에 결국 에스티아는 그것을 납득하기로 하며 한숨을 작게 쉬었다. 그 상태에서 잠시 근처를 돌아볼까 생각한 에스티아는 벽에서 등을 떼어내고 발걸음을 옮겼다. 눈앞에 보이는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냥 적당히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갈색 피부에 하얀 머리카락이 살짝 섞여있는 흑발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에 있다는 것은 에델바이스의 멤버라는 거겠지. 적어도 자신은 그다지 안면은 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인사는 하자는 느낌으로 에스티아는 미소를 짓고 이야기했다.
당신의 이야기에 그녀는 당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들고있던 패드에 뭔가 입력하는 것이 보이며 당신의 이야기 후 약간의 텀이 생기는 것이다. 잠깐 당신의 기다림이 지나고 패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었다.
'휴식 중이긴 합니다만, 임무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가 정확하겠네요'(필담)
그 내용을 당신에게 보이고 그녀는 살짝 날카로운 시선으로 당신을 보더니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누구인지 들었던 것일까. 그녀는 그리 대답하고는 당신을 올려다본다. 당신의 은발을 보더니 잠깐 멍한 시선으로 바꾸니 것을 보면 아름답다고 여긴 것이겠지. 생기 찬란한 당신을 보고 자신과는 확실히 다른 타입이라 생각하고는 패드를 다시 돌리더니 글자를 입력하기 시작한다. 그다음 그 패드가 당신에게 보이자 보이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순간 에스티아의 눈빛이 초롱초롱 반짝였다. 그녀의 시선은 글자를 입력하는 패드 쪽에 있었다. 왜 말을 하지 않고 패드로 글을 입력하는지의 여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관심을 가질 사안은 아니었다. 그냥 목이 아파서 그런 거일 수도 있고 말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이곳은 별별 세븐스가 다 오는 곳이고 그 중에선 임무를 수행하다가 팔을 하나 잃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자신은 아직 그런 케이스는 아니지만. 아무튼 아픈 상처일지도 모르는 곳은 굳이 후비지 않기로 하면서 에스티아는 그녀가 들고 있는 패드가 어떤 기종인지 나름 추측했다.
그러다 핫. 하고 정신을 차리며 에스티아는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톡톡 약하게 쳤다. 사람을 앞에 두고 이게 뭐하는 짓이람. 아무튼 기기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자신이라는 여자. 이내 이유 모를 미소를 지으면서 에스티아는 입을 열어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닐까 싶어서요. 원래는 아지트 내에서 이것저것 연구하고 개발하고 그럴 생각이었는데. 아. 혹시 말하는 것이 힘들다면 제가 뇌파를 이용해서 저절로 글을 쓸 수 있는 패드를 하나 만들어줄까요? 뇌파를 읽는 장치와 패드를 결합시킬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면 은근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톡톡 손으로 치는 것보다 그냥 생각만 하면 바로 글을 쓸 수 있는 거니까. 물론 뇌파를 읽어야 하니 머리에 뭔가를 써야하지만 원래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처음에는 그렇게 불편하게 갔다가 나중엔 점점 간편해지는 것이 바로 문명의 발전이었다. 흥미진진한 눈동자 속에 빛이 찰랑이기 시작했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겠자면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지 않아요? 휴식 가지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닌데. ...언제 임무를 나갔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여긴 레지스탕스인걸."
자신도 나름 타자는 빠르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타자 속도는 훨씬 더 빠르다고 에스티아는 생각했다. 저렇게 계속 필담을 나누면 자연히 빨라지는 것일까. 만약 자신의 세븐스를 사용해서 조작한다면 과연 뭐가 더 빠를까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당연히 티는 내지 않으며 에스티아는 떠오른 생각을 살짝 접어 마음 속으로 꾹 밀어넣었다.
"그래도 지장은 없을 것 같은데. 아무튼 거절한다면 알겠어요. 그 대신에 꼭 필요하면 얘기하기! 이 에스티아님에게 불가능은 없거든요. 에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에스티아는 자신의 두 팔을 허리에 올리고 특유의 잘난척하는 포즈를 취했다. 딱히 민망해하지도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푼 에스티아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물론 괜찮아요. 사실 이런 것은 저보다는 아스텔이 더 잘하긴 하지만, 아스텔. 보나마나 낚시하러 간 걸테고... 하지만 사실 이 마을 내부는 별 차이는 없는걸요. 음. 특별히 보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요?"
그래봐야 작은 시골 마을. 그렇게 넓진 않았고 시간을 들이면 금방 돌 수 있는 범위였다. 일단 그 중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를 물으면서 에스티아는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그러다 순간 뭐가 떠올랐는지 아! 소리를 내면서 이내 그녀는 질문을 던졌다.
머리의 반절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잘리기 전까지 이스마엘의 페이스 재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노이즈는 착실하게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이스마엘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날이 영 좋지 않은 것 같은 가위에 열중하고 있었다. 쌍둥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건 비극의 서막이다. 이스마엘은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지도 처음 알았다. 거기다 쌍둥이라니! 생명체를 처음 보듯 지레 흥분하여 자신의 처지를 잊었는지 이스마엘은 고개를 숙였다. 그게 화근이었다. 날이 들지 않는 것 같던 천덕꾸러기 가위가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고, 이스마엘은 자신의 머리카락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겪을 수 있었다. 당기던 힘이 가벼워지고 함께 잘렸다는 쌍둥이의 목소리가 공사 후 남은 자재만 남아있는 텅 빈 공터를 채웠다.
"반갑습니다!"
이스마엘의 굵게 땋인 머리는 반쯤 덜렁거리며 이 당황스러운 분위기에 박차를 가했고, 페이스 재머는 거기에 한술 더 떠 생체신호를 잡아 자연스럽게 머리 자체를 놀랜 얼굴의 이모티콘(😲)으로 바꾸었다. 이모티콘의 눈이 슬쩍 머리카락으로 향한다. 덜렁거리는 머리카락을 다시 꾹 쥐었다. 가위를 쥔 손은 허망하게 허공을 배회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에서 쌍둥이를 원망하느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인사에 신이 나서, 신기하단 말에도 아랑곳 않고 다시 이모티콘이 방글방글 웃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머리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까 했지만, 제 머리가 보이지 않으니 미용사 분께서도 힘드실 거라 생각해서 스스로 자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스마엘의 어조는 경쾌했다. 가위를 쥔 채 허공을 배회하던 손이 드디어 움직였다. 경례를 가볍게 해보이고, 뭉텅이가 되어버린 머리카락을 마저 가위로 자르려는 것 같았다.
"원래는 적당히 다듬으려 했는데, 이렇게 잘려버린 이상 새로운 스타일을 도전할까 합니다. 두 분께서는 어디에 가시던 길이십니까?"
혼자 자르면 조질 텐데도. 저 위험한 가위가 이스마엘의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단발은 처음이라 거지존이 뭔지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거울이 없어서 막 자르고 보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저대로 놔두면 머리카락은 머리카락(이었던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거울도 안 보는 이스마엘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지만.
에스티아님이라는 표현을 써서 그런 것일까. 에스티아가 아니라 에스티아님이라는 표현이 나오자 에스티아는 살짝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진 않은 것이었다. 아주 약하게 한숨을 내쉬는 와중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라는 말이 나오자 에스티아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연구소..지금은 못 들어가는데. 분명히 언니가 쫓아낼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괜히 오른발을 살짝 세워 땅바닥을 괜히 콕콕 찌르면서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 아리아로. 스메라기보다는 아리아가 더 예쁘잖아요. 호칭. 아. 그리고 고마워요."
자신에게 내민 목캔디를 고맙다는 인사와 받아들이며 그녀는 바로 먹진 않고 일단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 와중에 안내를 부탁한다는 필담이 보이자 에스티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나 엄청 기대받는 거 맞지? 그렇지? 맞지? 괜히 뿌듯함과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 를 외치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으며 에스티아는 열심히 표정을 관리했다.
"어, 어쩔 수 없죠! 이 에스티아. 이래보여도 에델바이스에선 최고참 중 하나니까요! 그러니까 안내해드릴게요!"
라고 당당하게 말을 하는 것은 좋았으나 어디로 가야 좋을지는 아직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적당히 두리번거릴까 생각을 하다가 그녀가 노래를 거론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그녀는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경쾌한 발걸음으로 장난스럽게 리듬을 타듯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오솔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다가 왼쪽으로 들어가니 거기에는 작은 노래방 하나가 있었다.
"여기가 노래방.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싶으면 여기로 오면 돼요. 어때요? 길 외우기 편하죠?"
그리 답하며 그녀는 피식 웃었다. 곤란한 표정에 외부 사정으로 가고 싶은 곳은 막혔구나-하고 생각하며 시선을 피하는 당신을 귀엽다는 시선으로 바라볼 따름이다. 당신이 목캔디를 받자 자신도 하나 꺼내서 자기 입에 쏙 넣는다. 그러며 패드에 가볍게 입력하고는 당신에게 다시 보인다.
'그럼 나는 에스티아라고 부를게요. 그 쪽이 더 귀여우니까'(필담)
당신에게 기대한다는 시선을 보이고는 당신이 안내하겠다고 하자 당신의 뒤를 따른다. 따라오라는 말에는 싱긋 미소를 지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것일까. 경쾌한 당신의 발걸음에 맞춰 타박타박하고 당신을 따라가며 당신을 놓치지 않는 정도로만 두리번거리며 주변의 풍경을 감상한다. 오솔길의 상쾌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쉬고 내쉰 다음 당신이 안내한 작은 노래방을 쳐다본다.
'노래방이라.. 확실히 좋은 곳이군요. 역시 에스티아!(엄지 척 이모티콘)'(필담)
노래방이라, 그리운 장소라고 해야할까. 그녀가 처음 능력을 자각한 곳도 노래방이지만 말이다. ...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서 별다른 추억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담담히 현실을 찌르는 목소리. 덜렁거리는 머리카락. 어색하고도 당황한 분위기 속에 쌍둥이는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도 반갑다는 의미였다. 인사를 하고 가만히 바라보던 쌍둥이가 제각기 다른 소리를 냈다.
"오." "와아-"
신입 씨의 머리가 이모티콘이 됐다! 라는 말이 함축 된 반응이 쌍둥이로부터 흘러나왔다. 입모양은 다르지만 깜빡이는 눈의 모양은 같다. 한차례 놀란 쌍둥이는 둘이 똑같이 엉망이 된 머리에 눈이 갔다. 저건 뭐라고 해야 할까. 몰라아. 쌍둥이는 다시 눈을 굴려 웃는 얼굴- 이모티콘을 보았다.
"보이지 않아서 힘든 건 너도 똑같은 거 같은데." "너어- 머리 엄청나아. 옛날 옛날 라라 머리 같아아-" "니가 잘라서 그렇잖아." "어라, 그랬나아?"
데헷? 에휴. 능청을 떠는 레레시아와 체념하는 라라시아. 둘은 또다시 가위를 움직이려는 신입 씨를 향해 말했다. 질문을 받았으니 대답도 해야 하고 말이다.
"우리- 여기서 간식 먹으려고 했지-?" "그런데 오니까 네가 있었고."
어디에 가던 길이냐는 말에 먼저 대답을 하고, 라라시아가 말을 보탰다.
"그대로 혼자 하면 머리카락이 아예 없어지겠는데. 도와줄까?" "아, 맞아아. 우리 오늘 비번- 이니까- 도와줄게에?" "물론 얘가." "엑?"
