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얼마든지, 그녀는 소년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자신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은 단순히 그러고 싶지 않아서 인데.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아이를 보는 것은 그녀 역시 솔직하게 즐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게 불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기우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슬쩍 웃어 보였다.
“음음, 역시 제가 사람을 보는 눈에는 틀림이 없네요~ 전에 본 그 순간부터 그런 식의 대답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질문에 대한 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으니 괘념치 마시고. 역시 자리에 있는 것은 언제나 스스로 의지를 가진 사람이니까요.”
그녀는 어느새 이야기가 돌아갔다면서 놀란 듯 했지만 이내 다시 평소와 같은 모습을 취하고는 조용히 서서는 소년이 이야기하는 근처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반딧불이라니 아까 그 유치원생 아이가 부모에게 달려가며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며 맞장구를 치고는 조금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으음, 신인가요. 의외로 물보다 탄산을 좋아하는 신이라던가 있을 법하지 않나요? 본가에서는 가을에 방문객이 오지 않을 때엔 신당에 벼 이삭을 장식해두고는 했었죠. 꽃의 신의 신당에 말이에요. 그러면 신이 좋아하신다고 했던가? 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것 보다는 철에 피는 들꽃을 장식하는게 좋은데, 여기는 어떤 장식이 되어있을지 궁금하네요~ 그녀는 조금 두근거린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소년을 향해 말한다.
“자세한 것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니, 동행을 부탁하도록 할까요. 후후, 이렇게 직접적으로 관여 되어 있는 사람이 알려준다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길목에 턱하니 앉아버리면 통행방해밖에 안 되지만, 아직 지나다니는 다른 사람이 없기에 마음 편히 자리 잡고 있는다. 위에서 봤을 때는 조금 북적북적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조용한 걸 봐선 다들 해변까지 내려간 모양이다. 처음에는 바닥에 닿지 않게 앉으려 했지만 그렇게 하면 다리 저려오는 건 신도 마찬가지라, 결국 그나마 덜 지저분한 바위 하나를 찾아 걸터앉는다. 그는 앉은 채 몸을 숙여 무릎 위에 팔꿈치를 세우고 턱을 괴었다. 앞으로 숙이는 몸짓에 군데군데 붉은 머리칼이 앞으로 흘러내린다.
"그건 그렇고, 토와 씨는 호타루노히카미께 무언가 빌어볼 생각 있으십니까?"
이곳에 날아다니는 반딧불도, 무리지어 춤추는 인간들도, 바다에 뜬 불도 모두 그와 연관 있다. 소원은 몰라도 축제를 즐기는 입장에서 들러주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니 그는 방문할 생각인데 제 앞에 인간은 어떨지 모르겠다. 때때로 이야기 꺼내고, 얼마간은 편안한 침묵 속에 그렇게 있으려니 시간이 조금은 흘렀다. 몸을 움직이느라 올랐던 열이 떨어져 밤 기온이 선선하게 느껴질 만큼은.
아미카는 고개를 저으며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는 것이 좀 아쉬운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일단 신사까지는 가야지, 그런 생각도 하며 슬슬 발걸음을 재촉했다.
"네에.. 확실히 빨리 시간이 가는 것 같네요.."
잠시 속도를 내려는 찰나, 조심하라는 말에 아미카는 그냥 내려가던 속도대로 내려가기로 했다. 괜히 또 여기서 넘어졌다간 더 큰 민폐가 될테니.
"어..어?"
그때였다. 풀숲에서 반딧불이 하나하나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아서 그런지 엄청 많진 않았지만, 초록빛의 불이 여기저기 움직이는 광경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아미카는 잠시 멈춰서선 반딧불이를 바라봤다. 아미카의 눈이 반짝였다. 흥미를 보였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반딧불이의 빛 때문이기도 했다.
"만약 꽃의 신이 정말로 있다고 한다면, 저는 벼 이삭보다는 그 시기에 나는 꽃을 장식하는 것이 좋지 않나 싶네요. 물론 그쪽 사람들이 그렇게 정한 거라면 제가 이러쿵저러쿵 할 생각은 없지만요."
