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도구는 평범한 흰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이다. 다양한 미디엄을 소화하려는 의도 반, 그리고 그저 오늘따라 아크릴의 유연한 질감을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 반. 임무 대기 기간동안 그는 단어 몇개로 표현 안 될만큼 자유자재로 살았다. 새로운걸 시도도 해보고, 가고 싶은 곳도 가 보고. 그의 인생에서 그나마 일관적인 활동을 꼽자면 훈련과 미술 정도일까. 그런 변덕스러운 대기 기간 중, 오늘은 제자리로 튕겨져나온 기분이 든다.
이젤 위에 캔버스를 대충 던지듯 놓고선 팔레트엔 라벨이 붙어있는 물감을 몇개 짜낸다. 소량의 녹색, 황색, 그리고 아주 약간의 청색을 곁들이고 나선 붓으로 물통의 표면을 찍는다. 조금 녹아 부드러워진 연한 초록을 캔버스 위에 덧칠하면 그려지는건 그의 눈 앞에 있는 어린 소나무의 실루엣. 그 후로 보이는건 반복적인 물감 짜기와 섞기, 그리고 가끔의 주춤거림 뿐. 그려지는 과정을 보아하면, 실물과 굉장히 흡사한 소나무가 형태를 찾아가고 있다. 정상적인 눈으로 보아도, 실물과 그림의 색 차이는 미세할 뿐일 것이다.
어느샌가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살짝 뒤로 하면, 그에 눈에 비치는건 흑백 뿐. 어디는 조금 덜 어둡고, 그와 반대로 다른 쪽은 더 밝고. 다 거기서 거기인 색들이지만 어떤 색인지 짐작은 간다. 전에도 본 것들이니까. 시선의 중앙에 꽂힌 초면의 고양이는 무슨 색인지 통 알수 없다만. 무표정이었던 얼굴에 웃음이 그려지고 보조개가 패인다.
캔버스를 이젤에서 내려 고양이 근처로 다가온다. 그는 털석 앉더니, 상체만 움직여 팔레트와 물감통, 그리고 붓을 집고선 다시 그림을 그린다. 이번에 형태를 잡아가는건 눈 앞의 고양이. 크림빛 털과 같은 밝기의 주황색 털과, 그 붉은 홍채와 같은 어두움의 갈색 눈을 그려넣는다. 색만 배제하고 본다면 실물과 똑같이 생겼다 해도 과언이 아닐터.
고양이가 물감통을 본다면 그 안에 담겨있는건 꽤 많은 양의 물감 튜브들, 그중 몇개는 중복되어 있다. 은은한 미소를 띄며 붓을 움직이던 그 남성은 거의 끝나가는 그림을 두고선, 물감 통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의 손에 들려 나온것은 라벨이 깔끔히 지워진 튜브. 그는 얼굴을 살짝 구기고선 팔레트 위에 물감을 짜 본다.
물감의 색은 벽돌같은 붉은색이다만, 그는 그걸 보고도 모르겠다는듯 통 안에 들어있던 라벨이 붙어있는 파란 물감을 꺼낸다. 두 색을 흘겨보고선 파란 물감을 도로 던져넣고 다른 튜브를 꺼내려 손을 움직인다. 일일히 대조해보려는 움직임이다.
자신의 답이 마음에 든 건지, 아니면 이 대화 자체가 마음에 든 건지 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에 그 역시 조금 긴장이 풀린 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컴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말에 그런 말도 있었다면서 고갤 살짝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겠지.
"장점이란 건, 찾아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점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려보이는 것도 장점이 있는 거고, 성숙해 보이는 것도 단점이 있는 거겠지,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장점을 찾아내고 단점을 찾아내는 건 아닌만큼 어디까지나 그냥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해야 했다. 정작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 문제지. 수단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절박한 건 아니라면서, 농담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그 역시 비교적 가벼운 톤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곤 성숙함에 대해, 부연설명이라고 볼 수 있는 그녀의 말에 확실히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음을 깨닫고 속으로 안도했다. 괜한 말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고.
"옷차림이라... 확실히 신경을 쓰고는 있습니다만 그다지 그런 쪽에 지식이 있거나 한 게 아니라서, 그래서 지금도 제복을 입고 있습니다."
제복은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는 옷이니까요. 라고 덧붙이다가, 행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행동이라... 행동이 미숙하게 보여서 그렇게 판단하는 건가? 어떤 부분이 그렇게 보이는 거지, 하고 생각하다가 당장 답이 나오지 않았기에 그만둔다.
"그렇군요, 목표점이라..."
