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 그렇게 이해해주니 그것도 좋네요.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바뀌는 경우는 있으니까, 저희끼리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해도 달라지는 것은 먼 훗날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말에 조금은 만족한 것인지 그녀는 즐거운 듯 웃으며 소년을 따라가 보려 했으나 이내 얼굴을 숨기려는 듯 자신을 피하는 것 같은 소년의 모습에 장난기가 돌기 시작했다. 어쩐지 재미있는 일에 끼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핫, 아하핫!!! 뭔가요 그거, 자기가 당주가 될 때까지 이곳에 있어 달라니 지금 고백이라도 하는 건가요? 아하핫!!! 에에, 뭐 그 정도의 시간이야 있으니 상관은 없지만 그렇네요. 아쉽게도 저는 남의 사랑을 바라보는 것이 좋은 것 뿐. 직접적으로 관여가 되는 것은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답니다. 그도 그럴게.”
제가 누군가와 함께하기로 한다면 누군가는 질투하지 않겠나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를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가득 찬 말이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 한 이야기였으니까, 단순히 구태여 말하지 않으려 했을 뿐이었다.
“에에, 반딧불은 물론이고 벌이나… 어느정도 벌레에는 익숙한 편이랍니다. 꽃을 보고 있으면 자주 만나게 되기도 하니까요. 어라? 키라키라짱은 벌레는 싫어하나요?”
알겠다고 말하며 소년을 따라가는 그녀는 어쩐지 무언가 이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이내 다시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마치 반응이라도 하듯이 먼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그녀는 이내 소년을 지나쳐 그를 다시 돌아보고 있었다.
아미카는 반딧불에 정신이 좀 팔리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노을을 등지고 반딧불들이 움직이는걸 보는 건 아미카에겐 꽤 신나는 일이기도 해서 아미카가 정신을 팔릴만도 했다. 그때, 그것만 보다가 넘어지지 말고 아래도 보라는 테츠야의 말에 아미카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제대로 내려가기로 했다.
"아하하.. 또 정신 팔려서 다칠 뻔했네요.. 그래도 확실히 예쁜 것 같아요.. 또, 확실히 코스도 잘 짠 것 같고요."
아미카는 그렇게 말하며 반딧불이를 보다가 발 밑에 무언가 위험한게 있진 않나, 하며 아래를 보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손을 뻗으니 잠시 반딧불이가 올라앉더니 다시 날아갔다. 아미카는 손을 털곤 앞을 보며 말했다.
"...이것도 저것도 다른 것도 어떤 것도 다 사랑으로 엮는 그 특유의 생각만은 여전하시네요. 놀라울 정도로."
대체 지금의 말 중에서 대체 어떤 부분이 사랑과 연관이 되는 것인지 아키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한때 1학년들 사이에 사랑에 대한 것이 유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학생회 멤버에게 물어봤다가 순식간에 바보가 되버린 그때의 순간을 떠올리며 아키라는 괜히 으으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허나 한 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그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으면서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설사 그 일로 누군가가 질투를 한다고 한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건진 잘 모르겠네요. 누군가와 함께 하기로 한 시점까지 아무런 것도 하지 않은 이에게는 그것으로 질투를 느낄 자격은 물론이고, 뭐라고 말을 꺼낼 자격 또한 없잖아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표현하고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그저 보기만 하는 겁쟁이의 마음에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고요."
질투를 하는 것은 자유나 그 마음에 자신이 공감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을 신경써야 할 이유도 없었고. 물론 질투라는 감정 자체를 부정하고 싶진 않았으나,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질투를 하거나 부정적인 마음을 먹는 것은 역시 자신으로서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는 자세였다. 그의 기준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패배자가 불평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기에.
"아니요. 저는 어릴적부터 여기 태생이고, 시미즈의 피를 이어서 그 샘이 있는 동굴 부근에는 꽤 여러 번 다녔고... 그 산길도 꽤 다녀서. 벌을 제외하면 딱히. ...그리고 그렇겠네요. 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뭔가를 키우는데는 체력이 필요하니까요."