그렇지 않은가. 꽃의 신이라면 적어도 꽃을 공물로 바치거나 꽃 장식을 해야지. 벼 이삭을 장식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풍년이 들게 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아보여 그는 영 애매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튼 상대가 동행을 부탁한다는 말을 하자 아키라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적으로 관여되어있는 사람이 알려주면이라. 그 말에는 쓴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는 자신의 표정이 보이지 않게 앞을 바라봤다.
"아직은 직접적으로 관여된 것은 아니지만요. 언젠가는, 언젠가 제가 정말로 당주가 된다면... 그땐 제가 이 마츠리를 개최하게 될테니, 그때도 여기에 있다면 그때까지 그 평은 미뤄주시겠어요? 아직은 제 어머니가 관리자니까요."
그러고 보니 오늘 샘은 누가 자리를 지키고 가이드 일을 하더라? 어머니였나? 아버지였나? 아니면 삼촌이었나? 어느 쪽이건 시미즈 성을 지닌 누군가임은 분명할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앞장서듯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거의 다 없어진 링고아메를 마저 입 속으로 집어넣은 그는 비어있는 나무 막대기를 근처에 있는 쓰레기통에 휙 던져 깔끔하게 골인시켰다.
"그러고 보니 카미야 씨는 반딧불을 좋아하나요? 사실 멀리서 보면 예쁘긴 한데, 가까이서 보면 은근히 징그럽다고 실망하는 이들도 많거든요. 그리고 길목이 그런 반딧불이 살고 있는 곳 근처를 지나가는 구도라서. 만약 싫어한다면, 그 구간은 빠르게 분위기만 보고 지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거든요."
불빛이 예쁘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벌레라는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싫어하는 이는 상당히 싫어하고, 자신은 그 모습을 어릴적부터 꽤 여러 번 봤기에 조금 걱정이 되어 그는 그렇게 물었다. 만약 좋아하거나 별 상관없다고 한다면 딱히 신경 쓸 것은 없겠지만. 일단 산길에 발을 들이며 그는 그녀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지만 경사로가 조금 있으니 힘들면 이야기하시고요. 쉬엄쉬엄 가면 되니까."
"글쎄요... 좀 감정적인 것이 아닌 소소한 소원은 빌 만하기는 하네요" 예를 들자면... 춤 출 때 발을 안 밟게 해주세요. 나 요리를 좀 더 잘하게 해주세요 같은 거 정도요? 라는 말을 합니다.
"저 멀리에 있는 분의 안온함을 빌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보이긴 하지만요...." 그건 다른 이들이 빌어줄 것 같군요.. 라고 중얼거리네요. 저 멀리를 말할 때 바다 쪽을 바라봅니다. 갈 길을 잃은 눈빛이 흐려지고 눈꺼풀 뒤로 사라질 때까지 멍하게 먼 방향을 바라보는군요. 일어나야 하는데... 손이라는 말에 반응하듯 마이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살짝 멍하지만 금방 총기를 되찾습니다.
"손. 잡아주시겠나요?" 잘못 잡으면 반대로 제가 잡아드려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라는 말을 가볍게 하고는 손을 내민다면 톡 건드리듯이 잡지만 잡기만 했을 뿐 힘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잡았다면 잡은 것 자체는 사실이라서 적당히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까? 아니면 마이리의 손이 따뜻해서 찬 건가? 싶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후후, 그렇게 이해해주니 그것도 좋네요.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바뀌는 경우는 있으니까, 저희끼리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해도 달라지는 것은 먼 훗날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말에 조금은 만족한 것인지 그녀는 즐거운 듯 웃으며 소년을 따라가 보려 했으나 이내 얼굴을 숨기려는 듯 자신을 피하는 것 같은 소년의 모습에 장난기가 돌기 시작했다. 어쩐지 재미있는 일에 끼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핫, 아하핫!!! 뭔가요 그거, 자기가 당주가 될 때까지 이곳에 있어 달라니 지금 고백이라도 하는 건가요? 아하핫!!! 에에, 뭐 그 정도의 시간이야 있으니 상관은 없지만 그렇네요. 아쉽게도 저는 남의 사랑을 바라보는 것이 좋은 것 뿐. 직접적으로 관여가 되는 것은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답니다. 그도 그럴게.”