목표가 있다면 노력하게 된다고들 하지, 그렇기 때문에 뭔가 하고자 할 때 그 도착점을 확실하게 해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들었던가. 뭐, 아무래도 좋았지만. 그는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말끝을 흐리곤, 음식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한 숟가락 떠 입에 가져가니, 고소한 기름향이 코를 간질인다. 한 입, 숟가락에 얹힌 밥을 입 안에 넣고 씹으며 음미하자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린다. 예민한 자신의 미각에도 괜찮은 걸 보니, 주방장이 실력이 좋은 걸까 싶다. 아니면 기호에 맞춰서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든가.
장점은 찾아내는것이라. 그녀는 이렇게 일상속에서 툭하고 지나가듯이 나오는 좋은 말을 좋아했습니다. 단순히 본인은 그런걸 잘 말하지 못하는편이라 그런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눈에 띄게 재밌어하며 그녀는 다시 볶음밥을 한입 떠먹었죠. 음, 역시 가격대에 비해 상당히 괜찮은 퀄리티입니다.
"제복이라, 뭐 괜찮은 발상이긴 하지만 매번 제복만 입고 돌아다니기도 그러니까."
그녀만해도 제복은 잘 안입고 다니는 편이기도 하고. 일단 공공하게 드러내고 다닐수도 없는것이 현 레지스탕스들의 현주소니까요. 그래도 처음 입은거치고 제복이 잘 어울린다고 덧붙이며 그녀는 작게 웃었습니다.
"일단은 바닥보다는 앞을 볼것, 그것만으로 꽤 많은게 바뀔지도 모르지."
본래 남에게 필요이상의 참견을 하는건 그녀의 스타일이 아닙니다만. 처음이니까 조금만이라는 느낌으로 그녀는 말했습니다. 물론 자신은 눈앞의 상대방에 대해서 아는거라곤 나이와 이름밖에 없습니다만. 그렇기에 주접정도로 넘겨도 상관없습니다. 도움이 된다면 그것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상관없는 거리감이지 않습니까.
"만족했다면 다행이네."
아무리 그래도 기껏 데려왔는데 입맛에 안 맞으면 뻘쭘하니까요. 그녀는 마저 식사를 하기전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너무 밥먹으면서 떠드는것도 안 좋으니 느긋하게 먹어볼까요..
// 뀨웅~ 요걸 막레로 하셔도 되고 마무리 해주셔도 되구용. 여자처자 밥먹고 해산했다고 해주시면 감사합니다~ 약 기운이 돌아서 조금 자고와야겠다요..
조용히 그려지고 있는 소나무들을 보며 마리는 조금 딴생각을 해버렸다. 그린우드. 제 성이었지만 저에게는 초록색이란 하나도 없었다. 우드라고 할 수 있는 갈색도 하나 없었다. 저에게 있는 색은 새빨간 화염과 같은 붉은색과 그로 인해 다 타버려 재만 남은 듯한 흰색에 가까운 잿빛이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색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색도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물었을 때 아마 증조부 위의 조상에서 섞여진 색이 나에게서 나온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그린우드를 잡아먹으러 태어난 저주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11살 이후부터 자꾸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런 허튼 생각을 하며 그림을 구경하던 중 마리는 그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웃음이 번지는 그의 얼굴을 눈을 깜빡깜빡거리며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자 그는 캔버스를 든 채 자신의 앞으로 다가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리는 금새 그가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얌전히 그 앞에 앉아 있었다. 그가 뭔가 곤란한 기색을 띌 때까지. 마리는 작은 몸집을 움직여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먼저 눈에 닿은 것은 그가 그리고 있던 그림이었다. 제 모습을 담은 것은 꽤나 사실적이었으나 그 색이 자신의 색과 달랐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돌려 무언가 곤란한 기색의 그를 바라봤다. 그는 하나의 색깔을 다른 물감을 꺼내 비교하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색이 틀렸어요. 내 눈 색은 이 색인 걸?”
마리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며 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곤 목소리를 내어 벽돌같은 붉은색의 물감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사실 물감의 붉은 색보다는 그려진 고양이의 갈색 눈동자가 더 마음에 들기는 했다. 그린우드의 우드색일까.
사실 원작의 보스들 중에서는 진짜 어쩔 수 없이 보스로 대치하는 이들도 있다보니. 그런 이들은 뭔가 좀 안타깝긴 하죠.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보스로 나왔다가 죽게 되는 거니. 아무튼 그런 케이스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의 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이제 여러분들의 몫이 되는 거고.. 꼭 필수적인 것은 아니니까 그냥 그런 것도 있긴 하다 정도로만 생각해주세요!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