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시 렌을 바라보았던 코로리는, 렌의 표정이 살풋 찡그려지자 못 웃어서 설명하려고 한건데 더 찡그려졌어! 가만히 그 표정을 바라보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답을 했다.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고 바보짓이라고 뭉그러뜨렸지만, 괜히 한 말은 아니었다. 정말 바보짓을 해버렸다고 생각한 코로리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게 되어서 다시금 고개를 폭 숙였다. 저보다 더 아파하고 걱정하는게 미안한 와중에 고맙고,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신을 걱정하는 인간이라니, 아파도 다쳐도 인간이 더하면 더할텐데! 코로리는 다쳐도 덜 다친다고, 덜 아프다고 조심치 않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까지 또렷하게 해본 건 처음인 듯 느꼈다.
"보기 안 좋을 것 같아서 붙인 거니까 괜찮아! 별로 아무 느낌도 안 들구, 금방 나을거야."
렌이 손을 감싸오자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아프지 않단 말이 거짓인 건 아니었고, 그저 오늘 꿈을 신경쓰여해서 또 반사적으로 그런 것뿐이었다. 코로리는 멀쩡하단 듯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이더니, ……렌 씨가 못 웃는게 더 아파. 차마 그렇게 말하지는 못하고 우물거린다. 대신 다른 말을, 목소리를 낮춰 속삭거리며 웃어보인다.
"신이잖아."
그러고서 코로리는 꼼지락거리면서 렌의 손을 쥐려 했다. 어째 처음 렌의 손을 잡았던 그 동굴에서보다 더 어색했지만.
얼버무리는 말은 이에 대해 더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렌은 더 말을 얹지는 않았다. 그저 양 손으로 코로리의 손을 조심히 보듬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제 손이 닿자 움찔 떨리는 것은 정확히 느낄 수밖에 없었기에 그것도 의아했다. 아프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은 아닐 터였다. 코로리는 거짓말에 서툰 편이었으니까. 손을 다친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 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이의 감정에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성정은 어쩔 수 없이 코로리에게는 더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하지만 뒤에 이어오는 신이잖아, 라고 하는 말에는 어쩔 수 없이 살짝 멈칫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다른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오늘 꿨던 꿈이 생각나서 였을까. 고양이라서 안된다고 했던 것은 사실은 그 의미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가끔씩 치켜드는 불안이, 그러니까 코로리가 신이기 때문에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었으리라. 코로리가 제 손을 잡아오자 렌은 나직하게 말했다.
"신이든 신이 아니든....... 그건 저한테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저는 코로리씨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싫고, 걱정되고 그런 거니까."
렌은 코로리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겨 안았다. 밀어내든 움찔거리든 상관 없이 그저 끌어안았을 것이었다. 힘을 주어서라도. 다른 이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목이라 꽤나 조용한 공간에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렌은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코로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곰곰히 곱씹고 나서야 그 이야기를 할 뿐이었고, 그리고 자신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조금 음습하고 끈적거리는 느낌이었기에 맑고 깨끗하게만 보이는 코로리에게 그 단어를 건네는 것이 미안한 탓이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코로리는 여전히 신이었고, 셀 수도 없는 시간을 흘려보내왔으며, 맞이하고 있다. 인간 세상에서 함부로 정체를 밝힐 수도 없으며, 신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 또한 숨기고 지내야 한다. 오늘 밤도 잠에 들지 않고서 모두의 잠을 지켜보다가 아침이 터올 때서야 눈을 감을 것이고, 잠깐의 휴식이 끝나 다시 눈을 뜨면 아무도 맡지 못하는 향을 쫓아다닐 것이다. 근데 달라지고 말았다. 렌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인간계에 내려오며 만든 얼기설기 지은 이름으로 저를 부르는 제 연인 때문이었다. 평범한 인간 여자아이가 되고 싶다는 눅눅한 마음을 통째로 부정당해버리고 말았다. 신의 사랑은 부담스럽고 무거울 거라며 같은 시간 속에서 같은 무게로 있고 싶었단 생각이 목적을 잃었다. 이 반짝거림이, 맑은 소리가 울리는 기분이 후링이 아니면 무엇일까. 코로리는 정말로 기뻐서, 고맙다고, 이제부터라도 다치지 않게 힘내야겠다거나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바보같이 그런 것도 모르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꼭 하고 싶었다.
"잠, 렌…!"
렌 씨, 하고 다 부르지도 못한 이유는 힘을 주는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코로리가 어떻게 입을 여는게 좋을까 입술만 달싹거리던 사이에 손목을 잡아당겨지니 끌려가게 되었다. 코로리는 놀라 당황해서 작은 틈을 벌리고, 렌을 바라보려고 했고 그러면 렌도 놓아줄 거라 생각했다. 아까만 해도 뒤로 한발자국 물러났을 뿐인데 뻗었던 손을 내린 렌이니까,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힘을 주어서 안아버리니 코로리가 벗어날 방도는 없었다. 신의 힘 같은 걸, 렌에게 또 다시 함부로 쓰고 싶을 리는 없으니까.
