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학생회 멤버들이 저에게만 알려주질 않아서. 당일이 되면 알 수 있겠죠. 이상한 것을 할 이들은 아니기도 해서."
물론 차후에 아키라가 이게 뭐냐고 학생회 멤버들을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 있긴 하겠지만, 그것은 아직은 이후의 이야기였다. 아무튼 별 일 있겠냐는 듯이 가볍게 넘겨버리면서 아키라는 곧 들려오는 아미카의 목소리에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가 작게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는 두 어깨를 으쓱했다.
"저와 같은 반의 친구들이라던가, 제가 아는 친한 동생이라던가, 혹은 1학년의 아이들일수도 있고. 딱히 한 명만 궁금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에요. 뭐, 물론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어떻게 즐길까 싶은 이는 있지만... 실명은 굳이 말하지 않을게요."
설사 누군가를 경유해서 이야기가 흘러들어갈 수도 있고, 만약에 그렇게 되면 개인적인 호기심의 눈빛으로 보이고 있다는 것이 되니 상대에게 있어서도, 자신에게 있어서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천천히 둘러보면서 기회가 되면 그 학생은 뭘 하는지 지켜보기는 해볼까. 그런 생각을 해보며 아키라는 두 어깨를 으쓱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2학기가 시작되었고 시간이 흘렀으니까요. 이 가을도 언젠간 끝이 나고, 겨울철 눈이 쌓이면 저도 은퇴를 해야할테고요. 점점 다른 학년 사람들과는 만나기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네요."
적어도 자신은 입시를 준비할 생각이었으니 공부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아마 눈앞의 이 1학년 소녀도 그다지 만날 일은 없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부터 학생회장이 안 보인다 싶으면 공부한다고 바쁘구나 하고 넘겨주세요."
불과 며칠전만 해도 뜨끈하던 밤바람에서, 서서히 열기가 사라져가는 계절이 오고 있다. 아직까진 세상이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푸름은 붉음으로 바뀌며 이윽고 황량한 풍경만을 남길 것이다. 그 위에 새하얀 눈이 두툼히 덮이는 날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으나, 지금은 눈 앞의 시간이 더 느리게, 촘촘히 흘러가는 것만이 보일 뿐이다.
개학하고 새학기가 시작된지도 제법 지나고, 가미즈미 고교의 축제를 얼마 앞둔 어느 날, 호시즈키 일가는 단란한 저녁식사를 마쳤다. 그 날의 메뉴는 두툼한 햄버그에 토마토 소스를 끼얹고 간단한 샐러드와 스프를 곁들인 차림이었다. 식사 시간은 언제나와 같이 즐거웠고, 후식으로는 벨기에 와플에 각자 취향에 맞는 토핑을 올려 먹기로 하며 각자 먹은 식기와 식탁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와플은 낮에 구워둔거라, 다시 데울 필요 없이 토핑만 얹으면-" "...히루..." "어, 어? 왜? 요루." "나, 부탁이, 있어..." "어...?"
옷깃을 붙잡으며 사뭇 진지한 요조라의 부름에 마히루는 물론이고 부모님도 살짝 긴장한 눈으로 바라본다. 잠시 눈을 깜빡인 요조라는 지금이 식탁을 정리하던 중이란 걸 깨닫곤 조금 이따가, 라며 말을 미뤘다. 덕분에 후식도 깜빡할 긴장감이 쭉 이어졌다. 설거지를 마친 뒤 마히루와 부모님이 거실로 가자 요조라는 총총 걸어 자신의 방에 다녀온다. 두 팔로 한아름 뭔가를 들고 거실로 들어서는 모습 역시 묘하게 진지하다. 그러나 그것들을 거실 테이블에 내려놓고, 그것들을 본 마히루와 부모님에게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붓과 물감 등등의 물건은 사이즈가 좀 작거나 새것이긴 했지만, 어딜 봐도 요조라가 평소에 쓰는 것들이다. 뒤이어 마히루의 불만스런 소리가 요조라에게 향했다.
"너 설마, 이거 연습상대가 되어달라는게 부탁이야?" "어, 응... 어떻게 알았대..." "그야 가져오면 다 알지! 아 괜히 긴장했어! 빨리 말을 하라고 이런 건~~" "뭐래..."