움찔하는 레레시아를 뒤로 하고 라라시아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항상 서로 머리 만져주니까. 간단한 커트 정도는 해. 네 머리 그래보여도 만질 수는 있는 거지? 그럼 정돈은 해줄 수 있을 거야. 불편하면 그냥 갈 거고." "느에엥.. 음- 그러니까, 해줄까아?"
서로 손질해준다, 는 말처럼 쌍둥이의 머리는 서로 길이는 달라도 컬도 스타일도 잘 살아있었다. 맡기면 어느 정도 수습은 되지 않을까. 해줄까 라고 묻고 쌍둥이는 똑같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길이가 다른 복실복실한 백발이 살랑거렸다.
적당히 그녀에게 맞추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로 그녀의 뜻 그 자체였으니까. 정확히는 이 마을 자체가 에스티아에게 있어서는 좋아하는 장소였다. 이곳은 세븐스도, 비능력자도 서로 미워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 아니던가. 자신이 그토록 바라는 그런 마을이었다. 그야말로 에델바이스의 이상이 그대로 실현된 작은 낙원이었기에.
"제가 좋아하는 곳은 이 마을 그 자체에요. 이 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면 세븐스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통제받고 심하게는 노예처럼 살아가잖아요? 하지만 에델바이스가 관리하고 있고, 에델바이스의 멤버들이 만든 이 마을은 그야말로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에요. 아예 내부에서 싸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거야 다른 곳들도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다른 곳들도 모두 이 마을처럼 된다면 좋을텐데. 사실 그것을 위해서 에델바이스가 활동하는 것이지만. 그리고 자신이 이번에 직접 개발하고 보급하게 될 그 '물건'이 반드시 큰 도움이 되리라 그녀는 믿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지금은 닫혀버린 자신의 연구소를 떠올리며 에스티아는 괜히 발을 동동 굴렸다.
"제일 좋아하는 곳은 아지트에 있는 연구소인데... 방금전까지도 연구를 하다가 이제 좀 쉬라고 쫓겨났거든요. ..으. 언니 미워. 아무튼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갈 수 없어서요. 아리아라면 이런 곳을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어서. ...노래 때문에 뇌파 사용 기기도 거부하는 거잖아요?"
자신의 생각이 맞을지, 틀릴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래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아리아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고 머리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계를 만지고 싶고 이것저것 만들고 싶고 연구를 하고 싶은 것을 어쩐단 말인가.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재밌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언제부터 이랬는진 자신도 알 길이 없었으나 그럼에도 만지고 싶다는 충동은 꾹 참으면서 에스티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그 순간 들려오는 짧은 음에 그녀는 귀를 쫑긋했다. 목소리. 예쁘다. 그리고 들려오는 필담이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
"우와. 노래 잘 부르시네요. 하지만 대화하고 그런다고 목에 큰 지장이 생기진 않을텐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녀가 그렇다고 하니 에스티아는 납득하기로 했다. 아니. 내면으로는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자신이 고집을 부려봐야 뭐하겠나. 그 대신에 에스티아는 그녀를 바라보며 부탁하듯 이야기했다.
"그러면 아리아. 다음에도 노래 들려줄 수 있어요?"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에스티아는 일단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다면 이번엔 어디로 갈까. 아. 거기도 괜찮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또 앞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언덕을 살짝 올라 마을 외곽 쪽으로 향했다. 거긴 평소에 아스텔이 낚시를 즐기는 아주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허나 오늘은 다른 곳에 있는지 아스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 대신 아주 커다랗고 평화롭고 맑은, 그 밑바닥이 보이진 않지만 정말로 투명하고 맑은 호수만이 그 곳에 있었다.
"이 호수도 좋아하는 곳 중 하나에요. 동료 중 하나가 여기서 낚시를 즐겨서 가끔 볼일이 있으면 부르러 오거든요. 오늘은 없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아요? 맑고 예쁜 호수의 모습 말이에요."
컨디션이 괜찮을 때면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했으니 컨디션이 좋은 날이 많아지기를 에스티아는 자연히 바랬다. 물론 억지로 요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래를 제대로 듣고 싶은 것을 어쩌겠는가. 목이 좋아지는 약 같은 것은 자신이 만들 수 없었으니 나중에 의료부로 가서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의료부에 조금 까칠한 여성이 있지 않았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쪽도 인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무튼 호수에 오고 난 이후 아리아가 보이는 필담에 에스티아는 괜히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미소를 헤실헤실 지었다.
"저, 저 같다니요. 농담도 참. 그렇게 예쁜 것도 아니고 저보다 예쁜 사람은 많은데. 아리아라던가."
이내 그녀는 아리아를 손으로 콕 가리켰다. 물론 애초에 외모나 그런 것은 사람들마다 상대적인 것이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리아도 충분히 예쁘다고 생각했다. 물론 호수 같은 이냐고 하면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예쁜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그리고 자신이라고 해서 호수 같은 이미지인 것도 아니고. 굳이 말하면 역시 자신은 공순이 쪽이 어울리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괜히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꺄르륵 미소를 터트렸다.
"가, 가이드 상이요? 만족을 했으면 좋겠지만... 아직 안내할 곳은 많은데. 음. 오락실도 있고, 젖소를 키우는 목장도 있고, 가볍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도 있고..."
어차피 할 것도 없었다. 그 모든 곳을 하나하나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환하게 웃었다.
"장소가 장소에요. 이러다가 아예 영영 헤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고, 앞으로도 만나면 친구처럼 지내줘요. 아리아. 응?"
그녀는 당신이 이 호수같다고 생각했다. 공돌이라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것 이것은 이것인 셈이다. 자신이 이쁘다는 말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익숙한 말이기도 하고 어느정도는 알고있기 때문이다. 물론 에스티아보다 아름다운가? 부분에는 고개를 저었지만. 꺄르륵 웃는 당신에게 그녀는 필담을 재개했다.
'그럼 하나 하나 안내 부탁드려볼까요? 위대한 가이드 에스티아?'(필담)
자신이 처음으로 만난 동료(아, 물론 면접을 본 그 사람들은 제외하고이다.)가 이렇게 밝은 사람이라 다행이라고 느낀 점일까.
'친구처럼이라.. 그럼 진짜 친구가 되서 편하게 서로 반말부터 하는 것으로 할까?'
갑작스런 반말로 전환하는 그녀, 그녀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있는 것이 보인다.
#다음 것을 막레로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이후 둘이서 마을 보고 다녔다는걸로! 절대 제가 졸려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변명)
거짓말이었다. 사실 기대를 많이 받는 것 같아 에스티아는 헤실거리는 웃음을 참기도 상당히 바빴다. 역시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기대받는 것은 상당히 좋은 일이었다. 적어도 그녀에겐. 뭔가 뭔가 자신이 위대한 무언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물론 상대는 놀리는 감도 있었지만 애써 에스티아는 거기서 눈을 돌렸다.
"아리아가 좋다면."
편하게 서로 반말. 나쁘지 않았다. 허락이 있다면 딱히 상관이 없었으니까. 물론 이렇게 말을 하긴 했으나 당장 다음 날, 무슨 일이 생겨서 한 쪽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신은 상관없었다. 설사 단 하루 뿐의 인연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매우 소중했으니까. 자신이 그토록 갈구했던 것은 바로 이... .....였으니까.
"그럼 따라 와 아리아. 하나하나 이 마을의 좋은 포인트를 잘 알려줄테니까."
그녀 역시 미소를 지었고 이내 에스티아는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자신의 친구에게 여러 포인트, 여러 좋은 휴식처나 마을의 좋은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페이스 재머는 흔하지 않다. 평범한 사람이 안면의 인식을 저해하는 장치를 굳이 사용할 사람도 없거니와, 사용한다 한들 볼 수 있는 것은 대도시의 뒷골목 시정잡배가 불법적인 무언가를 판매하다 꼬리가 밟히지 않기 위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사이버 디바를 넘어서 자신을 개조해 인간보다 더 뛰어난 존재, 트랜스휴먼으로 거듭하고 싶어 하거나. 이스마엘의 행동을 본다면 시정잡배와 트랜스휴먼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지만. 함축된 반응에 이스마엘은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의 문장이 이스마엘에게 제법 공감되는 것이었기에.
"그래도 저는 익숙하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머리 꼴을 보니 익숙함이라는 단어에 어폐가 있어 보임을 이스마엘은 모르는 것 같다. 옛날 라라 머리? 라라로 지칭된 여성을 바라보다 다시 자신의 머리로 시선을 옮긴다. 이스마엘의 머리는 모종의 이유로 제법 긴 편이지만, 그만큼 저 여성 또한 머리가 길었던 것 같다. 잘린 것 같지만. 가위가 움직여 머리를 뚝 자르려다 멈춘다. 간식이라.
"귀한 시간을 제가 방해를 한 건 아니겠지요?"
간식 시간은 귀하다. 이스마엘은 잠시 고민하다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천덕꾸러기인 가위와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으니 이대로 계속 합의하고자 자르는 행위를 반복하노라면 머리카락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간 아예 박박 밀어버려야 할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 사실은 아무리 아량 넓은 이스마엘이라 한들 납득할 수 없었다.
"으음.."
잠시 고민하던 이스마엘의 웃는 표정 위로 원반 하나가 떠오른다. 😇. 천사처럼 웃는 표정을 뒤로 경쾌한 목소리가 이지러진다.
"도와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로 머리를 손질할 정도면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가위도 조금 더 길이 들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 입은 손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모습에 이스마엘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길이는 다르지만 확실히 컬이나 스타일이 잘 살아있는 머리를 보니 믿고 맡겨도 될 것이다. 이스마엘은 얌전히 가위를 내려두었다. 반쯤 잘려 덜렁거리는 땋은 머리가 맥없이 늘어진다.
한적한 오솔길을 걷는다. 주변에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지만 괜스레 움츠러드는 느낌에 옷깃을 만지작거리고, 머리에 쓴 모자의 챙을 엄지와 검지를 통해 잡아 슬쩍 내린다. 시선이 간간히 꽂히는 게 느껴진다. 이러는 게 더욱 시선을 끌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정신이 없었다. 여기에 어떻게 왔었더라, 내가 왜 여길 걷고 있더라? 하나씩 되짚어가면서 생각을 해 보자. 쫓기는 도망자 생활을 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아닌가? 아니다. 아직 2년은 안 된거 같은걸. 그래, 아직 2년은 아니야. 그럼 1년하고도 몇 개월 정도? 그 정도일지도, 아니면 딱 오늘이 2년째인가? 날짜를 보면서 도망친 기억은 없으니 아닐지도 모르겠다. 잠깐, 너무 멀리 나갔다. 다시 돌아보자. 어쨌든 여기까지 도망쳤다. 그리고 붙잡혔다. 그리고... 만났다. 누구를 만났더라? 만난 사람이야 많지, 가만, 누구였지?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상태에다가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 지금까지 누가 계속 빤히 쳐다볼 리가 없는데도 시선이 느껴지는 거 같은데, 신경증? 하긴 깊이 잠을 잔 게 어제 하루뿐이었으니 그럴지도. 다시 돌아가자, 누굴 만났지? 아 맞아. 기억난다. 붉은 색의 꽃이 떠올랐다, 그리고 흰 제복도. 그제서야 고갤 숙여 내려다보니 흰 제복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꽃도. 진짜 꽃은 아니지만. 손에 낀 흰 장갑이 그제야 느껴지는 것 같다, 모자는... 이것도 제복에 포함되었던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 마주쳤었다. 붉은 에델바이스, 어떻게 알고 받아주겠다는 결정을 내린 거지? 아직 누가 여기에 있는지도 다 보질 못했다, 인사같은 걸 할 기회도 없었던 것 같은데 누군가 마주치면 어떡한담, 제복을 입고 있다면 일단 지금 소속이 같으니 인사를 하면 좋겠지, 그런데 뭐라고 인사해야 하는 거지? 내가 누구라고, 뭐라고 소개해야 하는 걸까.