제가 누군가와 함께하기로 한다면 누군가는 질투하지 않겠나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를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가득 찬 말이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 한 이야기였으니까, 단순히 구태여 말하지 않으려 했을 뿐이었다.
“에에, 반딧불은 물론이고 벌이나… 어느정도 벌레에는 익숙한 편이랍니다. 꽃을 보고 있으면 자주 만나게 되기도 하니까요. 어라? 키라키라짱은 벌레는 싫어하나요?”
알겠다고 말하며 소년을 따라가는 그녀는 어쩐지 무언가 이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이내 다시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마치 반응이라도 하듯이 먼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그녀는 이내 소년을 지나쳐 그를 다시 돌아보고 있었다.
아미카는 반딧불에 정신이 좀 팔리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노을을 등지고 반딧불들이 움직이는걸 보는 건 아미카에겐 꽤 신나는 일이기도 해서 아미카가 정신을 팔릴만도 했다. 그때, 그것만 보다가 넘어지지 말고 아래도 보라는 테츠야의 말에 아미카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제대로 내려가기로 했다.
"아하하.. 또 정신 팔려서 다칠 뻔했네요.. 그래도 확실히 예쁜 것 같아요.. 또, 확실히 코스도 잘 짠 것 같고요."
아미카는 그렇게 말하며 반딧불이를 보다가 발 밑에 무언가 위험한게 있진 않나, 하며 아래를 보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손을 뻗으니 잠시 반딧불이가 올라앉더니 다시 날아갔다. 아미카는 손을 털곤 앞을 보며 말했다.
"...이것도 저것도 다른 것도 어떤 것도 다 사랑으로 엮는 그 특유의 생각만은 여전하시네요. 놀라울 정도로."
대체 지금의 말 중에서 대체 어떤 부분이 사랑과 연관이 되는 것인지 아키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한때 1학년들 사이에 사랑에 대한 것이 유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학생회 멤버에게 물어봤다가 순식간에 바보가 되버린 그때의 순간을 떠올리며 아키라는 괜히 으으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허나 한 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그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으면서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설사 그 일로 누군가가 질투를 한다고 한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건진 잘 모르겠네요. 누군가와 함께 하기로 한 시점까지 아무런 것도 하지 않은 이에게는 그것으로 질투를 느낄 자격은 물론이고, 뭐라고 말을 꺼낼 자격 또한 없잖아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표현하고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그저 보기만 하는 겁쟁이의 마음에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고요."
질투를 하는 것은 자유나 그 마음에 자신이 공감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을 신경써야 할 이유도 없었고. 물론 질투라는 감정 자체를 부정하고 싶진 않았으나,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질투를 하거나 부정적인 마음을 먹는 것은 역시 자신으로서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는 자세였다. 그의 기준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패배자가 불평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기에.
"아니요. 저는 어릴적부터 여기 태생이고, 시미즈의 피를 이어서 그 샘이 있는 동굴 부근에는 꽤 여러 번 다녔고... 그 산길도 꽤 다녀서. 벌을 제외하면 딱히. ...그리고 그렇겠네요. 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뭔가를 키우는데는 체력이 필요하니까요."
이미 자신을 앞지르고 뒤돌아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딱히 문제는 없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다시 산길을 천천히 올랐다. 주변은 이미 충분히 어두웠으나 마츠리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등불을 설치해뒀고, 그로 인해 길가가 보이지 않는 일은 없었다. 약 십 분 정도 올라가자 보이는 것은 낡은 신사였다. 정확히는 천과 지의 기운이 모이는 포인트. 신들에게 있어서는 상식이나 마찬가지인 혼인 의식을 치룰 수 있는 곳이자 신계로 향할 수 있는 입구이기도 한 바로 그 신사였다.