억울해하는 마히루를 보고 요조라도 영문을 알 수 없어서 투덜댄다. 부모님은 옆에서 남매의 모습을 지켜보고 흐뭇하게 웃으실 뿐이었다. 흥, 가볍게 숨 내쉬고 전용 물통에 물을 떠온 요조라는 테이블의 물건들을 쓰기 좋게 늘어놓는다. 전용 붓은 크기별로, 물감은 언제든 뚜껑을 열수 있도록, 팔레트와 물먹일 스펀지도 새 것을 꺼내 대기시켜놓고 그 옆에 방석 깔고 앉아서 마히루를 본다. 마히루는 그때까지도 혼자 작게 으악 거리며 억울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조라의 손길이 살포시, 아주 살포시 팔뚝을 건드려 그 꼴사나운 짓을 그만두게 만들었다.
"으악! 와씨 깜짝 놀랐네. 너 너 아주 하늘 같은 오빠한테 손 자꾸 함부로 대?!" "세 번이나 불렀는데, 못 들은 히루가, 잘못이야..."
옆에서 지켜보시던 남매의 어머니가 요조라의 말에 맞지~ 히루가 잘못했네~ 라며 편을 들어주자 마히루는 더 억울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억울해봤자 또 꼬집힐게 뻔한 상황이었기에, 에휴, 한숨만 쉬고 앞머리를 올려 묶는다. 일명 사과머리를 한 마히루를 보고 요조라가 피식피식 웃자, 웃기만 하면 안 도와준다고 엄포를 놓아 요조라의 손이 붓을 집어들게 했다. 뭐, 들기만 하고 뭘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긴 했지만 말이다.
"안 그리고 뭐하냐? 너 사실 괴롭히려고 이러는거지? 어?" "아니야, 고민 중이야... 뭘 그려야... 더 못생겨질까..." "뭐? 이왕이면 이쁜거 그려- 찍어서 사요 보내줄거라고-" "...얼굴에, 물감, 부어버린다...?" "하기만 해봐 니 얼굴에도 부비고 당장 찍어서 유령 군한테 보내ㅈ윽엑~~ 야!" "응, 입 다물어, 이제 그릴 거니까..."
자꾸 나불대는 마히루의 입을 한번 꾹 집었다 놓은 요조라가 붓끝에 물감을 묻혀 들자 투덜대려던 마히루가 당장 조용해진다. 마히루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던 요조라는 의외로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걸 느끼고 손을 까딱거려 마히루가 눈을 감게 한다. 시선이 없어지자 좀 괜찮게 느껴져서, 붓에 묻힌 물감이 마를새라 얼른 뺨에 붓끝을 댄다.
"앗 차, 이상한 거 그리지 마라 너." "조용히 해..."
붓끝을 가늘게 세워서 뺨 위를 천천히 내리긋자, 캔버스나 도화지에 그릴 때와는 또 다른 촉감이 느껴진다. 곡선을 긋기 어렵다거나 평면에 그릴 때와 다르다는게 느껴져서 연습 안 해봤으면 어쩔 뻔 했을까 싶다. 이왕 하는거 다양한 선을 그어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그리다보니 마히루의 뺨 한쪽이 가득 차는 건 순식간이다. 불규칙적으로 뻗은 검은 선이 마치 검은 덩쿨이 뻗은 듯한 뺨을 보고, 다른 붓에 초록 물감을 묻혀 군데군데 잎을 그린다. 다시 다른 붓에 빨강 물감을 묻혀와 다시 몇 번 톡톡 두드려가며 꽃을 그리자, 멋없던 검은 덩굴이 그럴듯한 장미 덩쿨로 바뀌었다. 감은 눈 옆으로 살짝 꽃잎이 삐져나온 연출을 하자 더욱 그럴듯해져서, 붓을 내려놓은 요조라는 마히루에게 눈 뜨라고 말을 하고 같이 가져왔던 손거울을 들어 보여준다.
"으, 목 떨어지는 줄 알았네. 어디 보자. 음. 흠~" "쓸데없는 소리 빼고, 딱 감상만 말해..." "에이 한마디 할랬더니만. 뭐, 괜찮네. 이 정도면 연습만 좀 더 하면 되겠어." "그래? 그럼... 팔 내놔." "어?"