"렌 씨?"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이번에는 코로리였다. 힘을 주어서 안고있는 것도 그렇고, 저를 사랑한다고 했다며 하는 말도 그랬다. 꼭 사랑을 확인하는 듯한 말에 코로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렌을 올려다보았다. 사랑한다는 말에 마냥 행복해하기에는 정확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없지만 그래도 딱 한가지, 렌이 불안해한다는 것은 알겠어서, 코로리는 손에 걸려있던 가방을 발치에 조심히 툭 내려놓았다. 그리고 둘 사이에 빈틈이라고는 존재하지 않게 있는 힘껏 렌을 꼭 끌어안았다. 불안해하는 이유가 있다면, 분명 저 때문일텐데 어떻게 해야 괜찮아질지 모르겠어서 나뭇잎과 바람 스치는 소리 마저도 시끄러운 듯 했다.
"사랑한다고 말해도 되는지 물어봤었어. 나도 렌 씨 거냐고 물어봐서, 응, 이미 렌 씨가 가져갔다고 했어. 렌 씨한테 올 거냐고 해서 지금처럼 안았잖아."
팔에서 힘을 풀지 못하고 조곤조곤 늘어놓는 목소리는 조금 떨리는 것도 같았다. 렌을 아프게 해버린건 아닐지 겁이 나서였다. 코로리는 느지막히 다시 렌을 올려다보았다. 전부, 전부 렌 씨를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그랬어. 그리고 지금은, 그 때보다 마음은 더 커졌는걸. 그렇게 속삭인 코로리는 렌의 표정을 살피려 했다.
코로리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에게 닿는 것을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멋대로 끌어안은 것은 단지 제 욕심 때문이었다. 늘 보고싶고 닿고싶은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참고 참고 잘 참아서 착한 아이이고 싶은데, 코로리가 자신에게 약한 걸 아니까 그걸 이용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마주 안아오는 작은 몸짓에 좀더 안심해 버리게 된다. 그리고 나직하게 달래주는 말에 불안감은 사르르 녹아 잠시 자취를 감춘듯 하다.
"응. 나도요."
자연스럽게 팔이 풀리고 미소 띈 얼굴로 되돌아간다. 자신도 전보다 마음이 더 커지고 있어서 큰일이었다. 이보다 더 커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매일매일 계속 커져만 간다. 그리고 숙였던 몸을 일으키려다가 코로리의 눈가에 입맞추려고 한다. 이에 코로리가 피한다면 멈추겠지만 조금 항의하는 듯한 부루퉁한 표정이지 않을까.
렌의 팔이 풀리고, 조심스레 살펴본 표정은 미소를 띄운다. 코로리도 그런 렌을 보고서야 떨림이 풀린 듯 헤실하게 웃는다. 피었다! 구름 가고 햇님이야. 코로리는 안고 있던 팔을 놓기 전에 렌의 품에 다시금 쏙 파고들더니 뺨을 부비적거렸고, 그러고 나서야 팔을 풀었다.
"바보같은 말 해서 미안해. 안 다치게 조심할게! 힘낼게! 고마워어."
상기된 뺨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도도도 늘어놓던 코로리는, 자, 잠깐만! 머릿속에 비상이 걸렸다. 숙였던 몸을 일으키는 줄로만 알았던 렌이 입맞추려는 듯 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꿈속 내용이 오버랩되어 덮어 씌여지고, 다급하게 렌을 막으려고 했던 코로리는 두 손을 렌의 입술 위에 올리려고 했다. 얼굴이 이상할만치 새빨갛게 익어버렸다. 이미 입맞춘 적도 있는 사이에 눈가에 뽀뽀하는게 무슨 일이랍시고 이렇게나 부끄러워하는지 수상할 만큼! 손으로 렌을 막지 못 했더라도 피해버렸을 코로리는, 렌의 부루퉁한 표정에 무슨 말도 못하고 쩔쩔 매고 있을 뿐이었다.
코로리의 말에 렌도 덧붙인다. 코로리가 먼저 안기고 품 속에 부빗거리기도 했으니 이제 괜찮겠거니 했는데....... 오산이었다. 입맞춤이 코로리의 손에 의해 막혀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변명에 렌의 눈이 가늘어진다. 입을 막은 작은 손을 떼어내어 잡는다. 혹시 모르니 평소보다는 코로리의 손을 약하게 잡고서는 몸을 마저 일으킨다.
"코로리 씨, 거짓말 엄청 티나는 거 알죠?"
그럼에도 방금까지의 사랑한다는 말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말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평소보다 더 빨갛게 올라오는 뺨은 왠지 부끄럼을 타는 것 같았기에 더더욱. 하지만 렌의 인내심이 어느정도까지 버틸지는 모르는 일이다.
"일단 올라가요. 이러다 영영 못 올라가겠어요."
작은 웃음을 흘리며 하는 말에는 이전까지의 불안감은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닿지 못하는 것에 불만은 조금 있을지언정 말이다.
