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타루마츠리 첫 날부터 사실상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이기도 한 등불을 보는 것마저 마다하고 집안 사람들과 함께 호타루마츠리 일을 돕거나 가이드 일을 도왔던 아키라는 오늘은 집안 일을 돕지 말고 마츠리를 좀 즐기라는 어머니의 말과 함께 반강제로 쫓겨났다. 그에 대해서 아키라는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일단 이전부터 일만 돕지 말고 놀 수 있을 때 마음껏 놀라는 말들이 있었고 오늘이 아무래도 그런 날이 될 듯 했으니까. 허나 아키라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그렇게 특별한 느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호타루마츠리는 시미즈 가문이 직접 개최하는 것이기도 하는만큼 어릴때부터 이 마츠리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였기에 더더욱.
적당히 두리번거릴까 생각하며 호시즈키당에서 아주 살짝 화과자를 사기도 하고, 그외 다른 곳에서 가볍게 음료를 사서 먹기도 하며 그는 천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당연하지만 호타루마츠리의 메인이나 다를바 없는 반딧불은 저녁 늦은 시간에나 제대로 볼 수 있었기에 마츠리는 대체로 저녁 무렵에나 시끌벅적하게 바뀌었고 지금 그가 있는 시간대 역시 바로 그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어느덧 하늘은 천천히 검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첫날보다는 조금 빠지긴 했으나 여전히 반딧불을 보겠다는 듯이 꽤 여러명이 모여있었다.
"그냥 가볍게 정석 코스대로 돌아볼까. 나도."
북쪽 산으로 통하는 길을 따라 걸은 후, 산길을 따라 걷다가 동굴에 들어서서 이 시기에만 개봉되는 가미즈미의 생명의 근원이나 다를바 없는 신성한 샘을 보고, 동굴을 나와 쭉 산길을 따라 걸으면서 볼 수 있는 반딧불을 구경하고 길을 따라 쭉 내려오면 도착하는 호타루노히카미를 모시고 있는 신사와 그 근처에 있는 해변가까지 향하는 일직선 루트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그는 쥐고 있는 링고아메를 한 입 깨물었다. 그러다 주머니에 넣어둔 물건을 괜히 손으로 집었다가 다시 손을 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일단은... 같이 다니는 이가 있으면 줄까 해서 샀던 거긴 하지만... 나중에 사이온지에게나 줄까."
발만 밟으면 다행이고, 발이 꼬여서 둘 다 우당탕 넘어질까봐 더 걱정된다. 코로리야 넘어져도 잠의 신이라고, 잠에 취할 때처럼 조금 둔한 느낌으로 아픔이 덜한데 렌은 그렇지 않을테니까. 렌의 발이라도 밟지 않도록 하려면 계속 보면서 조심하는 수 밖에 없겠다. 춤을 추고 있는데 푹 고개 숙여 발만 보고 있을 걸 생각하니 키득키득 웃음이 나온다.
"빨간 구두 신고 나올 걸."
멈추지 않고 계속 춤추기는 싫지만! 몸 좀 써볼 걸 그랬다. 춤출 걸 생각하니 몇 백 몇 천년 쓴 몸이 낯설다.
"응, 풍선 다트할 때! 산타클로스 하기로 했어서, 1등하려구! 오늘도 소원 빌래ー"
다트를 던지면서 1등 경품을 딸 수 있길 바라는게 소원이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간절히 바란 것이긴 했으니까. 실제로 1등 경품을 따내기도 했다! 아무튼 코로리는 반딧불들이 사라지고서 나타난 반딧불 석상, 그 앞으로 총총 걸어가서 두 손을 꼭 모아쥐고 고개를 숙인다. 두 눈을 꼭 감고서 잠시동안 소원을 빈다. 오늘 바다가 많이 예쁘면 좋겠구, 춤 추다가 발 안 밟으면 좋겠습니다아! 드물게 존댓말까지 써가면서 꼭 소원을 빌었다. 바다가 예뻤으면 좋겠다는 건, 샘 구경을 제대로 못한 렌이 바다 구경은 제대로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 것이었다. 소원을 다 빌고, 렌도 소원을 빌었다면 소원을 다 빌 때까지 기다렸다가 옆에 섰을 것이고, 소원을 빌지 않았다면 바로 옆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가잔듯 손을 내밀었다! 동굴에 들어설 때부터 계속 잡고 있었던 것 때문에, 소원 비느라 잠깐 놓았던 것이니까 다시 잡는 것 뿐이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바로 손 잡아주지 않는다면, 대뜸 손 내민게 부끄러워 혼자 새빨개지겠다.
