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당신이 이 호수같다고 생각했다. 공돌이라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것 이것은 이것인 셈이다. 자신이 이쁘다는 말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익숙한 말이기도 하고 어느정도는 알고있기 때문이다. 물론 에스티아보다 아름다운가? 부분에는 고개를 저었지만. 꺄르륵 웃는 당신에게 그녀는 필담을 재개했다.
'그럼 하나 하나 안내 부탁드려볼까요? 위대한 가이드 에스티아?'(필담)
자신이 처음으로 만난 동료(아, 물론 면접을 본 그 사람들은 제외하고이다.)가 이렇게 밝은 사람이라 다행이라고 느낀 점일까.
'친구처럼이라.. 그럼 진짜 친구가 되서 편하게 서로 반말부터 하는 것으로 할까?'
갑작스런 반말로 전환하는 그녀, 그녀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있는 것이 보인다.
#다음 것을 막레로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이후 둘이서 마을 보고 다녔다는걸로! 절대 제가 졸려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변명)
거짓말이었다. 사실 기대를 많이 받는 것 같아 에스티아는 헤실거리는 웃음을 참기도 상당히 바빴다. 역시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기대받는 것은 상당히 좋은 일이었다. 적어도 그녀에겐. 뭔가 뭔가 자신이 위대한 무언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물론 상대는 놀리는 감도 있었지만 애써 에스티아는 거기서 눈을 돌렸다.
"아리아가 좋다면."
편하게 서로 반말. 나쁘지 않았다. 허락이 있다면 딱히 상관이 없었으니까. 물론 이렇게 말을 하긴 했으나 당장 다음 날, 무슨 일이 생겨서 한 쪽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신은 상관없었다. 설사 단 하루 뿐의 인연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매우 소중했으니까. 자신이 그토록 갈구했던 것은 바로 이... .....였으니까.
"그럼 따라 와 아리아. 하나하나 이 마을의 좋은 포인트를 잘 알려줄테니까."
그녀 역시 미소를 지었고 이내 에스티아는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자신의 친구에게 여러 포인트, 여러 좋은 휴식처나 마을의 좋은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페이스 재머는 흔하지 않다. 평범한 사람이 안면의 인식을 저해하는 장치를 굳이 사용할 사람도 없거니와, 사용한다 한들 볼 수 있는 것은 대도시의 뒷골목 시정잡배가 불법적인 무언가를 판매하다 꼬리가 밟히지 않기 위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사이버 디바를 넘어서 자신을 개조해 인간보다 더 뛰어난 존재, 트랜스휴먼으로 거듭하고 싶어 하거나. 이스마엘의 행동을 본다면 시정잡배와 트랜스휴먼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지만. 함축된 반응에 이스마엘은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의 문장이 이스마엘에게 제법 공감되는 것이었기에.
"그래도 저는 익숙하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머리 꼴을 보니 익숙함이라는 단어에 어폐가 있어 보임을 이스마엘은 모르는 것 같다. 옛날 라라 머리? 라라로 지칭된 여성을 바라보다 다시 자신의 머리로 시선을 옮긴다. 이스마엘의 머리는 모종의 이유로 제법 긴 편이지만, 그만큼 저 여성 또한 머리가 길었던 것 같다. 잘린 것 같지만. 가위가 움직여 머리를 뚝 자르려다 멈춘다. 간식이라.
"귀한 시간을 제가 방해를 한 건 아니겠지요?"
간식 시간은 귀하다. 이스마엘은 잠시 고민하다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천덕꾸러기인 가위와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으니 이대로 계속 합의하고자 자르는 행위를 반복하노라면 머리카락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간 아예 박박 밀어버려야 할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 사실은 아무리 아량 넓은 이스마엘이라 한들 납득할 수 없었다.
"으음.."
잠시 고민하던 이스마엘의 웃는 표정 위로 원반 하나가 떠오른다. 😇. 천사처럼 웃는 표정을 뒤로 경쾌한 목소리가 이지러진다.
"도와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로 머리를 손질할 정도면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가위도 조금 더 길이 들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 입은 손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모습에 이스마엘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길이는 다르지만 확실히 컬이나 스타일이 잘 살아있는 머리를 보니 믿고 맡겨도 될 것이다. 이스마엘은 얌전히 가위를 내려두었다. 반쯤 잘려 덜렁거리는 땋은 머리가 맥없이 늘어진다.
한적한 오솔길을 걷는다. 주변에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지만 괜스레 움츠러드는 느낌에 옷깃을 만지작거리고, 머리에 쓴 모자의 챙을 엄지와 검지를 통해 잡아 슬쩍 내린다. 시선이 간간히 꽂히는 게 느껴진다. 이러는 게 더욱 시선을 끌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정신이 없었다. 여기에 어떻게 왔었더라, 내가 왜 여길 걷고 있더라? 하나씩 되짚어가면서 생각을 해 보자. 쫓기는 도망자 생활을 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아닌가? 아니다. 아직 2년은 안 된거 같은걸. 그래, 아직 2년은 아니야. 그럼 1년하고도 몇 개월 정도? 그 정도일지도, 아니면 딱 오늘이 2년째인가? 날짜를 보면서 도망친 기억은 없으니 아닐지도 모르겠다. 잠깐, 너무 멀리 나갔다. 다시 돌아보자. 어쨌든 여기까지 도망쳤다. 그리고 붙잡혔다. 그리고... 만났다. 누구를 만났더라? 만난 사람이야 많지, 가만, 누구였지?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상태에다가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 지금까지 누가 계속 빤히 쳐다볼 리가 없는데도 시선이 느껴지는 거 같은데, 신경증? 하긴 깊이 잠을 잔 게 어제 하루뿐이었으니 그럴지도. 다시 돌아가자, 누굴 만났지? 아 맞아. 기억난다. 붉은 색의 꽃이 떠올랐다, 그리고 흰 제복도. 그제서야 고갤 숙여 내려다보니 흰 제복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꽃도. 진짜 꽃은 아니지만. 손에 낀 흰 장갑이 그제야 느껴지는 것 같다, 모자는... 이것도 제복에 포함되었던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 마주쳤었다. 붉은 에델바이스, 어떻게 알고 받아주겠다는 결정을 내린 거지? 아직 누가 여기에 있는지도 다 보질 못했다, 인사같은 걸 할 기회도 없었던 것 같은데 누군가 마주치면 어떡한담, 제복을 입고 있다면 일단 지금 소속이 같으니 인사를 하면 좋겠지, 그런데 뭐라고 인사해야 하는 거지? 내가 누구라고, 뭐라고 소개해야 하는 걸까.
쉴 새 없이 머릿속을 헤집으면서 반쯤 멍한 상태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걷는 걸음은 언젠가 멈추게 되어 있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보통은 타의로 멈춘다. 예를 들면.
쿵, 이든, 퍽, 이든. 뭔가 가는 길을 막고 있었거나, 아예 길이 아닌 것에 들이받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