오늘 가기로 한 계곡은 코노에가 놀기 좋다며 알려준 곳이었다. 외진 산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보일 계곡은 동글동글한 돌들이 잔뜩 깔려있고 앉아있기에 좋은 깨끗하고 너른 바위가 있을 것이었다. 발목만 적실 정도의 계곡물은 위로 올라갈 수록 점점 깊어졌다가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발이 닿지 않을 정도의 깊은 물과 폭포가 있다고 들었다.
막으려고 하긴 했지만, 근데, 진짜 막아버렸어—! 머리가 하얗게 번지는 듯한 느낌을 받은 코로리는 우물쭈물 렌의 가늘어진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내렸다. 쩔쩔 매고 있는 표정을 감추지도 못해 눈썹이 추욱 처져 있었다. 렌이 몸을 마저 일으키자 그제서야 다시 눈을 맞출 수 있도록 마주 보았다. 벌써 귀까지 화끈거리는게, 꿈의 내용을 절대 렌에게 말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 꿈을 꿨다고 렌이 싫어하면 어쩌나 싶었다.
"티 나도, 모른 척 해주면 안 돼…?"
고개를 끄덕거리고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코로리는 앓듯이 한 마디를 꺼냈다. 그리고서 꿈 얘기는 하지 못해도, 이유는 알려줘야 한다고 느꼈는지 나 오늘은 많이 부끄러워서, 렌 씨가 닿으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그렇게 말하면서 렌이 잡고 있는 쪽의 손을 심장께로 올렸다. 얼굴이 유달리 붉어진 만큼이나 심박도 빨랐다!
"아, 응! 응, 거북이 닮은 토끼 하자."
비어있는 손은 발치에 내려뒀던 가방을 다시 들었고, 렌이 약하게 잡고 있는 손을 평소처럼 쥐었다. 그렇게 약하게 쥐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그러고서 산길을 오르게 되면, 운동 부족의 신이 지친 소리하기 전에 계곡이 시야에 들어왔다. 물 냄새와 숲 사이에 비추는 햇살이 물 위로 비춰 반짝거리는 걸 느끼니 바로 렌을 바라보았다. 렌 씨 물 좋아하니까!
감기는 아닌 것 같은데 비염이 있어서……… 왠지 비염이 슬슬 난리치는 거 같아 。゚(゚´ω`゚)゚。 봄이 온다는 뜻이겠지……… ( ◠‿◠ ) 생각해보면 렌한테 뿐만 아니라 코로리한테도 뽀뽀 못할거 같지? ㅋㅋㅋㅋㅋ큐 렌한테 하려고 하면 코로리가 막구…… 코로리한테 하려고 하면 코로리가 렌씨 아니면 안돼! 이럼서 막을 거 같단 생각이…… (*´ー`*)
모른척 해달라는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가 이내 많이 부끄러워서 그렇다며 제 손을 가슴 위로 올리는 것에 렌은 차마 손을 빼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귓가가 발개진다.
"아, 알겠어요."
평소처럼 손을 잡는 코로리처럼 다시금 코로리의 손을 고쳐잡고는 산길을 오른다. 산은 청량한 느낌이 났고 여름 내음이 맡아졌다. 마치 작년 마츠리에서 동굴로 가기 위해 산을 올랐던 그런 느낌도 들었다. 지금은 환한 낮이라는게 달랐지만. 그렇기에 더 대조되어 생각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물소리가 들리고 계곡에 도착했다. 맑은 물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어서 표정이 더 부드럽게 풀린다. 코로리 쪽을 내려다봤다가 눈이 마주치자 이내 웃었다.
"일단 자리부터 펼까요?"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자갈들 위에 돗자리를 피고 가방 등을 올려두는 등 정리는 금방 끝났다.
"코로리 씨 손에 물 닿으면 안 되는거 아닌가, 걱정되는데....."
흐음..... 렌이 코로리의 손을 보며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물론 자신이야 별 상관 없이 몸을 막 쓰고 했으니 크게 신경 안쓰긴 했는데, 코로리도 신이니까 괜찮은 것일까? 고민한다.
코로리는 렌의 헛기침이, 귓가가 발갛게 올라오는게 어째선지 짐작을 하지 못 하고 있다가 아, 나, 나 지금………! 눈치채자마자 굳어버리고 말았다. 부끄럽고, 민망하고, 낯간지럽고, 눈을 꼭 감고서 뻣뻣하게 손을 내렸다. 이게 목각인형인지 마네킹인지!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것 같아서 코로리는 숨을 길게, 길게 들이마신 후에 잠시 숨을 참고, 그 후에 다시 길게 내쉬면서 숨을 골랐다. 자신이 이렇게 놀라고 당황했으면 렌은 어떨까 싶어서 진정하려고 애썼다!
"…미안해애, 놀랐지."
해야할 일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산길을 올라야한다던지, 그렇게 계곡으로 가기로 했다던지. 아무것도 안 하고서 서 있어야 했더라면 어색하게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계곡에 도착하여 렌을 올려다봤을 때 눈이 마주치면 부드러이 웃을 수 있었다. 자리부터 펴자며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방긋거릴 수도 있었고.
