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몇 번이고 그녀의 집에 찾아갔었으나 그때마다 응답이 없었던 것은 운명의 장난인 것일까. 허나 이대로 계속 있을 수도 없었기에 그는 오늘은 작정하고 만나기로 마음 먹고 주말, 그것도 비번 날이 되자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롤케이크 하나를 사들고 과거 주현이 살았던 집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이 롤케이크를 제대로 전달해줄 수 있을런지. 아니면 또 집에 가져가서 혼자 천천히 먹는 생활을 해야할지. 이번에는 이 롤케이크가 제대로 그녀에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숨을 내뱉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전에 찾아냈던 주현의 집을 눈앞에 두며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역시 언제봐도 어릴 때의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내부는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문앞에 선 그는 침착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이번에는 과연 응답이 있을지. 아니면 없을지.
"...또 이걸 가져가면 곤란한데 말이야."
오늘은 좀 길게 대기할 생각이었으나 그렇다고 이곳에서 하루종일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능하면 오늘은 만날 수 있길 바라며 선우는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주현의 집은 도시의 낙후지역이라 불리는 외진곳의 작은 아파트, @@빌라에 위치해 있었다. 아직도 불안해보이는 아파트는 그럼에도 10년이상, 주현을 지탱하고 있었다. 어릴적에 그린 낙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주현의 집 벽은, 세월을 잊지 못하는 주현을 닮은 듯 그대로 있었다. 허나, 재개발대상 후보에 드는 것은 면치 못했다는듯 빌라 앞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알려주는 것은, 주현은 어떻게 생각할까.
주현의 집에 자물쇠는, 오래된 그 자물쇠 그대로인 듯하다. 주현이 집은 아빠의 허가로 놀이터이자 아지트로 활용되고 있었으므로, 주현의 집 비밀번호는 그 소꿉친구들 끼리에는 그저 공용의 비밀로 알려져 있었다. 주현의 생일인 8월 23일. 0823. 허술하다면 너무나도 허술한 비밀번호. 그것은, 지금도 이어져 있을까.
가만히 기다리며 그는 어릴 때 본 적이 있던 것 같은 낙서를 가만히 바라봤다. 자신은 그때 저 낙서를 같이 했던가. 아니면 하지 않았던가. 그 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역시 10년 전에 본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보지 않았고, 그 기간은 상당히 길었기에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던 것일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선우는 가만히 미간을 찌푸렸다.
비밀번호에 대해서는 선우는 당연히 까먹은 상태였다. 10년 전에 이곳을 떠났고 기억해야 할 것이 많았고 알아야 할 것이 많았다. 10년 전의 자물쇠 번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며, 설사 안다고 해도 어린아이도 아닌 이상 멋대로 비밀번호를 열고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선우는 그저 조용히 벽에 등을 기댔다.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언젠가는 오겠지. 그저 그렇게 기약없는 기다림을 보내며. 허나 10년이나 얼굴을 안 비춘 자신이 그것으로 불평을 할 순 없는 일이었다. 물론 핸드폰도 없었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했으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뭘 의도했는지는...알 것 같지만.. 애석하게도 10년 전의 비밀번호를 선우는 기억할 수 없었고..기억한다고 해도 들어가진 않을 것 같네. (흐릿)
뭐야?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아 근처 사람의 목소리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목소리가 나는 곳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배불뚝이 아저씨와 빨간머리의 누군가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서로 티격태격하는 듯한 모습인 것은 확실해보였다. 아무래도 거리가 있었기에 누군지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바뀌는 것은 아닐까 싶어 그는 가만히 모습을 바라보다 빠르게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갈고 했다.
"저기, 잠시만요! 스톱! 스톱!"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선우는 일단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다. 성공적으로 끼였으면 아마 두 팔을 벌려서 둘을 떨어뜨리려고 했을 것이고 일단 두 사람을 향해 다시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그러다가 확 싸울 수도 있으니까 일단 진정해주세요. 릴렉스. 릴렉스."
