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에게 그 날의 시작은 몹시나도 평범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세안후, 아침 운동을 가볍게 한 후 닭가슴살을 먹는, 가벼운 일상.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부터 이 루틴은 버릇과도 같이 녹아들었기에, 그리 아침을 시작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편한 감이 있었다. 선우형과의 만남으로 인해 정리해두었던 연락처에 즐겨찾기가 되어있는 번호는, 하나에서 둘로 늘어났다. 그것은 너무나 사소하면서도, 주현에게 너무나 의미있는 일이였기에, 이따금씩 그것을 확인하며 추억에 젖어들고는 했다.
...점심 즈음이였을까, 진동이 느껴져 확인을 해보니 즐겨찾기 표시가 되어있는 다른 하나의 번호의 오른쪽 위에 놓여있는 빨간색 1의 표시. 그것에 주현은 눈을 두어번 깜박였다. 이건, 꿈이 아니지? 선우형과의 만남도 꽤나 꿈같았기에, 꿈같은 일의 연속이라 불릴만했다. 두루두루 친하게 지낸다는 주현에게도, 선 안에 들어온 자들은 소꿉친구들 정도 뿐이였으니.
...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고향에 왔음에도 너무 기다리게 해서 서운했다는 주현의 속마음이였을까. 그 문자에 대한 답장은 '^^'라는 특수문자 두개였다.
그리고, 그 카페에 기다리고 있던것은 왠지 무서운 오오라를 풍기고 있는 빨간머리의 영락없는 양아치하나였을 것이다. 에스프레소를 한잔, 앞에 둔 채로, 사나운 웃음을 짓는 양아치.
만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장은 눈웃음이 전부였다. 이에 은서는 머리에 물음표를 가득 띄운 채 추가로 메시지를 보내려다 말고 조용히 카톡 앱을 종료시켰다. 어쨌건 읽기는 했으니 알았다는 뜻이겠지. ... 설마 안 나오진 않겠지? 에이 설마. 불안한 마음을 이끌고 도착한 카페에서 은서를 기다린 것은 무서운 오라의 빨간 머리 사자-아니, 옛 친구였다. 이쯤 되니 전에 먹었던 치즈케이크의 맛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은서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주춤거리며 주현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카페이니 맞진 않겠지...? 왠지 오늘따라 사람이 적은 것 같기도 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주현에게 가까이 다가간 은서는 차마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조용한 목소리로 대뜸 사과부터 박고 시작한다.
"미안. 연락하는 게 너무 늦었지."
너무 바빴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핑계에 가까운 이유 수천 가지가 머릿속을 빛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지나가지만, 그중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없었다. 핑계 대지 않고 차라리 진솔하게 사과하는 것이 그나마 살 방법이지 싶었다.
"... 오랜만이야..."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쭈그러든 자세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어엿한 사회인보다는 잘못을 저질러 혼쭐이 나는 어린아이의 모습에 보다 가까워 보인다.
은서 언니.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주었고, 자신의 약한 면을 여자친구 다음으로 많이 보여준 사람. 그리고 어릴적부터 놀며 친하게 지냈던, 소중한 사람. 그렇기에였을까. 어느새부터 문자가 뜸해지던 것에 섭섭했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에 화가 나면서도, 마지막으로 연결되어있던, 그렇게 약속했던 사람마저 떠나가는 것인가 슬퍼했다. 아마 은서언니에게도 일이 있겠지, 생각하며 달래가던것도, 꽤 시간이 지났기에. 조금은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너무 늦었다는 이야기에, 눌렀던 설움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정말, 너무 기다리게 했어. 둘 다 왔으면 먼저 이야기해주지, 왜 기다리게 만든거야. 그런 아이같은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초청받은 곳은 카페였기에, 꽤 이른 시각부터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은 살짝 식었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되진 않은듯 향기를 풍기며 식탁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어서 와."
주현의 눈은, 은서가 문을 열며 종소리를 낸 이후부터 계속 은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네?"
은서를 바라보는 주현의 모습은, 먹이를 바라보는 맹수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흡사 화를 참고 있는것과도 같이 억눌려있었다. 그 속의 감정이 끓는 채로, 목소리를 통해 은서에게로 전해져 올 것이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작디작은 에스프레소 잔은 시킨 지 오래 되지 않은 듯했다. 그러니 다행스럽게도 주현이 너무 오래 기다리진 않았으리라 추측해볼 수도 있겠지만, 현재 은서에게 커피잔의 상태가 눈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꽤 이르게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혹시 오래 기다리게 한 걸까. 은서는 테이블 근처에 선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주현이의 맞은편 의자를 끌어다 자리에 앉는다.