/ 오늘 귀가 늦을 거 같아서 답레 완전 밤중에 올 수도 있을 것 같아 。゚(゚´ω`゚)゚。 / 답레만 올리고 가볼게 다들 좋은 저녁이라구! 저녁 맛있게 먹길 바라구~! (*´∀`*)
축제라는 것은 신에게 바치는 일종의 공물이다. 그녀는 비교적 현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었지만 최근까지도 축제를 가장한 공물을 받은 신답게 어느정도의 편견은 있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가능하면 남의 축제에는 참견을 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었으나, 그녀는 최근 어느 책을 읽어버렸던 것이다. 축제의 현장에서 누군가에게 고백을 하는 모습, 하늘 높이 수놓은 색색의 불꽃을 배경삼아 떨리는 마음을 가슴에 묻어버리고 자신의 진슴을 서로나누는 장면은 그녀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역시 자주 보이지는 않네요"
가장 볼거리가 많았던 첫날을 무시했던 탓일까 그녀의 입장에서 즐거워보이는 광경은 볼 수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 혹은 동성친구나 아직 어린 아이들. 여전히 사람은 많았기에 나름대로 배를 채운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역시 무언가가 부족하던 차에 그녀는 그 사람을 만났다.
"어라? 키라키라짱 아닌가요. 이런 곳에서 만나네요.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던가?"
자신도 잘 아는 학생회장이 방금 무언가 묘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았기에 흥미가 동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손에는 조금 식은 듯한 오징어구이에 머리에는 아침에 하던 특촬물의 가면을 쓴채로. 등꽃을 수놓은 화려한 유카타를 입고 손에 채 물기가 가시지않은 물풍선 요요를 든 그녀는─ 솔직히 엄청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키라키라짱.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이는 자신이 아는 바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이긴 하지만 학생회장을 그렇게 부르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떠올리며 아키라는 순간 움찔하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카미야 마사히로. 이전에 자신과 만나 자신에게 키라키라짱이라는 별명을 붙인, 어떻게 보면 참 당돌한 1학년이 바로 거기에 서 있었다.
"그러게요. 마츠리 중이니까 여기서 만나도 이상할 건 없겠지만요. 그보다 아직도 키라키라짱인가요? 스스로 말하는 것도 뭐하긴 한데, 학생회장을 그렇게 부르는 것은 카미야 씨. 당신밖에 없을 것 같네요. 그리고... 누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돌아다니는 중이지."
화려한 유카타도 그렇고, 오징어구이에 물풍선 요요까지 챙겨서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름대로 마츠리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면서 아키라는 손에 쥐고 있던 링고 아메를 괜히 꾸욱 쥐었다. 떨어지거나 하면 곤란하니까. 아무튼 질문에 대해서 답은 해야할테니 그는 말을 조금 더 이었다.
"이 호타루마츠리는 저희 시미즈 가에서 개최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첫날부터 지금까지 일을 돕고 있었는데, 오늘만큼은 마츠리를 즐기라는 어머니의 말이 있어서. 그렇게 돌아보는 중이에요. 정석코스로 샘과 반딧불을 보러 갈까 생각중이긴 한데... 그러는 카미야 씨는 카미야 씨대로 돌아다니는 중인가요? 아. 맞아."
이전에 사랑 타령을 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키라는 괜히 도끼눈을 뜨고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이전에 그녀와 대화한 것 때문에 살짝 오해를 했던 순간이 떠오른 탓이었다. 허나 이것을 따지는 것도 참 유치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꿈이 아니기 때문에 깨지 않을거란 그 말이, 요조라에겐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말로 들린다. 놀랄만치 크게 뛰었던 심장, 지금 잡고 있는 이 손, 난생 처음 들었던 말, 난생 처음 해본 말, 모든게 꿈 같지만, 꿈이 아니다. 눈을 뜨면 잊혀지는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란다. 요조라는 몇번이고 생각한다. 아, 다행이다. 깨어서 씁쓸해하는 그런 꿈이 아니라서, 뒤숭숭했던, 마음 졸였던 시간, 모두 그저 물거품처럼 흩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정말, 말은 참, 잘 하는, 유령, 이네요..."
