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각 속의 저는 대체 어떤 이미지인지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어지는데 답해줄 수 있을까요?"
이전에 누군가에게도 이런 물음을 던지긴 했지만 그 의미는 확연히 달랐다. 놀릴까봐라니. 자신이 언제 그녀를 놀렸단 말인가. 자신이 그녀에게 놀림을 당했으면 당했지. 정말로 억울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정말로 뚫어져라 바라봤다. 허나 이어지는 말. 다 이를까봐 그랬지라는 말에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살며시 시선을 회피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일단 자신이 예상하는 상대. 그러니까 그녀와 함께 호타루마츠리를 온 '세이 렌'에게 자신이 말을 전달해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이른 것이 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헛기침을 여러 번 냈다.
"어흠. 쿨럭. 쿨럭. 하지만 뭐, 반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서로서로 이런 것은 따지지 말고 넘어가도록 하죠. 이자요이 씨에게도 그게 낫잖아요. 안 그래요?"
그래서 슬그머니 서로서로 쌤쌤이라는 느낌으로 넘어가려고 하면서 그는 나중에 렌에게 라인을 보내서 그때의 그 말을 할 거면 자신이 전달한 것은 무조건적으로 비밀로 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이 전했다는 것을 알았다간 필시 2학기 시작하자마자 어떤 심술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괜히 도리도리 저었다.
"일단 말하는데 전 연애 경험 있거든요? 뭐, 그렇게 오래 간 것은 아니지만 당신처럼 처음은 아니에요. ...그리고 애초에 지금은 연애라고 해도... 딱히 뭐랄까. 잘 모르겠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라서. ...뭐, 이쪽도 남자친구에 대해서 안 물으니까 그쪽도 굳이 묻지 마요. 알았어요?"
불명확하게 말을 하면서 그는 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일단 그녀에게 서로서로 물을 거 없지 않겠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며 사태를 얼버무리려고 하던 아키라는 일단 카드를 받아들었다.
"영수증은 주세요. 항상 모아놓고 있거든요. 뭐, 아무튼... 남자친구에게 너무 폐 끼치진 마요. 매번 잠만 자는 여자친구는 별로 인기 없다고요. 아마도."
렌은 코세이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원래는 새까만 머리카락이라니. 그러고는 머리 끝을 살짝 검게 물들였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모습에 렌의 표정은 신기함을 다 감추지는 못했다. 그래도 비밀이라며 하는 말에 작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자물쇠는 많이 달아뒀으니까요.”
마치 코로리의 말을 인용하듯 말했다. 코세이는 코로리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으니 아무래도 상징적인 느낌의 코로리의 말도 거의 다 알아듣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부러워 지는 것이었다. 코로리의 말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이야기를 많이 나눈 친한 사람만 온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마치 암호 같았다.
“그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렌은 코세이의 말에 조금 쑥쓰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영 감정을 숨기는 것에는 부족한 편이었다. 다행히 반대하거나 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영 마음이 놓이는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그래도 최악은 면한 것이려나.
그렇게 도착한 해적선의 구조물은 꽤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었고 바닥은 얕게 물이 깔려있었다. 렌은 물에 발을 담그며 해적선을 올려다봤다. 왠지 코로리가 해적선이라며 피터팬이라며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해적선은 여러곳에 미끄럼틀이 연결되어 있어 낮은 곳부터 아주 높은 곳까지 선택해서 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앙의 꼭대기에는 물이 천천히 받아지다가 가득 찰때 쯤 기울여저 한꺼번에 물벼락이 쏟아지는 것도 있었고, 사람들이 장난을 치면서 벌칙으로 물벼락을 맞는 모습도 보였다. 렌은 저 꼭대기에 있는 미끄럼틀에서 사람들이 물과 함께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고 요조라가 생각나 코세이에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호시즈키 씨, 수학여행 때 마주쳤었는데 거기 제일 무서운 롤러코스터를 두 번이나 타더라고요. 게다가 호러 방탈출 같은 무시무시한 걸 좋아하는 것 같던데….”
렌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서운 것이 나타날 때마다 그것도 무서웠었지만 그걸 보며 웃는 요조라도 만만찮게 무서웠었다.
착했다가 못됐다가 시도 때도 없어! 안개 껴버려라! 부르지 말아달라고 하거나, 듣기 싫어했던 별명 두개를 하나로 합쳐버리더니 해맑게 대답한다! 방긋 웃으며 대답하고 책 다섯권을 차곡차곡 쌓는다. 그러다 아키라의 억울하고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보니 눈썹을 조금 찌푸린다! 왜 아키라가 그런 표정을 짓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놀리다고 완곡히 표현해준 것에 고마워해야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동안 학교에서 자지 말라고 잔소리한 걸 생각하면, 괴롭히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고 해도 할 말 없는 것 아닌가.