"응 그러게..."
일반적인 만남이었다면 어색함을 타파하려 이런저런 말이라도 꺼내 보았겠으나, 현재 은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대역죄인 상태나 다름이 없었기에 그저 말없이 양손을 무릎 위에 얌전히 올린 채 끓는 감정이 담긴 주현이의 목소리를 눈치껏 살피고 있었다. ... 카페에서 만나서 다행이다...
"음 저기 그게, 오래 기다렸어?"
카페에서 은서가 오기까지의 시간을 묻는 건지, 그도 아니면 연락이 닿기까지의 시간을 묻는 건지는 본인 스스로조차도 확실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아래에 다크서클이 자리 잡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천천히 움직이다 어느샌가 주현에게 바로 고정된다. 상황이 상황이지만 온종일 쩔쩔매면서 눈도 마주치지 않는 게 바람직한 상태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
앗 선우주 안녕! 그러게나 말이야 뭔가 엄청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이 드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 놀다 왔어? 은서는 만날 장소를 카페로 잡아서 안심하고 있어... 적어도 저기라면 맞진 않겠지. (?) 물론 엄청난 시선은 막아내지 못했지만 이 모든 것은 업보이니 별 수 없으려나. (먼산)
나름대로 정말로 잘 놀다 왔어!! 너무 신나게 놀다와서.. 어제는 피로가 엄청났지만 말이야. 진짜 밤 10시에 바로 뻗어버린 것 같네. (시선회피) ㅋㅋㅋㅋㅋㅋㅋ 저, 저기가 아니라도 맞는 일은 없지 않을까? 일단 선우도 맞지 않고 끝났는걸!! 그리고 원래 다 나이 먹고 그러면 보기 힘들어지고 그러는 법 아니겠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시에 바로 뻗어버렸다니 정말로 즐겁게 놀다 왔구나! ㅋㅋㅋㅋ 피로는 좀 쌓였겠지만 그래도 그만큼 즐겁게 놀았다면 된 거 아니겠어? (어깨 주물주물) 하지만 선우랑 은서는 조금 상황이 다르지 않을까... (먼산) 일단 은서는 연락 할 수단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중간에 끊긴 케이스니... 이건 무조건 은서가 잘못했다, 응. (시선회피) 어쨌거나 이번에 주현이와 은서도 다시 제대로 재회를 하고 나면 셋이서 다 같이 연락도 주고 받으면서 지낼 수 있게 되지 않으려나! 당장은 힘들더라도 시간이 더 지나면 단톡방이라든지를 만들 수 있을 수도 있겠고!
연락수단이 있다고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주현이 쪽에서도 연락을 안한 것은 마찬가지니까..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쌤쌤이 아닐까하고..(흐릿)(시선회피) 사실 누가 잘못했다라는 느낌은 들지 않네! 어디까지나 중간에 연락을 하다가 어느 순간 끊어진 케이스이니 말이야. 확실히 단톡방은 위에서도 이야기가 나오긴 했었지. 아마 만든다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선우는 그냥 자신이 돌보고 있는 맹수들 사진이나 찍어서 올리는 용도로 쓸 것 같지만 말이야. 새끼 호랑이 품에 안고 사진 찍은 후에 짠하고 올린다던가 말이야. 셋이서라는 부분을 보면서 느끼지만... 남은 자리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것이 확 느껴지네. 사실 이후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 3인으로 돌려야할까 싶기도 하고 여러모로 고민이 되는 느낌이야.
턱을 계속 괸 채, 은서를 바라본다. 바쁘다고 해서 연락을 안하고 기다렸는데. 일이 힘들다고 해서 자신이라는 짐을 안 지우려고 노력한건데. 그래서 자신이 먼저 문자를 보내지 않은건데. 그걸 알면서 질문한건지. 답은, 은서 언니가 잘 알면서. 하지만 화가 난다고 책상을 뒤엎거나 하지는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폭력으로 모든걸 해결하려 하지는 않으니까.
"물론 기다렸지."
억눌린 목소리에 살짝 물기가 고인다. 은서가 짧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짧은 공백에, 주현에게는 꽤 많은 일이 일어났기에. 그럼에도 은서에게 기대지 않으려 애썼었기에. 물론 은서의 등을 때리고 싶은 마음도 든다. 조금 괘씸하다는 생각도 들기에. 그렇지만 폭력은 쓰지 않는다.