이미 자신을 앞지르고 뒤돌아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딱히 문제는 없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다시 산길을 천천히 올랐다. 주변은 이미 충분히 어두웠으나 마츠리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등불을 설치해뒀고, 그로 인해 길가가 보이지 않는 일은 없었다. 약 십 분 정도 올라가자 보이는 것은 낡은 신사였다. 정확히는 천과 지의 기운이 모이는 포인트. 신들에게 있어서는 상식이나 마찬가지인 혼인 의식을 치룰 수 있는 곳이자 신계로 향할 수 있는 입구이기도 한 바로 그 신사였다.
"저 신사의 옆. 그러니까 저 편을 보면 동굴이 보이죠? 원래라면 철문으로 막아두지만, 지금은 개방했고 저 안에 신의 기운이 깃들어있다는 샘이 있어요. 아주 멀고 먼 옛날.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 수많은 피가 흘렀고, 그 때문에 이 땅이 정말로 황폐해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땅을 포기하고 떠났다고 해요. 그 중 단 한 사람만이 유일하게 남았고 땅을 살려보겠다고, 생명을 다시 살려내겠다고 열심히 노력을 했지만 생명의 근원인 물조차 말라버린 곳이었기에, 아무리 다른 곳에서 물을 어떻게 얻어와도 물은 금방 마르는 판국이었기에, 그 사람은 자신의 눈물을 모아서 물을 줘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 있어요. 그때 신이 나타나 생명의 근원인 물을 줬다고 하고 그 인간에게 이곳에 남아 평생 그 생명의 근원을 지키라는 사명을 줬다고 하는 뭐 그런 전승이 있긴 한데.. 아무튼 그 전승에 나오는 물이 바로 저기에 있는 샘물이에요. 일단 저 옆의 신사도, 시미즈 가문에서 어느 정도 관리하고 있긴 한데..."
가미즈미의 전승을 정말로 간략하게만 설명하며 그는 신사를 볼 거면 보라는 듯이 잠시 말 없이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다 구경을 했거나, 혹은 구경할 마음이 없어보이면 아마 동굴 안으로 천천히 발을 향했을 것이다.
코로리가 고개 숙여서 모란꽃도 같이 숙이고 있겠지만, 머리꼭지만 보이지는 않을 거라며 장난스레 맞장구친다. 남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곁눈질하랴, 렌의 발 밟지 않게 조심하랴, 제 발이 꼬이지 않나 확인하랴 눈이 바쁠 것 같다. 그래도 춤추지 않는다는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누가 보기에는 어설프고 우스꽝스럽더라도 즐거울 것 같았다.
"춤 춘 적 없어도 반딧불이니까ー 내 발은 안 밟을 거 같은걸."
그래서 소원도 그랬다. 벚나무 신님도 들어줬으니까, 반딧불 신님도 들어줘야 해! 소원을 비는 동안 놓았던 손은 다시 맞잡아진다. 코로리는 계속 잡고 있었다고 생각해서, 렌이 물어볼 때까지 스스로의 행동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서 있었다. 반딧불이들을 뒤로 하고, 반딧불 석상도 지나쳐 노랫소리가 흐르는 해변가로 향할 때까지 모를 뻔 했다. 아니, 손을 놓고서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몰랐을 것 같다.
"계속 잡고 있었으니까, 당연히ー"
당연히 또 잡는게 어딨어! 당연히 또 잡을 거라는 것 말고도 손을 내민 이유를 고민해본다. 렌이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보면서 곰곰히, 찬찬히. 렌의 손을 잡고 싶다고 생각했었나? 그, 그런 적은 없는 거 같은데! 익숙해졌나? 이렇게 꼭 잡은 거 처음인데에. 손을 잡는 게 좋은가? …좋은 거 같아. 좋다구 생각해. 코로리는 손을 잡고 있는게 좋아서 저도 모르게 내밀었구나 싶다. 코로리가 또 고민하는 건, 렌의 손이라서인지 그저 손을 잡는 걸 좋아하는지였다. 남의 손을 잡는 것도 싫다고는 생각 안하는데, 렌과 손을 잡을 때처럼 강아지풀이 스치고 있을지는 모르겠는 것이다. 대답하지 못하고 다물렸던 입을 연다. 손을 바라보던 시선이 렌에게로 향한다. "손 잡는 게 좋…아서?"
