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들이기에, 더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익숙한듯 하는 약속. 새끼 손가락을 마주걸고, 엄지까지 마주대는 것. 은서 언니가, 정말 다시 온거구나. 뭐어, 요즘에는 복사 코팅 종류랄까, 로봇 버전 계약서버전 등등 많긴 하더라. 어려워서 그냥 기본으로 놀아주고는 있지만.
"진짜, 추억이네- 언니랑 형이랑 장난 꽤나 많이 쳤었는데."
문방구에서 게임하고, 군것질거리를 사와 놀이터 정글짐에 걸터앉아 놀고... 그랬던 때는 아직도 주현에겐 자신의 추억중에 최고의 추억이였다.
"치즈케이크 한조각이면 충분하지- 아, 언니는 요즘 쉬는시간에 뭐해? 운동은 제대로 하고 있어?"
운동 제대로 안하고 있으면 저녁 조깅때 루트를 조금 바꿔 언니를 데리고 같이 조깅해서 집까지 데려다 주는 것도 생각해볼 방안이기에, 한 번 물어보는 주현이였다.
말은 그리하면서도 결국엔 주현과 엄지를 마주 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약속은 어기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아 선우 오빠? 그러고 보니 선우 오빠도 이쪽으로 돌아왔던데..."
셋이서 다 같이 모여 노는 것은 차지하고, 주현이와 대화를 한 것 자체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형이라는 호칭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잠시 헷갈렸었다. 은서로서는 아직 선우와 주현이 재회한 것을 모르기에, 혹 주현이 이 소식에 놀랄 수도 있다 생각해 말끝을 흐려가며 조심스럽게 정보를 전달했다.
주문을 마치고 돌아온 은서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바로 수초 전에 받아와 울릴 리가 만무한 진동벨을 확인한다. 이거 왜 안 울려. 어릴적이라고 제대로 된 운동을 한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학생 때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나름 건강한 생활습관을 지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지금은 그냥 글러 먹은 어른이지만.
보통 손가락 걸고 약속-같은 걸 하는 건 어린애들일 텐데, 어린이들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 치곤 살벌하지 않은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약속은 잘 지키자고 속으로 다짐한다.
"둘이 이미 만났어?" "맞아, 선우 오빠 되게 많이 바뀌었더라. 하긴 10년이나 지났으니... 주현이 너는 크게는 안 바뀌었지만."
은서가 게슴츠레하게 떴던 눈을 이번엔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아니 이미 둘이 만났었단 말인가. 집 앞에 있었다는 걸 보면 선우가 먼저 찾아갔었던 모양이다. 선우보다도 늦게 주현을 찾았다는 것엔 다시금 양심이 아파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마지막 말에는 작게 너털웃음을 지었다. 주현이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어릴 적 같이 놀던 삼인방 중에서는 그나마 적게 바뀌지 않았나 싶었다. 그만큼 잘못은 했을지언정 주현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편안함을 주었고.
"아니, 아니, 수련회 갈 나이는 지났잖니?" "무엇보다 언니 출근 시간도 매일 아슬아슬하니까..."
정말 5분에서 길면 10분 전에야 도착하는 수준이니 기상 후 출근까지 운동을 끼워 넣을 여력은 없다. ... 물론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은서가 보기에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닌 무언가였다.
선우 오빠는 형씨, 본인의 아버지는 아저씨. 꽤 독특한 호칭이지만 뭐... 요새는 여자애들이 연상 남자에게 오빠 대신 형 소리 하는 게 마냥 드문 경우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인제 와서는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저게 주현이니까.
"7시 5분."
7시도 아니고 7시 반도 아니고 하다못해 7시 10분도 아니고 7시 5분이다.
"음? 아니... 너도 네 일이 있고 힘들지 않겠어? 알람 소리 듣고 못 일어난 적도 없으니까 마음만 받는 게 어떨까 싶은데..."
퇴근 마중이 그냥 마중은 아닐 것 같단 말이지. 먼 곳을 응시하던 은서는 진동벨이 울리자마자 "내가 다녀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진동벨과 함께 사라져 카운터에서 에스프레소에 타 마실 우유, 본인이 마실 망고 라떼, 그리고 치즈 케이크를 두 조각-한 사람당 한 조각씩은 먹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받아 돌아왔다.
"자, 먹자."
사회생활을 통해 얻은 군더더기 없는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누가 봐도 티 나게 주제를 돌리려 하고 있다.