쉴 새 없이 머릿속을 헤집으면서 반쯤 멍한 상태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걷는 걸음은 언젠가 멈추게 되어 있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보통은 타의로 멈춘다. 예를 들면.
쿵, 이든, 퍽, 이든. 뭔가 가는 길을 막고 있었거나, 아예 길이 아닌 것에 들이받는 것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동료뿐 아니라 그냥 길가다가 만나는 사람들과도 인사를 하고 다녔습니다. 그 사람을 잘 알아서가 아닙니다. 3년쯤 된 에델바이스에서의 생활이지만 그녀는 아직까지도 엄청나게 친한 사람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누구한테 이렇게 인사하냐고요? 딱히 이유는 없답니다. 그냥 그녀가 그런 사람인거죠.
오늘도 지나가던 아주머니랑 수다를 떨고. 길가다가 넘어진 아이를 안아올려 우쭈쭈 해주고 돌아가던 길이었을겁니다. 쿵? 아니 폭? 정도의 충격과 함께 그녀는 누군가와 부딪혔습니다. 보아하니 상대도 자신을 못봤던거 같지만 본인도 마찬가지였기에 탓할 상황이 아니었죠. 다만, 익숙한 제복과 대조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안, 미안, 다친곳은 없어? 소년."
그녀의 눈에는 소년, 많아봐야 갓 20정도 될거같은 대상이 비춰졌습니다. 딱히 그녀라고 모든 동료를 아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완전히 처음보는 얼굴이었기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거랑 별개로..
"익숙해? 그럼 괜찮지이. 하지만 라라는 화 냈어-" "너만한 머리카락이 반토막 나면 누구나 화를 내. 멍청이 레레."
쌍둥이는 신입 씨와 대화를 하면서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 듣고 있으면 꽤나 혼란스럽지 않았을까. 그래도 대화의 논점을 빗나가거나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진 않았으니 곤란함은 덜 했을 것이다. 어쩌면 서로 주고 받는 실없는 대화로 낯선 이와의 어색함이나 뻘쭘함을 덜어내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아니." "전혀-"
간식 시간을 방해한 건 아니냐는 물음에 둘은 또 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해라고 한다면 오히려 쌍둥이가 방해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먼저 와 있던 공간에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났으니까. 그러니 전혀 아니라는 의미로 고개를 도리도리하는 쌍둥이와 쌍둥이의 말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신입 씨의 모습이 엇갈린다. 잠시 후 신입 씨의 얼굴이 웃는 얼굴에 천사링까지 올라간 모양으로 바뀌자, 레레시아만 와아 하는 소릴 다시 냈다. 그런 레레시아를 한 번, 도움을 받겠다는 신입 씨를 한 번, 번갈아 본 라라시아가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 그럼 레레, 네 과자 이리 줘." "자아. 몰래 빼먹으면 안 돼-?" "내가 너야? 가서 가위나 들어." "그런가? 오키도키-"
짧은 만담 같은 대화를 나누고, 나란히 서 있던 쌍둥이가 둘로 나뉘었다. 레레시아는 옆의 라라시아에게 그녀의 짐을 넘겨주고 신입 씨의 뒤쪽으로 가서 영차영차 자리를 잡는다. 양 팔에 가득 짐을 든 라라시아는 신입 씨가 앉은 자제더미의 끄트머리에 적당히 걸터앉았다. 레레시아의 검은 장갑을 낀 손이 가위를 슥 가져가고, 신입 씨의 뒤에선 불길한 가위소리가 찰칵찰칵찰칵...
"이히히히. 맡긴 걸 후회하게 해주지이." "똑바로 하지 않으면 네 머리도 무사하지 않을 거야. 레레." "므에.. 농담이라구- 아무튼- 머리, 만진다아?"
뭔가를 할 것 같았지만 제대로 감시가 있으므로 엉망이 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레레시아는 손대기에 앞서 만지겠다고 굳이 말을 하고, 그러고도 머뭇거리다가 덜 잘린 머리다발을 슬그머니 손으로 쥔다. 이미 잘린 부분과 잘리지 않은 부분을 확인하고 신입 씨에게 물었다.
"에, 그러니까아, 원하는 스타일은 있어-? 이대로면 이렇-게 짧은 단발이나- 아예 짧게 치는 것 밖에 못 하지마안?"
가능한 수는 적지만 본인의 의사를 가능한 존중해줄 모양이었다. 레레시아는 대답을 기다리며 머리다발을 자르기 좋게 리본으로 묶고 있었다.
앞을 잘 보고 걸어야지! 라는 말이 괜스레 떠오른다, 부딪혀서 좋을 게 하등 없으니 당연히 들어야 할 말이다만... 어쨌건 부딪혔다. 걸음이라는 게 보기엔 느려도 부딪힐 땐 얼마나 세게 부딪히는지, 귀가 밝고 눈이 밝고 민감하면 무슨 소용이랴, 정신이 우주로 날아가 있으니 뭐라도 느껴질 리가 없다. 그럴 땐 충격 요법이 제격이지. 벽에 부딪혔다면 혼자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 욕지거리나 한번 해 주면 끝이겠지만 하필이면 부딪힌 게 똑같은(똑같지는 않겠지만 대강) 사람이라면 해야 할 게 산더미다. 일단 일어나고, 사과하고, 다치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괜찮다고, 가도 좋다고 한다면 그대로 상황은 끝, 그게 아니라면 산 넘어 산이겠지.
"으, 괜찮습니다."
딱딱한 챙이 미간을 찔렀기 때문에 상당히 아팠다, 미간을 살짝 문지르며 통증을 완화하려고 하면서 앞에 선 여성을 보았다. 그런데 보이는 건 얼굴이 아니었으므로 아주 잠깐 판단을 한 후에 고갤 들어올렸다. 분명히 키가 큰 사람이리라. 고갤 들자 그제야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되도록이면 눈을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는데, 사과를 눈도 보지 않고 할 수는 없는 노릇,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표정을 애써 풀면서 상대의 얼굴을 살짝 본 그는 고갤 다시금 살짝 숙이곤 상체와 함께 앞으로 굽혔다.
"죄송합니다, 제 부주의로 이런 일이..."
또박또박,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는 걸 어필하면서 고갤 숙이다가는,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잠시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었을 리...없겠지.
"아, 그... 아닙니다."
잘못한 입장에서 조금 껄끄러운 말을 들었다고 해서 바로 지적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숙였던 상체를 세우고는 여전히 고갤 살짝 숙인 채 서 있었다.
그녀는 방긋 웃으며 그래도 자기 몸이 그 정도로 딱딱하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가벼운 농담을 던졌습니다. 다만 상대쪽이 지금 농담을 받아줄만한 느낌이 아니긴 했는데요.. 하지만 그녀는 그런걸 크게 신경쓰지 않고 미소를 지우지 않은채 당신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긴가민가.. 했는데. 확실히 그녀가 모르는 얼굴인거 같네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사람일까요? 경계를 풀어주기 위해 일단 그녀는 접어서 팔에 걸어두었던 제복을 살짝 풀어서 에델바이스를 상징하는 마크를 보여주었습니다.
"갑자기 귀엽다고 해서 미안, 남자애들은 별로 안 좋아하지?"
내가 귀여운걸 좀 좋아해서~. 그녀는 별거 아니니 넘기라는듯 말하고는 고개를 살짝 숙여버린 당신과 눈을 맞추기위해 슥하고 자세를 낮췄습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해보시지! 란 분위기.
"살짝 부딪힌걸로 다칠만큼 연약하진 않다구? 그러는 소년은 어디 다친걸까? 계속 눈을 피하는거보니 아픈걸까?"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던지는 농담은 피식할 정도였지만 그렇게까지 반응이 나올 정도로 여유롭지가 않았다. 아니면 농담을 듣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 어느쪽이든 이렇다할 반응 없이 그는 그녀가 보여주는 에델바이스의 제복과 마크를 눈에 담았다. 아, 이제부터 동료...라고 해야 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렇담 더 큰일 아닌가? 벌써부터 정신을 놓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볼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렇담 곧바로 쫓겨나려나? 아니지, 위치를 알고 있으니 가둬놓을지도, 그게 아니면...
"그, 괜찮습니다. 좋은 뜻...일테니."
놀리려는 의도로 한 말은 아닐 터, 말투로 모든 걸 구별할 수는 없지만 꼭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듯한 말이었기에 악의는 느낄 수 없었다. 정도 이상의 장난기도. 그랬기 때문에 그는 조금 껄끄럽기는 해도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 지금 처한 상황이 그다지 양반이 아니기도 했으니까.
"아, 아닙니다! 다친 곳은 없습니다."
갑자기 몸을 숙여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조금 놀란 듯 눈을 깜빡이다가 살짝 시선을 피했다. 아니지, 피하면 안 되는 게 아닌가? 혹시 시선을 피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갑자기 들려오는 말소리에 뜨끔한 듯 움찔한다.
주제와 어긋나는 엉뚱한 소리는 아니지만 서로 티격태격 말을 주고받는 모습이 생경하다. 이스마엘에겐 쌍둥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따금 매체로 볼 수 있는 쌍둥이라는 존재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우애가 깊어 보이는 점이 또 신기하기도 했다. 얼굴이 드러났다면 자칫 무례할뻔했다. 이스마엘은 본인의 행동을 깨닫고 신기한 듯 쳐다봤다는 사실을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했다. 언젠가 물어보면 술술 불겠지만. 대신 한마디 덧붙였을 뿐이다. "사이가 좋아 보입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간식 시간을 방해한 건 아니니 다행이다. 신성한 시간을 방해받는 것만큼 조심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덜렁거리는 머리에서 애써 시선을 피하고 이스마엘은 웃는 낯의 이모티콘을 유지했다. 천사링이 뜰 적 다시금 들려오는 탄성에 어째 자신의 이 얼굴이 신기하게 보이는구나 싶은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뭐 어떤가, 이스마엘도 쌍둥이의 우애를 신기하게 봤으니 그걸로 셈 치고 넘어가기로 했다.
"제, 제 머리는 여립니다!"
씨알도 안 먹힐 소리. 끄트머리에 걸터앉기 편하게 자리를 내어주고, 불길한 가위소리가 들릴 적엔 식겁한 듯 표정을 바꿨다. 😨. 뇌파에 따라 표정이 바뀌는 건 편하지만, 이따금 보이고 싶지 않은 표정이 보이는 것이 문제였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반절이 덜렁거리는 머리채는 제법 고운 결이었다. 그래도 완벽하다기엔 이리저리 상한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적어도 아무렇게나 방치하거나 뒷골목을 배회하며 살던 사람의 머리는 아니었던 듯싶다. 오히려 결이 제법 괜찮고, 푸석한 면이 없는 걸로 보아 괜찮은 집안이나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는 자제가 가질 법한 머리라면 모를까.
"잘 부탁드립니다!"
쾌활하게 재잘거리던 이스마엘의 페이스 재머가 이젠 아무런 표정도 띠지 않고 노이즈로 돌아간다. 머리를 손에 쥐는 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집중하도록 도와야지, 아니면 기껏 보여준 성의를 망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눈치는 있는 것 같다.