"아냐, 괜찮아! 진짜루."
코로리는 내려놨던 가방을 열더니 뒤적거려 방수 반창고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미 손가락에 붙어있는 것도 방수였고, 두세번 정도 손을 잼잼 꼭 쥐었다 폈다 해도 통증은 잘 모르겠었다. 괜히 다쳐서, 나 때문에 렌 씨 못 놀면 안 되는데! 코로리는 렌의 손가락 하나만 조심스레 쥐려고 했다. 눈을 둥글게 뜨고서 눈썹을 살짝 늘어뜨린다.
렌의 알겠다는 대답에 언제 눈썹을 늘어뜨렸냐는 듯이 활짝 웃은 코로리였다! 이래서야는 일부러 눈썹을 늘어뜨렸단게 티나버리는데, 그것도 숨길 생각을 전혀 못하는 듯 했다. 그저 해맑게 렌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일 뿐이다. 코로리가 물놀이 때마다 양갈래로 땋았던 건, 물에 젖고 실컷 논 후에도 그나마 덜 망가지는 헤어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런저런 일들 덕에 준비 시간이 지체되고 지체되어서 하나로 묶어 올렸지만! 렌 씨가 땋은 머리가 좋은 거면, 매일매일 땋고 다닐 수 있는데!
"응, 완전 괜찮아! 괜찮다 못해 너ー무 좋아!"
상상도 못한 말이었다! 코노에에게 물어서 배워가며 머리를 땋아줄 거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 코로리는 누군가 머리카락 빗는 것을 좋아하고, 만지는 것을 좋아해서 그걸 렌이 해주겠다 하면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코로리는 바로 리본을 묶어둔 붉은 끈을 풀어버렸다.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카락들은, 아니, 하얀 머리카락들은 보기에도 결이 좋아보였다. 반짝거리며 여러 색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눈 깜빡하면 다시 검은색이었다. 코로리는 장난기 어린 채 개구지게 히히 웃고 있을 뿐이었다. 인적이 드물다지만 겁도 없다!
"잘 부탁해! 팔 아프면 말하구? 꼭이야!"
렌의 손을 잡고 끌어 돗자리에 앉으려고 한 코로리는 렌에게 뒤를 보이도록 자리를 잡고서 앉았다. 아무래도 머리를 땋아주려면 등을 보이는 편이 더 편할테니까. 검은 머리카락들은 앉은 자리에 조금씩은 끌리고 있었다. 팔 아프면 꼭 말하라는 말을 왜 덧붙였는지 알 수 밖에 없는 길이였다.
코로리의 좋아하는 반응에 렌은 배워온 보람이 느껴져 조금은 뿌듯했을지도 모른다. 살짝 긴장했지만 허락을 받았으니 첫 관문은 넘어갔다 싶다. 하지만 코로리가 리본을 풀면서 인간으로서의 변장도 풀어버리자 놀라 버리는 바람에 긴장도 확 풀어져 버렸지만.
렌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흰 빛에 안도하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이 없는지 살폈다. 물론 사람이 없으니 이런 장난을 쳤겠지만.
"코로리 씨...... 물론 하얀 코로리 씨도 좋아하지만. 그렇지만. 밖에서는 자제해주세요....."
코로리의 손에 이끌려 돗자리로 가는 렌의 하소연이다. 놀랐다며 남들이 보면 어떡하냐며 작게 잔소리를 덧붙이며 렌은 코로리의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네에. 코로리 씨도 혹시 머리카락이 잡아당겨져서 아프거나 하면 바로 얘기해주세요."
뒤에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이 까만 밤을 닮아 코로리 같았다. 반짝이는 흰 빛의 머리카락도 마치 꿈결같아서 코로리와 잘 어울렸다. 어떤 모습이든 사랑스럽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다.
렌은 일단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코로리의 목 부근에서 머리카락을 살살 그러모았다. 부드럽게 잡히는 검은 머리칼의 감촉이 간질간질하다. 흰 목덜미 사이의 머리카락도 손가락으로 쓸어 한 손 위에 올리고 다른 손으로는 손가락을 세워 코로리의 정수리부터 목덜미까지 살살 빗어내린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모아진 머리카락을 반으로 가른다. 미술 실력은 정말 형편 없지만 기본적인 손재주는 있었기에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을 터였다.
렌은 숨도 조심스럽게 쉬면서 꽤나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다. 어머니와 연습할 때는 몰랐는데 코로리를 대상으로 하니..... 뭔가 머리카락을 만진다는 게 꽤나 짙은 스킨십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제 마음가짐의 문제이겠지만...... 목덜미에 닿는 손끝이라거나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흰 피부라던가........ 정신차리자. 더 생각하면 이건 신성모독이야.