그치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전에 대형견이 두 발로 벌떡 서는 걸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와 진짜 덩치가 장난 아니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은서 본인에게 맡긴다면야 강아지를 좋아하니 그걸 고르지 싶지만... 이것도 한 번 해보고 나면 생각보다 빡세서 나 힘들어, 나 안 해 소리 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ㅋㅋㅋㅋㅋ
세상에 편한 직업은 없다고 하더라. 사무직이라고 해서 쉬운 것도 아닌걸. 정작 그 쉽다고 하는 이들 컴퓨터 앞에 앉혀서 하는 일 일부만 시켜보면 대부분은 다 못하더라고. (절레절레) 아무튼 덩치 큰 아기들인데 그 아기들이 위험하기까지 하니까. 그래도 선우는 제대로 보람 느끼면서 일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지금이 여름이라서 더위 식혀줘야하니 조금 바쁜 건 있겠지만 말이야.
그건 당연하지!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어도 다른 건 엄두도 안 나지만 ㅋㅋㅋㅋ 물론 예외는 있다 건물주 시켜주세요. (?) 하긴 어지간해서야 일부러 사육사를 해하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덩치라든지 발톱/이빨이라든지 해서 예외는 늘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왕 커서 왕 귀엽다...
외모: https://picrew.me/image_maker/6324/complete?cd=UpggJcus0A 곱슬기 있는 애쉬블루 염색모 / 순하게 처진 눈매와 청록 홍채 / 트러블 없이 뽀얀 피부 / 180대 초중반쯤 짐작되는 키 / 의미 모를 미소 / 네일 반지 피어싱 등... / 잘생기긴 진짜 잘생기지 않았어?
성격: 흥미 본위 / 능청스레 다가오는 / 은근히 짓궂은 / 상냥함 속 무심함 / 가득 채웠어도 느껴지는 공허 / 원래는 그런 애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기타: 다시 이어질 인연은 정말이지 어떻게든 마주치게 되어 있는 듯하다. ... 그 애는 어렸을 적부터 이름난 신동이었다. 또래보다 훨씬 빨리 말문이 트이고 또 갑자기 한글을 익히더니, 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영어 동화책을 술술 읽었다. 예상 외로 유학은 안 가고 한국에 남아서 초등학교를 들어갔다. 집안 사정 때문이라는 얘기가 들리던 것 같다. 형편이 어려운 게 아니라, 걔네 누나가 몇 년 전 미국에 유학 갔다가 그대로 소식이 끊겼다지 뭐니? 딱하기도 해라. 집안에 남아 있는 하나뿐인 아들이랑 늦둥이 딸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알고 외국엘 보내. ...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자랑스레 말했다. 이경이가 전국 단위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상을 타 왔다. 몹시 어려운 수학 경시대회 본선에 올라가 입상했다. 과학 발명품 경진대회에서 무슨무슨 장관상을 받았다. 교외 백일장에서 쓴 산문이 어린이 신문에 실렸다더라. 중학교라고 다르지 않았다. 각종 올림피아드 금상이며 공인 인증시험 급수를 쓸어 왔고, 당연하게도 학교에서 유명한 우등생이었다. 졸업 후 타지의 기숙사제 특목고에 입학. 또한 이경을 따라 가족 전체가 이사했다. ... 고교 졸업 후 명문대에 들어가고 다 잘 풀릴 줄 알았던 그의 인생이었으나, 돌연 고향으로 돌아온 데는 어떤 이유가 있지 싶다. 휴학했든 자퇴했든 퇴학을 당했든, 졸업장은 안 들고 있었으니. 왜 왔는지, 그걸 말해야 해요? 어느덧 이십대 중반이 된 이경이 허파 깊은 곳에서부터 연기를 뱉어내며 건조하게도 되물었다. 예전의 영특함은 이미 찾아보기 힘들었다. 알바 자리나 구하려고 온 건 아닌데. 키득키득. 몇 년 째 무직이란 얘길 잘도 돌려 말한다. ... 세상에는 때로 필연이라고밖에 정의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
첫만남이야 뭐 짜두는 것이 좋긴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래도 어린 시절 놀이터로 모였다..라는 느낌이었지. 이경이가 놀이터에서 모여서 다른 이와 놀았다면 그렇게 짜도 괜찮지 않을까? 혹은 다른 계기를 만들고 싶다면 만들어도 되는거고! 뭐 일단 선우는 어릴 때 강아지를 데리고 놀이터에 왔다가 은서와 친해졌다는 느낌이고 자연스럽게 주현이와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