"음.. 단발로 부탁드립니다. 언젠가 기를 여지는 남겨둬야 할 것 같거든요."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면서도, 속으로 피같이 귀하게 여긴 머리카락과 작별을 고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참 열심히 길렀지만 어쩔 수 없다. 이스마엘의 긴 머리는 이미 한 번 들킨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젠 재머에 가려질 정도로 짧게 치는 수밖에.
"혹시, 일자로 자를 수도 있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이스마엘이 나직하게 물었다. 일자. "제게 습관이 있다 보니 각이 생기는 걸 좋아합니다." 덧붙인 말에 총기와 웃음이 어려있다.
익숙한 광경이었습니다.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것처럼, 그리고 대다수의 동료들을 처음 만났을때처럼, 여유가 없는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짓고 말았습니다. 세븐스, 이곳에 모이는 이들은 다들 크고 작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밝아보여도 누구나 아픔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환경에 긴장하기 마련이죠. 거기에 나이나 성별같은 사소한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내가 너무 겁준거려나? 그렇게 딱딱하게 대하지 말라구 소년. 어차피 나랑 1개월? 정도밖에 차이 안나는걸."
그녀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며 조금이라도 당신의 경계를 풀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놀란듯한 당신에게 살짝 거리를 두어주며 무해하다는듯 양손을 펼쳐보이며 웃었습니다.
"다친건 아니라도,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뭐라도 먹으러가지 않을래, 소년?"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럽고. 뜬금없다면 뜬금없는 타이밍으로 그녀는 당신에게 미소를 띄워둔채로 제안했습니다. 부담갖지 말라는듯 뒤이어 싫은건 싫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덧붙였죠.
이 세계에서 세븐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 레지스탕스는 에델바이스만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지금 한 여성을 추격하고 있는 있는 '와일드 팽' 역시 레지스탕스 단체 중 하나였다. 철저하게 세븐스를 탄압하는 이들에게 복수를 하고자 모인 이들은 상당한 과격파였고 그 활동이 보통 과격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디언즈에 소속된 세븐스 중 몇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야말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목덜미에 꽂아넣겠다는 듯이 그들은 자신들이 추격하는 여성을 집요하게 뒤쫓았다. 도망치는 여성은 그들에게 잡히지 않겠다는 듯, 여기저기로 빠르게 도망치려고 했으나 가는 길목마다 함정이 발동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폭약이 터지기도 했다. 허나 그 함정과 폭약은 직접적으로 그녀를 노리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녀를 아슬아슬하게 피해가거나 바로 근처에서 발동하면서 그녀를 일정 포인트로 몰고 있었다.
구불거리는 웨이브 형태로 앞머리가 어깨를 넘어 가슴 가까지 내려오고 뒷머리 역시 비슷한 웨이브 형태로 등까지 내려오고 있는 여성은 표정을 찌푸렸다. 허나 자신의 푸른빛 눈동자에 주변 지형지물을 담으며 그녀는 조금도 넘어지거나 속도가 줄어드는 일 없이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달리고 달렸다. 숲길을 지나 밖으로 나오니 넓은 평야가 있었으나 이내 그녀는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방에 총을 들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모두 와일드 팽의 멤버들이었다. 미리 설치한 함정과 폭약을 이용해 일부러 이 평야까지 유인한 후, 매복된 인원들과 뒤에서 쫓는 이들이 합류해서 단번에 제압하거나 죽일 계획이었을까? 검은 빵모자를 쓰고 있는 158cm 정도의 키를 지닌 여성은 푸른빛 눈동자를 돌려 잠시 주변을 바라봤다. 그 수가 절대 적은 것이 아니었다. 어림잡아 50~60명은 될까.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만 어쩔 참이지? 가디언즈."
"제 아무리 가디언즈라고 하더라도 이렇게나 많은 이를 상대할 순 없지. 안 그래?"
그녀를 뒤쫓고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나왔고 총을 장전하는 철컥 소리가 여기저기서 조용히 울렸다. 그녀의 몸에 붉은색 레이저 점이 박혔고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그녀의 몸은 벌집이 되리라. 허나 그럼에도 그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 실성? 아니. 마치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는 너무나 여유만만한 표정을 보였다.
"와일드 팽의 멤버는 이게 다 맞아?"
"그걸 너에게 대답해줄 이유가 어디에 있지?"
"아니. 없으면 전원 다 오라고. 고작 이 정도 수로 뭘 하겠다는 거야. 패배자들은 정말 머리가 안 돌아가도 진짜 안 돌아간다니까."
"과연 이 이후에도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총알이 박히고 네 몸에 바람구멍이 나도 벌집이 되어도 과연 그렇게 여유만만하게 말할 수 있을까? 살려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자신김이 대단하시군? 가디언즈."
"첫째. 너희는 정보력이 너무 없어. 아니. 당연히 우리의 얼굴은 그다지 공개가 되지 않았으니 진짜 자세하게 알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긴 해."
한편 여성은 여유만만하게 오른손으로 숫자 1을 표현한 후에 태연하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와일드 팽 멤버 중 하나가 그녀를 매섭게 노려봤고 총알을 발사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이었고 누가 멀릴 틈조차도 없었다. 허나 여성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숫자 2를 손가락으로 표시했다. 그리고 허공에서 뭔가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멀쩡하게 서 있었다. 빗나간 것일까? 아니면...
"둘. 상황파악도 전혀 못 해. 당연히 여유를 부릴 수 있지. 승리자는 언제나 여유로운 법이야. 그리고 피가 말리는 것은 너희 패배자들이지."
이어 그녀는 오른손을 높게 위로 들었다. 푸른빛 눈동자를 눈꺼풀 뒤로 숨기자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서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알 수 없는 푸른빛들이 특정한 형태를 그렸다. 그것은 길쭉하게 생긴 검의 모습이었다. 이내 그 특정한 형태, 정확히는 검 형태로 모인 빛은 검으로 바뀌었고 그 검은 정확하게 여성의 오른손에 쥐어졌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검에서 푸른빛이 번쩍였고 그 푸른빛은 이내 그녀를 집어삼켰다.
"셋. 너희가 몇 명이 모인다고 한들,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조차도 몰라."
차가운 냉기가 몰아쳤다. 많은 것들이 얼어붙으며 투명하게 바뀌어갔다. 모든 것은 정말 눈깜빡할 사이에 벌어졌고 그 어떤 숨소리도, 정확히는 여성의 숨소리 이외에는 그 어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얀 연기가 사라지자 보이는 것은 투명한 얼음 속에 갇혀버린, 아니. 어쩌면 그 상태로 꽁꽁 얼어버린 와일드 팽 단원들의 모습이었다.
"그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너희는 죽는 거야. 알겠어? 테러리스트 여러분? 패배자가 몇 십명이 모여도 승리자가 되진 않아. 비참하기 짝이 없는 패배자들의 집단이 될 뿐이지."
대체 무엇이 지나간 것일까. 딱딱한 것을 갈아버리는 잔혹한 소리가 잠시 울렸고, 뒤이어 얼음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서 땅바닥에 흩뿌려졌다. 이내 여성은 자신의 근처에 떨어졌던 총알을 무릎을 굽힌 후에 잡았다. 얼어붙은 총알에 얼음결정이 맺혔고 그것은 이내 고드름 형태로 점점 그 크기가 커졌다. 뒤이어 그녀는 그 고드름을 뒤로 힘껏 집어던졌다.
"그게 이 세상의 룰이야. 기대도 안 하지만 지옥에서라도 명심하고 잘 살아가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는 세븐스의 뒷쪽으로 아직 깨지지 않은 얼음이 관통된채 천천히 그 형태를 잃고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469 네! 에델바이스는 가디언즈를 무너뜨리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니까요. 당연히 보검 사용자와의 싸움을 피할 순 없어요. 그러니까 화이팅!
>>470 이길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일반 세븐스보다는 훨씬 강하긴 하지만...
아무튼 왜 저리 강해요? 라고 묻는다면 저 정도이기에 현 체제에 불만을 가지거나 문제의식을 지닌 이들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답을 하는 것이 인지상정! 저런 이들이 일곱 명이나 있으니 가디언즈가 얼마나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누르고 있는지 대충은 감이 오실 거라고 믿겠어요!
우애가 깊다. 사이가 좋아보인다. 쌍둥이는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그래보였다. 비록 하루 중 따로 보내는 시간의 비중이 더 높지만, 같이 있으면 세상 누구보다 가깝고 친밀했다. 그러나 서로 닮았으면서 다른 얼굴을 한 쌍둥이는 서로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소중했던 사람과 증오하는 사람을 한꺼번에 담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그녀들은 과연.
"그런 말 자주 들어." "우리- 사이 어엄청 좋으니까아."
이름 모를 신입 씨가 쌍둥이를 신기하게 보거나 말거나 둘은 잘도 떠들도 잘도 움직였다. 가위를 들고 찰칵찰칵 장난을 치려던 레레시아는 한 번의 경고 만으로 장난기를 도로 집어넣었다. 라라시아는 한 번 하겠다고 한 건 정말 하니까. 그래도 슬쩍 내비친 장난기에 이모티콘이 식겁한 얼굴로 바뀌는 걸 보고 뒤에서 히히 웃는 소리가 났다. 옆에선 피식 했다. 그리고 이모티콘이 노이즈 형태로 돌아가자 레레시아도 관심을 머리카락으로 옮겼다.
"장난이야- 장난- 에- 와아. 너어 머리 되게 좋네에. 보들보들해-"
신입 씨의 하얀 머리카락을 만져보고 자르기 편하게 대강 묶던 레레시아가 생각한 그대로를 말로 내뱉었다. 엄청 좋다! 는 아니지만 관리만 잘 했으면 엄청 좋은 머리카락이 됐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왜 관리를 안 했을까? 의문을 표정으로 띄우던 레레시아는 노이즈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다가, 앗, 하며 말했다.
"단발 말이지이. 쪼오금 짧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에... 일자? 일자로 하며언-"
달군 팬 위에 올린 캐러멜처럼 나른하게 늘어지는 말투가 그걸론 부족했는지 말꼬리도 길게 늘린다. 사실 머리카락의 견적을 보느라 그랬다. 잘 묶은 머리다발을 들고 이쪽으로 한 번, 저쪽으로 한 번, 번갈아 움직여보더니 스윽 들어서 이미 잘린 부근과 뒷목을 보는 듯 하다. 그러다 이미 잘려서 드러난 목덜미에 후, 하는 짧은 날숨을 부는 장난을 기어코 치긴 했지만.
"이히히."
장난기 명백한 웃음소리가 키드득 지나가고, 레레시아는 손으로 머리카락 위를 대강 짚으며 설명했다.
"이미 잘린 부분이 있어서- 일자로 하면 이쯤까지 다듬어야 해애. 완벽한 각은 어려울 지도 모르지만- 거슬리지는 않게? 가능해애. 그렇게 할까-?"
매우 간단한 설명 뒤로 다시금 레레시아가 잘린 머리카락의 주인이자 신입 씨에게 의견을 물었다. 대답 여하에 따라 바로 머리에 가위를 대거나, 아니면 의견을 들은 후에 가위질을 시작했을 것이다.
낯선 곳, 그 말에는 단 한 줌, 한 조각의 부정도 차지할 자리가 없었다. 그가 봐왔던 어느 곳도 이렇지 않았다. 아니, 이럴 수 없었다는 게 맞겠지. 이곳이 에델바이스의 거점인 건 당연한 것 같았다. 문득 레지스탕스의 거점이 습격당하는 게 떠올라 고갤 젓는다. 앞에 선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했으니 질이 나쁜 생각은 얼른 치워야 했다.