희미하게 웃음기가 남은 얼굴로 말하던 요조라는 곧 다가오는 코세이의 손을 본다. 머리 위로 올라오려는 손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은 금방이라도 고개를 돌리거나 피하지 않을까 싶지만, 예상 외로 고개를 살짝 숙여 만짐을 허락한다. 까탈스럽게 굴던 검은 고양이가 마음을 열고 손길을 허락하듯이 말이다. 손길을 받고나면 시선을 힐끔 들어 코세이를 보고, 코세이가 가리키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거기엔 여러 노점들이 저마다 조명을 켜서 낮마냥 밝았고, 방금 막 춤추는게 끝났는지 해변의 사람들도 하나 둘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럼... 천천히, 가요. 얼굴, 좀 식게..."
요조라의 얼굴은 좀 식기는 했지만 그래도 많이 붉었다. 이대로 간다면 주변의 이목을 끌게 분명하고, 아니더라도 신경 쓰일테니까, 적어도 얼굴만큼은 붉은기가 가실 수 있게 천천히 가자고 말하며 여태 멈춰있던 다리를 느릿하게 움직인다. 풀섶 스치는 소리 나던 산길과 달리 사박거리는 모래 소리 선명한 해변을 따라 걸어가며, 저 앞을 보던 요조라가 나즈막하게 물었다.
"저, 궁금한게, 있는데... 그... 코세이는... 신, 인 거에요...?"
나름 큰 파도를 넘기고나니 뒤늦게 올라오는 의문이었다. 사실 요조라로서는 이쪽이 조금 더 신경 쓰였달까. 또래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말이나 행동이 미심쩍었는데, 오늘 나눈 대화 중 일부가 의심을 조금 더 확신에 가깝게 이끌었다. 평소라면 굳이 묻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기분도 분위기도 어쩐지 묻고 싶은 날이었으니까, 어쩌면 조금씩 알아가고픈 마음일지도 모르는 생각으로 꺼낸 물음이었다.
렌이 놀리듯 말했다. 작게 웃기까지 한다. 사실 코로리가 밟아봐야 얼마나 아플까 싶기도 했고, 코로리의 체구는 작은 편이니 부딪힌다고 해도 그렇게 큰 타격도 없을 듯 싶다.
“빨간 구두 안 신어도 돼요. 저도 춤 춘 적 없다니까요.”
아마 둘다 어설픈 춤을 추게 될 것 같아 벌써부터 웃음이 나왔다. 다른 이들이 하는 것을 대충 따라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 그리 걱정되지는 않지만 줄 중 하나가 잘 하는 것보다는 둘다 어설픈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렌은 이번에도 소원을 빌거라고 하면서 총총 석상 앞으로 향하는 코로리의 모습에 자신도 그 옆으로 가 코로리처럼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빈다. 소원은 속으로 삼킨 뒤 눈을 뜨자 코로리가 옆에서 손을 내민다. 렌은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을 보고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웃으며 그 작은 손이 제 손 안에 폭 가려지도록 감쌌을 것이었다.
손을 잡고 저 멀리 음악이 흐르는 곳으로 함께 걸음을 옮기다 조금 짖궂은 목소리로 조금 웃음기를 담아 코로리에게 묻는다.
“손은 왜 내민 거에요? 바닥이 미끄러울까봐?”
고개를 조금만 돌려 코로리 쪽을 살핀다. 실수이겠지. 그저 아무 의미없이 손을 내밀었다가 이내 아차했을지도 몰랐다. 그것을 사양하지 않는 건 그저 제 욕심이었고, 이내 짖궂게 물어보는 것은 실수를 수습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너무나 단 것을 억지로 삼킨 느낌이었다. 심장이 쿵쿵 뛰고 쿡쿡 찔렸다.
이내 조금 더 걷다보면 시야가 트이고 더 커진 음악소리가 두 사람을 마중하고 이내 춤을 추는 사람들과 바다에 떠 있는 파도에 따라 위아래로 흔들거리는 등불들이 보일 것이었다.
