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랑에 의해서 살아간다는 것이 제 지론이라서요. 좋은 말로 표현해서... 일관성이있다-고 말해주셨으면 좋겠네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웃으며 말을 꺼낸 그녀였지만, 그녀라고 해서 단순히 사랑에 목을 매달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아름다운것은 좋지만, 개인의 호불호의 문제이고 취향의 문제일 뿐. 그녀가 바라는 아름다운것의 기준을 아주 간단하게 채워주는 것이- 사랑일 뿐인 것이다.
"에에, 물론 그렇지만 자아를 가진 생명체인이상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지 않나요.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리고 복권을 사고, 상에 당첨되고 싶어서 상가의 추첨을 돌려보기도 하는 그런. 자신이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ー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어디에도 없답니다."
그렇게 보면 그것 역시 사랑스럽지 않냐며 소년에게 동의를 구한 그녀는 표정을 숨기듯 소년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조금씩 느껴지고 있었다. 피부로도 느껴질정도로 강렬한 것이 저위에 있다. 다사가면 다가갈수록 어쩐지 조금공기가 무겁게 느껴지기도 할 정도였으나, 오히려 완전히 다가간 그곳은ー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 집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좋네요! 말 그대로 애정이 묻어나오는 이야기 아닌가요. 저, 이런것도 좋아한답니다? 사람이 노력해서 결과를 얻어내는 이야기는 어쩐지 조금은 흥분되기도 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나 황량했다던 곳이 이렇게 번영한 것을 본다면... 그 사람도 멋진 인생을 살았네요.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녀는 신사의 근처를 훑어보았지만 역시 이곳의 주인처럼 보이는 신들은 보티지 않았다. 제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이러는 걸까 아니라면 그저 원래부터 이런 곳이었을까. 생각이 머리를 채우고 지나가기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신사에 대해서보다는 샘물이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그렇게 말을 하면서 아키라는 잠시 말을 멈추고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허나 그에 대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으며 스스로 납득하며 그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오직 그만 알 일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것에 대해서 말할 일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혼자서 뭔가를 생각하다 혼자서 결론을 내리고 혼자 납득할 뿐이었다.
자신에게 동의를 구하는 그녀의 말에 아키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말은 충분히 맞는 말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질투하고, 이른바 부정적인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공감해야만 하는 것일까. 적어도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부정적이건 긍정적 결과이건 결국 자신이 모두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가슴 속으로 살짝 찔리는 것을 느끼며 그는 "카미야 씨가 그렇게 느낀다면, 카미야 씨에게는 그런 것이 아닐까요?" 라는 말로 대꾸했다.
"애초에 엄청 오래전의 사람이니까요. 정말로 존재했는지도 알 수 없는거고, 전승이니까 그 자체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가미즈미에서 대대로 살고 이 땅을, 정확히는 생명의 근원인 물을 지키는 사명을 지녔다고 하니, 가미즈미 어딘가에는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피를 이은 사람들이."
아주 당연하게도 뭔가 생색내는 느낌인 것 같아 아키라는 그게 '시미즈'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아무튼 가보자고 하는 그녀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굴 안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좁은 감이 있긴 했으나 그렇다고 못 들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발밑을 조심조심하라는 말을 하면서 그는 앞장서며 발에 채이는 작은 돌멩이를 일부러 옆으로 살짝 차면서 길을 정리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마 신인 그녀에게는 고위신의 기운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끝에 도달해, 옆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거대한, 그 끝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 거대한 샘이 눈에 보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맑고 투명한 그 물에서 인간은 느낄 수 없는 강렬한 고위신의 천의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으니 누군가는 위압감을 느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경외감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익숙하게 바닥도, 그 물의 끝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샘을 바라보던 아키라는 그 샘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신성한 샘. 이 가미즈미의 생명의 근원인 샘이에요. ...우리 시미즈가 대대로 지키고 있는 가미즈미의 명물이기도 하고요."