정확히 무슨 상황인진 모르겠지만, 이미 일이 터진 뒤에 뭔가를 하려고 하면 늦는 법이었다. 그렇다면 아무 일도 터지지 않을 때 살며시 개입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우와. 어릴 때의 나라면 생각도 못한 행동이야. 이거. 그렇게 생각하며 선우는 일단 미소를 지으면서 스스로 뿌듯해했다. 이어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 지금 무슨 일이에요?"
/어. 아니야!! 캐조종만 아니면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니까! 단지 저 상황을 그대로 응해주긴 힘들다는 의미로 말한거야!
뭔가 지금 자신은 끼이면 안 될 자리에 끼인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단순히 아버지와 자식간의 말다툼적인 무언가인걸까.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살며시 눈앞의 이를 바라보니 뭔가 묘하게 낯이 익는 것이 이상한 느낌이었다. 뭔가 이런 느낌을 이전에도 받았던 것 같은데. 언제였더라. 그렇게 생각을 하며 선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한 가지를 떠올렸다. 은서를 만났을 때도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선우는 왜 이런 감정을 눈앞의 이에가 받는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서 잠시 떠올렸다.
"...아니. 그건 괜찮은데. 그건 그렇고... 일단 제가 사람을 찾으려고 여기에 왔는데..."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다. 비슷한 느낌의 사람일 뿐이고 전혀 다른 이면 서로 곤란해지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선우는 잠시 숨을 내쉬면서 다시 한 번 상대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조용히 눈을 깜빡이면서 가만히 눈앞의 이를 바라보던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현이라는 이를 만나러 왔는데... 그러니까 이주현이라고 하는데. 저 빌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혹시 아는 바 있으실까요? 몇 번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보이질 않아서."
일단 여기서 사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곳을 찾아야겠지만 그렇게 되면 보통 골치 아파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은서와 서로 힘이라도 합쳐서 찾으러 가야하는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선우는 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만약 상대가 주현이라면? 그런 우연이 과연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나 살며시 기대감은 있었기에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대를 가만히 바라봤다.
눈빛이 살짝 변한 것을 선우는 놓치지 않았다. 그야 눈썰미 하나만큼은 정말 좋은 편이었으니까.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들을 사육하려면 정말 주의력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갑작스러운 돌발사태에 대비해야하는 순발력도 필요했으며, 동물을 돌보게 되니 나름 눈치도 빠른 편이었다. 그렇다면 저 눈앞의 존재가 왜 눈빛이 바뀌었냐. 그것에 대해서 선우는 나름대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알긴 안다고 하면서 도장으로 와달라고 하는 그 말에 그는 가만히 생각을 하다 선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조금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상대를 향해 이야기했다.
"도장 쪽이라면 일하는 중이니, 직장으로 함부로 막 찾아갈 순 없잖아요? 그보다... 도장을 하는 모양이네요. 그 애답다면 그 애답다고 해야할지."
이런저런 사정을 다 떠나서라도, 남의 직장에 함부로 불쑥 찾아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법이었다. 이를테면 은서나 주현이 자신이 일하는 동물원 사무실에 불쑥 찾아온다면 그건 그거대로 상당히 난감하지 않겠는가. 물론 사파리 투어 쪽으로 온다면 얼마든지 지프차를 한 번은 태워줄 수 있었지만. 일단 그건 살며시 넘기기로 하며 선우는 눈앞의 이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혹 당신이 주현이라던가?"
살며시 물어보면서 그는 묶고 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손으로 정리했다. 한 번 툭 꼬집어보듯 이야기를 하며 그는 응답을 기다렸다.
뭐지? 왜 이렇게 경계심을 보이는거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선우는 두 눈을 가만히 깜빡였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던가. 아니, 그냥 단순히 사람을 만나러 온 건데 이렇게 경계를 받아야 할 일이던가. 물론 갑자기 자신을 찾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노려볼 일은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선우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일단 침착하게 대처하기로 하며 선우는 상대를 바라보면서 숨을 약하게 내뱉었다.