"오늘은 추천해주시는 음식으로 충분합니다. 다만..."
말해야 할까? 자극적인 음식은 좀 힘들 것 같다는 말, 그렇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은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먹고 싶은 음식이 자극적인 편인데 그걸 먹지 못하게 되어 까탈스럽다는 이미지를 새겨 주는 건 아닐까.
"다만 제가 조금 예민해서, 너무 자극적인 음식만 좀 피했으면 합니다."
이건 말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음식을 먹다가 걱정하게 만들어 불편을 느끼게끔 할지도 모르니.
"식사가 별로라고 해서 구하지 않는다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아, 그...실례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 크게 말해버렸으려나. 그는 조금 더 생각해보고 말을 할 걸 하고 후회하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주고 싶지만. 자신이 그 정도일지는 의문이 들었다.
>>494 모든 서사를 다 적용할 순 없지만 캐릭터의 서사에 따라서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수 있는 보검 세븐스와는 어느 정도 엮일 수도 있긴 하죠! 간단하게 예시를 들자면 어떤 마을에 화산폭발이 일어나서 평화롭던 마을이 그야말로 잿더미가 되고 그냥 싹 날아가버렸는데 알고 보니 보검 세븐스 중에서 자연재해를 병기로 쓸 수 없을까? 하는 연구의 데이터를 뽑기 위해서 일부러 화산 폭발을 일으킬만한 이가 있다 싶으면 그 보검 세븐스와는 엮일 수도 있는 방식이에요.
제가 보고 오. 이건 엮이겠다 싶으면 엮는 거라서 막 이 세븐스와 연관이 있게 해주세요! 라는 요청은 기본적으로 받지 않지만 말이에요.
용어가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기울이다가, 이내 '아, 위장카메라-'라고 무식한 어휘를 섞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젓는다.
"왜냐면 전부 엔이 먹었으니까."
즉, 내시경을 해 본 전적이 없는지. 아니면 내시경마저도 삼켰다는 뜻인지. 애매한 그녀의 말투는 여러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지만 당신은 알길이 없다. 당신이 성에를 때어줌에 따라 손이 시야 가까이로오자 그녀는 눈을 살짝 감았다. 그러면서 문득 엔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온다. 손을 들어 그 무언가를 가리킨다.
"엔도 그거 먹어도 되나?"
그녀는 기본적으로 식탐이 강한 생물이고, 에델바이스 내에선 풀 외에 모든 걸 입에 넣고 시작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음료라고 예외는 아닌 모양인지 지금은 레이의 코앞까지 와서 반 남은 음료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법령 전에 태어났기에 아주 조금이지만 평범한 기억이 남아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채 크기도 전의 매우 짧은. 이제는 흐릿해져버린 단편적인 기억이죠. 그렇기에 그녀는 이해한다고 다시 한번 말한뒤 아무거나 괜찮다는 당신의 말을 따라 무난한 가게들의 리스트를 머리속에 나열하고 있었습니다.
"응?"
그러나 다만.. 이라고 말끝을 흐리는 당신을 보며 그녀는 잠시 발걸음을 멈춰 기다렸습니다. 일체 재촉하지 않고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살짝 시선을 비껴서 당신을 보고 있었죠. 그리고 이내 당신이 말해준 내용에 미소를 지으며 그러면 살짝 담백하게 가볼까? 하고 윙크했습니다.
"못 먹는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조금은 편하게 대해준걸까~? 이거 기쁜걸."
신뢰가 생겼단거지~? 그녀는 괜스레 더 기쁘다는듯 말했습니다. 뻔뻔한 말이네요
"후, 후흐.. 흐큽."
그러나 지나가던 말 정도의 농담에 크게 대답해버린 당신의 반응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아보았습니다만.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는 그러면 언제나 구해준단거네~? 하고 믿고 있겠다며 미소지었습니다. 믿어? 니가? "응? 아닌데. 민폐 끼쳐도 괜찮아. 동료인걸." '말은 잘하네, 정말'
그치? 그녀는 윙크를 지어보이곤 한 가게로 당신을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이 가게는.. 볶음밥이 메인메뉴인 가벼운 느낌의 중/양식 퓨전집인거 같네요.
이스마엘은 우애를 대단하고 존경스럽노라 표현했다. 짧은 식견에 좋지 않은 머리를 가졌지만 쌍둥이의 행동에서 타이밍이 맞는 점도 그렇고, 서로 할 말을 꿰뚫는 것도 그렇고. 모두 그만큼의 신뢰관계가 쌓였음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우애에 감춰진 이면을 알기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지만, 적어도 모른다고 해서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다. 농담을 반 스푼 얹어보자면 무례하게 굴었다가 머리카락이 아닌 머리 뿌리와 작별을 고해야 할 테니까. 다행스럽게도 히히 웃는 소리가 들리자 장난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화를 내지도 않았고, 얌전히 안도했다. 이스마엘은 자신의 모발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머리가 보들보들하다니, 그런 칭찬은 처음 들어봅니다."
부끄러운지 오토튠 섞인 목소리에서 쑥스러움이 묻어 나온다. 이제 사람들과 교류하며 머리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스마엘은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페이스 재머 너머로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머리카락 관리는 어떻게 하는 걸까? 평소대로 비누로 박박 감아버리면 되나? 샴푸도 아닌 비누라는 글러먹은 생각이었지마는.
"예! 괜찮습니다!"
늘어지는 달콤한 말투와 달리 이스마엘의 말투는 어딘가 각이 져있고, 활기찼다. 더군다나 짧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이미 머리를 차지한지 오래였다. 어차피 머리는 다시 자라고, 이 글러먹은 생각에 연장선을 더하자면 비누를 조금 덜 써도 될 것이다. 머리도 빨리 마를지도 모른다! 지금 머리가 덜렁덜렁 잘린 곳이 가벼움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싹둑 잘라버리면, 이스마엘은 신세계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머리카락이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오래 기르고 땋아 무게가 있는지라 흔들리는 느낌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이스마엘은 그런 당신의 행동에도 곧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노이즈가 미처 가리지 못한 너머로 드러나는 건, 목덜미를 덮은 타이즈와 목걸이로 추정되는 끈의 시발점이다. 공격하기 딱 좋은 위치와 마침 시도한 공격. 차가운 공기가 스미는 것 같다 생각하던 이스마엘은 갑자기 들이닥친 당신의 장난에 꼿꼿하게 세웠던 허리를 훨씬 더 꼿꼿하게 세우고 어깨를 크게 웅크렸다.
"히잉이?!"
괴상한 소리. 명백한 장난에 완벽하게 당해버렸다. 뭐라 말할 수도 없이 타격감이 컸던 건지, 이스마엘이 말을 하려 입을 벌릴 때마다 잠깐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려다 멈칫하는 몸짓도 있었다. 당해버렸으나 달리 변명할 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의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말할 틈이 없어지자 바로 머리카락의 기장에 대해 설명하니 뭐라 대꾸할 타이밍도 놓쳤다. 안타까운 희생양의 말로다.
"네, 부탁드립니다. 금방 익숙해질 것 같기도 하니."
망설임은 없었다. 짧다고 해도, 거슬리지 않는다면 괜찮다. 이것보다 더 짧아진다 한들 머리카락은 자란다. 돌아오는 것은 언제라도 버릴 준비를 해야 한다. 돌아오지 않는 것을 맞이하고자 기다릴 수는 없으니. 이스마엘은 얌전히, 머리를 자르기 편하게끔 자세를 고쳤다.
자신을 향한 그녀의 미소에 윙크까지, 좀체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그런 능란한 말과 행동에 그는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는지 가볍게 자신의 뺨을 두드렸다. 지금까진 잘하고 있는 것 같으니 이대로만 가자, 라는 느낌이었을까.
"......?"
뭔가 우스꽝스러운 말이라도 했나? 생각해보지만 방금 조금 크게 대답한 게 전부였다. 그럼 그것 때문인가? 그는 조금 얼굴이 뜨거워지는 감각에 고갤 푹 숙이고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이어지는 말에는 그다지 대답을 할 만한 텀은 없었기에, 후우. 하고 숨을 내쉰 뒤 고갤 들었다.
"그건, 네, 알겠습니다."
기억해 두겠다는 듯 말하면서, 그녀가 이끄는 대로 가게에 들어섰다. 여긴... 퓨전요리 식당인 모양, 확실히 퓨전요리는 호불호가 덜 갈릴만한 요리들을 많이 준비하는 걸로 알았다. 이건 역시 배려겠지. 가게에 들어서서는 안을 한번 스윽 훑어본다.
//크윽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읍니다...죄송합니다 멜피주...! 이따가 정오 즈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그저 얌전한 요조숙녀지만 손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그 이미지가 와장창 깨어지는 사람. 레레시아는 그랬다. 늘 웃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예상 밖의 행동으로 주변을 시끄럽게 혹은 상대를 당황케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 순진무구한 금빛 눈동자를 샐쭉하게 뜨며 당한 상대를 되려 침묵하게 만드는 못된 재주였다. 지금도 아마 뒤를 돌아보았다면 뻔뻔하디 뻔뻔한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히히!"
짧은 웃음소리는 장난에 당한 신입 씨의 요란한 반응 덕분에 좀 더 활기찼다. 달리 말하자면- 만족스러운 웃음이었달까. 그래놓고 곧장 머리에 대해 설명한 건 아무리 봐도 대꾸가 나오지 못 하게 함이 분명해보인다. 필시 이런 행태에 익숙한 것이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레레시아는 머리에 대해 말을 하고 신입 씨의 대답을 기다렸다. 허공에 가위를 찰칵찰칵 움직여대며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 기울이고 있다가 다른 의견이 없이 부탁한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챡! 소리나게 가위를 편다.
"좋-아. 그럼 시작한다아."
시작한다 해놓고 머리다발을 또 스윽 들어올리는게 같은 장난을 칠 것 같았지만, 다행히? 장난은 없었고 능숙한 가위질로 머리다발을 잘라나가기 시작했다.
찰칵찰칵찰칵.. 서걱서걱...
이미 잘린 부분이 싹둑 잘렸던 것에 비해 남은 반은 조금씩 제법 신중하게 길이를 맞추며 잘라져갔다. 긴 다발이 점점 떨어질수록 머리가 점점 가벼워짐이 느껴지고, 마침내 끝부분을 똑 잘라 다발이 떨어지자 털 깎은 양의 기분이 이런 걸까! 싶지 않았을까. 레레시아에겐 이제부터가 손질의 시작이었지만.
잘라낸 머리다발을 들고 감탄을 터뜨린 레레시아는 곧 한 켠에 조심히 내려놓고 라라시아로부터 빗을 받았다. 그 와중에 말을 또 주고받는데, 대체 라라는 왜 가위와 빗을 가지고 다닐까? 언제든 레레의 머리를 잘라버리려고? 히익. 레레시아는 더더욱 머리 손질에 장난을 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으럼 이제, 에- 각 잡는다아?"
과정 하나하나를 알려주며 진행하는 건 버릇일지 배려일지. 잘은 몰라도 그렇게 말한 후에 손끝으로 머리의 위치를 조금 조정하고서 잘린 끝을 일자로 만들기 위해 또 열심히 가위질을 한다. 차각차각 가위질 소리 사이로 사각사각 간지러운 소리가 제법 분주하게 울렸겠지.
자신의 뺨을 두드리고 있는 당신의 모습에 왜 저럴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딱히 더 이상 파고들지는 않는 그녀였습니다. 그녀라고 선을 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요. 원래 각자의 거리감이라는게 중요한겁니다.