첫만남에도 유령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유령이라니. 하지만 싫지는 않은 소리로 들렸기에 처음과 다르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 내가 머리로 손을 가져가자 마치 금방이라도 피할듯이 빤히 쳐다보던 요조라였지만 내 손이 가까이 가자 고개를 살짝 숙여준다. 평소처럼 긴 머리가 아니라 칸자시로 틀어 올려져 있었기에 살짝 밖에 쓰다듬지 못했지만 이 정도로 만족이다. 손을 내리자 천천히 가자는 말이 들려왔고 그녀의 얼굴이 아직도 붉은 기색이 서려있었기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글쎄요, 저는 신일까요? "
장난스런 기색으로 반문하며 손을 이끌어서 자연스럽게 해안가로 가던 걸음을 근처 수풀로 옮긴다. 숲길에서 나온지 얼마 안된터라 근처에는 아직도 높은 나무들을 금방 찾을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향한 나는 손을 놓고서 그녀와 살짝 떨어지며 마주 보고 섰다.
" 이건 비밀이지만요. "
신은 인간에게 정체를 들키면 안되지만, 적어도 앞으로 많은 것을 공유해야하는 사람에게는 밝혀야한다고 생각하기에 한걸음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한 세걸음 물러났을때 마치 밤하늘의 별빛이 좀 더 반짝이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고, 네걸음째 걸었을때는 평소랑은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다섯걸음 물러섰을때, 은색으로 빛나던 하얀 머리카락은 어느새 밤하늘과 같은 짙은 머리색이 되어있었다.
" 인간계에서는 이자요이 코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 사실은 이름없는 별의 신, 밤하늘의 모든 별을 관장하며 그 움직임을 관찰하는, 신도도 없고 신사도 없지만 동시에 밤하늘 아래의 모든 인간들이 믿고 있는 신이에요. "
인간한텐 정체를 들키는게 처음이라 좀 긴장되기도 했지만 요조라니까, 조금은 더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렌은 장난스러운 코로리의 말에 웃었다. 반딧불이라 발을 안 밟는다는 것은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기 때문일까 아니면 춤을 추기 때문일까.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렌은 코로리가 관성적으로 손을 내밀었구나, 하고 생각하다 이내 고민에 빠진 코로리를 의아하게 내려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코로리가 아니고서는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렌은 잠자코 코로리를 기다렸다. 하지만, 방금까지 잡고 있었지 않냐는 말이라거나 아니면 더 엉뚱한 변명이었으면 차라리 나았을까. 귓가에 들려오는 말은 확연한 단맛이었다.
아주 작게, 확신은 없지만 조금 부끄럽다는 듯한 그 말에 렌의 발걸음이 느려지다가 멈추었다. 바닥은 어느새 해변을 딛고 있고 눈 앞에 커다란 바다와 아름다운 풍경이 있음에도 렌은 코로리만 내려다본다. 표정은 조금 웃고 있으나 조금 일그러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내 렌은 코로리의 손을 스르르 놓는다. 그리곤 그 큰 손을 코로리의 머리 위로 살며시 툭, 얹으려 한다.
“코로리 씨, 꽃은 꿀을 아무에게나 내어주면 안 돼요. 그러다 어느 반딧불이가 착각이라도 해서, 그 꽃이 제 것인 줄 알고 다른 벌과 나비를 내쫓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렌은 가까스로 장난스러운 척 말을 한다. 코로리가 피하지 않는다면 코로리의 머리를 큰 손으로 토닥토닥 했다가 이내 내리려 할 것이었다. 친구 그 이상도 곤란하다. 장난 그 이상도 곤란하다. 그렇게 말하면 착각해 버리니까. 차라리 실수라거나 변명이라거나 해주었으면 한다.
아니, 코로리는 모르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일터였다. 아둔한 이는 아니니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이제 꽃잎을 오므린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욕심은 이제 그만,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