놀란 렌 씨 귀여워ー! 일부러 놀래키기 위해서 감추고 있던 머리카락 색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지만, 의도치 않게 깜짝 놀래켜버린 듯 했다. 잠깐 비추었다가 다시 감췄으니 혹시라도 본 사람이 있더라도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코로리였기 때문에, 렌의 하소연을 듣고서 바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밖에서는 자제해달라는 말은 지켜야하는 것이기도 했고, 렌을 깜짝 놀래키고 싶지 않았고! 겨울에는 아예 드러내놓고서 있었던 탓에 놀란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 코로리는 렌에게 등을 보이고서 앉기 전에 잠시 렌을 마주하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괜찮다는 듯, 놀란 걸 달래주려는 듯이 렌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 토담토담 쓰다듬어주려고 였다!
"응! 다 땋으면 끈 줄게."
코로리는 아까 전까지 리본 매듭으로 묶여있던 붉은 끈을 손에서 쥐었다 폈다. 분명 하나였던 끈이 두개로 늘어난다. 코로리는 이제 얌전히, 혹시 렌에게 방해될까봐 고개도 가만히 두려고 했다. 가만히 있으니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와 초입부터 들려온 바람과 나뭇잎 소리가 싱그러웠다. 그런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해서, 렌이 머리카락을 넘기고 쓸어내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코로리는 왠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카락을 다른 사람이 만지는 일이 드물었던 것도 아니고, 없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쌍둥이와 같이 살던 시절에는 세이가 머리도 자주 빗어줬는데!
"렌 씨가 땋아주는 거, 뭔가 많이 간지러. 강아지풀같아."
코로리는 웃음을 참으려고 하는 거 같더니 결국은 조금 소리내어서 웃어버렸다. 머리카락에 닿는 손길로 확실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심스러워하고 있다는게 전해져와서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
"다 땋고 나면, 나도 렌 씨 머리카락 땋아줄까?"
목소리는 장난기 어렸지만, 아까 전에 작게 웃어버린 것도 그렇고 괜히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하고 있었다. 웃어서 몸이 흔들렸다거나 무심코 렌을 돌아본다거나 할 것 같아서.
하얀 코로리는 나만 보고 싶다고 하면 좀, 이상하려나. 욕심부린다거나 집착한다거나 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사소한 부분에서도 자기검열을 해버린다. 자신의 머리를 쓰담쓰담하는 코로리의 모습에 웃으며 얌전히 있지만 속마음으로는 코로리의 손바닥에 입술을 묻고 작은 체구를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오늘 코로리는 무슨 이유에선지 부끄럼을 많이 타는 중이니까 분명 제지당할테지만.
코로리는 제 마음도 모르고 머리카락을 만지는 동안 어린아이처럼 들떠하는 것이 느껴졌다.
"코로리 씨 머리카락이 더 강아지풀 같아요."
조금은 긴장이 풀렸을까. 머리를 땋는 것에는 조금 속도가 붙었다. 사실 힘조절이 잘 되지 않아서 좀 삐뚤빼뚤한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제 머리카락도 땋을 부분이 있어요...?"
남들보다 살짝 긴 편인 머리카락이었지만, 땋을 수 있다니 놀라운 사실이다.
렌은 한쪽 머리카락을 다 땋아 코로리에게 끈을 건네받으려고 했다. 무사히 받았으면 한쪽 머리카락을 잘 묶어 코로리의 앞쪽으로 넘겨주지 않았을까. 그리곤 나머지 반대쪽을 땋으려 했을 것이다.
강아지풀 갖고 노는 강아지! 코로리는 강아지 귀나 꼬리가 달린 렌을 생각했다가, 까르륵 웃어버리고 말았다. 잘 어울린단 생각을 했다면 실례일까 싶다. 렌이 강아지가 되겠다면 강아지풀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까지도 들고.
"응! 머리카락을 조금 넘겨서 땋아야 하지만 할 수 있어ー!"
앞머리를 살짝만 집어 옆머리와 넘겨서 같이 땋으면, 흔히들 벼머리라고 부르는 방법으로 땋으면 길게는 아니어도 땋을 수는 있었다. 코로리는 렌이 끈을 건네받으려고 하면 뒤로 넘겨서 끈을 건네주고, 앞으로 넘어온 땋아진 한 갈래 머리카락을 꼭 쥐었다. 삐뚤빼뚤한 느낌이 묻어나서 귀엽기만 했다. 머리 땋는 시간이 그리 긴 것도 아닌데 왜 렌이 보고 싶은지, 땋아준 머리카락만 만지작거렸다. 그것도 렌이 땋아준걸 헝클일까봐서 조심스럽게.
"나 오늘 머리 안 풀래!"
수줍은 기분이 넘실거려서 여름인데 봄같은 기분이다. 반대쪽 머리카락도 땋아지는 느낌에 귀기울이듯 집중하고 있다가, 렌이 끈을 필요로 하면 건네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다 땋아진 머리카락이 제대로 묶이게 되면 코로리는 뒤로 넘어지면 렌 씨지! 뒤로 몸을 살풋 기울였다. 아마 렌의 품에 톡 등기대는 모양새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잘못해서 콰당 넘어지면 어쩔런지, 방글방글 해맑기만 했다!
