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병정들이 하얀 장미꽃들을 빨갛게 칠하는 것보다 더 꼼꼼하게 선크림을 발랐다. 가디건을 입고 있어 드러날 일 없는 팔도 꼭꼭 발랐으니, 하트 여왕에게 들킬 일은 없겠다. 코로리가 찾아본 물놀이 주의사항 대부분 중 자외선 차단 말고는 물놀이 중에 조심해야할 일이었어서, 깜빡한 것은 없겠지 세어보니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 이제 노는데 걸림돌은 없다! 코로리는 렌과 손을 잡고서 바다 들어갈 때까지 걷고 싶었다. 렌의 손을 잡으려고 보니 렌은 가디건 이야기가 부끄러웠는지 목을 매만지고 있는 중이었다. 더 숨어야 했던걸까?! 코로리도 렌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었다면 위에 무언가 하나 꼭 덮었을 것만 같아서, 더 숨었어야 했나 생각한다. 조금 덜 숨어서 렌이 부끄러워하는게 아닐까 싶은 거다. 치마를 다 덮은 가디건 밑자락을 꾹꾹 아래로 잡아당겼다.
"렌 씨, 손."
그러고나니 렌에게 손을 내밀며 짓는 눈웃음이 수줍었다. 손만 잡으려고 말 하는 것 같더니 한마디 더 덧붙인다.
"렌 씨는 오늘도 예쁘네!"
흑색을 좋아했는데, 렌과 만나고서부터 파랑을 좋아하게 됐다. 렌을 보고 있으면 함께 보이는 하늘과 바다가 푸르르고 렌의 눈에도 따뜻한 파랑이 어려서, 렌을 좋아하고, 렌을 좋아하면서 좋아하게 된 파랑도 가득이라 마냥 예쁜 것이다. 안 예쁜 적이 없지만!
"…응. 튜브는 대여하자."
원래 코로리는 낮에 잤다. 밤에 자지 않으니 그게 맞았는데, 이게 다 회장님 때문이야! 잠은 조금 자고 온 거냐는 질문에 매번 잠만 자는 여자친구는 별로 인기 없다느니 하는 말을 들어버린게 생각나서 조금 풀이 죽었다. 렌이 좋아해준다면야 인기 있든 말든 상관도 없는데, 렌에게도 인기 없을 수도 있는 요소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돼 버린다. 머리에 손길 닿으니 금방 고개 도리도리 젓고 웃으며 말하기는 했지만.
뭔가를 숨기는 건 하트 여왕님일까. 생각해보면 아주 옛날에 읽었던 것이지만 하트여왕이 무시무시하게 묘사되었던 것 같기도 했다. 렌은 코로리가 손, 이라며 손을 내밀자 말 잘듣는 강아지 마냥 그 위에 손을 얹고, 이내 그 손을 폭 감싸 잡는다. 거의 머리까지 쓰다듬어달라 할 기세다.
“코로리 씨가 더 예쁜데요….”
조금 부끄러운듯이 말한다. 코로리는 늘 자신보고 예쁘다고 말하는데 도대체 어떤 모습이 예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어서 잡지 않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렌은 잠시 풀이 죽는 코로리를 보며 순간 물음표를 띄웠다. 튜브 이야기 때문에 그런 걸까? 하지만 워터파크에서도 튜브 타고 잘 놀았었는데? 렌은 잡은 코로리의 손을 살살 흔들며 튜브를 대여해주는 곳으로 걸으며 물었다.
“왜 갑자기 풀이 죽었어요? 수영 못하는 거 때문에?”
렌이 코로리의 의사를 물었다가 튜브를 대여해주는 곳에 도착했다. 여러 모양의 튜브들이 있고 렌은 코로리가 튜브를 고르면 아마 그 튜브를 골라 받을 것이었다.
손을 내미니 바로 폭 감싸 쥐어주어서, 코로리는 눈을 접으며 웃었다. 활짝 지은 눈웃음은 눈을 꼭 감은 것처럼 보일 만큼 곱게 휜 모양이다. 코로리는 쥐어진 손을 가만두지 않고 손가락을 꼼질거렸는데, 으레 그랬던 것처럼 손깍지를 끼고 싶어서였다. 렌의 손가락 사이로 손가락을 얽으려고 하는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서, 작고 간지럽다.
"그럼 렌 씨는 예쁘다가 많이 모여서 어여쁘다구 할래."