>>260 그렇게 볼 수도 있으려나. (흐릿) 뭐 둘이 알아서 해결하겠지 난 모르는 일로... (은서 봄)(안 봄) 뭐야. 그거 좋은데? 아주 좋은 용도라고 생각해. 새끼 호랑이 직찍이라니 그런 건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닌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것도 그렇네... 음 뭐 자리야 계속 열어둬도 상관은 없지만 선우주 말처럼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 건 아무래도 어쩔 수가 없긴 하네.
>>261 어서와 주현주! 세상에 에스프레소라니 선생님 차라리 등짝스매시를 날려주세요. (동공지진) 아니 그보다 이 답레를 보니 역시 잘못한 건 은서가 맞았다 은서야 머리박자. 이일단 내가 지금 당장은 현생 때문에 답레를 주기가 좀 어렵고 최대한 오늘 내로 써오도록 할게!
>>263 어디까지나 소꿉친구 서비스라는 것으로 말이야! 물론 사진을 너무 많이 찍을 순 없으니 아주 가끔이긴 하겠지만 말이야. 아기 사자가 하품하고 있는 모습이라던가 그런 모습은 가끔 올라올지도!! 음. 그래서 그 부분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중이긴 해. 일단 4인 스레로 세운 거긴 하니까. 그래서 일단은 경우에 따라선 3인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런 느낌이야! 물론 이건 주현주와 은서주의 생각도 들어봐야겠지만 말이야! 언제까지나 계속 비워진 자리를 기다리다가 뭔가 단체로 놀러가는 상황이나 그런 것을 놓쳐버리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거든.
물기가 고인 듯한 목소리에 은서가 몸을 움찔거린다. 주현의 목소리에 물기가 고인 것을 들으니 공포 너머의 미안하다는 감정이 점점 커져 나간다. 늘 바쁘다 바쁘다 말하다 어느 순간 연락이 뚝 끊긴 채 몇 년. 바쁘다는 말 직후에 끊어진 연락이니만큼 주현이 먼저 연락해오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느 날은 바빠서, 어느 날은 몸이 좋지 않아서 끝끝내 연락을 주지 않았으니 더는 변명 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나무의 죽은 가지를 쳐내듯, 바빴다, 몸이 좋지 않았다, 등등의 말을 쳐내자 남는 것은 짧디짧은 사과 한마디뿐이었다.
"그... 미안. 기다리게 해서." "응?"
본인이 마시려고 산 게 아니었나. 은서가 회사에서 마시는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 통칭 아아. 매일 같이 입에 달고 살게 된 지 꽤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그 음료가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었다. RPG 게임의 캐릭터들이 hp를 채워주는 회복 포션을 마시며 맛에 대해 운운하지는 않지 않는가. 뭐 이래저래 서론이 길었지만 짤막하게 줄이자면 은서는 쓴 음식이나 음료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못 먹는 편은 아니지만 아아 이외에는 굳이? 싶은. 개인적인 취향대로라면 오히려 단 음식에 환장하는 편이었고... 그러므로 주현의 손이 에스프레소가 담긴 작은 컵에 향했을 때 은서의 눈동자는 불안한 듯이 흔들렸다. 음 이건... 준비했다 하니 사죄하는 셈 치고 먹어야 할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일단 살아는 있어야 용서받든가 하지 않을까.
"... 그러고보니 여기 디저트도 종류가 여러가지던데 일단은 뭐 먹을 거라도 시킬까?" "언니가 사줄게."
사과의 의미로. 물론 케이크 한 조각 정도로 해결될 일은 아니겠지만. 주현의 손을 따라 에스프레소 잔에 향했던 시선을 슬쩍 창밖으로 보낸다.
일단 나는 꾸준히 새로운 인원을 모집하는 것도, 그냥 이대로 3인 체제로 노는 것도 다 괜찮아! 선우주 말대로 새로운 유입을 마냥 기다리기에는 단체활동에 제약이 걸린다는 점이 좀 크니까, 이 부분은 기본 3인 체제로 가되 새로운 유입이 있을시 설정이라든지 이런 걸 이리저리 만져가면서 문제 없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고.
