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코세이는 역시 여름에 어울리는 옷차림이었다. 심플한 색의 조합이 우연찮게도 요조라의 원피스와도 잘 맞는 느낌이라, 말도 안 했는데 서로 맞춰 입은 것 같다. 차림이 가벼운 걸 보니 물놀이는 안 하려나, 살짝 생각해보고, 오늘도 변함없이 웃으며 해주는 말에 괜히 손 꼼지락거린다.
"코세이도, 요..."
뭘 입어도 잘 어울린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한다니, 평소라면 전혀 아쉽지 않았을텐데 오늘은 왠지 아쉽다. 지금이라도 말해볼까, 잠깐 고민하던 요조라는 코세이가 선물이라며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는 손에 시선이 간다. 가방에서 하얀 머리띠가 코세이의 손에 들려 나오고, 뜻밖의 물건에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머리띠를 받는다. 언제나 묶던가 풀러두던가 둘 중 하나이던 요조라의 까만 머리카락 위로 하얀 머리띠가 슬그머니 씌워진다. 거울이 없으니 잘 썼는지 보이지 않아 손으로만 대강 짚어보고, 괜찮다 싶어서 손을 내리고 코세이를 바라본다.
"띠는, 잘 안, 쓰는 편이라... 조금 어색한데... 음... 그래도, 고마워요..."
어색하긴 해도 쓰기는 제대로 썼고, 하얀 샌들과 매치가 되어 제법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선물을 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은 꺼냈지만 차마 잘 어울리냐고 물을 용기는 나지 않아, 또 잠시 손을 꼼질거리며 머뭇거린다. 그러다 흘깃, 마히루가 챙겨준 레몬에이드에 눈이 가고, 이대로 머뭇거리고 있느니 얼른 바다로 가는게 나을거 같아 한 손으로 슬쩍 코세이의 셔츠 소매를 잡아본다.
"시간, 아쉬우니까... 가요. 저쪽에, 자리, 괜찮은거 같으니까..."
하고 싶은 말 대신 에둘러 다른 말을 하곤 요조라가 한발 앞서 해변가로 향한다. 손도 아니고 팔도 아니고, 셔츠 소매를 쥔 채 말이다.
흰 색의 머리띠가 요조라의 손에 들려서 머리로 향한다. 조심히 머리에 머리띠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약간 설레는 감정을 느끼며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거울이 없어서 그런가 살짝 틀어진듯한 머리띠를 살짝 매만져주고 조금 떨어져서 바라본다. 왠지 잘 어울릴것 같아서 샀는데 짙은 검은색의 머리카락과 상당히 잘 어울려서 만족스러웠다.
" 잘 어울리네요. 사길 잘했다. "
완전 고양이 같아. 뭔가 꼼지락거린다던가 우물쭈물하는게 약간 눈치 보는 고양이 같아서 더욱 귀여웠다. 아, 저번에 고백하길 잘했어. 신생에서 간만에 느껴보는 승리자의 느낌. 경쟁자는 ... 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다 셔츠 소매를 잡으며 하는 말에 나는 그녀에게 살짝 이끌려서 해변가로 향했다.
" 앗, 잠깐만요, 잠깐만. "
어느정도 해변으로 향하다가 나는 잠깐 그녀를 불러세웠다. 그리고선 셔츠 소매를 잡고 있던 손을 다른 손으로 살짝 떼어내고선 그대로 남는 손으로 맞잡아준다. 그리고선 용건이 끝났다는듯이 다시 요조라를 바라보고선 말없이 웃어주면서 가던 길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가 봐둔 자리로 금방 도착했고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 확실히 사람이 적기는 하네요. "
버스가 한번에 오지 않는다는게 접근성에서 감점 요인이라 그런지 다른 곳보다도 사람이 적었다. 가만히 앉아서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가져온 도시락통을 바닥에 내려두며 말했다.
다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데에 렌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솔직히 그렇게 칭찬에 익숙한 편은 아니었다.
자기도 안 빠트렸다며 시치미를 뚝 떼는 코로리의 말에 렌은 작게 웃을 뿐이다. 코로리를 위해서라면 몇 번을 빠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미 풍덩 빠져있는 것 같기도하고. 왠지 뭔가 조금 홀린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혹시 무서우면 바로 이야기해요. 물은 겁 먹는 순간 더 위험해지니까."
물을 대할 때는 늘 겸손하면서도 담대해야 했다. 물을 깔보는 순간 사고를 당하기 쉽상이었고, 평정을 잃는 순간 얕은 물에서도 익사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파도는 너울너울 쳐서 튜브를 위로 올렸다 내렸다 했다. 코로리도 튜브에 매달려 있으면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위 아래로 울렁거리는 파도를 느낄 수 있을 터였다. 그래도 아직 발은 닿는 범위 내이다.
"코로리 씨는 바다 수영은 처음이에요? 아니면 3년정도 있으셨으니까 코세이 씨랑 몇 번 놀러왔으려나?"
렌이 파도에 따라 가슴팍이 젖으면서 코로리의 튜브에 손만 얹고 있었다. 가미즈미의 바닷물은 정말 맑고 깨끗한 애매랄드 빛이었고, 얕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겁많은 물고기들이 슬쩍 보였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바닷물 엄청 깨끗하고 시원하지 않아요? 이래서 가미즈미를 못 떠나겠다 싶기도 하고."
렌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바다의 깊이에 따라 코로리의 양갈래로 땋은 머리카락이 물에 푹 젖어 너울너울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