"저 신사의 옆. 그러니까 저 편을 보면 동굴이 보이죠? 원래라면 철문으로 막아두지만, 지금은 개방했고 저 안에 신의 기운이 깃들어있다는 샘이 있어요. 아주 멀고 먼 옛날.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 수많은 피가 흘렀고, 그 때문에 이 땅이 정말로 황폐해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땅을 포기하고 떠났다고 해요. 그 중 단 한 사람만이 유일하게 남았고 땅을 살려보겠다고, 생명을 다시 살려내겠다고 열심히 노력을 했지만 생명의 근원인 물조차 말라버린 곳이었기에, 아무리 다른 곳에서 물을 어떻게 얻어와도 물은 금방 마르는 판국이었기에, 그 사람은 자신의 눈물을 모아서 물을 줘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 있어요. 그때 신이 나타나 생명의 근원인 물을 줬다고 하고 그 인간에게 이곳에 남아 평생 그 생명의 근원을 지키라는 사명을 줬다고 하는 뭐 그런 전승이 있긴 한데.. 아무튼 그 전승에 나오는 물이 바로 저기에 있는 샘물이에요. 일단 저 옆의 신사도, 시미즈 가문에서 어느 정도 관리하고 있긴 한데..."
가미즈미의 전승을 정말로 간략하게만 설명하며 그는 신사를 볼 거면 보라는 듯이 잠시 말 없이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다 구경을 했거나, 혹은 구경할 마음이 없어보이면 아마 동굴 안으로 천천히 발을 향했을 것이다.
코로리가 고개 숙여서 모란꽃도 같이 숙이고 있겠지만, 머리꼭지만 보이지는 않을 거라며 장난스레 맞장구친다. 남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곁눈질하랴, 렌의 발 밟지 않게 조심하랴, 제 발이 꼬이지 않나 확인하랴 눈이 바쁠 것 같다. 그래도 춤추지 않는다는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누가 보기에는 어설프고 우스꽝스럽더라도 즐거울 것 같았다.
"춤 춘 적 없어도 반딧불이니까ー 내 발은 안 밟을 거 같은걸."
그래서 소원도 그랬다. 벚나무 신님도 들어줬으니까, 반딧불 신님도 들어줘야 해! 소원을 비는 동안 놓았던 손은 다시 맞잡아진다. 코로리는 계속 잡고 있었다고 생각해서, 렌이 물어볼 때까지 스스로의 행동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서 있었다. 반딧불이들을 뒤로 하고, 반딧불 석상도 지나쳐 노랫소리가 흐르는 해변가로 향할 때까지 모를 뻔 했다. 아니, 손을 놓고서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몰랐을 것 같다.
"계속 잡고 있었으니까, 당연히ー"
당연히 또 잡는게 어딨어! 당연히 또 잡을 거라는 것 말고도 손을 내민 이유를 고민해본다. 렌이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보면서 곰곰히, 찬찬히. 렌의 손을 잡고 싶다고 생각했었나? 그, 그런 적은 없는 거 같은데! 익숙해졌나? 이렇게 꼭 잡은 거 처음인데에. 손을 잡는 게 좋은가? …좋은 거 같아. 좋다구 생각해. 코로리는 손을 잡고 있는게 좋아서 저도 모르게 내밀었구나 싶다. 코로리가 또 고민하는 건, 렌의 손이라서인지 그저 손을 잡는 걸 좋아하는지였다. 남의 손을 잡는 것도 싫다고는 생각 안하는데, 렌과 손을 잡을 때처럼 강아지풀이 스치고 있을지는 모르겠는 것이다. 대답하지 못하고 다물렸던 입을 연다. 손을 바라보던 시선이 렌에게로 향한다. "손 잡는 게 좋…아서?"
코로리도 확신 없단 듯 작은 목소리였다. 그런 것 같다며 우물쭈물거리는 기색 아래로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듯하다. 손 잡자고 내민 것도 그렇고. 코로리는 어떻게 발을 딛고 떼고 있는지 모르겠다. 해변가까지 걷고 있는데 걷는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무도회장같은 풍경과, 바다를 보고서 바다, 예뻐서 다행이다ー.