"음. 10년 전에 이사를 갔던 선우..라고 기억해? 정선우..라고. 나거든. 아하하. 오랜만..이네. 몇 번 오긴 했는데 그때마다 없어서."
일단 그는 자신의 소개를 하기로 했다. 물론 상대가 자신을 기억할진 모르겠지만, 기억이 안 난다면 그건 그것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손에 쥐고 있던 롤케이크 박스를 상대에게 내밀면서 그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맨 손으로 오기도 뭐해서, 일단 선물을 가지고 오긴 했는데... 아하하. 그러니까 경계..풀어주면 안될까?"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알 수 없었다. 보아하니 상대는 자신을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것 같고, 일단 자신은 이미지가 확 변했으니까. 물론 눈앞의 주현은 어릴 때의 이미지가 좀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색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처럼 정말 태연하게 대하는 것은 역시 불가능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어떻게 보면 은서보다 좀 더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선우는 일단 침을 삼켰다.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주현. 그치만 그 선우형이라고? 솔직히,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으니까???
"나, 혹시 또 뭔 이상한 사람인가 하고 놀라서- 에... 잠시만, 이런거는 예상에 없었는데... 언제 왔었어? 왜 못 들은거지? 나, 요즘들어 도장에서 숙식하고 지내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으아, 이럴게 아니지. 덥지? 일단 도장쪽으로 가자! 그쪽은 에어컨 빵빵하게 해놔서-"
분명히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여성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던가. 그 와중에 또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에 선우는 그러려니 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시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았기에 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반가움을 느끼면서 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하하.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뭐, 하긴 너는 정말로 잘 지낼 것 같았지만 말이야. 아무튼 이제 체육관 관장이라도 하나봐? 무슨 체육관 하는데?"
상대도 그렇듯, 선우 역시 마냥 태연하게 그녀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름 반가움을 오버하듯 표현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태연하게 표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역시 약간의 거리감은 느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정말로 오랜만에 만났기에 느낄 수 밖에 없는 반가움과 어색함의 콜라보를 느끼면서 그는 잠시 고민했다.
"그렇다면 집이 코앞이니까 우선 집에 가서 쉬는게 낫지 않겠어? ...도장에서 숙식하고 지내면 되게 피곤할 것 같은데. 아하하. 다음에 와도 상관없는데."
에어컨 빵빵한 것은 둘째치고 정말로 도장으로 가도 되는가 싶어 선우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너무 거절하는 것도 조금 애매할까 생각하며 선우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너무 거절하면 좀 그러니. 조금만 있다가 가볼까. ...음. 미안해! 나름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어색해서. 아. 그리도 더 이상 옛날처럼 막 눈치보고 그러진 않아! 이래보여도 나 되게 이미지체인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종합격투기를 정말 배우고 싶어서 주현의 도장으로 오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야 광고는 그저 테이프로 붙여둔 창문의 글 "종합도장"뿐이니. 꽤 번화가쪽의 빌딩의 한층을 사두었지만, 주변 소음이 엄청나서 방음벽을 설치했는데도 위층 코인노래방의 곡소리가 울려퍼지는 곳이다. 그렇지만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해오는 주현.
"집... 아, 아재 집? 그쪽은 아재가 전용으로 쓰고 있을걸? 요즘은 코인이라는거에 빠져서 꽤 번잡할거야. 그리고 기왕 왔는걸? 선우형씨, 전화라도 해뒀으면 도장으로 오라 했을텐데... 설마 계속 아재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던거야? 도장이 내 집이나 다름 없으니까, 걱정 하지마-"
선우에게 예전의 친근함을 보이는 주현. 왜 경계의 눈빛을 보냈던걸지.
