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도 나름 타자는 빠르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타자 속도는 훨씬 더 빠르다고 에스티아는 생각했다. 저렇게 계속 필담을 나누면 자연히 빨라지는 것일까. 만약 자신의 세븐스를 사용해서 조작한다면 과연 뭐가 더 빠를까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당연히 티는 내지 않으며 에스티아는 떠오른 생각을 살짝 접어 마음 속으로 꾹 밀어넣었다.
"그래도 지장은 없을 것 같은데. 아무튼 거절한다면 알겠어요. 그 대신에 꼭 필요하면 얘기하기! 이 에스티아님에게 불가능은 없거든요. 에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에스티아는 자신의 두 팔을 허리에 올리고 특유의 잘난척하는 포즈를 취했다. 딱히 민망해하지도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푼 에스티아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물론 괜찮아요. 사실 이런 것은 저보다는 아스텔이 더 잘하긴 하지만, 아스텔. 보나마나 낚시하러 간 걸테고... 하지만 사실 이 마을 내부는 별 차이는 없는걸요. 음. 특별히 보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요?"
그래봐야 작은 시골 마을. 그렇게 넓진 않았고 시간을 들이면 금방 돌 수 있는 범위였다. 일단 그 중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를 물으면서 에스티아는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그러다 순간 뭐가 떠올랐는지 아! 소리를 내면서 이내 그녀는 질문을 던졌다.
머리의 반절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잘리기 전까지 이스마엘의 페이스 재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노이즈는 착실하게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이스마엘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날이 영 좋지 않은 것 같은 가위에 열중하고 있었다. 쌍둥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건 비극의 서막이다. 이스마엘은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지도 처음 알았다. 거기다 쌍둥이라니! 생명체를 처음 보듯 지레 흥분하여 자신의 처지를 잊었는지 이스마엘은 고개를 숙였다. 그게 화근이었다. 날이 들지 않는 것 같던 천덕꾸러기 가위가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고, 이스마엘은 자신의 머리카락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겪을 수 있었다. 당기던 힘이 가벼워지고 함께 잘렸다는 쌍둥이의 목소리가 공사 후 남은 자재만 남아있는 텅 빈 공터를 채웠다.
"반갑습니다!"
이스마엘의 굵게 땋인 머리는 반쯤 덜렁거리며 이 당황스러운 분위기에 박차를 가했고, 페이스 재머는 거기에 한술 더 떠 생체신호를 잡아 자연스럽게 머리 자체를 놀랜 얼굴의 이모티콘(😲)으로 바꾸었다. 이모티콘의 눈이 슬쩍 머리카락으로 향한다. 덜렁거리는 머리카락을 다시 꾹 쥐었다. 가위를 쥔 손은 허망하게 허공을 배회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에서 쌍둥이를 원망하느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인사에 신이 나서, 신기하단 말에도 아랑곳 않고 다시 이모티콘이 방글방글 웃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머리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까 했지만, 제 머리가 보이지 않으니 미용사 분께서도 힘드실 거라 생각해서 스스로 자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스마엘의 어조는 경쾌했다. 가위를 쥔 채 허공을 배회하던 손이 드디어 움직였다. 경례를 가볍게 해보이고, 뭉텅이가 되어버린 머리카락을 마저 가위로 자르려는 것 같았다.
"원래는 적당히 다듬으려 했는데, 이렇게 잘려버린 이상 새로운 스타일을 도전할까 합니다. 두 분께서는 어디에 가시던 길이십니까?"
혼자 자르면 조질 텐데도. 저 위험한 가위가 이스마엘의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단발은 처음이라 거지존이 뭔지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거울이 없어서 막 자르고 보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저대로 놔두면 머리카락은 머리카락(이었던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거울도 안 보는 이스마엘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지만.
에스티아님이라는 표현을 써서 그런 것일까. 에스티아가 아니라 에스티아님이라는 표현이 나오자 에스티아는 살짝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진 않은 것이었다. 아주 약하게 한숨을 내쉬는 와중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라는 말이 나오자 에스티아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연구소..지금은 못 들어가는데. 분명히 언니가 쫓아낼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괜히 오른발을 살짝 세워 땅바닥을 괜히 콕콕 찌르면서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 아리아로. 스메라기보다는 아리아가 더 예쁘잖아요. 호칭. 아. 그리고 고마워요."
자신에게 내민 목캔디를 고맙다는 인사와 받아들이며 그녀는 바로 먹진 않고 일단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 와중에 안내를 부탁한다는 필담이 보이자 에스티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나 엄청 기대받는 거 맞지? 그렇지? 맞지? 괜히 뿌듯함과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 를 외치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으며 에스티아는 열심히 표정을 관리했다.
