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띠를 쓰는 도중 코세이가 다가왔을 때나, 틀어진 머리띠를 매만져 줄 때에도, 요조라의 시선이 코세이를 빤히 보다가 마주칠새라 얼른 다른 쪽으로 돌아간다. 그걸 봤을지 못 봤을지 몰라도, 묻지 않아도 듣게 된 말, 잘 어울린다는 말에 입술이 살짝 끝을 올리는 건 분명 보였을 것이다. 깜빡이는 눈은 아닌 척 모르는 척 코세이를 힐끔거렸겠지만.
"어, 에...?"
그렇게 내숭 아닌 내숭을 부린 요조라가 코세이의 소매를 끌어 해변으로 데려가려는데, 잠깐이라며 멈춰세워진다. 영문을 몰라 멈춰서자 코세이가 요조라의 손을 소매에서 떼어낸다. 잡는게 싫었나보다, 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손을 감싸는 손 있다. 태연하게 손을 잡아오는 코세이를 까만 눈동자가 힐끔, 본다. 같이 손을 꼭 잡진 않았지만, 보일락 말락 약하게 입술 깨무는 순간은 있었다.
완만하게 펼쳐진 해변은 어딜 앉아도 좋았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좋은 자리란 있는 법이다. 파도가 닿지 않으면서 그렇게 뜨겁지 않은 자리를 찾아 얄팍한 돗자리를 깔고 앉는다. 간이 파라솔도 꺼내긴 했지만, 필요하면 펼칠까 싶어 옆에 내려놓기만 한다. 새삼 사람이 적음을 얘기하는 코세이를 보고 요조라도 주변을 한번 돌아본다. 오늘따라 산책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세상에 둘만 남은 듯한 착각도 살짝 든다. 앉아서 무릎을 안고 턱을 괸 채로 해변과 코세이를 번갈아 보던 요조라, 도시락이라며 내려놓는 도시락통에 시선을 잠깐 주곤, 그 옆에 레몬에이드가 담긴 텀블러를 같이 내려놓는다. 투명한 텀블러 안에서 얼음이 달각대는 에이드는 보기만 해도 상큼한 레몬이 가득이었다.
"도시락, 맡기기만 하기, 좀 그래서... 오빠가, 담근 건데, 맛있어요..."
원래는 마시고 잠 좀 깨라고 챙겨준거긴 하지만, 도시락에 곁들인대도 나쁠 건 없지. 텀블러를 내려놓곤 다시 무릎에 손을 두른 요조라는 눈만 코세이에게 향한다. 관찰하는건지,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잘 모를 시선을 보내고 있다가 묻는다.
"지금... 먹을까요? 도시락..."
아니면, 조금 이따가도 괜찮다고, 중얼거리곤 손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다. 어쩐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요조라는 속으로 생각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 진짜 너무 쪽팔린데 그러신 것 같아..... 몇분째 이 시간에 혼자 서있으니 무슨 일 있는줄 알았다고 찾아오셨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 택시가 안 잡힌다고..... 죄송하다고 괜찮다고 인사드리니 가셨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ㅠ
(동공지진) 맙소사. 그래도 경찰이 신경을 써주긴 하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래도 서로서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까하고. 그건. 뭔가, 뭔가 상당히 웃픈 상황이에요. 아무튼 캡틴은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내일 아침부터 가족이랑 놀러가기 때문에 저녁에 오지 않을까 예상이 드네요. 음.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은 잡 가구 있다구~! ( ´∀`)...... 경찰차가...... 계속 옆에 멈춰서있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내가 일이었던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 택시 콜 잡고 있다는 화면까지 보여드렸다구 (⌒▽⌒).......... 캡틴 말대로 정말 웃픈 상황이야......... ㅋㅋㅋㅋㅋㅋㅠ 캡틴은 내일 잘 놀라구~! 가족들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래!
해변의 어느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요조라가 가져온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도시락을 꺼내놓으니 그녀도 같이 가져온 텀블러를 내려놓았다. 투명한 텀블러 안에는 약간 노란색의 액체가 담겨있었는데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오빠분이 만들어준 레몬에이드라고 했다. 놀러가는거라고 만들어주신걸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말을 하면서 나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
" 그럼 조금 이따가 먹는걸로 할까요? "
앉아서 무릎을 손으로 끌어안고 그대로 턱을 올려놓은 자세로 앉아있던 요조라는 나와 해변을 번갈아가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는건가 싶었지만 그저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지만, 일단 가져온 도시락을 한쪽에 치워 두었다.
" 햇빛이 좀 따가우니까 파라솔 좀 칠께요. "
그늘이 좀 져있는 장소이기는 했지만 드문드문 햇빛이 비쳐들어오고 있었기에 그녀가 꺼내둔 파라솔을 가져와서 적당히 햇빛이 가려지도록 설치했다. 간이 파라솔이라 좀 작기는 했지만, 원래 그늘이 있던 장소라서 이 정도만 있어도 충분했다. 그렇게 얘기하고서 나는 그녀의 팔을 살짝 잡아 끌면서 말했다.