"비슷해보이긴 했었는데, 예전에 비슷한 사람 몇명보고 등짝에 스매쉬 날려서 좀 부끄러웠달까? 아하하... 그래서 선우형씨라면 이러지 않을텐데 해서 바로 선우형씨 아닌가 하고 했단 말야. 아재 집을 알고 있는것부터 알아차려야했는데...하하, 그래도 다행이다. 오늘이라도 마주쳐서!"
완전 체육계잖아. 은서와는 다르게 이쪽은 뭔가 예상한대로 흘러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괜히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뭔가 어색함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아 괜히 신기하기도 했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뭔가 자신이 기억하는 모습과 거의 일치하다시피 비슷한 모습이 지금 눈앞에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상대는 자신을 그렇게 경계하는 것 같지도 않았기에 더더욱.
"...아니. 그건 말려야 하지 않을까? 코인이라는 거 성공할 수가 없는 거란 말이야. 전재산을 다 날릴지도 몰라. 아니. 그보다 네 번호를 난 모르니까 말이야. 난 중학생 때 핸드폰이 없기도 했고. 고등학교때 너희들과 떨어져서 지내야 해서 언제까지나 눈치를 보고 소극적으로 살긴 싫어서 여러모로 노력을 많이 했거든. 그래서 덕분에 이렇게 이미지 체인지를 했다 이 말씀이지. 아하하!"
괜히 오버하듯 오른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면서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그는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미지 체인지를 한 것은 성공적이고 사실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괜히 뿌듯함을 느끼다가 그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그리고 슬그머니 그는 뒤로 세 걸음 정도 물러섰다.
"...그보다 왜 나인줄 알고 등짝 스매쉬를 날리는거야. 너."
그것만큼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는 뻘쭘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보고서 등짝 스매쉬를 날렸다는거야? 자신이 생각도 못한 것에서 뭔가 화나게 한 것일까. 설마 이사를 가고 그 동안 연락을 안해서 제대로 화가 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식은 땀을 흘렸다.
"여, 역시 다음에 기회가 되면 찾아가면 안될까. 뭔가 지금은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고 있다고 해야할까. 아, 아무튼 반가워!! 아. 나는 여기서 조금 떨어져있는 외각 동물원에서 근무하고 있거든! 혹시 관심 있으면 얼마든지 구경와! 내가 한 번은 공짜로 사파리 지프카 태워줄 수 있거든! 사자와 호랑이를 막 눈앞에서 볼 수 있고 그래!"
"뭐어, 국가대표 후보가 될 뻔했으니까? 그 짬으로 대충 가르쳐 주는거지- 어차피 네임밸류로 더 대단한 사람 많지만, 싼값에 애들 돌봐준다는 식으로 하면 나은거고-"
낄낄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거기다 한때는 그거 준비한다고 공부도 포기했었으니까- 뭐, 이게 가장 편한길이였다- 그거지?"
그러다, 코인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 웃음이 약간 떫어진다.
"... 뭐어, 그건 나도 말리려 시도는 해봤지. 근데 아재 성격 알잖아, 쓸데없는데 고집 센거. 백만원정도 이득 봤다던가 뭐래나. 자기 용돈으로 한다는데 뭐 어쩌겠어... 생활비는 일단 제대로 관리 중이니 말야. 아, 그러면 번호 알려줘야겠네... 명함이...아, 그거 도장에 놓고 왔네... 응, 이거라도."
오랜만에 만난 소꿉친구는 생각 이상의 엄청난 거물이 되었다고 느끼며 선우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그 짬이라고 표현될 무언가인걸까. 국가대표 후보가 될 뻔했다면 보통 실력자가 아닌 것 같은데. 어쩌면 이 아이는 엄청난 능력자이고 지금 우리들 중 가장 성공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며 선우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두 눈만 깜빡였다.