"어, 어쩔 수 없죠! 이 에스티아. 이래보여도 에델바이스에선 최고참 중 하나니까요! 그러니까 안내해드릴게요!"
라고 당당하게 말을 하는 것은 좋았으나 어디로 가야 좋을지는 아직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적당히 두리번거릴까 생각을 하다가 그녀가 노래를 거론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그녀는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경쾌한 발걸음으로 장난스럽게 리듬을 타듯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오솔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다가 왼쪽으로 들어가니 거기에는 작은 노래방 하나가 있었다.
"여기가 노래방.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싶으면 여기로 오면 돼요. 어때요? 길 외우기 편하죠?"
그리 답하며 그녀는 피식 웃었다. 곤란한 표정에 외부 사정으로 가고 싶은 곳은 막혔구나-하고 생각하며 시선을 피하는 당신을 귀엽다는 시선으로 바라볼 따름이다. 당신이 목캔디를 받자 자신도 하나 꺼내서 자기 입에 쏙 넣는다. 그러며 패드에 가볍게 입력하고는 당신에게 다시 보인다.
'그럼 나는 에스티아라고 부를게요. 그 쪽이 더 귀여우니까'(필담)
당신에게 기대한다는 시선을 보이고는 당신이 안내하겠다고 하자 당신의 뒤를 따른다. 따라오라는 말에는 싱긋 미소를 지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것일까. 경쾌한 당신의 발걸음에 맞춰 타박타박하고 당신을 따라가며 당신을 놓치지 않는 정도로만 두리번거리며 주변의 풍경을 감상한다. 오솔길의 상쾌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쉬고 내쉰 다음 당신이 안내한 작은 노래방을 쳐다본다.
'노래방이라.. 확실히 좋은 곳이군요. 역시 에스티아!(엄지 척 이모티콘)'(필담)
노래방이라, 그리운 장소라고 해야할까. 그녀가 처음 능력을 자각한 곳도 노래방이지만 말이다. ...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서 별다른 추억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담담히 현실을 찌르는 목소리. 덜렁거리는 머리카락. 어색하고도 당황한 분위기 속에 쌍둥이는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도 반갑다는 의미였다. 인사를 하고 가만히 바라보던 쌍둥이가 제각기 다른 소리를 냈다.
"오." "와아-"
신입 씨의 머리가 이모티콘이 됐다! 라는 말이 함축 된 반응이 쌍둥이로부터 흘러나왔다. 입모양은 다르지만 깜빡이는 눈의 모양은 같다. 한차례 놀란 쌍둥이는 둘이 똑같이 엉망이 된 머리에 눈이 갔다. 저건 뭐라고 해야 할까. 몰라아. 쌍둥이는 다시 눈을 굴려 웃는 얼굴- 이모티콘을 보았다.
"보이지 않아서 힘든 건 너도 똑같은 거 같은데." "너어- 머리 엄청나아. 옛날 옛날 라라 머리 같아아-" "니가 잘라서 그렇잖아." "어라, 그랬나아?"
데헷? 에휴. 능청을 떠는 레레시아와 체념하는 라라시아. 둘은 또다시 가위를 움직이려는 신입 씨를 향해 말했다. 질문을 받았으니 대답도 해야 하고 말이다.
"우리- 여기서 간식 먹으려고 했지-?" "그런데 오니까 네가 있었고."
어디에 가던 길이냐는 말에 먼저 대답을 하고, 라라시아가 말을 보탰다.
"그대로 혼자 하면 머리카락이 아예 없어지겠는데. 도와줄까?" "아, 맞아아. 우리 오늘 비번- 이니까- 도와줄게에?" "물론 얘가." "엑?"
움찔하는 레레시아를 뒤로 하고 라라시아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항상 서로 머리 만져주니까. 간단한 커트 정도는 해. 네 머리 그래보여도 만질 수는 있는 거지? 그럼 정돈은 해줄 수 있을 거야. 불편하면 그냥 갈 거고." "느에엥.. 음- 그러니까, 해줄까아?"
서로 손질해준다, 는 말처럼 쌍둥이의 머리는 서로 길이는 달라도 컬도 스타일도 잘 살아있었다. 맡기면 어느 정도 수습은 되지 않을까. 해줄까 라고 묻고 쌍둥이는 똑같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길이가 다른 복실복실한 백발이 살랑거렸다.
적당히 그녀에게 맞추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로 그녀의 뜻 그 자체였으니까. 정확히는 이 마을 자체가 에스티아에게 있어서는 좋아하는 장소였다. 이곳은 세븐스도, 비능력자도 서로 미워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 아니던가. 자신이 그토록 바라는 그런 마을이었다. 그야말로 에델바이스의 이상이 그대로 실현된 작은 낙원이었기에.
