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느려지던 발걸음이 멈추면 남은 한 쪽도 걸음이 멈췄다. 코로리는 걸음을 멈춘 렌을 바라보았다. 말실수 했나 싶다. 말할 때 듣는대로 곧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는 편은 아니었다지만, 그렇다고 거짓투성이 말을 하는 것도 아니라 그렇게 말하도록 한 마음이 이상한건가 싶다. 간지러운게 나쁘다고는 생각 안 했는데, 그러면 안 됐던 건가봐. 안 그러게 막았어야 했던 걸까. 조금 웃고 있었지만 웃고 있다고 말 못할 렌의 표정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간질거리지 않고 따끔거렸다. 머리 위로 손이 올라오면 반사적으로 눈을 한 번 깜빡거렸다.
"렌 씨는 아무나 아니잖아."
렌이 이상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반딧불이랑, 벌하고 나비랑 헷갈리지도 않아."
지금 조그맣게 말하는 것까지도 렌이니까 하는 말이었다. 손 잡는 게 좋다고 말했던게 꿀을 내어준 것이라면, 더욱이 이상한 말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건 하나도 아니었다. 둘 정도 된다. 머리 토닥여주는 손길에 저기 어딘가 가슴 안쪽이 또 따끔거린다. 강아지풀인 줄 알았는데 숨은 가시가 있었던건지 모르겠다. 이상해. 여기는 꿈 속도 아닌데 이상해. 계속 간지럽기만 하던 곳이 순식간에 아프니 더 어쩔 줄을 모르겠다. 꿈 속이었더라면 꿈의 주인이 갖고 있는 감정이 새어들어나보다 하고서 말았을텐. 간지럽기만할 때는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나쁘지 않으니까 어쩔 줄 몰랐어도 이상하다고는 생각치 않았다. 왜 이러는지 누구한테 물어보고 싶다.
해변가에서 노점 쪽으로 걸어가던 중, 요조라가 코세이에게 신이느냐 물었더니 진지한 대답 대신 장난스런 반문이 돌아온다. 이럴 때 장난이냐고, 불만을 표할까 하던 요조라의 생각은 가던 길을 틀어 자리를 옮기는 코세이의 행동에 조금 미뤄진다. 해변과 인접한 숲의 기슭,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을 듯한 곳으로 요조라를 데려간 코세이가 손을 놓고 마주보자, 요조라의 머릿속은 어느새 물음표로 가득해진다.
재촉도 채근도 없이 얌전히 서서 기다리니, 이건 비밀이라 말한 코세이가 한발 두발 뒤로 물러서갔다. 걸음마다 조금씩, 주변도 코세이도 분위기도 달라진다. 딱 다섯걸음 물러서는 동안이 참 길게도 느껴졌다. 그 다섯걸음 거리를 둔 코세이는 반짝반짝한 은빛 머리를 밤하늘에 한번 담근 듯한 머리칼을 하고 있다. 그 달라진 모습이 오싹하다고할지, 되려 친근하달지, 미묘한 기분을 느끼던 요조라는 새삼스러운 코세이의 자기소개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다.
"신인데, 이름이... 없을 수도, 있나봐요...? 하긴, 그 얘기도, 전해지는 건, 그것 뿐이니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것, 이름 없는 신이라는 부분이라 요조라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들어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신이면서 이름도 제대로 없고, 기려주는 신사나 모셔주는 신도도 없지만, 그럼에도 모든 사람들이 은연중에 의지하는 신, 그런 존재가 지금 곁에 있다. 천천히 고개를 내린 요조라는 코세이를 바라보고, 이번엔 자신이 다가가며 얘기한다.
"저, 아주 어릴, 때부터... 밤에, 잠들지, 못 했어요... 그래서 늘, 밤이면 밤마다, 창밖으로, 별을 보곤 했죠... 모두가, 잠들어도, 별은 늘, 거기 있어서... 밤새, 별을 세기도 하고, 별자리를, 찾기도 하고... 수많은 밤을, 그렇게 보내며, 딱 한번... 소원했던 적이, 있어요..."
말을 이어가며 요조라는 은연중에 깨닫는다. 치기 어린 소원이 이렇게 이루어질 줄은 몰랐지, 하고.
"이 마을에, 신이, 내려온다면... 신이 살고있다면, 언젠가, 별을 닮은, 별의 신을, 만나고 싶다고... 만나서,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소원을, 가졌었는데... 정말로, 이루어져 버렸네요. 친구 이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싫은 건 절대 아니라며, 확실히 말한다. 싫을 리가 있을까. 만나고 싶던 존재를 만나고 그에게 좋아한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이제 여한이 없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한발짝 앞에서 멈춰선 요조라는 이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말만으론 부족할 것 같아 조금 행동을 더해보기로 한다. 부끄럽긴 하지만, 한번 부끄러웠던 직후라 그런지 행동은 수월하게 나간다. 남겨두었던 한걸음의 거리를 단박에 좁히며 손을 뻗어 언젠가의 꿈에서처럼 코세이를 끌어안으려 한다. 희미하던 소원을 너무나 완벽하게 이뤄준 신이자 연인에게 요조라가 말했다.
"제 앞에, 나타나줘서, 고마워요. 나의 별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껏 식었던 귀가 다시 붉어졌지만, 그만큼 부끄러웠지만 또 그만큼 기쁜 것도 사실이다. 요조라는 잠시 그대로 있다가 살며시 떨어져 다시 코세이의 손을 쥐고, 여전히 어색하지만 그래도 미소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표정을 지으며 이만 가자고, 노점 닫겠다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렌은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렌은 코로리가 자신의 말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이해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자신일까. 자신이 코로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무나는 아니지만….”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라고 말을 잇기에는 제 마음이 그렇지는 않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코로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이, 혹은 친구.
“꽃에게는 벌이랑 나비가 필요한데, 괜히 반딧불이가 붙어있으면….”
렌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렌은 이마를 문질렀다가 목덜미를 매만졌다가 잠시 까끌한 모래바닥을 내려다봤다가 이내 다시 코로리를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 싶었다. 하지만, 이미 주워담을 수도 없는 말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며 덮기에는 기만인 것 같아서. 그렇게 되면 코로리를 더 떨어내기 힘들 것 같아서.
“그러니까…. 코로리 씨, 내가….”
렌은 조금 숨을 고르다가 밤 하늘을 올려다봤다가 이내 다시 코로리를 바라봤다. 조금 괴로운 낯이었다.
“내가 코로리 씨를 좋아해.”
숨이 조금 가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래서, 코로리 씨가 내가 준 선물 기뻐하고, 내 손을 놓지 않고, 다시 잡으려고 하는 게 그런 행동에 내가 착각할 것 같아서 그래. 코로리 씨는 이해하기 어려울 지 모르지만 인간들은 좀 그래요. 잘 착각하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단내 나는 말 하면 안 되는 거에요.”
렌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이정도까지 이야기를 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싶다. 조금 후회되는 것은 춤이라도 추고 말할 걸, 하는 것이었다. 참 못난 생각이다. 이제 영영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ROOM: 세이 렌 ───────────────── "나: 죽였어 내가 결국 죽여 버렸어 이 손으로 세이 렌: 콩나물 싹 틔우기에 실패한 걸 그렇게 표현하지 마" ────────────────⏎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113171
ROOM: 카루타 ───────────────── "카루타: 말할 거 있는데 잠깐 시간 괜찮아? 나: 미안... 난 너 친구로만 생각해 카루타: 고백 아니야 ♡♡♡♡야" ────────────────⏎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113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