아무튼 주현이 제대로 메모지를 내밀자 선우는 그것을 받으면서 그녀의 폰 번호를 확인했다. 이어 핸드폰을 꺼낸 후에 그녀의 이름을 확실하게 전화번호와 기록했고 이어 그는 통화버튼을 꾹 눌렀다. 세 번 정도 울릴 때 그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고, 이어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방금 그것은 내 번호야. 가끔이라도 심심하면 얼마든지 연락해도 괜찮아! 아. 물론 난 주말에는 하루는 일해야 해서 조금 바쁠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아무튼 은서 이야기를 꺼내자 선우는 가만히 은서를 떠올렸다. 미리 말해주는 것이 좋을까 생각을 하지만 굳이 먼저 이야기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굳이 깊은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소식은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은서도 잘 지내고 있어. 걔도 여기로 다시 이사 왔거든. 많이 바빠보이지만 말이야. 나중에 내가 안부라도 전해줄까?"
가볍게 톡 정도는 주고받고 있으니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하나 주현이 거부하면 그건 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은서와 더 친했던 것 같으니... 아마 둘이서 만나면 정말 즐겁게 얘기 나누고 그러지 않을까. 그렇게 추측을 해보기도 하면서 선우는 곧 들려오는 물음에 난처한 웃음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아니. 잘못한 것은 없지만.. 그보다 형씨는 뭐야. 형씨는. 그냥 선우 형이라고 부르던가 해. 차라리 그쪽이 낫다."
여성으로 불리는 것이 싫다고 하니, 그 부분은 존중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슬며시 어깨를 으쓱했다.
/자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으니.. 적당히 이후에 이야기 좀 더 나누고 헤어졌다고 처리해도 괜찮고..더 잇고 싶으면 이어도 괜찮아! 후자의 경우는 킵이 되겠지만 말이야.
"아, 거기 있었구나. 아직 조금 당황스러워서... 이거 꿈 아니지...? 에, 은서언니도? 와아, 둘다 왔는데 내게는 연락이 없었다는건가...? 아, 아니면 휴대폰 확인을 안하고 있던 내 잘못일지도...? 거기다 선우형씨가 동물원이라... 헤에, 나중에 도장 애들 데리고 가도 되려나?"
조금 4차원적이라 할수 있던 주현의 혼잣말을 하는 버릇은 여전했다. 예전의 주현에 덩치만 커진 듯한 느낌. 옷 센스도 비슷하였기에, 더더욱 그런 느낌을 풍긴다.
"사자와 호랑이와 레슬링이라- 좋네! 라면서-"
농을 던지며, 선우의 긴장을 풀어주려 하는 것은 예전의 주현과 똑같았기에.
"형씨가 싫은건가? 운동 쪽에서는 오히려 형보다 이걸 좋아하던데- 알았어, 선우형! ... 우와, 이 호칭도 오랜만이다... 추억 돋네."
머리 뒤에 두손을 깍지낀채 상어이빨을 드러내며 미소짓는 주현은, 그저 이 시간이 좋은 듯 하다.
"꿈은 아니야. 못 믿겠으면 볼을 꼬집어보는 것도... 아! 내 볼은 안돼! 네 볼로 해! 알았지? 아무튼 내 쪽에선 네 연락처를 모르니까 어쩔 수 없잖아. 말해두는데 나 몇 번 찾아왔었어. 그때마다 네가 없었을 뿐이지. 응? 애들? 별 상관없어. 하지만 동물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사파리 지프차는 최대 6명밖에 못 타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오면 내가 태워주긴 힘들 것 같네. 조금 거리를 두고 보는 버스도 있지만 말이야."
자신은 별 상관없다는 듯, 태연하게 선우는 주현의 말에 대답했다. 자신의 기억 속의 주현은 뭔가 되게 활발하고도 뭔가 날뛰는 면이 있었는데 그 애가 이제는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니 그건 또 묘하게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구나. 자신을 포함해서 다들 자신의 길로 나아가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묘하게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선우는 절로 미소를 작게 지었다.
"...아니아니아니. 아무리 너라도 레슬링을 걔들과 해서는 못 이기거든?"