"후후, 그렇다면 저도 어떤 의미에서는 키라키라짱에게 있어 유일한 사람이라는게 되나요? 그렇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게 들리네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일수록 때로는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지기도 하는 법이니까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는건?"
그나저나 즐거워보이기는 하네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모습을 살피기 시작했다. 손에 든 링고아메도 그렇고 방금전의 그 모습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기는, 그도 즐기고 있겠지. 그리 생각한 그녀는 잠시 눈치를 살피듯 웃음으로 상황을 넘기고는 이내 그의 말에 대꾸하기 시작했다.
"그랬었나요? 어쩐지 이런 상황에 익숙한 것 같은 표정이기는 했는데, 다들 쉬는데도 고생이 많네요. 착하다 착해."
그녀는 여전히 웃으며 그를 놀리듯 조금 거리를 두었다.
"저는 이곳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이 없으니까요. 시마네 근처라면 조금 아는 것이 있지만 이 근처의 축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답니다. 그 사람... 아, 아버지는 이 근처에서도 살고 계셨던 것 같지만 본가는 조금 멀어서. 동행도 없기에 우선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따라해보면서 다니고 있었답니다?"
어울리냐는 듯이 제자리에서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돌아보인 그녀는 곧 그가 하려던 말에 의문을 가지기 싲가했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서야 자기가 원하던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핫, 아하하, 아하핫. 음, 어쩐지 싱겁네요. 동아리는─ 결국 들어가지 않기로 했답니다. 어느쪽도 즐거운 활동. 무언가 하나를 고르기보다는 자유롭게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나이가 아닌가요. 아 그러고보니 아무곳도 찾지 못하면 학생회에 간다는 약속이던가요?"
곤란하게 되었네요~ 그녀는 정말로 곤란하다는 듯 제자리에서 뺨에 손을 가져다대고는 생각에 빠졌으나 이내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웃어보이고는 그에게 말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니까 넘어가도록 할까요! 그런데 키라키라짱, 한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이곳에는 처음이기도 하고 무엇이 좋은지는 안내서를 읽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기에 잘 모른답니다. 추천이라던가─ 해주실수 있나요?"
"그런 것으로 유일한 사람이 생기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지만 이제와서 그만둘 것 같진 않으니, 저도 그에 못지 않은 뭔가를 생각해야겠네요."
조금 건방진(나마이키) 면이 있으니 나마나마짱? 아니면 이전에 사랑이라는 것에 상당히 흥미가 많아보였으니 코이코이짱? 어느 쪽도 참으로 네이밍이 최악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렇다고 마사마사라고 부르는 것은 뭔가 이상하고, 카미카미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역시 자신은 지금의 호칭인 카미야 씨로 해야겠다고 그는 결심을 다졌다.
시계방향으로 한바퀴를 돌고 있는 그녀의 말에 그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곳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이 없다. 즉 여기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올해, 혹은 작년. 그 정도쯤에 가미즈미로 전학을 오기라도 한 것일까. 이 마을은 물과 관련된 산업이 상당히 유명하고 여름인 지금 시즌에선 바다에 오는 사람들, 워터파크에 오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으니 나름 이름이 있다면 있었기에 그런 이가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동행이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 의외라고 생각이 되었지만.
"그 마음은 이해가 가네요. 저도 학생회가 아니었으면 다른 이것저것 하려고 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그런 약속을 한 기억은 없어요. 애초에 학생회에 들어오는 조건은 당사자에게 할 마음이 있는 것이니까요. 할 마음이 그다지 없는 이를 임원으로 앉혀도 스트레스일 뿐이잖아요? 그런 스트레스를 굳이 주고 싶지도 않고 저 역시 그 관련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마음은 없거든요."
나름대로 자신의 원칙과 방식을 확실하게 이야기하며 그는 링고아메의 맛을 살짝 보던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자신은 어디까지나 오늘 하루는 이 마츠리를 즐기기 위해서 온 것이었으나, 그렇다고 온전히 저 말을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그는 저쪽 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 가미즈미의 생명의 근원. 그 모든 물의 시작이자 신의 기운이 깃들어있는 샘을 저쪽 방향으로 가면 볼 수 있어요. 일단 저희 시미즈 가문에서 관리하고 있고, 평소에는 동굴에 철문을 설치해서 닫아두지만 지금 시기에는 개방을 해서 볼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 샘을 본 후에 동굴을 나와 산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반딧불을 볼 수 있어요. 수도 많고 상당히 예뻐서 이 호타루마츠리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그 상태에서 쭉 길을 다시 내려오면, 해변가에 도착하는데 그 근방에는 반딧불 신을 모시고 있는 신사도 있어요. 호타루노히카미. 첫날이었으면 그 해변가에서 포크댄스도 추고 어선들이 바다에 등불을 띄워서 바다에 떠있는 반딧불도 표현하고는 하는데 이미 첫날이 지났으니 내년을 노릴 수밖에 없겠네요. 보려면."