코로리는 저에게 강아지냐고 물으며 웃음을 터트렸지만 렌의 입장에서는 차마 강아지 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꿈이 생각난 탓이다. 본래 꿈이란 시간이 지나면 흐려져야 하는데 왜이리 신경이 쓰이는지. 아무래도 코로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헤어지자고 한 게 나름 충격적인 꿈인 듯 했다. 음.... 다시 생각해도 충격적이긴 하다.
"아뇨..... 강아지 안할 거에요."
조금은 시무룩한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이런 머리카락도 땋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모양이었다. 삐뚤빼뚤하게 땋아진 머리카락을 보면서도 기뻐하는 코로리의 모습에 렌은 미소를 지은 채로 나머지 머리카락도 땋기 시작했다.
"코로리 씨가 좋다면 저도 좋아요."
제 머리를 땋는 것이든 코로리의 땋은 머리카락을 풀지 않는 것이든 코로리의 뜻이 곧 제 뜻이었다. 물론 안 되는 것이라면 안 되는 것이겠지만.
집중해서 나머지 머리카락도 다 땋자 잘 묶어서 코로리의 어깨 앞으로 보냈다. 뭔가 뿌듯한 기분을 느끼는데 코로리가 장난스럽게 몸을 뒤로 기대었다. 렌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코로리의 허리에 양 팔을 감아 뒤에서 끌어안았다. 심지어 팔에 힘을 주어 양반다리로 앉은 렌의 발목에 코로리의 몸이 닿을 정도로 바싹 당기려고 했을 것이었다. 두 몸이 꼭 밀착되게끔 말이다.
코로리가 부끄러워 할 것 같지만ㅡ아니, 끌어안는 것 까지는 허용일지도 모른다ㅡ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그런가 더 어리광을 피우고 싶어졌다.
목소리가 시무룩해! 태엽 다 돌린 인형이야ー! 뒤돌아볼 수 없으니 렌이 무슨 표정을 짓는지 볼 수 없다. 렌이 머리를 땋아주고 있는데 휙 움직여버리지는 못 하고, 그렇다고 렌의 목소리가 신경쓰이지 않는 것도 아니고. 코로리는 무슨 말실수를 했나 싶었다. 아무리 귀여워하는 의미라고 해도 강아지라고 비유하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 싶고 안절부절해진다.
"그럼 렌 씨도 땋아줄래."
코로리가 먼저 장난을 치긴 했지만, 금방 돌아 앉아서 렌의 머리를 땋아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허리를 감아오는 팔에 멈칫거리면 이미 렌에게 꼭 안겨있었다! 부러 벗어나려고 버둥거린다거나 힘을 줘서 버팅긴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몸이 덜걱 굳어버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심장이 폭탄이었으면 이미 펑펑 터졌어! 여전히 렌을 마주보기는 어려운 자세였지만 부끄러워한다는 건 금방 들킬 것 같았다. 귀도 뜨겁고, 심장도 빠르게 잘 뛰고 있고,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거기다 이렇게나 꼭 붙어있는데 몸이 굳어있는게 안 느껴지기도 어렵겠다.
"이러면 못 땋잖아ー."
계속 굳어있으면 렌이 불편해할 것만 같아서, 코로리는 애써 떠오르는 꿈의 내용을 저 멀리 쫓았다. 렌이 땋아준 머리카락을 꼭 쥐고서 초조함을 밀어냈다. 하나도 아무렇지도 않아, 꿈 때문에 앓는 잠의 신이 어딨어! 부단히 그렇게 생각하면, 되려 더 부끄러워지는 것도 같았지만 어찌저찌 몸에서 힘을 푸는데는 성공했다. 너스레 한 마디와 함께 겨우 렌에게 편히 안길 수 있었다.
카페인은 원래두 잘 안 먹어 ( ´∀`) 카페인이랑 몸이 안 친해갖구…… 소화불량 느낌이라 가볍게 샐러드 먹었다구~! 늦었지만 렌주도 점심 잘 챙겼어야해!!!! (`・∀・´)
맞아~!!! 둘이 이런건 알면 싫어할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절대 말 안하구 숨기려구 하니까 (*´ー`*) 이런것까지 닮아서는 모두가 너희를 커플이라고 밖에 생각안해…… (?) 코로리……… 잠의 신이고, 꿈은 언제나 시간 흐름이 모호하니까 더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구? (*´꒳`*)
코로리가 당황해서 뱉은 말에 렌은 이 상황이 조금 우스워서 작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전에는 햄스터에 친칠라 이야기를 듣기도 햇는데 강아지라고 해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지만서도.
머리를 다 땋고 끌어안자 코로리는 금새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것에 안심하고 꼭 끌어안고 있는다. 코로리는 자신을 싫어하지 않으니까,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니까, 잠시 어떠한 일로 인해ㅡ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ㅡ 잔뜩 부끄러움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기껍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자신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건 나중에 해도 괜찮잖아요."
조금은 편하게 기대는 코로리의 귓가에 평소보다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나직하게 속삭인다. 평소에는 단 둘이 있을 시간이 거의 없으니까 이렇게 끌어안고만 있을 시간은 소중하다. 조금은 익숙해진 코로리의 포근한 향이 좋았다.