"거의 영원에 가까운 생을 살아간다는 것에 조금이라도 혹한 게 아니었나요?" 엔은 허공을 잠깐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고운 얼굴에 묻어나는 것은 허망함과 동시에 후회와 어쩔 줄 모르는 듯한 갈팡질팡함이었을까..
"맞아요..사실 혹하기는 했어요. 긴긴 생을 살아가면 의사의 직업을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망상도 결과적으로 미룬 이후에 계속 생각해본 적 있지요." "그런데...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짧게 져버린 것을 봐버렸기 때문에 오래도록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게 되어버렸어요..." 얼굴을 감싼 손에는 그녀와 맞춘 것이 없었습니다. 손으로 가려진 얼걸에 어떤 표정이 떠올랐는지 나는 아직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것이 바뀌었음에도 아직도 불가능하다니.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내가 한심해 보이시겠지요. 서로 좋아한다는 것이 분명하고 그 무거움이 그렇게나 무거운데..." 고작 옛 생각 때문에 미루고 생각하다가 안될 것 같다는 게 말이에요. 그런 생각은 한 적 없다고 말을 하려 해도. 어째서일까요.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정말 엔이 한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가? 굴러들어온 것을 차버린 어리석음이 아니라 한치의 의심없이 생각했는가? 라는 낯선 감정들이 파문을 일으킵니다.
"감정적으로 미룬 것이었잖아요. 그러니까. 고민을 많이 하면 분명 돌이킬 거라고..." "그건...감정적으로... 결정한 것 같으면서도 분명한 이성으로 결정내린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에 감정이 없었냐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미룬 것 자체가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결정이었으니까. 그것을 들었을 때의 감정이 어땠더라? 공포와 좌절이었나? 아니면 무너짐? 당시에도 너는 그 감정들을 제대로 마주보지 못하는 이이기 때문에 그저 충동적으로 입을 열면서도 계산했겠지. 문학과 자유로움을 새장 속에 두었으니 예견되는 일이었지만.
"그 애는 너무 빨리 바다를 건넜어요." 그러고보니. 엔의 집에는 들어갈 수 없는 방이 있었습니다. 열린 틈을 통해 들여다보았을 때에는 소학교 1~2학년 정도가 좋아할 법하게 꾸며져 있었지요. 나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내심으로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잘 들리지는 않습니다. 마치 사람과 물고기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뻐끔거리는 것으로만 보이는 기분입니다. 나쁜 버릇입니다. 알고 있을 겁니다. 제대로 들리지 않을 거라는 걸.
"어쩌면..." "예외적이어서 네가 가장 닮았는데도... 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내가 일찍이 끝날 수 있던 것에 무의미한 고통만을 더해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네요." 안에서 나를 찌르고 있는 가시 하나를 드러낸 기분입니다.
"다시 한 번 더 분명하게 말씀드릴게요." 난.. 신이라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거부감이 들고 미워할 것만 같고 섞여있다는 것에.... 감정이 들어요. 라는 말을 하는 엔입니다. 하지만 너는 그러면서도 사이에 섞인 이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좋은 친구라 생각하고, 멋진 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원래부터 싫어했지만 신과 가까운 나라에 속한 사람이니.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걸까. 아니면 사랑하는 게 본의지만 그럼에도 미움이 들어버리는 걸까? 나는 동시에 느끼는 것이 서툴러 나를 증오한다고 여겼다.
"그러니까.. 날...미워하는 거야?"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면 나는 당황하여 그녀를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냉랭했을 겁니다. 내가 그런 표정이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상처입은 듯한 표정이었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지금 다시 본다면 떨리는 목소리로 냉랭하게 네. 라고 답했고 나는 더 이상 그런 얼굴을 또 볼 자신이 없어서 등을 돌려 뛰었습니다. 이미 약속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입니다. 3류가...3류로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저 멀리. 밖의 이들은 무엇이 어긋났던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의 토와라고 칭하던 명백히 설정과는 다른 픽크루? 언젠가의 봄의 추정 나이보다 심히 어려보였던 언행? 아니면... tmi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