말도 안되는 농을 하는 모습에 선우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저 애가 얼마나 힘이 좋아졌는진 모르겠지만 그래봐야 인간의 범주였다. 호랑이와 사자와 레슬링을 해서 이길 수 있는 방도는 없었고 살아서 나온다면 그나마 다행인 수준이 아니었을까. 사자와 호랑이를 포함한 맹수들은 그야말로 인간의 몇 배나 더 강한 존재였으니까. 허나 괜히 주현이 레슬링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는 다시 살풋 웃음을 터트렸다.
"싫어. 뭔가 내가 살짝 패거리의 뭔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잖아. 그리고 난 운동파는 아니거든? 굳이 말하면 동물파지! 아무튼 추억이라. ...나로서는 뭔가 낯선 느낌이지만 말이야.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가."
10년이란 세월이 길긴 길구나. 그렇게 느끼며 선우는 약하게 숨을 내뱉었다. 이어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 주현에게 요청했다.
"그럼 체육관 안내 좀 해줄래? 그냥 잠깐 구경이나 할까 싶어서. 오래 있진 않을게. 집에 있는 반려동물들도 돌봐줘야 해서 말이야."
"아니아니아니아니. 인간이 사자를 이길 수는 없거든? 총을 갖고 있어도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얘가 뭔 소리를 하는가 싶어서 선우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리 주현이 강한다고 한들 어떻게 사자를 이긴단 말인가. 사자의 앞발에 맞으면 얼굴이 찢어지는데 얘가 어디 사자보다 더 세단 말인가. 맹수는 아무리 길들어진 상태라고 해도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가끔 사고가 나기도 하고, 맹수가 우리 밖으로 나오면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이기도 하고. 그만큼 위험하고 인간을 진짜로 해할 수도 있는 존재니까.
아무튼 말도 안되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 듯, 그는 고개와 오른손을 양쪽으로 살며시 저었다. 설사 국가대표 후보라고 할지라도 인간이 사자를 상대하는 것은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특히 더.
"아하하. 생각은 해볼게. 그렇다고 해도 많이 찾아갈 것 같진 않지만 말이야. 진심으로 배우고 안 배우고를 떠나서 남의 직장에 함부로 찾아고 그러는 것은 아닌 법이니까."
거리감이 있는 것 같냐고 묻는다면 그게 맞았다. 물론 그녀는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역시 자신들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었고 10년만에 보는 사이였다. 역시 아직은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현은 그게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겐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10년의 시간. 그리고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인이라는 점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냉혹하고 차가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일단 그는 그녀의 안내를 받으려고 하며 그녀가 발걸음을 옮기면 아마 순순히 뒤를 따라갔을 것이다.
갑자기 집이 무너질 일은 없지 않을까 싶으며 그는 일단 그녀가 자신을 반가워하고 계속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것 정도는 인지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빨리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느끼며 선우는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약하게 톡톡 쳤다. 물론 그렇게 마음을 다 잡아도 다시 은서와 주현과 이전처럼 친하게 지내는 것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놀이터. 아. 기억은 하고 있어. 있었지. 그런 곳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는 흐릿하게 남아있는 기억을 천천히 재생시켰다. 숲 안에 있어서 사람이 없는 놀이터. 허나 역시 완전히 재생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흐릿하게 남아있는 영상이 끊기면서 재생되는 듯한 느낌이었기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역시 그대로 떠오르진 않네. 나중에 한 번 가봐야겠어. ...아하하하. 미안. 미안. 역시 10년이나 떠나 있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그대로 떠오르진 않네. 미안해."
그녀는 계속 여기서 살았기에 모든 것이 다 떠오를지도 모르나, 역시 선우에게는 조금 힘들었다. 소꿉친구들과 놀았던 기간과 맞먹을 정도의 시간을 떨어져서 보냈고 다른 곳에서 지냈지 않았던가.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도 한 둘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어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살며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미안해. 뭔가 옛 추억 이야기. 그대로..다 그땐 그랬지. 라고 하기 힘들어서 말이야. 아. 그래도 어느 정도는 기억해! 너에게 엄청 휘둘렸던 이야기라던가 말이야."