앓는 소리도 내지 못 하고 끄응 앓는다. 평소 같았으면 아예 방향을 틀어 렌을 마주 안아주고도 남았을 거란 걸 알아서, 이미 렌이 입 맞추려는 걸 막아버리기도 했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은 거짓말이란 게 바로 들통났고. 내가 이상한거야, 렌 씨도 당황했을 거라구.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 같은 기분일텐데! 렌이 땋아준 머리카락을 쥐고 있던 손은 우물쭈물 움직이더니, 저를 안고 있는 렌의 손 위에 조심스레 포개두었다. 코로리의 손은 답지 않게 따뜻했다.
"응?"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 무슨 말? 언제부터?!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고, 신경 쓰이는 건 신경 쓰이는 것이었다. 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었다는 건, 무슨 이유든지간에 말하기 곤란해서 하지 못 했던 말이라는 뜻이다. 코로리는 렌이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서 참고 있었다 생각하니 말해도 괜찮은데! 마음이 쓰여서 자세를 바꾸고 싶었다. 적어도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제 표정이 재촉하듯이 보이면 어떡할까 싶어서 그러지는 않았다. 뜸을 들이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저 렌의 손등 위를 토닥거렸다.
"언제든지 기다릴테니까, 하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해도 돼!"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말 못하겠단 기분이 들 수도 있는 거니까, 기다릴 자신 있다! 다만 신경쓰인다면야 무슨 말을 하고 싶길래 하지 못하고 지금도 뜸을 들이나였다. 나쁘거나 힘든 이야기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깍지를 껴오면 멈칫거린 손가락이 움직이질 못하더니, 뒤늦게서야 마주 깍지를 끼었다. 코로리는 그게 멋쩍었는지, 어색하게 군게 민망한지 금방 귀를 빨갛게 붉혔다. 머리카락이 풀려있었다면 몰라, 이제는 렌이 두갈래로 땋아내려준 후니 훤히 보일 수 밖에 없다! 손은 마냥 따뜻했다.
"~."
부끄러워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코로리, 라고만 불러도 되냐 물어오는게 나 신이라니까, 누가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겠어ー! 그러니까, 있지, 이거 엄청 큰일이다?! 큰일이라구! 왜 이렇게 기껍고 부끄러운지! 몸을 작게 웅크리며 한껏 부끄러워 하는게 렌의 품 속으로 파묻힐 기세였다. 깍지끼지 않은 손으로 어떻게든 얼굴을 가리려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 아차, 렌은 제 뒷모습만 보인다는 생각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렌을 마주보고 싶어서 앉은 자세에서 방향을 옆으로 틀었다. 정면이 아니라 옆을 향하도록만 자세를 틀어도 렌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잠깐만, 잠깐마안! 렌과 마주하기라도 하면 제대로 마주보지도 못하고 고개숙여 렌에게 톡 기대버린다.
"나도, 좋아."
좋다는게, 렌 씨보다는 렌이라는 호칭이 좋다는 것인지 렌 자체가 좋다는 것인지 애매모호했다! 숨을 꼭 삼키고 눈을 질끈 감아본 코로리는, 숨 좀 여러번 고르고 렌을 다시 바라보았다.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빨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처음 이름으로만 부르고 들을 거라면야 마주보고서 해주고 싶다.
고기로 챙겨먹은게 돈까스김치나베였다구~! (о´∀`о) 오늘도 고기 먹을 것 같지만?! 풀 하루 먹었다구 육식하기…… (*´∀`*) 토요일 잘 보낸 거 같아서 다행이라구, 오늘도 잘 보내자~!!!!
상즈케 졸업 생각도 못하구 있었다!!!!! 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 코로리는 렌이 부르는 호칭을 쫓은거였으니까 (*´-`) 코로리 씨, 하구 부르길래 렌 씨 한 거였지! 애초에 사귀기 전에는 후링 씨라고 부르는게 더 많았구 ㅋㅋㅋㅋㅋㅋ 자기가 그래도 나이도 많고 인간도 아닌 존재라 -상 하고 부르는거에 딱히 생각 없었던 코로리였습니다 ()
코로리는 오늘 내내 따끈따끈한 찐빵 같았다. 하얗고 말랑말랑하고 김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니 깍지 낀 것만으로 뚝딱거리는 코로리가 더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 장난기가 올라오기도 하고.
이제 이름으로만 부르고 싶다는 말에 코로리는 더 부끄러워졌는지 이번에는 작은 몸이 웅크려져 더 작아졌다. 왠지 온몸으로 부끄러움의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서 렌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이내 코로리가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그 눈을 마주보려고 했다. 아니, 코로리가 이내 시선을 피해버렸지만. 그래도 코로리가 너무 따끈따끈해서 싫다는 의도가 아니라는 건 잘 알아볼 수 있었다.
좋다는 허락의 말이 떨어지고, 자신에게 렌이라고 불러주는 그 말에 렌은 조금 부끄러우면서도 마음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이 신님..... 너무 귀엽다. 응.