코로리는, 코로리야말로 저를 예쁘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 나는 예쁜게 맞지만! 잠이 얼마나 귀한데! 그렇지만 요즈음의 인간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낮에도 자지 않고 밤에도 자지 않으려고들 한다. 오는 잠을 쫓아내기 바쁜데, 너 예쁘다 하면 저가 더 예쁘다고 하니 낯간지러웠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양 더 간지러운 말을 하고 있는 듯 했지만 귀 끝에 빨갛게 열이 올랐다. 걸어가며 스쳐지나가는 바닷바람도 식히지 못한다.
"으응, 저번에ー 회장님이 '매번 잠만 자는 여자친구는 별로 인기 없다고요.' 라고 해서…."
렌 씨도 그럴까봐.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삼켰다. 엄청 써서, 그런 일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쁜 생각이라며 떨쳐낸다. 튜브 고르는게 우선이다! 이런저런 모양으로 알록달록한 튜브들이 줄지어있는데, 코로리는 단박에 어떤 모양을 할건지 골라냈다. 대개 좋아하는 마음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하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색을 칠하면 많이 좋아할수록 빨갛게 칠하던데 그 빨간 하트 모양의 튜브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리는 하트 모양 튜브를 건네 받으면 사람 들어가라고 만들어둔 중간의 빈 구멍 사이로 렌을 바라보았다. 키득키득 작고 개구지게 웃는 소리를 낸다.
렌은 손 안에서 꼼질거리는 손가락에 간지러워 작게 웃다가 이내 코로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손깍지를 꼈다. 자신의 손에 비해 너무 작고 보드라워서 잡을 때마다 왠지 조심스러워진다.
결국 또 알 수 없는 칭찬으로 돌아오는 말에 이내 더 반박하지 못하고 웃음으로 넘겨버린다. 누가 더 예쁘니 반박해봤자 어차피 서로의 얼굴에 금칠하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다른 사람이 들으면 욕할 터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그 말에 작게 웃어버렸다.
“저는 잘 자는 여자친구가 좋은데요. 코로리 씨는 또 자는 게 일이니까. 인기 없으면 어때요. 나만 좋으면 되지.... 그나저나 제가 들은 건 좀 다른데, 아키라 선배가 코로리 씨는 자기 앞가림은 잘 할 것 같다고 칭찬하던걸요.”
렌은 아키라가 투덜투덜했던 부분은 빼고, 칭찬했던 부분만 쏙 빼어서 이야기했다. 매번 투닥거린다고 하고 아키라에게서 코로리에게 얼마나 당했는지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렌이 보기에는 두 사람 다 좋은 사람들인데 왜 서로 투닥거릴까ㅡ상성이 좋지 않을 뿐이었다ㅡ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아키라는 코로리한테 전하지 말라고 했지만, 음….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었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어쨌든 갑자기 아키라에게서 라인이 와서 코로리 이야기를 하길래 응? 했었지만 아무래도 여름방학 중에 마주친 모양이었다.
렌은 코로리가 튜브 사이로 자신을 보며 갇혔다 이야기를 하니 그 모습이 또 귀여워서 웃는다.
“제가 보기엔 코로리 씨가 갇혔는데?”
코로리가 렌을 보는 것처럼 렌도 코로리가 구멍 안으로 보였다. 빨간 하트가 뿅뿅 그려져 있는 튜브 사이로 보이는 코로리는 참 귀여웠다. 렌은 이내 코로리에게서 튜브를 앗아 한 팔에 껴 들고는 다른 손으로 코로리의 손을 찾아 잡았다. 이제 바다로 향할 차례였다. 신은 샌들로 모래바닥을 사박사박 밟으면서 점점 짙어지는 물기어린 모래로 향할 터였다.
그녀가 수박을 받아들어서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키라 역시 수박 한 조각을 통에서 꺼냈다. 역시 이런 더운 여름날에는 수박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과즙도 달콤하고 시원하고, 무엇보다 여름하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고는 하지만 그거야 무엇이든지 마찬가지였다. 거기다가 자신은 그렇게 많이 먹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는 수박을 한 입 베어먹으면서 그 달콤한 과즙과 시원함을 제대로 만끽했다.
"그래요? 그러면 조만간에 들려야겠네요. 올해는 어떤 것들이 올라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먹어보고 싶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서 제가 언젠가 제대로 경영권을 받게 되고 경영을 하게 되면 호시즈키 당에게 요청해서 그곳의 화과자나 다른 제품들을 납품해줄 수 없냐고 요청해볼까도 생각 중이거든요. 뭐, 요즘은 단순히 온천이나 스파만 즐기는 사람들보다는 그것을 기본으로 깔고 다른 것들도 즐기고 싶어하는 이들도 많아서."