"제가 좋아하는 곳은 이 마을 그 자체에요. 이 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면 세븐스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통제받고 심하게는 노예처럼 살아가잖아요? 하지만 에델바이스가 관리하고 있고, 에델바이스의 멤버들이 만든 이 마을은 그야말로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에요. 아예 내부에서 싸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거야 다른 곳들도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다른 곳들도 모두 이 마을처럼 된다면 좋을텐데. 사실 그것을 위해서 에델바이스가 활동하는 것이지만. 그리고 자신이 이번에 직접 개발하고 보급하게 될 그 '물건'이 반드시 큰 도움이 되리라 그녀는 믿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지금은 닫혀버린 자신의 연구소를 떠올리며 에스티아는 괜히 발을 동동 굴렸다.
"제일 좋아하는 곳은 아지트에 있는 연구소인데... 방금전까지도 연구를 하다가 이제 좀 쉬라고 쫓겨났거든요. ..으. 언니 미워. 아무튼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갈 수 없어서요. 아리아라면 이런 곳을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어서. ...노래 때문에 뇌파 사용 기기도 거부하는 거잖아요?"
자신의 생각이 맞을지, 틀릴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래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아리아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고 머리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계를 만지고 싶고 이것저것 만들고 싶고 연구를 하고 싶은 것을 어쩐단 말인가.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재밌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언제부터 이랬는진 자신도 알 길이 없었으나 그럼에도 만지고 싶다는 충동은 꾹 참으면서 에스티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그 순간 들려오는 짧은 음에 그녀는 귀를 쫑긋했다. 목소리. 예쁘다. 그리고 들려오는 필담이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
"우와. 노래 잘 부르시네요. 하지만 대화하고 그런다고 목에 큰 지장이 생기진 않을텐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녀가 그렇다고 하니 에스티아는 납득하기로 했다. 아니. 내면으로는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자신이 고집을 부려봐야 뭐하겠나. 그 대신에 에스티아는 그녀를 바라보며 부탁하듯 이야기했다.
"그러면 아리아. 다음에도 노래 들려줄 수 있어요?"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에스티아는 일단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다면 이번엔 어디로 갈까. 아. 거기도 괜찮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또 앞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언덕을 살짝 올라 마을 외곽 쪽으로 향했다. 거긴 평소에 아스텔이 낚시를 즐기는 아주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허나 오늘은 다른 곳에 있는지 아스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 대신 아주 커다랗고 평화롭고 맑은, 그 밑바닥이 보이진 않지만 정말로 투명하고 맑은 호수만이 그 곳에 있었다.
"이 호수도 좋아하는 곳 중 하나에요. 동료 중 하나가 여기서 낚시를 즐겨서 가끔 볼일이 있으면 부르러 오거든요. 오늘은 없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아요? 맑고 예쁜 호수의 모습 말이에요."
컨디션이 괜찮을 때면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했으니 컨디션이 좋은 날이 많아지기를 에스티아는 자연히 바랬다. 물론 억지로 요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래를 제대로 듣고 싶은 것을 어쩌겠는가. 목이 좋아지는 약 같은 것은 자신이 만들 수 없었으니 나중에 의료부로 가서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의료부에 조금 까칠한 여성이 있지 않았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쪽도 인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무튼 호수에 오고 난 이후 아리아가 보이는 필담에 에스티아는 괜히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미소를 헤실헤실 지었다.
"저, 저 같다니요. 농담도 참. 그렇게 예쁜 것도 아니고 저보다 예쁜 사람은 많은데. 아리아라던가."
이내 그녀는 아리아를 손으로 콕 가리켰다. 물론 애초에 외모나 그런 것은 사람들마다 상대적인 것이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리아도 충분히 예쁘다고 생각했다. 물론 호수 같은 이냐고 하면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예쁜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그리고 자신이라고 해서 호수 같은 이미지인 것도 아니고. 굳이 말하면 역시 자신은 공순이 쪽이 어울리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괜히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꺄르륵 미소를 터트렸다.
"가, 가이드 상이요? 만족을 했으면 좋겠지만... 아직 안내할 곳은 많은데. 음. 오락실도 있고, 젖소를 키우는 목장도 있고, 가볍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도 있고..."
어차피 할 것도 없었다. 그 모든 곳을 하나하나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에스티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환하게 웃었다.
"장소가 장소에요. 이러다가 아예 영영 헤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고, 앞으로도 만나면 친구처럼 지내줘요. 아리아.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