그럼 집에 있는 아롱이와 다롱이가 놀라서 도망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면서 선우는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뭔가 장난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긴 했으나 어쩌면 나름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자신보다 훨씬 하이텐션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며 그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도 그런 이미지가 남아있다는 것 자체는 반가웠으니 상관은 없었지만.
"아하하하. 하지만 난 핸드폰도 없었고 고등학생이니까 마음대로 올 수도 없고... 일단 군대도 있고, 여러모로 대학도 있었으니까. 그, 그래도 나름 여기에 돌아오고 나서 몇 번 너네 집에 갔었어! 네가 없었을 뿐이지!"
그건 조금 억울하다는 듯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오늘은 만나야겠다 싶어서 온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만났으니 된 것이었지만. 역시 나중에 은서에게 톡 정도는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선우는 계속 그녀의 뒤를 따라 앞으로 걷다 주현의 말에 도끼눈을 뜨고 빤히 바라봤다.
"엄청 휘둘렸거든?! 그런 불리한 사실만 기억 안난다는 척 하지 말아줄래? 뭐, 딱히 이제와서 원한을 가지진 않지만 말이야. 이젠 나도 옛날처럼 소심쟁이가 아니기도 하고 더 이상 휘둘릴 생각은 없으니 말이야."
자신도 더 이상 옛날의 자신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에헴! 소리를 냈다. 이어 그는 가만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그녀의 뒤를 계속해서 뒤따랐다.
멀쩡한 남의 집에 트럭을 꽂아버린다니. 그게 무슨 민폐란 말인가. 아무리 은서와 주현이라도 그것을 용납할 순 없었다. 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 보면 엣 분위기가 남아있었기에 어떻게 보면 그녀는 그다지 변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우는 어느 정도 만족을 할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앞으로도 때리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주기 힘들어. 더 이상 우린 어린아이도 아니잖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선우도 어느 정도 선을 그었다. 아무리 소꿉친구라고 하더라도 뜬금없이 맞거나 그러고 싶진 않았다. 친하게 지내는 것은 좋긴 하지만 그것이 '때린다'라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부분만큼은 그는 어느 정도 확고하게 선을 그었다. 상당히 단호하게, 상당히 강하게.
믈론 그렇다고 그녀에게 심하게 화를 내거나 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는 살며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물론 자신이 그녀가 익숙하지 못해서, 정말로 오랜만에 봐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ㅈ리도 모르지만.
"나? 엘리베이터지. 당연히. 물론 2층 정도라면 계단으로 올라갈수도 있지만 말이야. 그건 그렇고 의외네. 너는 계단파일줄 알았는데. 아무튼 이 건물이야? 빌딩..이라. 꽤 큰 곳이네. 이런 곳은 권리금도 꽤 비쌀 것 같은데."
생각보다 돈 많이 버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선우는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집도 있는데 이런 빌딩에 따로 체육관까지. 생각 이상의 능력자를 만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선우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네가 좋을대로 왜곡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다시 말하지만 난 너에게 엄청 휘둘린 기억이 많은데. 아무튼 나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나도 진심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닌데. 다시 말하지만 나도 많이 변해서 이젠 진짜 제대로 화내고 경우에 따라선 엄청 정색할 수도 있어."