"적당히 앉을까~"
가게에 들어가 종업원에게 밝게 인사해주고 ㅡ 잘 모르는 사람이다 ㅡ 가게를 둘러보고 있는 당신에게 맘에는 드냐 물어본 그녀는. 이내 적당히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은 자리를 찾아가 앉으며 메뉴판을 펼쳤습니다. 있을거 있고 적당한 가격인 딱 평범한 느낌의 가게. 그녀는 적당히 새우볶음밥을 시키기로 결정하고 당신을 바라봤죠.
"그러고보니 리오군은 몇살이야? 겉보기엔 꽤 어려보이는데."
얼굴도 얼굴이지만, 키도 큰편은 아니니까.. 아직 고등학생일 가능성도 있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여기 성인부터 받는듯 했으니까요.
>>615 서로 느긋하게 핑퐁해보자구~! 오 유루주 아이디어 뱅크잖아? 그거 다 섞어서 조용한 곳에서 그림그리고 있는데 그 근처에서 고양이 마리가 그림그리는 거 구경하고 있다가 상표없는 물감통 때문에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인간으로 변해서 알려준다거나 하는 내용이면 좋을 것 같은데~~ 선레는 다이스 굴릴까?
가게에 들어서서 종업원에게 밝게 인사하는 멜피의 모습에 아는 사람인가 싶어 종업원을 보다가, 자신도 인사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고갤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곤 가게를 둘러보던 중, 가게가 마음에 드냐는 그녀의 목소리에 살짝 놀란 듯 어깨를 들썩였다가 머쓱한 듯 입을 열었다.
"네, 깔끔한 느낌이 좋습니다."
이제는 자리를 찾아 앉을 때. 그는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은, 배려이든지, 아니면 그녀가 그런 분위기를 선호하든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자리로 향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곧바로 주문된 음식, 새우볶음밥인 것 같다, 확실히 무난한 주문이라고 생각하며 앞에 놓인 잔에 물을 채워 그녀에게 내밀 때쯤.
"아, 그...스물 넷입니다."
어려보인다는 말에는 역시 그렇겠지요...라고 작게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잔을 내려다본다.
"실례지만, 처음 뵈었을 때부터 저를 소년...이라고 부르셨는데, 그건 절 몇 살로 보신 건지..."
어차피 자신이 아는 가게가 아직 많지는 않다고 덧붙여서 설명한 그녀는 볶음밥이 나올 시간동안 느긋하게 기다릴 생각으로 당신을 바라봤습니다. 스물 넷.. 역시 그녀가 생각하던것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요. 이건 조금 실례되는 말을 했던걸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물컵을 받으며 고맙다고 말한뒤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이런~ 소년이라고 한건 썩 좋은 판단이 아니었네."
그녀는 부담스럽지 않게 가벼운 느낌으로 미안~ 하고 사과한뒤 미소를 지었습니다.
"음.. 17~18 정도?"
첫 인상에서 얼굴은 잘 안보였고 키가 가장 눈에 띄었기에 더 어려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남자한테 실례므로 굳이 말하진 않은뒤 그녀는 물을 한모금 마셨습니다.
무난함,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가장 보통의 그것.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무난한 것이라면, 그가 본 세상은 무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이곳이 그런 장소가 아닐까 생각이 드니까. 물컵을 받으며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에게 천만에요, 라며 반응하고는 곧 그녀가 그의 나이를 듣고 보이는 반응에 역시 신경쓰이려나 하는 생각으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다지 놀라지는 않으시는군요."
하기사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을 해 보면 청소년은 아닐 거라는 결론이 나올 테니 놀라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아니면 유난히 그녀가 상황을 유연하게 넘길 줄 아는 사람이겠지. 저 미소와 무겁지 않은 어투의 사과를 듣고 있자면 아마 후자이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한다.
"역시 그렇습니까..."
아마 생김새로 그렇게 판단한 거겠지, 복장 덕분에 성별까지 오해를 받지는 않은 것 같으니 좀 낫다고 생각을 해야 하나? 최대 7살 정도 어리게 보린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조금 험난한 시간이 기다리는 듯해 그는 냉수를 들이켰다.
"예...좋은 게 좋은 거겠지요..."
전혀 좋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상대방이 나이로 고민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배부른 소리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기에 그는 말을 고르고 골라 입 밖으로 내며 꼬리를 흐렸다.
팀이 만들어지기 전 임무 대기 기간동안 마리는 무해한 고양이의 모습으로 에델바이스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기지 안쪽에서는 사람의 모습으로 있는다고 해도 마을을 돌아다닐 때에는 왠지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다니기가 조금 민망하고 부끄럽고 그랬다.
익숙해지면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과 인사하고 지내겠지만…. 아무래도 비능력자들과 대화한지가 오래되어서 조금 어색하고 그랬다. 이곳이 아무리 평화롭고 능력자와 비능력자간의 차별이 없으며 화합을 도모한다고 하더라도 어릴적부터 느껴왔던 비능력자로부터의 차별의 경험은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특히 비능력자들의 호의는 부모님을 제외하곤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마리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마을이나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생소한 것을 보았다. 어떤 이가 이젤에 캔버스를 올린 채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탓이었다. 마리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있다가 그 사람이 지하 기지에서 지나가다가 본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 사람도 능력자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 뒤에 가만히 앉아서 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가 뒤를 돌아본다면 치즈냥이라고 하기엔 털 빛이 크림색인 붉은 홍채의 고양이와 눈이 마주칠 것이었다.
미성년자인줄 알고 손대려고 했는데 알고보니 미성년자가 아니었다! 이런 막장스러운 전개도 아니고. 그녀는 어차피 나이가 많든 적든 큰 상관없지 않냐며 가볍게도 말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종업원이 주문한 메뉴를 가지고 오고 있는게 보였죠. 볶음밥 냄새에 기분이 좋아지는것도 잠시.
"물론 여자랑은 느낌이 다른건 알아, 남자는 키라던가 그런거에 신경이 꽤 가는 모양이니까."
그녀는 미묘하게 말꼬리를 흐리는 당신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습니다. 물론 여자라고 꼭 그런것도 아니고. 개개인의 컴플렉스 같은건 그녀로서는 뭐라고 말해줄 수 없는 이야기. 그러니 그녀는 적당한 분위기를 조절할 뿐으로, 당신에 대해 깊게 참견하지는 않았습니다.
"리오군은 어때? 역시 좀 더 성숙해보이는게 좋은편?"
볶음밥을 한숟가락, 떠 올릴뿐 아직은 먹지 않은채 그녀는 턱을 괴고서 당신을 바라봤습니다.
딱히 불손한 의도를 지니고 있던 게 아니라면 그다지 놀랄 일이...아닌가? 이런 일에도 놀라는 사람이 꽤 있었던 것 같지만 어째 그녀의 태도를 보고 있자면 그녀는 그런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뭔가 보통의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묘한 감각을 느끼고 있을 때쯤, 종업원이 들고 온 볶음밥의 냄새에 저절로 긴장감이 조금 풀어진다.
"하하...네,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입니다."
부정할 마음도 없었거니와, 그녀가 자신의 의중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의외로 순순히 웃으며 인정하고 말았다. 음식이 앞에 있으니 조금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그러다 그녀가 볶음밥을 한 숟가락 뜨자 그제야 그 역시 숟가락을 집어들었다.
"저...말씀이십니까? 성숙해보이는 게 좋다는 얘긴..."
잠깐, 취향에 대한 질문인가? 아니지, 갑자기 흐름이 그렇게 넘어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좀 더 생각을 해 보자... 아마 어려보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 성숙해보이는 걸 선호하느냐는 이야기겠지. 그렇담... 그는 집어들었던 숟가락을 살짝 내려놓고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순순히 수긍해주는 모습에 그녀는 기분이 좋아진듯 미소지었습니다. 그녀는 아무한테나 마구잡이로 말을 거는편이지만. 당연히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더 편한법입니다. 대화가 안 되는 사람하고 대화하고 있어봐야 시간을 날린 기분밖에 들지 않으니까요.
"그런가.. 뭐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가끔 그것도 장점이라던가 그러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말이지~"
분명 키가 작거나 동안인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일 수 있지만. 그게 컴플렉스인 사람한테 그렇게 말한들 그걸 쉬이 받아들이는게 더 어려울것인지라. 그녀는 잘 찾아보면 이런 저런 방법이 있지 않겠냐며 놀리는 톤은 아니지만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가령 키가 커지는 능력이라던가, 한둘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세상이니까요.
"나는 남자는 아니니까, 공감해주긴 어렵지만. 그런것도 있잖아? 패션이라던가 행동이라던가."
지금 당장 키나 얼굴을 바꿀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옷차림이나 행동같은걸로 커버를 한다~ 같은 느낌이라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물론 그런 느낌이란거지 그녀는 정말 모릅니다. 어떻게하면 그 나이대의 남자처럼 보일지.. 같은건 말이죠.
"하지만 나쁘지 않겠네, 목표점 같은걸로 좋지 않아? 누구에게나 멋진 남자로 보이기 같은거."
오늘의 도구는 평범한 흰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이다. 다양한 미디엄을 소화하려는 의도 반, 그리고 그저 오늘따라 아크릴의 유연한 질감을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 반. 임무 대기 기간동안 그는 단어 몇개로 표현 안 될만큼 자유자재로 살았다. 새로운걸 시도도 해보고, 가고 싶은 곳도 가 보고. 그의 인생에서 그나마 일관적인 활동을 꼽자면 훈련과 미술 정도일까. 그런 변덕스러운 대기 기간 중, 오늘은 제자리로 튕겨져나온 기분이 든다.
이젤 위에 캔버스를 대충 던지듯 놓고선 팔레트엔 라벨이 붙어있는 물감을 몇개 짜낸다. 소량의 녹색, 황색, 그리고 아주 약간의 청색을 곁들이고 나선 붓으로 물통의 표면을 찍는다. 조금 녹아 부드러워진 연한 초록을 캔버스 위에 덧칠하면 그려지는건 그의 눈 앞에 있는 어린 소나무의 실루엣. 그 후로 보이는건 반복적인 물감 짜기와 섞기, 그리고 가끔의 주춤거림 뿐. 그려지는 과정을 보아하면, 실물과 굉장히 흡사한 소나무가 형태를 찾아가고 있다. 정상적인 눈으로 보아도, 실물과 그림의 색 차이는 미세할 뿐일 것이다.
어느샌가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살짝 뒤로 하면, 그에 눈에 비치는건 흑백 뿐. 어디는 조금 덜 어둡고, 그와 반대로 다른 쪽은 더 밝고. 다 거기서 거기인 색들이지만 어떤 색인지 짐작은 간다. 전에도 본 것들이니까. 시선의 중앙에 꽂힌 초면의 고양이는 무슨 색인지 통 알수 없다만. 무표정이었던 얼굴에 웃음이 그려지고 보조개가 패인다.
캔버스를 이젤에서 내려 고양이 근처로 다가온다. 그는 털석 앉더니, 상체만 움직여 팔레트와 물감통, 그리고 붓을 집고선 다시 그림을 그린다. 이번에 형태를 잡아가는건 눈 앞의 고양이. 크림빛 털과 같은 밝기의 주황색 털과, 그 붉은 홍채와 같은 어두움의 갈색 눈을 그려넣는다. 색만 배제하고 본다면 실물과 똑같이 생겼다 해도 과언이 아닐터.