이를테면 온천에서 전통주를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던가, 혹은 우유를 먹고 싶어하는 이들이라던가. 그런 것과 다를바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온천이나 스파를 즐긴 후, 달콤한 화과자나 다른 것들을 먹으면 그건 그것대로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까 그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혹은 거기서 선물세트 같은 것을 만들어서 팔 수도 있는거고. 그렇다면 온천이나 스파에 오려는 이들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는 거니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었기에 정말로 그대로 잘 흘러갈진 알 수 없었다. 허나 시도를 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겠는가.
그러다 춤 이야기가 나오자 아키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제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을텐데 저라는 것을 아셨네요. 네. 동굴 근처에 있는 신사에서 춤을 추긴 했었죠. 맹세의 춤인건데. 올리고 싶다면 올리셔도 괜찮아요. 다만 잔실수가 여러 번 나온 것 때문에 보는 사람들이 만족스러워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정말 모범적인 춤 자세와는 조금 다른 실수가 나온 것을 떠올리며 아키라는 괜히 쓴 웃음소리를 냈다. 물론 잘 모르는 이들에겐 그게 그거 같을지도 모르지만. 이어 수박을 마저 입에 집어넣고 그는 껍질을 근처에 있는 비닐봉지 안에 집어넣었다.
코로리는 목소리를 훅 낮추며 렌을 불렀다. 조금 다급한 것 같기도 하고, 렌과 꼭 잡고 있는 손을 꾹꾹 당기는게 저 좀 봐달라는 모든 표현을 다 하고 있었다. 렌이 코로리를 봐주면, 코로리는 소근소근 렌의 귓가에 가까이 대고서 속삭일 것이다. 바닷가도 공공장소니까, 렌 씨 안으면 안 되는 거겠지이? 하고서 물어보고 렌을 올려다본다. 꿈 속에 그려진 인간 세상에서는 무얼해도 상관없었는데, 실제로 오게된 인간 세상은 하면 안 되는 것도 많았고 조심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 렌이 해준 말이 고맙고 기뻐서, 무언가 벅차올라 이 어쩔 수 없음을 진정시키려면 한 번 꾹 끌어안으면 나을 것 같았다. 아마도 좋아하는 마음이 넘쳐 흐른 거겠다. 이미 한계치까지 모든 마음이 렌을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마음이 꽉 차면 넘쳐흐르면서 점점 더 커진다는 걸 몰랐다.
"나두 인기 없어도 된다구 말했어. 렌 씨만 좋아해주면 상관없으니까!"
그리고 아키라의 칭찬은, 그거 진짜루 회장님 맞아? 믿기 힘들었다.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저를 싫어하지 않는다고는 말했지만, 싫어하지 않는다면 미워하기라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잠의 신이 밤새 일하고서 잠 좀 자려고 하면 꼭꼭 나타나서 잔소리하고ー학교에서 자면 안 된다. 땡땡이도 치지 않는 것이 옳다ー, 양귀비로 피기도 하고, 인기 없을 거라니 악담하고, 물어본 것에 대답않고 무시까지 하겠는가.
"회장님은 나 미워할거야."
입술 삐죽이며 투덜대려다, 튜브 너머 렌이 웃는 것을 보면 그럴 새도 없다. 렌이 보기에는 제가 갇혔다는 말에 눈 동그랗게 떴다가 웃었다.
"나 렌 씨 웃는 거 좋아."
꿈이나, 후링보다 반짝반짝해. 렌이 웃는 걸 볼 때마다 별가루가 내리는 것 같았다. 꽃잎이 팔랑팔랑 튀는 것 같기도 하고, 상큼한 여름 향이 톡톡 터지는 것 같기도 하고. 코로리는 또 대뜸 다른 소리를 하고서 렌이 잡는 손을 꼭 잡았다. 손을 잡고 있는게 좋아, 옆에 있는 사람이 렌이라는게 좋아 발 아래로 데굴데굴 모래알이 굴러들어오고, 샌들 사이에 걸리는데도 잘 몰랐다. 철썩 밀려온 파도가 발을 적시고서 쓸려나가면 그때서야 깜짝 놀라 발 밑을 본다. 모래는 젖어있고 언뜻 조개 껍데기들이 보인다. 코로리는 눈 깜빡거리다 자리에 폭 쭈그려 앉더니 조개 껍데기를 빤 바라보다 렌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