더 이상 어릴때처럼 눈치를 보고 말하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듯, 그는 다시 한 번 그렇게 이야기하며 자신의 가슴을 톡톡 두들겼다. 허나 그와는 별개로 옛 추억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역시 제대로 떠오르는 것이 많진 않았다. 역시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 것일까. 일단 주현에게 엄청 휘둘린 것은 기억이 나긴 하지만 딱 그 정도 뿐이었다. 역시 추억은 끊기면서 재생되는 느낌이었고 그조차도 선명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괜히 저주스럽다고 생각하며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 같이 타는 거 아니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겠다는 그 말에 선우는 살짝 당황하며 두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그렇게 올라가겠다고 하는데 어쩌겠는가. 일단 알았다는 듯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적금 깨서 샀다는 말에 그는 빤히 주현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역시 너 부자인거지? 적금을 깼다고 해도 이런 곳은 쉽게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와. 주현이가 제일 성공한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무튼.. 뭐, 5층에서 보자."
일단 그는 엘리베이터를 잡은 후, 안으로 탑승했고 숫자 5를 꾹 눌렀다. 뭐, 그녀니까 자신보다 먼저 도착해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긴 하지만... 아무렴 어떨까. 일단 그는 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멈추자 다시 밖으로 내렸다.
"나만 휘두른건 아닐걸? 은서 언니도 선우형도 그런적 있을텐데? 난 농만 던지고 그러지 실제로 막 나가는 건 아니라고? 적어도 이제는 말야. 근데 선우형이 진심으로 화내는거, 보고 싶을지도. 예전에는 완전 삐진적 한번 있었던가? 나도 그런 기억은 가물가물해서. 형이랑 언니랑 다같이 즐겁게 놀던것만 기억하는게 좋으니까, 난-"
그렇지만 하늘에 맹세코, 주현은 소꿉친구들에게 화나게 만드는걸 좋아하는게 아니다. 그저 그런 농을 하면서 그리움과 행복을 느끼는거지.
"어. 선우 형, 손잡고 같이 타는걸 원하는건 아니잖아? 내가 돌봐줘야할 애도 아니라면서-"
약간 느껴진 거리감을 의식한듯, 살짝 툴툴대는 듯하면서도 이해하는 느낌의 주현이였다. 이런것으로 슬퍼하는 단계는, 이미 몇년 전에 극복했기에.
"아니, 그러면 애초에 아재가 그 집을 껴안고 살고 있지 않지? 10년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으니 말야- 아, 엘레베이터 왔네. 그럼 5층에서 볼게!"
만화에서라면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릴 만큼 빠르게 계단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하는 주현. 한두번 한 솜씨가 아니기에, 그저 힘들이지 않고 빠르게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사라질 뿐이였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은서에겐 언니고 나에겐 형이라는 것도 되게 신선한 느낌이야. 누나와 형, 혹은 언니와 오빠라면 모를까. 뭐라고 부르건 네 자유긴 하지만 말이야."
주현이 여자애로 보여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하고 있었기에 딱히 주현을 여자로 보거나 할 생각은 없긴 했지만, 그래도 저렇게 호칭을 섞어 부르면 그건 그것대로 되게 신기한 느낌이 아닐 수 없었다. 적어도 자신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뭐, 이런 애도 있는 것이겠지. 그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존중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싫은걸. 너희들 앞에서 진심으로 화내거나 그런 거 말이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다시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걸. 물론..바로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아. 그리고 은서도 그랬던 것 같지만... 그래도... 어릴 때 나 괴롭힘 당한 건 아니지?"
순간적으로 그 부분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없어 선우는 살며시 시선을 회피했다. 뭔가 애매한 느낌을 들으면서 일단 그는 말을 줄였다. 다음에 은서를 만나면 물어볼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일단 그는 5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밖으로 내리자 개운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주현을 바라보며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선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너 진짜 체력 좋아졌구나. 아무리 그래도 엘리베이터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국가대표라고 해도 힘들텐데 말이야. 그 정도면 단거리 육상 선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뭐, 네가 지금 하는 일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야. 자. 아무튼 여기까지 왔으니 체육관 구경만 좀 하자! 조금만 보고 집으로 돌아가긴 할 거지만 말이야. 아무튼 열려라 참깨!"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알리바바처럼 유쾌하게 외치면서 그는 낄낄 웃어보였다. 그리고 체육관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