고양이가 물감통을 본다면 그 안에 담겨있는건 꽤 많은 양의 물감 튜브들, 그중 몇개는 중복되어 있다. 은은한 미소를 띄며 붓을 움직이던 그 남성은 거의 끝나가는 그림을 두고선, 물감 통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의 손에 들려 나온것은 라벨이 깔끔히 지워진 튜브. 그는 얼굴을 살짝 구기고선 팔레트 위에 물감을 짜 본다.
물감의 색은 벽돌같은 붉은색이다만, 그는 그걸 보고도 모르겠다는듯 통 안에 들어있던 라벨이 붙어있는 파란 물감을 꺼낸다. 두 색을 흘겨보고선 파란 물감을 도로 던져넣고 다른 튜브를 꺼내려 손을 움직인다. 일일히 대조해보려는 움직임이다.
자신의 답이 마음에 든 건지, 아니면 이 대화 자체가 마음에 든 건지 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에 그 역시 조금 긴장이 풀린 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컴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말에 그런 말도 있었다면서 고갤 살짝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겠지.
"장점이란 건, 찾아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점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려보이는 것도 장점이 있는 거고, 성숙해 보이는 것도 단점이 있는 거겠지,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장점을 찾아내고 단점을 찾아내는 건 아닌만큼 어디까지나 그냥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해야 했다. 정작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 문제지. 수단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절박한 건 아니라면서, 농담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그 역시 비교적 가벼운 톤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곤 성숙함에 대해, 부연설명이라고 볼 수 있는 그녀의 말에 확실히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음을 깨닫고 속으로 안도했다. 괜한 말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고.
"옷차림이라... 확실히 신경을 쓰고는 있습니다만 그다지 그런 쪽에 지식이 있거나 한 게 아니라서, 그래서 지금도 제복을 입고 있습니다."
제복은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는 옷이니까요. 라고 덧붙이다가, 행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행동이라... 행동이 미숙하게 보여서 그렇게 판단하는 건가? 어떤 부분이 그렇게 보이는 거지, 하고 생각하다가 당장 답이 나오지 않았기에 그만둔다.
"그렇군요, 목표점이라..."
목표가 있다면 노력하게 된다고들 하지, 그렇기 때문에 뭔가 하고자 할 때 그 도착점을 확실하게 해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들었던가. 뭐, 아무래도 좋았지만. 그는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말끝을 흐리곤, 음식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한 숟가락 떠 입에 가져가니, 고소한 기름향이 코를 간질인다. 한 입, 숟가락에 얹힌 밥을 입 안에 넣고 씹으며 음미하자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린다. 예민한 자신의 미각에도 괜찮은 걸 보니, 주방장이 실력이 좋은 걸까 싶다. 아니면 기호에 맞춰서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든가.
장점은 찾아내는것이라. 그녀는 이렇게 일상속에서 툭하고 지나가듯이 나오는 좋은 말을 좋아했습니다. 단순히 본인은 그런걸 잘 말하지 못하는편이라 그런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눈에 띄게 재밌어하며 그녀는 다시 볶음밥을 한입 떠먹었죠. 음, 역시 가격대에 비해 상당히 괜찮은 퀄리티입니다.
"제복이라, 뭐 괜찮은 발상이긴 하지만 매번 제복만 입고 돌아다니기도 그러니까."
그녀만해도 제복은 잘 안입고 다니는 편이기도 하고. 일단 공공하게 드러내고 다닐수도 없는것이 현 레지스탕스들의 현주소니까요. 그래도 처음 입은거치고 제복이 잘 어울린다고 덧붙이며 그녀는 작게 웃었습니다.
"일단은 바닥보다는 앞을 볼것, 그것만으로 꽤 많은게 바뀔지도 모르지."
본래 남에게 필요이상의 참견을 하는건 그녀의 스타일이 아닙니다만. 처음이니까 조금만이라는 느낌으로 그녀는 말했습니다. 물론 자신은 눈앞의 상대방에 대해서 아는거라곤 나이와 이름밖에 없습니다만. 그렇기에 주접정도로 넘겨도 상관없습니다. 도움이 된다면 그것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상관없는 거리감이지 않습니까.
"만족했다면 다행이네."
아무리 그래도 기껏 데려왔는데 입맛에 안 맞으면 뻘쭘하니까요. 그녀는 마저 식사를 하기전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너무 밥먹으면서 떠드는것도 안 좋으니 느긋하게 먹어볼까요..
// 뀨웅~ 요걸 막레로 하셔도 되고 마무리 해주셔도 되구용. 여자처자 밥먹고 해산했다고 해주시면 감사합니다~ 약 기운이 돌아서 조금 자고와야겠다요..
조용히 그려지고 있는 소나무들을 보며 마리는 조금 딴생각을 해버렸다. 그린우드. 제 성이었지만 저에게는 초록색이란 하나도 없었다. 우드라고 할 수 있는 갈색도 하나 없었다. 저에게 있는 색은 새빨간 화염과 같은 붉은색과 그로 인해 다 타버려 재만 남은 듯한 흰색에 가까운 잿빛이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색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색도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물었을 때 아마 증조부 위의 조상에서 섞여진 색이 나에게서 나온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그린우드를 잡아먹으러 태어난 저주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11살 이후부터 자꾸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런 허튼 생각을 하며 그림을 구경하던 중 마리는 그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웃음이 번지는 그의 얼굴을 눈을 깜빡깜빡거리며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자 그는 캔버스를 든 채 자신의 앞으로 다가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리는 금새 그가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얌전히 그 앞에 앉아 있었다. 그가 뭔가 곤란한 기색을 띌 때까지. 마리는 작은 몸집을 움직여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먼저 눈에 닿은 것은 그가 그리고 있던 그림이었다. 제 모습을 담은 것은 꽤나 사실적이었으나 그 색이 자신의 색과 달랐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돌려 무언가 곤란한 기색의 그를 바라봤다. 그는 하나의 색깔을 다른 물감을 꺼내 비교하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색이 틀렸어요. 내 눈 색은 이 색인 걸?”
마리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며 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곤 목소리를 내어 벽돌같은 붉은색의 물감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사실 물감의 붉은 색보다는 그려진 고양이의 갈색 눈동자가 더 마음에 들기는 했다. 그린우드의 우드색일까.
사실 원작의 보스들 중에서는 진짜 어쩔 수 없이 보스로 대치하는 이들도 있다보니. 그런 이들은 뭔가 좀 안타깝긴 하죠.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보스로 나왔다가 죽게 되는 거니. 아무튼 그런 케이스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의 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이제 여러분들의 몫이 되는 거고.. 꼭 필수적인 것은 아니니까 그냥 그런 것도 있긴 하다 정도로만 생각해주세요! 정말로!
이스마엘은 장난에 약했다. 당황해 본 적은 20년 짧다면 짧고 길면 긴 삶을 살며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누군가 이렇게 신체에 숨을 불어넣는 등 접촉이 있는 부류의 장난은 겪어본 적도 없었다. 기껏해야 간지럽히기 정도면 모를까. 아니, 애초에 이런 장난 자체가 겪기 흔한 것은 아니었다. 짓궂은 장난에 뒤를 돌아볼까 여러 번 생각하던 이스마엘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상대는 가위를 들고 있으니 실수라도 했다간 큰일이 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노, 놀랐습니다.."
때문에 불평은 아니지만 제법 솔직한 감상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멋쩍게 목덜미라도 만지고 싶은지 장갑 낀 손가락이 꼼질꼼질 움직였다가 서로 깍지를 낀다. 잘 참았다. 이제 다시 머리에 집중할 요량인 듯 이스마엘 입 꾹 닫고 기다린다. 머리를 자르는 건 아주 오랜만의 일이다. 언제 머리를 잘랐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 기억은 유년 시절이다. 그때 자세가 어땠더라? 기억날 리가 없다. 기억나는 것은 적다. 매체에서 보던 머리를 다듬는 모습은 어땠더라. 다행스럽게도 떠오른다. 최대한 자르기 편한 자세를 떠올리고 몸을 움직인다.
긴장한 듯 꼿꼿한 자세가 풀리지 않는다. 아니면 그만큼 버틸 재간이 있을 수도 있다. 아마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머리를 자르는 소리가 들려도 동요하지 않고 얌전히 앉아있었다. 머리가 잘릴수록 가벼운 느낌이 든다. 끝부분을 잘랐음을 느끼긴 쉬웠다. 목 뒷부분이 휑한 느낌이 들고 바람이 불듯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홀가분하다. 이스마엘은 이 허전한 느낌이 어색한 듯 가위가 떨어지고 자매의 대화가 시작될 적에 잠시 어깨를 스트레칭하듯 가볍게 으쓱였다. 가벼운 느낌이 영 익숙하지 않다.
"와.. 가볍습니다.."
생경한 듯, 혹은 떨떠름한 듯 오토튠에 잠식된 목소리가 느릿하게 떨어진다. 잘라낸 머리 다발은 얼추 당신의 머리 길이와 맞먹는다. 아니, 그보다 조금 더 길었다. 언제 머리를 자르지 않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런 세월의 흔적이 뚝 잘려 한편의 추억으로 남는다. 각을 잡는단 말에 "예, 알겠습니다!" 하고 경쾌하게 어조를 바꾸고 머리카락을 온전히 당신에게 맡긴다. 일자로 다듬듯 사각거리는 소리와 찰캉대는 가위 소리가 울린다. 머리가 거의 다 잘렸을 때, 이스마엘은 보이지 않는 입을 벙긋거렸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였다면 아마 망쳤을 겁니다."
제 주제는 잘 아는 것이었다. "제가 있던 곳은 신원상 머리를 자를 수 없었거든요." 이건 무슨 말이람.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을 테다.
밥먹고 갱신!! 너무 많이 먹은거 같...지만 오늘은 끝이니까 합리화를 하는 걸로~ 온김에 꽃을 받으면 어떨까!를 생각해보면... 이걸 왜? 라는 느낌으로 볼 것 같긴 하지만 꽃향기를 좋아하므로 향기가 좋네요, 라고 하면서 고마워하지 않을까요!! 천연 아로마 테라피다 이말이야~
2주 뒤가 추석이니까요. 음. 그래서 그 주에는 아마 스토리는 하지 않을 것 같네요. 사실 다음주도 제가 친구들과 놀러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보니..조금 애매하긴 한데 그건 일단 스케쥴이 확정되면 애기할게요. 안 갈 수도 있고 그냥 토요일 하루만 놀다가 저녁에는 집에 올 수도 있고 그렇다보니!
>>794 로벨리아:어쩔 수 없지. 그렇게 용돈이 받고 싶나? 로벨리아:그렇다면 용돈을 걸고 토너먼트를 시작한다. 이긴 자에게 용돈을 주마. 로벨리아:설날에는 세배라는 문화가 있다고 하는 것 같으니까 30분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상대에게 세배를 더 많이 하는 이가 세뱃돈을 갖는다. 시작!
작고 짖궂은 장난이 있기는 했지만, 서로 돌발 행동은 없었으니 가위질은 무난하게 이어졌다. 이 신입 씨가 자세를 굳은 것처럼 유지해줘서 편한 것도 있긴 했고. 단번에 잘라낸게 아니니 조금은 좀이 쑤실 만도 한데, 머리다발이 떨어지고서야 어깨가 움직였다. 뒤에서 지켜보던 레레시아는 노이즈로 보이지 않는 부분과 어깨를 번갈아 보다가 이히- 웃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그야 이만큼이나 자르면- 가볍지이. 머리도 꽤 무거우니까아."