마히루가 흠칫 놀랄 새도 없이 요조라의 손이 마히루의 팔목을 잡아 쭉 당긴다. 얼떨결에 팔을 뺏긴 마히루는 반항 한번 못 해보고 그대로 팔을 요조라의 페인팅 연습용으로 내주어야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팔뚝의 피부 위에 다시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요조라를 보고, 마히루는 어쩌겠냐는 한숨을 내쉬고 부모님은 살짝 웃으시곤 다시 두 분의 대화를 나누신다. 그러다 뒤늦게 후식 생각이 났는지, 부모님이 와플을 가져오시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남매에게 원하는 토핑을 물어보고, 대답을 들은 후 부엌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마히루, 남은 팔로 턱을 괴고 그림에 집중한 요조라에게 시선을 옮긴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와플 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며, 슬쩍 말을 던진다.
"야, 요루. 요즘 유령 군이랑 잘 되가냐?" "당연하지... 보면 몰라...?" "그렇긴 해. 아주 그냥 아침부터 꿀이 뚝뚝 떨어지더만." "뭐... 불만 있어...?" "불만은 아니고~ 걱정이 좀 되서 말이지~ 걔, 내년이면 졸업이잖아? 그럼 지금처럼 못 지낼 텐데 어쩔건가 해서~" "방법이야, 찾으면 돼..." "방법? 어떡하려고? 동거라도 하게?" "뭐, 가능하다면야..."
뭐?! 순간 마히루의 새된 소리 튀어나오고, 부엌에서 들은 부모님이 무슨 일이냐며 묻는 소리 들린다. 아, 아니에요! 얼른 수습한 마히루는 태연히 붓질하는 요조라를 향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너 미쳤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들이 동거?! 나도 아직인 동거를 하겠다고!?" "시끄럽긴... 가능하면, 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뭘 가능하면이야 가능하면은! 어림도 없어! 누가 그런 허여멀건한 녀석이랑 같이 살게 해준대!" "히루가 뭔 상관이야... 엄마랑 아빠, 허락만 받으면 되는데..." "엄마아빠가 허락해도 내가 허락 못해! 안해!" "아, 시끄러워..."
태연히, 너무도 태연하게 폭탄발언을 늘어놓는 요조라에 마히루는 기가 찬 듯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린다. 이 발칙한 동생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눈으로 흘겨보지만 발칙한 동생은 힐끔 보고 혀를 낼름 한다. 그 모습에 더 속이 타는 마히루였지만 곧 돌아오신 부모님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에휴, 한숨만 푹 내쉰다.
"자아, 이거 먹고 하자~ 어머, 히루, 왜 그러니? 그런 한숨을 쉬고." "어, 음, 오래 앉았더니 허리가 좀 아파서요. 그래서 그래요. 하하..." "허리는 조심해야지. 자자, 이리오렴. 어머나, 히루, 얼굴도 팔도 온통 꽃밭이 되었네. 후후. 곱구나."
어머니의 말에 뒤늦게 팔을 보니 올망졸망한 꽃들이 알록달록 그려져 있다. 마히루와 티격태격 하면서도 요조라는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와플을 먹기 위해 붓이며 물감들을 가볍게 정돈해두던 요조라를 보자 때마침 힐끔거리던 요조라의 시선과 딱 마주친다.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은 눈빛이었지만, 늘 그랬듯 좀 더 대화를 나누면 될 것이다. 그래도 동거만큼은 순순히 인정해줄 생각이 없지만, 절대, 절대 없지만...!
"아, 그렇네요. 일단 사진부터 찍어야겠다. 먼저 드시고 계세요." "다녀오렴. 자, 요루, 토핑 뭘로 얹어줄까?" "나, 나, 생크림이랑, 블루베리 잼이랑..."
어쨌거나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다녀오겠다며 마히루는 일어섰다. 요조라는 부모님 쪽으로 다가가, 와플에 토핑이 얹어지는 걸 보며 눈을 반짝였다. 물 밑에서 발장구 치듯 짧은 소란이 있었던 저녁은 그렇게 평화로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난 보고 싶은데~~!!!!! 리리야악!!!~~~ 하지만 코로리가 본다면 와악 하고 놀라서 졸업할때까지 놀려먹지 않을까..... 치마 길이가 다 덮는 긴 메이드복일지 무릎 보이는 길이일지 모르겠지만 짧은 쪽이면... 회장님 이거 덮구 있을래...? 하고 아우터 벗어줄거 같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