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이 조금 느슨하게 안아주면, 코로리는 렌의 품에서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렌과 마주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한다고 말해도 되냐는 욕심이 덕지덕지 묻은 질문에 렌이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다. 눈 보고 이야기해주고 싶으니까! 조그맣고, 작게 떨리는 렌의 목소리에 마음이 저려왔다. 자신이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렌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니, 사실 괜찮지 않았지만 참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렌 씨는 나 사랑해? 하고 수줍고 떨리는 마음으로 되묻지 않을 것이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려버렸다고 생각하니까.
"응, 사랑해."
드디어 입 밖으로 내버리면 말이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정말, 정말 많이 좋아해서ー"
눈을 꼭 맞추고, 환하게 웃으면서 사랑을 속삭이다가 그 웃음이 일그러질 것 같아서 다시 꼭 렌에게 안겨버린다. 나도, 내가 인간이었으면 좋을 만큼 사랑해. 그런 말은 할 수 없으니까, 이런 말들까지 쏟아져 나오지 않게 속에 갈무리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도 이미 렌에게는 버거울텐데, 그래서 인간이길 바랄 만큼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면 얼마나 더 버거울지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코로리는 속이 너무 뜨거워서 따끔거리고 욱신거렸고, 아픈 만큼 렌을 꽉 안으려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인게 이상했다.
품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어 자신을 바라보는 이의 얼굴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렌은 어질어질한 기분이었다. 겨울이라서 다행이었다.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이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이 식혀주고 있으니 말이다.
사랑한다는 그 말에 렌은 입을 꾹 다물었다. 벅차기도 하고 울렁거리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왜 그런 감정이 밀려오는지 알기 어려웠다. 아마도 그 사랑한다는 말의 무게가 크기 때문이지 않을까. 제 자신은 겉보기와 달리, 그리고 체육계라는 편견과 달리 꽤나 감수성이 높고 생각이 많은 편이라서, 그래서 더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또한 쉽게 그리고 장난스럽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기 위해서 그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떤 것인지 어떤 의미인지 늘 곱씹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던 이들은 늘 제 곁에 없었다.
저를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다른 이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버린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에게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집을 비우고 있는 어머니도.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은 이들을 사랑했고, 그리고 한 켠으로 그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머니마저도 자신은 이해한다고 괜찮다고 말해왔으면서도 내심 속으론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내 품에 들어온 이 작은 신 님도 언젠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한다는 그 말에 마음이 너무 벅차서. 그럼에도 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렌은 코로리를 꽉 끌어안았다.
“…나도 사랑해요. 진심으로 정말 많이.”
오지도 않는 미래를 생각하기엔 지금의 감정이 너무나 컸다. 이런 커다란 감정을 서로 얽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중에 이 얽힌 감정이 강제로 뜯어지게 된다면 죽을만큼 아프겠지만. 그럼에도 사랑했다.
“그러니까…. 코로리 씨는 나를 떠나면 안 돼요. 늘 옆에 있어줘요.”
상처받은 짐승처럼 아픈 목소리를 낸다. 남들에게 드러내지 않는 민낯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왔지만 렌은 늘 외로웠다. 아마 코로리의 말 한마디로 옆에 있겠다는 말을 다 믿을 순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도는 것이 반복된다면 그럼 그 때 쯤에는 믿을 수 있을 것이었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나는 매섭게 날아오는 눈들이 서럽다. 제 모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불효자 놈들... 찬 기운이 추적하게 얼굴을 적시는 탓에 금세 얼굴이 붉어진다. 나는 입을 삐죽이려 하지 않아도 입을 삐죽이고, 노려보려 하지 않아도 널 노려보게 되었다.
"그게 다 어? 마시는 물이 맑고 좋아서 그래. 물한테 고마워해."
아무튼 그렇다. 육각수, 물은 모든 걸 알고 있다 어쩌고 저쩌고. 잘은 모르겠고 아무튼 물이 좋아야 몸도 좋다 이 말씀. 물론 나는 온 몸이 차고 딱딱하게 굳어 있지만 원래 신과 인간의 몸은 다른법이다.
나는 시린 손으로 눈 뭉치는게 짜증이나고, 무엇보다도 계속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눈싸움은 그만하기로 했다. 복수는 후로 미루도록 하자. 골려주는 건 스키 탈 때 해도 좋다. 갑자기 눈덩이가 불쑥 튀어나온다거나 이상하게 얼음이 미끄럽다거나 하게 하는 일은 어렵지도 않지. ...다른 신이 눈치채지만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