은서주나 주현주가 괜찮다면야 그렇게 가도 좋을 것 같네. 그럼 일단은 3인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하자! 사실 단체로 어디에 놀러가는 상황도 좋을텐데(물론 캐릭터들의 어색함은 조금 고민해봐야겠지만) 그냥 계속 기다리기만 할 순 없으니까. 사실 여름인만큼 캐릭터들끼리 계곡이나 바다 같은 곳에 가서 조금 어색함을 줄여보려고 하거나 그런 장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소소하다면 소소한 행동이다. 물기는 사라졌지만, 사소한 되갚음이라는 걸까. 어릴적부터 은서언니가 쓴 걸 싫어한다는 것을 기억하기에 고른 방법이긴 하다. 후의 이야기 보따리라던가, 상냥함은 그 응어리를 풀고 나서 주고 싶다는... 조금 어린 주현의 생각이였다. 억지로 먹이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장난을 침으로써 자신의 기분을 풀고 싶다는 생각에 주문한 에스프레소였다.
그야, 제정신으로 에스프레소를 주문할리 없잖아. 카페라떼도 아니고.
"먹을건 그닥 흥미가 가지 않는달까. 아, 은서언니가 먹고 싶은거라도 있나봐?"
제안을 한번 튕겨주며 이야기하는 주현. 카페의 디저트는 조금 비싼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꼭 먹어야 될때 빼고는 그저 음료 하나로 퉁치고는 한다. 당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매로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는게 싼 걸.
>>269 확실히 아직 어색함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다들 사회생활을 하는 참치들이라 슬로우로 돌아가는 만큼 진짜로 친해질때까지 기다리려면 언제가 되어야 셋이 놀러갈 수 있게 될지 알 수 없기도 하니까. (먼산) 뭐 다들 어색해서 정 안되겠다 해도 대우주의 의지를 이용하면... (?) 아무튼 난 그런 거 좋아! 다 같이 바다나 계곡 놀러가고 이런 거 완전 찬성이다!
>>270 에스프레소 원샷... 살려주세요 선생님. OTL 으악 일단 난 이만 마저 현생 일 보러 가봐야해서... 답레는 좀 걸릴 것 같아!
그냥 마시는 것도 아니고 원샷은 죽기 딱 좋다. 다른 것도 아니고 에스프레소 원샷이라니, 이탈리아 사람들도 기겁하지 않을까 싶은데. 미안한 게 있는 건 사실이니 마시라면 마시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원샷만큼은 좀 봐줬으면 하는 감이 있었다.
"오늘 죽을 줄 알았으면 진작 퇴사할 걸 그랬나..."
중얼거리는 와중에 전 직장에서의 개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인 줄 알았더라면 아등바등 버티지 말고 진작 때려칠 걸 그랬다. 아, 참고로 이제까지 에스프레소를 원샷하고 사망한 사람에 관한 기사는 읽어본 적 없다. 애초에 쓴 음료를 마시고 사람이 죽을 만큼 허약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작은 잔에 담긴 사약에 가까워 보이는 액체를 보고 있다 보면 그 기사의 첫 주인공이 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걸 먹고 죽으면 다윈상 수상도 노려볼 수 있으려나...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기왕 카페까지 온 김에?" "주현이 너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달달한 걸 좋아하긴 하지만, 카페에 올 때는 대부분 커피만 한 잔 테이크 아웃해서 빠르게 나가기 때문에 디저트까지 챙겨 먹게 되는 경우는 꽤 드물다. 그러니 오늘 나와서 자리를 잡은 김에 뭐라도 먹으면 좋을 듯 한데. ... 물론 주목적은 저 커피 원액을 피하는 것이고.
주현의 장난에 은서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시선을 피한다. 에스프레소 강제로 마시게 하기, 보다 더 쉬운 방법이라면 죽빵을 의미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어릴 때라면 모를까 더 이상 그런 충격을 버틸 수 있는 몸이 아니게 되었기에...
"케이크? 어떤 케이크가 좋아? 마시고 싶은 건?" "여기 치즈 케이크 맛있던데, 그거 먹어볼래?"
화가 어느 정도는 누그러진 듯한 주현의 반응에 은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사달라 말만 하면 뭐든 사다 줄 기세다. 아,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가게를 사다 달라던가 이런 건 힘들겠지만 케이크나 마실 거 정도라면 얼마든지 사다 줄 수 있다. 평소보다 약간은 업된 텐션으로 질문 폭탄을 던진 은서는 이내 기분을 가다듬고 차분한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