대략적인 말을 마친 후, 그는 가만히 머리를 긁적이다가 북쪽 동굴, 정확히는 샘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일단 마츠리의 정석 코스이기도 해서 그쪽으로 가려고 생각 중이긴 한데 따라올래요? 카미야 씨가 나중에 가겠다고 한다면 그것도 상관없는 일이고요."
어차피 자신은 갈 생각이었고 그녀가 따라온다면 안내를 할 생각이었다. 좀 더 여길 즐기거나 별로 관심이 없다면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고.
부디 얼마든지, 그녀는 소년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자신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은 단순히 그러고 싶지 않아서 인데.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아이를 보는 것은 그녀 역시 솔직하게 즐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게 불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기우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슬쩍 웃어 보였다.
“음음, 역시 제가 사람을 보는 눈에는 틀림이 없네요~ 전에 본 그 순간부터 그런 식의 대답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질문에 대한 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으니 괘념치 마시고. 역시 자리에 있는 것은 언제나 스스로 의지를 가진 사람이니까요.”
그녀는 어느새 이야기가 돌아갔다면서 놀란 듯 했지만 이내 다시 평소와 같은 모습을 취하고는 조용히 서서는 소년이 이야기하는 근처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반딧불이라니 아까 그 유치원생 아이가 부모에게 달려가며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며 맞장구를 치고는 조금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으음, 신인가요. 의외로 물보다 탄산을 좋아하는 신이라던가 있을 법하지 않나요? 본가에서는 가을에 방문객이 오지 않을 때엔 신당에 벼 이삭을 장식해두고는 했었죠. 꽃의 신의 신당에 말이에요. 그러면 신이 좋아하신다고 했던가? 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것 보다는 철에 피는 들꽃을 장식하는게 좋은데, 여기는 어떤 장식이 되어있을지 궁금하네요~ 그녀는 조금 두근거린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소년을 향해 말한다.
“자세한 것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니, 동행을 부탁하도록 할까요. 후후, 이렇게 직접적으로 관여 되어 있는 사람이 알려준다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길목에 턱하니 앉아버리면 통행방해밖에 안 되지만, 아직 지나다니는 다른 사람이 없기에 마음 편히 자리 잡고 있는다. 위에서 봤을 때는 조금 북적북적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조용한 걸 봐선 다들 해변까지 내려간 모양이다. 처음에는 바닥에 닿지 않게 앉으려 했지만 그렇게 하면 다리 저려오는 건 신도 마찬가지라, 결국 그나마 덜 지저분한 바위 하나를 찾아 걸터앉는다. 그는 앉은 채 몸을 숙여 무릎 위에 팔꿈치를 세우고 턱을 괴었다. 앞으로 숙이는 몸짓에 군데군데 붉은 머리칼이 앞으로 흘러내린다.
"그건 그렇고, 토와 씨는 호타루노히카미께 무언가 빌어볼 생각 있으십니까?"
이곳에 날아다니는 반딧불도, 무리지어 춤추는 인간들도, 바다에 뜬 불도 모두 그와 연관 있다. 소원은 몰라도 축제를 즐기는 입장에서 들러주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니 그는 방문할 생각인데 제 앞에 인간은 어떨지 모르겠다. 때때로 이야기 꺼내고, 얼마간은 편안한 침묵 속에 그렇게 있으려니 시간이 조금은 흘렀다. 몸을 움직이느라 올랐던 열이 떨어져 밤 기온이 선선하게 느껴질 만큼은.
아미카는 고개를 저으며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는 것이 좀 아쉬운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일단 신사까지는 가야지, 그런 생각도 하며 슬슬 발걸음을 재촉했다.
"네에.. 확실히 빨리 시간이 가는 것 같네요.."
