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걸이를 끼곤 재밌다는듯 작게 웃음을 터트리길래, 나는 의아해져선 물었다. 뭐 애가 웃으니까 그야 보기는 좋다마는 그 정도로 소중한 물건이었나? 그럼 생각보다 더 좋은 일을 해준 것 같아서 기분이야 상쾌한데..... 웃는 느낌이 뭐랄까 좀 다르다. 이 쪽 보고 귀엽다는듯 웃기다는듯 웃는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아저씨 뭔가 재밌는 일 했던가? 그런 기억 없는데?
"칭찬해도 발등을 밟히다니 젊은애들은 무섭구만~...하긴 '귀엽다' 보단 '매력적이다' 가 듣기 좋은 나이인가?"
요 나이대 애들은 어른 취급을 받고 싶어한다. '귀엽다' 는건 어딘가 아이스러움이 느껴지는 칭찬이니까. '아름답다' 아니면 '매력적이다' 혹은 '멋있다' 부근을 확실히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는데. 아이 취급 받아서 토라진건가, 허허 아저씨가 보면 귀엽게만 보이는데 말이야.
"아저씨는....."
평소대로 설명을 할까 하다가, 왠지 작은 장난기가 돌아서. 설명해줄 것 처럼 고개를 뜸들이다가 무겁게 한번 끄덕였다.
"아저씨니까."
......
"자, 잠깐 잠깐 잠깐, 이유는 있어! 그러니까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 아저씨 상처받아!"
토고는 이런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순간 떠올리지 않았다. 잠깐... 아주 잠깐 토고는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알거지 됐뿟네."
과거. 토고는 과거로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본 적 없다. 기억을 못할 뿐이지 본적은 있지만 그 상대는 주장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토고는 이 자칭 '아재'에게 무어라 말하고 싶었다.
"내 볼때 니는 나이 맞게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괜히 어른인척 하믄 니 큰코 다칠수도 있다." "니 기술이 훌륭한 건 맞는데... 여가 어데고? 신 한국 아이가? 여서 괜히 어른인것마냥 굴다가 다친다. 아재요 아재요 강요하지 말고 어린 거 티내면서 받아 묵을 거 묵어라."
골드드래곤이 돈이 없진 않을텐데 자식 자생 능력이라도 기를려고 용돈을 짜게 주나. 지난번에도 밥 얻어먹으려고 그러고, 이번엔 경마에 꼴았다고 하고. 여기 안지나갔으면 경마장 앞에서 쪼글쪼글해져선 계속 굶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현기증이 온다.
"앞으론 굶지말고 연락....아니 그럼 돈 잃어도 밥은 먹을 수 있으니 경마할거잖아!"
애가 굶는건 못 참아서 밥은 계속 사주겠다고 말하려다가, 이후에 너무 노골적인 행보가 예상되어 딴죽을 걸었다. 끙. 하고 이마를 짚고 비교적 앓는다. 도박 중독에 빠진 애를 갱생하려면 뭐 어째야 되는가.... 한 편, 도박이랑 인연이 없는 삶이었다보니 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는건지 슬쩍. 아주 슬쩍 흥미만 돌기도 했다.
사실 할 수 있는건 드래곤 피어를 발산해서 주변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만드는 것 뿐이었지만.... 어?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다음 수박축제 애플수박경마 때에 드래곤피어를 쏴서 애들을 경직시키면?! 그러면 1등도 내 마음대로 조작할수 있는건가????
".... 아니 들어봐 처음에는 잃었어. 그런데 다음에 할 때는 내가 잃은 원인을 분석했지. 아 내가 애플수박경마에 너무 무지했구나... 와인의 테루아 처럼 애플수박경마에도 저란 밭이 어디인지가 중요하고, 모종이 저번 시즌에는 어떤 성적을 거뒀는지도 다 공개되어 있더라구. 그래서 다 파악해서 준비하니까 다음에는 분명히 땄거든?? 그래서 이거다 싶었지! 이걸로 딱 1억GP만 모으고 뜬다... 뭐 이런 마음으로 다시 하는데 다음번에는 안 되는거야. 왜 안 된 걸까. 천재적인 나의 예측이 고려하지 못한 변수는 무엇인고 하니까 몇번 레일에서 출발하는지도 중요하고 그날의 기상과 습도와 레이스 코스의 제질도...."
비겁하게 팩트로 때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잠깐 침음성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뒤에 그가 하는 얘기들을 곰곰히 듣다보면,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아아. 물론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비웃은 것도 아니고, 기분이 상한 것도 아니다.
오현이 녀석 때도 그랬지만, 저런 참견은 기본적으로 안하는게 맞다. 상대가 받아들일지 말지는 미지수고, 거부감을 느낀다면 그대로 관계가 틀어지거나 감정상하는 귀찮은 일이니까. '아 예예' 하고 내심 정신병자 취급한체 흘려 넘기면 아무 문제 없어진다. 머리도 좋아보이는 놈이 그걸 모를리는 없다. 그래도 굳이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니 좋은아구만."
나는 기분이 좋아져선 웃었다. 여긴 착한 애들이 많구만. 내 전생이 자세히는 몰라도, 이런 착한 애들이 잘 사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이라면. 썩 거지 같았어도, 보람은 있었을까.
"넘 걱정하지 마라. 사실 아저씨도 생각없이 선생들이나 잘난 사이에서 우쭐 거릴 생각 없으니. 그 정도 사리 분별은 할 줄 알아요."
어른스럽게 우쭐거려서 뭐가 될 실력이 아니란건 슬프게도 본인이 제일 잘 안다. 그럼에도 학우들에겐 굳이 아저씨처럼 굴고 있는 이유는 뭐냐고?
"근데 같이 지낼 학우들끼리는 좀 편하게 지내려고 하는거지. 아저씨도 의외로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야. 오래 보게 되고 전선도 같이 맡을지도 모르는 전우인데, 그런 애들에게 까지 스스로의 모습을 속이면 뭐 정이 들겠냐."
아니 이렇게 시원스럽게 넘어가준다고? 나는 오히려 놀라선 드물게도 칭찬 세례를 쏟아내는 것이다. 아까부터 예의바르면서도 상쾌한 태도가 호감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놈이 있을 수가 있나! 역시 좋은집 애들은 가정 교육도 잘받는건가? 아니지, 오히려 그래서 삐뚫어지는 놈도 많으니까. 순수하게 눈 앞에 이 뇨석이 착한놈이라고 생각하는게 맞겠지.
"뭐 기술이 잘먹혀서 말이다. 골리듯 말했어도 사실 그리 큰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아...그녀석...' 이라는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한준혁이는 대체로 그런 인식인가. 아저씨 메모에 기록 다 해뒀어. 나중에 꼭 참고한다.
"어어. 준비 해야지. 기술도 다시 익히고...."
그렇게 하다가 말을 흐리곤, 쩝. 하고 입맛을 다신다.
"저격수에게 제일 중요한 총기는 뭐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만. 반에서 견제구 정도는 될꺼다."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거너는 무기가 중요함이 특히나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기껏 포지션을 잡고 쏴도 기본 무기로는 견제에 한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걸 생각하면 내 역할은 관측과 견제, 그리고 가끔 허를 찌르는 한방 정도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싶군. 아저씨 누구 말마따나 알거지된 기분이라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