코로리는 입술을 꼭 물었다. 앓는 소리를 내버릴 것 같아서, 정제되지 않은 마음이 서투르게 말로 옮겨질 것 같아서, 그 상태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름을 불러달라고만 했는데,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야, 아무도! 그러니 지금 이 부끄러움도, 아무것도 못하게 돼 버린 머리도 제탓이 아니었다. 사랑한다고 말한 렌 탓이라는 거다.
"나도, 나도 렌 많이 사랑해."
말이 조금 이상하게 나오는 것 같다고 느껴지지만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건 진작부터 그랬으니, 오히려 오래 버텼다고 하는 편이 맞을 지도 몰랐다. 이래서야는 머리 못 땋는다 하더니만 머리 땋는 것도 물놀이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듯 하다! 코로리는 저를 안고 있었던 렌의 손을 꼭 쥐어 올리려고 했다. 지난 겨울, 렌의 손등에 입맞춘 적이 있었는데 그것과 같은 의미였다. 손등에 쪽 입맞추려는 생각 뿐이었다.
"정말, 정말로 많이 사랑해."
혼인 의식을 하거든 나타난다는 문양이 손등에 새겨진다고 해서 다행이다. 뺨 같은 곳에 새겨진다고 했더라면, 지금으로서는 감히 뺨에 입 맞출 생각도 못 하고 열병이라도 지독하게 앓듯이 끙끙거렸을 것이었다. 아니, 이미 앓고 있어ー! 오래오래 앓고 있다구!
처음 이름으로 부른 문장은 사랑 고백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 전달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돌아오는 사랑 고백에 푸스스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마음 속이 너무 간질간질한 탓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같은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벅차고 감동스러운 일인가.
렌은 코로리가 제 손등에 입맞추는 것이 코로리의 욕심이라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부끄러움 때문에 손등에다 입을 맞추는 걸까 생각했고, 렌은 내밀한 욕심을 담아 그 코로리의 손바닥 안쪽에 입을 맞추려 했다.
예전에는 사랑까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코로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는 것으로 시작된 마음은 내 곁에 있어줬으면, 나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점점 커지더니 지금에 와서는 주제도 모른 채 그 옆자리를 영영 가지고 싶어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내밀한 것까지 공유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참아야겠지.
코로리와의 관계의 진전은 아직 갈길이 구만리인 것 같다. 얼른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조금이라도 더 당당해질 수 있게 말이다.
이제 와서는 머리를 땋는 것도, 물놀이도 중요하지 않은 기분이라 조금 웃음기 묻은 얼굴로 렌이 말했다.
"꿈은 반대라는 말이 맞나봐요. 사실... 오늘 꿈에서 코로리...가 저한테 헤어지자고 해서 심란했었는데."
앓는 소리 내지 않으려고 그렇게 안간힘이었는데, 코로리는 결국 백기를 들어버리고 말았다! 졌어, 완전 졌어! 하트여왕보다 토끼보다 더 대패배야! 렌이 손바닥에 입맞추려 하는 것 같길래 놀란 소리 내버렸다가, 그대로 입 맞춰오는게 너무 간지러워 차마 꼭 다물지 못한 틈 사이로 조금 새어버렸다. 고작 손바닥에 입 맞춘 것 뿐인데 너무 부끄러워하는 것 같을 수도 있겠지만, 뒤집으면 손등이잖아! 손등과 가까운게 무슨 이유인지 설명하려면, 혼인의식과 문양 이야기부터 해야하니 절대 말할 수는 없다. 새빨갛게 올라서 식을 줄은 모르던 열은 다행이도, 렌의 말 덕분에 조금 깰 수 있었다. 그야 그도 그럴게 내가 헤어지자고 할 리가 없잖아! 부끄러워하던 중에도 금새 억울하단 듯한 표정이 된다! 이렇게나 렌을 좋아하는 마음이 벅차고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오늘 하루 종일 고장나있는데!
"내가 그런 말을 왜 해! 나는 오늘, 오늘……"
말을 끝맺지 못하고 허공에서 흩어버린다. 꿈 속에서 렌과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무사히 결혼식이 착착 진행되다 못해 마지막 즈음 키스를 시키는 부분까지 주례가 흘러가서, 그때 깜짝 놀라서 깨었다ー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면 렌이 이유도 모르고 코로리가 피해다닌다고 생각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울상은 붉다.
"…새 꿈거미 씨 만들어줄게. 렌이 그런 꿈 꾸는 거 싫어. 못된 악몽이야."
와중에 꿈은 반대라는 말이 또 걸리고 만다. 그럼 렌이랑 결혼식을 올리는 일은 없단게 되지 않나. 부끄럽고 어지럽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답답하고. 코로리는 렌의 품에 머리를 톡 기대려고 했다.
"내가 꿈에 나타나면 방울 소리가 나."
코로리는 원래대로라면 꿈 속에 숨어있다. 양 발목에 매여있는 방울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꿈에 나타나기로 한다면 울리지 않던 방울에서 소리를 내었다. 비밀이었지만, 렌에게는 상관없을 거라 여겨 작게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