잠시 속도를 내려는 찰나, 조심하라는 말에 아미카는 그냥 내려가던 속도대로 내려가기로 했다. 괜히 또 여기서 넘어졌다간 더 큰 민폐가 될테니.
"어..어?"
그때였다. 풀숲에서 반딧불이 하나하나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아서 그런지 엄청 많진 않았지만, 초록빛의 불이 여기저기 움직이는 광경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아미카는 잠시 멈춰서선 반딧불이를 바라봤다. 아미카의 눈이 반짝였다. 흥미를 보였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반딧불이의 빛 때문이기도 했다.
"만약 꽃의 신이 정말로 있다고 한다면, 저는 벼 이삭보다는 그 시기에 나는 꽃을 장식하는 것이 좋지 않나 싶네요. 물론 그쪽 사람들이 그렇게 정한 거라면 제가 이러쿵저러쿵 할 생각은 없지만요."
그렇지 않은가. 꽃의 신이라면 적어도 꽃을 공물로 바치거나 꽃 장식을 해야지. 벼 이삭을 장식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풍년이 들게 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아보여 그는 영 애매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튼 상대가 동행을 부탁한다는 말을 하자 아키라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적으로 관여되어있는 사람이 알려주면이라. 그 말에는 쓴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는 자신의 표정이 보이지 않게 앞을 바라봤다.
"아직은 직접적으로 관여된 것은 아니지만요. 언젠가는, 언젠가 제가 정말로 당주가 된다면... 그땐 제가 이 마츠리를 개최하게 될테니, 그때도 여기에 있다면 그때까지 그 평은 미뤄주시겠어요? 아직은 제 어머니가 관리자니까요."
그러고 보니 오늘 샘은 누가 자리를 지키고 가이드 일을 하더라? 어머니였나? 아버지였나? 아니면 삼촌이었나? 어느 쪽이건 시미즈 성을 지닌 누군가임은 분명할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앞장서듯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거의 다 없어진 링고아메를 마저 입 속으로 집어넣은 그는 비어있는 나무 막대기를 근처에 있는 쓰레기통에 휙 던져 깔끔하게 골인시켰다.
"그러고 보니 카미야 씨는 반딧불을 좋아하나요? 사실 멀리서 보면 예쁘긴 한데, 가까이서 보면 은근히 징그럽다고 실망하는 이들도 많거든요. 그리고 길목이 그런 반딧불이 살고 있는 곳 근처를 지나가는 구도라서. 만약 싫어한다면, 그 구간은 빠르게 분위기만 보고 지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거든요."
불빛이 예쁘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벌레라는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싫어하는 이는 상당히 싫어하고, 자신은 그 모습을 어릴적부터 꽤 여러 번 봤기에 조금 걱정이 되어 그는 그렇게 물었다. 만약 좋아하거나 별 상관없다고 한다면 딱히 신경 쓸 것은 없겠지만. 일단 산길에 발을 들이며 그는 그녀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지만 경사로가 조금 있으니 힘들면 이야기하시고요. 쉬엄쉬엄 가면 되니까."
"글쎄요... 좀 감정적인 것이 아닌 소소한 소원은 빌 만하기는 하네요" 예를 들자면... 춤 출 때 발을 안 밟게 해주세요. 나 요리를 좀 더 잘하게 해주세요 같은 거 정도요? 라는 말을 합니다.
"저 멀리에 있는 분의 안온함을 빌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보이긴 하지만요...." 그건 다른 이들이 빌어줄 것 같군요.. 라고 중얼거리네요. 저 멀리를 말할 때 바다 쪽을 바라봅니다. 갈 길을 잃은 눈빛이 흐려지고 눈꺼풀 뒤로 사라질 때까지 멍하게 먼 방향을 바라보는군요. 일어나야 하는데... 손이라는 말에 반응하듯 마이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살짝 멍하지만 금방 총기를 되찾습니다.
"손. 잡아주시겠나요?" 잘못 잡으면 반대로 제가 잡아드려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라는 말을 가볍게 하고는 손을 내민다면 톡 건드리듯이 잡지만 잡기만 했을 뿐 힘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잡았다면 잡은 것 자체는 사실이라서 적당히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까? 아니면 마이리의 손이 따뜻해서 찬 건가? 싶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