그때는 아직 아리까리한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주변에 여럿 있었으니 그런데서 대놓고 티낼 요조라도 아니고~ ㅋ.ㅋ 나중에 독백에서 묘사하려다 말았는데, 그 왕게임 꿈 꾸고서 일어났을 때 코세이랑 미션 걸린 부분만 흐릿~하게 기억에 남아서 그 뒤로 조금더 의식하게 됐다~ 그런 흐름이었어~
이전, 아직 관심도 없을 때에는 코세이가 무슨 말을 하든 말든, 대답을 어떻게 할지 말지 그런게 하나도 고민스럽지 않았었다. 그야 관심이 없었으니까, 괜히 용건 없이 사람 귀찮게 한다고 짜증이 나면 났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하고싶은 말은 고사하고 대화를 잇는 것도 어렵다. 고민이 된다. 말 한마디 꺼내는 것이, 행동 하나 하는 것이.
일단 도시락과 텀블러를 꺼냈으니 이걸 지금 먹을지 어떡할지 요조라가 겨우 말을 꺼내자, 코세이는 조금 이따가로 할까 되물어온다. 요조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 다시 무릎에 턱을 괴었다. 저 앞에 일렁이는 바다가 참 예쁘고 보기 좋은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눈에 안 들어오는걸까. 시선은 의식하지 않으면 자꾸 코세이에게 향하고, 그걸 바로잡다보니 힐끔거리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그러던 중 코세이가 파라솔을 치겠다며 움직이자 다시 고개를 끄덕거린 요조라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코세이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새까만 눈동자에 은빛 머리카락이 살랑거린다. 지금의 은빛이 실은 얼마나 예쁜 검은빛인지 요조라는 안다. 서스럼없이 자신을 보여주던 코세이의 모습은 언제까지고 요조라의 뇌리에 남아있을테니. 그래도 평소의 은빛 머리칼도 코세이다워서 잘 어울린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깜빡이다가, 팔을 잡아 끄는 코세이의 행동에 요조라의 흰 팔이 저항 없이 코세이 쪽으로 당겨진다. 자연스레 따라간 몸이 그쪽으로 툭 기운다. 팔 잡은 손 떨쳐내진 않았지만 그 의도를 궁금해하듯 바라보던 요조라, 이내 조심스레 움직여 코세이의 옆으로, 팔과 팔이 닿을만큼 가까이 자리를 옮기고서 작게 중얼거린다.
"지금 누우면, 잠들어서... 아마, 늦게 깰 테니까... 이대로, 있을래요..."
원래라면 오전에 그림을 마치고 잠들어 오후 늦게, 혹은 저녁에나 깨어 활동을 했을 테지만, 오늘은 이례적인 날이었으니 말이다. 코세이와 함께 있는데 깜빡 잠들어서 그대로 하루를 보내버리긴 싫었다. 그러니 무릎 베개는 괜찮다고 사양하다가, 문득 코세이도 자신과 비슷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는게 생각난다. 지금 자신보다 피곤한 사람은 코세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조금은 용기를 나서, 조곤조곤 말해본다.
"코세이는... 피곤, 하지 않아요...? 조금, 누워, 있어도... 되는데... 제 무릎..."
말을 꺼낸 건 좋은데 중간부터 몰려온 부끄러움인지 무엇인지 때문에 말끝이 살짝 흐려진다. 그래도 의미가 전달 될 만큼은 말을 했으니, 아까처럼 코세이의 셔츠 소매를 살짝 집어 당겨보는 것으로 어떻겠느냔 말을 대신한다. 그러면서 코세이를 향한, 옅게 다크서클이 드리운 요조라의 얼굴은 변함없이 희었지만, 머리카라 아래 숨겨진 귀끝이 미미하게 붉어지고 있었다.
사실 아까부터 힐끔거리는 시선을 신경 쓰고 있었다. 바다를 보다가도 나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바다를 보는 그녀의 시선을 잠깐 바라보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어서 얼굴을 쓸어봐도 그런건 보이지 않았다. 예전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그때도 지금도 그게 매력적이지만 가끔은 하고싶은 말을 해도 좋을텐데.
" 왜요, 잠든 모습만 봐도 좋은데. "
장난스런 웃음과 함께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건 진심이었다. 만약 내 무릎에 누웠다면 마치 여동생에게 해주듯이 기분 좋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겠지. 물론 요조라 입장에서는 눈을 감았다가 떴더니 하루가 다 지나가있는 모양새라서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도 있기에 나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면서 옆에 다가온 요조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 아? 조금 무거울텐데 ... 괜찮겠어요? 저는 좋긴한데 ... "
그 와중에 같은 제안이 그녀에게서 되돌아왔고 나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도 무릎베개를 잠깐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그럼 실례 좀 하겠다는 말과 함께 살짝 그녀의 허벅지와 무릎 사이에 머리를 뉘었다. 불과 한달 전에는 이렇게 될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 행복한 마음으로 아래에 누워서 그녀를 올려다보던 나는 손을 들어서 그녀의 볼을 살짝 찌르며 말했다.
" 솔직히, 진짜 고양이 같은데, 그래서 예쁘고 좋아요. 내가 살아온 세월에서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본건 처음이라 ... 조금 낯설기는 하지만, "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검은 눈동자는 서서히 감겨가는 눈꺼풀 아래로 사라지고 볼을 찔렀던 손은 그녀의 손을 마주 잡으면서 말했다.
" 여태까지의 내 삶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걸 ... 알려주고 싶었어요. "
몇천년을 이어오던 삶은 마치 지금을 위해서 존재했던 것 같다. 그녀의 마음이 나와 같기를 속으로 바라면서 나는 아주 약간, 선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