잘라낸 머리다발은 덩그러니 놓고 보니 머리카락이 아니라 굵은 밧줄 같기도 하다. 레레시아의 머리도 묶으면 비슷하거나 굵기는 조금 더 나올지도 모른다. 라라한테 해달라고 하면 해줄까? 힐끔 눈치를 보자 타이밍 좋게 시선을 맞춘 벽안의 눈동자가 슬그머니 가늘어진다. 이크. 나아중에 부탁해야겠다. 나아아중에.
"룰루루-"
각 잡는단 예고를 하고, 기운찬 대답이 돌아오고, 가벼운 허밍과 함께 가위질은 계속된다. 머리끝을 일자로 맞추는 건 층을 내는 것보다는 쉽다. 온전히 손끝의 감각에 맡기고 가위와 빗을 쓰던 레레시아는 마무리 즈음 들려온 말에 허밍을 끊고 대답했다.
"고오맙긴. 같은 조직원이니까- 이 정도 돕는거야 뭐어. 일도 아니지이."
의미심장한 말은 못 들었는지 그러려니 한 건지 언급이 없다. 그 대답 끝에 찰칵, 하는 소리가 마지막 가위질이었다. 빗으로 슥슥 빗고 층을 맞춰보기까지 하면 비로소 손질이 끝나, 뒤에서 가위 찰칵대는 소리와 함께 말이 들린다.
"자, 이걸로 끄읏!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어- 이미 다 잘랐으니까아."
레레시아는 깔깔대는 것처럼 허공에 가위질을 몇 번 하곤 처음 놓여있던 자리에 가위를 내려놓았다. 그녀가 하고도 뿌듯한건지 어쩐건지, 바로 물러나지 않고 잠시 가만히 있는다. 그리고 장난은 언제나 잊혀질 즈음이 가장 효과적인 법이다. 아까와 반대쪽 목덜미에 똑같이 후- 부는 바람이 스치고 뒤에서 냐하하, 하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카락- 털어야 하잖아아?"
이번은 그런 의도였다는 것처럼 말하곤 레레시아는 느릿느릿 움직였다. 일단 용건은 끝났으니 말이다. 막거나 잡거나, 그런게 없다면 자제더미를 빙 돌아나와 처음 섰던 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럼 전 식사를 마쳤으니 슬슬 스토리 출석체크를 받도록 할게요! 스토리에 참가하려면 반드시 출석을 해야하며 중도 참여는 인정되지만 그럼에도 저에게 출석의사를 밝혀야 제가 체크할 수 있어요. 저에게 출석체크를 하지 않고 스토리에 참여하게 될 시 그 캐릭터의 레스는 반영되지 않아요. 그 점 주의해주세요.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현재 세븐스를 가장 억압하고 있는 '비능력자 보호 법령'과 그 법령으로 인해 생긴 세븐스에겐 너무나 가혹한 사회적 분위기를 지탱하고 있는 '가디언즈'에 맞서고 있는 이 레지스탕스 부대에 들어온 이유는 제각각 다를 것이고 이전부터 활동하던 이는 물론이고 막 들어온 이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막 들어온 이들 중에서도, 이전부터 활동하고 있던 이들 중에서도 '대기명령'을 받아 마을에서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 대기명령은 끝이 났다. 모두에게 주어진 단말기. 정확히는 에델바이스의 연구진들이 만든 전용 단말기를 통해 각각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들어왔다.
-대기 명령으로 지치지는 않았나? -슬슬 다시 임무로 복귀, 혹은 임무를 시작해야 할 시기니 다들 아지트 지하 2층에 있는 회의실로 오도록. (로벨리아 올리에트)
그건 다름 아닌 모두가 이 레지스탕스에 들어오기 위해서 최소 한 번, 그리고 최대 몇 번이나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을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를 만든 이인 로벨리아가 호출한 메시지였다.
마을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들어가 그곳에 숨겨져있는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지하에 숨겨진 아지트가 있었다. 지하 1층에 있는 개인방에서 지하 2층으로 내려오건, 마을에서 따로 얻어서 살고 있는 집을 나와 아지트 지하 2층으로 내려오건, 혹은 지하 2층에서 바로 지하 2층으로 내려오건. 아무튼 회의실로 들어왔으면 활활 타오를 것 같은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이 앞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지하 1층에는 에델바이스에 입단한 이스마엘을 위해 준비된 방이 있다. 본인의 짐이라고는 얼마 없어서 아직 휑하지만 언젠가는 이것저것 채워질 날이 올 것이다. 텅 비어있는 방에 있는 침대는 깨끗하고, 이불은 구겨짐 없이 각이 살아있다. 이스마엘은 침대나 의자에 앉지 않고 바닥 구석에 혼자 웅크리듯 앉아있었다. 화면이 뜨지 않는 태블릿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들겨본다. 무선 충전기 주변에 있어도 충전도 안 된다. 태블릿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다시 손바닥으로 퉁퉁 두들기지만 역시 반응은 없다.
"역시 안 켜지네.."
이스마엘의 간절한 바람을 담아 반응하는 것은 태블릿이 아닌 단말기였다. 삑 소리가 나자 이스마엘은 고개를 돌렸다. 명령이 태블릿은 얌전히 침대 위에 올려두고, 메시지를 읽어본다. 아, 상관이다! 이스마엘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대기명령이 끝났다! 이제 이스마엘은 임무를 시작할 수 있다. 아직 많이 무섭지만 괜찮을 것이다. 후다닥 나가기 전, 이스마엘은 거울을 확인하고 아차 소리를 냈다. "페이시, 재머 켜줘!" 문을 열자 노이즈가 낀다. 장난스럽고 총기 가득한 웃음이 노이즈에 가려져 사라졌다.
이스마엘이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 우당탕 소리가 났다. 문 밖에서 누군가 넘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래, 이스마엘이 넘어졌나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타이밍이 한박자 늦었기 때문이다.
"늦지 않았으니 천천히 들어와. 넘어지지 말고. 그리고 소집 중일때 나를 부르는 호칭은 로벨리아 대장 혹은 대장이야. 명심하도록. 그리고 그냥 맞아죽는 수준이 아닐지도 모르지."
들어오는 이들 모두에게 각각 인사를 전하며 로벨리아는 자신이 부른 이들이 모두 들어왔음을 확인했다. 이어 로벨리아는 손에 쥐고 있는 단말기를 이용해 모두의 단말기에 사진 데이터를 두 장 보냈다. 첫번째 사진은 그야말로 평화롭기 그지 없는, 녹색 잔디가 자라고 있는 넓은 벌판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사진에는 분명히 같은 곳이었으나 눈이라도 하얗게 내렸는지 보이는 범위가 모두 하얀 눈으로 쌓여있는 벌판이 담겨있었다. 하얀 땅바닥 위엔 얼음조각이 널부러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그 안에 사람의 몸 조각 같은 것이 얼음 속에 들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잔혹한 모습이었다.
"어제 과격 레지스탕스 부대. 세븐스를 억압하는 이들은 모두 제거하는 목표로 활동하는 '와일드 팽'이 전멸당했다. 바로 그 벌판에서. 참고로 두 사진은 같은 날 찍힌 사진이야. 들려온 정보에 의하면 와일드 팽은 가디언즈 부대 중 하나를 기습했고 몰아붙이긴 했으나 그 벌판에서 그 작전에 투입된 이들은 목숨을 잃었다. 전원 전멸이라고 봐도 좋겠지. 그게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야."
씁쓸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벨리아는 단말기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숨을 약하게 내뱉은 후, 이어 모두의 모습을 바라봄녀서 이야기했다.
"아마도 가디언즈를 이끄는 대장 중 하나가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그럼 여기서 왜 이야기를 꺼내느냐. 너희들은 이전부터 임무를 수행하는 이도 있었을테고, 이제 막 들어온 이들도 있을 거야. 그리고 내 권한으로 너희들은 전원 대기 명령을 내렸지. 원래는 조금 더 휴식 시간을 주려고 했지만 어제 이런 일도 있었고, 마침 우리 쪽에서 준비하고 있던 것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기에 너희들을 소집하기로 했다. 오늘부로 너희들은 '제 0 특수부대' 소속이다. 내가 지휘하고 내 밑에서 내 지령을 받고 활동하게 될 직속 부대지. 하는 임무는 이전보다 더 위험하고 경우에 따라선 너희들의 목숨도 걸어야 할 거야. 그 사진을 보여준 이유는 경우에 따라선 너희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 대장들과 싸워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야. 내가 백날 설명하는 것보다는 한 번 보는 것이 제일이지."
이어 그녀는 숨을 약하게 내뱉었다. 담배를 피고 싶었는지 그녀는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낸 후에 그 포장지를 까고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서 입에 넣었다가 살짝 떨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지하 3층 훈련장으로 가자. 그 전에 물을 것 있으면 물어보고. 있으면 답해주고 출발하고, 없으면 바로 출발할거야."
언니라고 좀 부를수도 있지. 그녀는 툴툴거리며 답하고는 자리에 앉아서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습니다. 뒤이어 오는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해주며 생각을 정리. 이내 제대로 회의가 시작되자 조금 태도를 바꿨습니다. 그래도 회의는 진지하게 들어야죠. 이어지는 설명들을 묵묵히 들으며. 벌판 전체를 덮어버리는 말도 안되는 위력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와일드팽.. 어디서 들어본적은 있었던거 같기도 하지만.
"우리랑은 사상도 안 맞는 녀석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그러네."
최악의 경우 저런 과격파랑도 맞붙는 우리였지만. 그래도 가디언즈에게 전원사살이라니 뒷맛이 좋을래야 좋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다소 오묘한 표정을 짓다가는 훈련장으로 가자는 이야기에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 한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습니다.
"직속이라, 듣기는 좋긴한데. 선출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대장~"
주위의 사람들을보자, 경력이 제각각. 심지어 이번에 막 들어온 사람들도 보입니다. 뭐 나보다 약한 사람들이라거나 그런 소리를 하고싶은게 아닙니다. 단순히 능력의 시너지를 봤다고 하기엔 결코 가벼운 부대가 아니란거죠. 대장이 고른거니까 뭔가 이유가 있을거라곤 생각하지만. 그녀로서는 불안한 마음이 드는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뭐 언제나 그렇듯 당신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거 아냐?
무르팍에 잡히는 옷자락을 양 손으로 꼭 쥐고는 크게 뜬 눈으로 단말기에 비친 참상 속 얼린 벌판을 지금이라도 불태워 녹여버리고 싶다는 것처럼 뚫어져라 바라본다. 옷을 쥐는 손의 악력이 점점 더 거세지고 힘이 지나치게 들어간 손목이 부르르 떨린다. 잔혹무도한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한 조각의 도덕성도 버린 작태에 뜨거운 기운이 가슴 한가운데까지 치고 올라왔다. 도대체 누가 저런 짓을 이라는 의문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그 답이 들려오자 흥분한 얼굴로 로벨리아를 바라본다.
그 사람도 태워버릴까...자신이 행한 짓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려주고 싶어.
"저는 좋아요. 기꺼이 로벨리아 대장을 도와 모두를 해방시킬거에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괜찮아요."
최소한의 이의제기도 없이 대뜸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가슴을 휘감은 열기가 머리까지 올라와 몸 전체가 화끈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돌릴 수 없는 시간이라도 돌려서 죽은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게 돕고 싶었다. 아니면 저들을 저렇게 만든 자를 불꽃으로 사르고 싶었다. 몽롱한 적보라색 눈에 불꽃이 타오르고 강렬하게 모두의 찬성을 기대하는 것처럼 주위를 훝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