"회장님."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키라가 눈을 피하고서 헛기침을 하자, 이번에는 코로리가 아키라를 나긋이 부르고서 지그시 쳐다본다. 회장님 방금 문 잠갔지! 헛기침을 여러 번 하면 아무래도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코로리는 절대 쌤쌤이라고 넘어가줄 생각이 없다는 듯 아예 눈까지 가늘게 뜨고서 바라본다. 아키라가 결제한 책 다섯권을 건네주지도 않고 품에 안았다. 대답 안 하면 책 안 돌려주려나보다.
"토토 할게. 토토는 말 안 해ー"
오즈에 가면 동물들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도로시가 기르는 강아지 토토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귀찮아서 말을 안 했을 뿐이었고, 이유야 다르지만 코로리도 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같았다. 코로리는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고서, 영수증을 건넨다. 책들은 건네지 않고 있었는데, 아키라가 하는 말을 듣고서 더욱 건네주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잔소리쟁이 계모가 인기없거든?! 그리고 난 인기 없어두 돼."
인기 있어봤자 코로리에게는 딱히 의미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해주니까! 회장님은 그런 사람 없으면서. 바보 회장님. 햇님 남작 회장님. 잔소리쟁이 계모 햇님 남작 회장님. 소리내 말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햇님 남작은 또 무슨 의미인거야? 도저히 해석을 할 수 없었기에 그는 영문 모를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햇님 남작. 아무리 곱씹어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언제는 그녀 특유의 비유법을 해석할 수 있었냐만. 나중에 친구를 만나면 자신과 햇님 남작의 공통점을 찾아달라고 말하기로 하면서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당연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빤히 바라보았음에도 그는 시선을 쭈욱 회피하면서 모르는 척 했다. 아니. 하지만 애초에 그 이전에 있었던 일이니까 별 상관없는가 아냐? 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길한 예감밖에는 들지 않았다. 이거 자칫 잘못 말하면 정말로 큰일날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예감이. 그렇기에 그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그보다 토토는 또 뭔지.
"아니요. 그것보다 왜 책은 안 주는 거예요. 영수증 받았으니까 책도 줘요."
품에 안고서 책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이건 또 무슨 심술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면서 어서 책을 달라는 듯, 그는 정말로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그 와중에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의 말에 이어 대답했다.
"딱히 인기 없어도 상관없거든요? 어차피 이 자리에 있으면 미움 받았으면 받았지. 환영받는 일도 없다구요. 학생회장이 찬양받고 인기쟁이이고 그런 것은 만화 속에서나 있는 이야기에요. 아무튼 저에게 뭘 말해달라는 거예요? 그보다 제 책 줘요. 결제했잖아요?!"
어서 달라는 듯 그는 다시 한 번 손을 내민 후에 반대편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긁적였다. 이어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그녀에게 물었다.
"제 첫번째 연애라도 듣고 싶은 거예요? 뭐예요? 요구조건이 뭔지 일단 얘기해봐요. 듣고 판단할테니까."
어느새 리리의 말버릇까지 닮아버린건지 자물쇠를 달아뒀다는 말에 잠깐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좋아하면 닮는다더니 많이 좋아하긴 하나보네. 아무렇지 않은척 하고 싶어도 조금 싱숭생숭한 마음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온데다가 열심히 챙겨주기도 했으니 이게 딸이 남자친구가 생겼을때의 아버지 마음인가 싶다.
" 본인이 잘 행동한건데 저한테 감사할 필요는 없어요. "
말 그대로 본인의 행동 결과를 내가 보고 판단한 것에 불과한거니까. 웃으면서 대답한 나는 해적선 구조물 앞으로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여러가지 높이의 미끄럼틀과 물벼락이 쏟아지는 거대한 오크통 구조물등 흔히 해적선 어트랙션이라고 하면 볼 수 있는 것들은 다 있었다. 뭐부터 타는게 좋을까 고민하고 있으니 렌 군이 요조라에 대해서 말하는게 들렸다.
" 아 그래요? 제 앞에서 그런 모습은 보여준 적이 없어서 ... 기억해둬야겠네요. "
근데 왠지 그런거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긴 했다. 마치 인생에 자극이 없어서 그런 것으로라도 자극을 느끼려는 느낌이랄까. 물론 지금 느끼는 요조라는 그런 것과 하등 상관 없긴 하지만 첫인상을 생각하면 그렇다는거다. 머릿속에 요조라의 취향 정보를 입력해두고 이어진 렌 군의 질문에 잠깐 고민하다가 답했다.
" 음 ... 좋아하는건 아닌데 또 못보는건 아니라서요. 애초에 그런거 무서워하는 성격도 아니고. "
물론 일부러 놀래키는 장면에서는 놀라기도 하지만 무서움을 느낀다거나 하는건 아니었다. 거기서 나오는 귀신은 잡귀 수준이라 실제로 우리 앞에 나타나도 벌벌 떨다가 돌아갈 느낌이라서 그렇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나는 가장 꼭대기에 있는 미끄럼틀을 가리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