코로리도 확신 없단 듯 작은 목소리였다. 그런 것 같다며 우물쭈물거리는 기색 아래로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듯하다. 손 잡자고 내민 것도 그렇고. 코로리는 어떻게 발을 딛고 떼고 있는지 모르겠다. 해변가까지 걷고 있는데 걷는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무도회장같은 풍경과, 바다를 보고서 바다, 예뻐서 다행이다ー.
"거의 영원에 가까운 생을 살아간다는 것에 조금이라도 혹한 게 아니었나요?" 엔은 허공을 잠깐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고운 얼굴에 묻어나는 것은 허망함과 동시에 후회와 어쩔 줄 모르는 듯한 갈팡질팡함이었을까..
"맞아요..사실 혹하기는 했어요. 긴긴 생을 살아가면 의사의 직업을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망상도 결과적으로 미룬 이후에 계속 생각해본 적 있지요." "그런데...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짧게 져버린 것을 봐버렸기 때문에 오래도록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게 되어버렸어요..." 얼굴을 감싼 손에는 그녀와 맞춘 것이 없었습니다. 손으로 가려진 얼걸에 어떤 표정이 떠올랐는지 나는 아직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것이 바뀌었음에도 아직도 불가능하다니.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내가 한심해 보이시겠지요. 서로 좋아한다는 것이 분명하고 그 무거움이 그렇게나 무거운데..." 고작 옛 생각 때문에 미루고 생각하다가 안될 것 같다는 게 말이에요. 그런 생각은 한 적 없다고 말을 하려 해도. 어째서일까요.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정말 엔이 한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가? 굴러들어온 것을 차버린 어리석음이 아니라 한치의 의심없이 생각했는가? 라는 낯선 감정들이 파문을 일으킵니다.
"감정적으로 미룬 것이었잖아요. 그러니까. 고민을 많이 하면 분명 돌이킬 거라고..." "그건...감정적으로... 결정한 것 같으면서도 분명한 이성으로 결정내린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에 감정이 없었냐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미룬 것 자체가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결정이었으니까. 그것을 들었을 때의 감정이 어땠더라? 공포와 좌절이었나? 아니면 무너짐? 당시에도 너는 그 감정들을 제대로 마주보지 못하는 이이기 때문에 그저 충동적으로 입을 열면서도 계산했겠지. 문학과 자유로움을 새장 속에 두었으니 예견되는 일이었지만.
"그 애는 너무 빨리 바다를 건넜어요." 그러고보니. 엔의 집에는 들어갈 수 없는 방이 있었습니다. 열린 틈을 통해 들여다보았을 때에는 소학교 1~2학년 정도가 좋아할 법하게 꾸며져 있었지요. 나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내심으로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잘 들리지는 않습니다. 마치 사람과 물고기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뻐끔거리는 것으로만 보이는 기분입니다. 나쁜 버릇입니다. 알고 있을 겁니다. 제대로 들리지 않을 거라는 걸.
"어쩌면..." "예외적이어서 네가 가장 닮았는데도... 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내가 일찍이 끝날 수 있던 것에 무의미한 고통만을 더해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네요." 안에서 나를 찌르고 있는 가시 하나를 드러낸 기분입니다.
"다시 한 번 더 분명하게 말씀드릴게요." 난.. 신이라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거부감이 들고 미워할 것만 같고 섞여있다는 것에.... 감정이 들어요. 라는 말을 하는 엔입니다. 하지만 너는 그러면서도 사이에 섞인 이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좋은 친구라 생각하고, 멋진 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원래부터 싫어했지만 신과 가까운 나라에 속한 사람이니.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걸까. 아니면 사랑하는 게 본의지만 그럼에도 미움이 들어버리는 걸까? 나는 동시에 느끼는 것이 서툴러 나를 증오한다고 여겼다.
"그러니까.. 날...미워하는 거야?"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면 나는 당황하여 그녀를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냉랭했을 겁니다. 내가 그런 표정이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상처입은 듯한 표정이었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지금 다시 본다면 떨리는 목소리로 냉랭하게 네. 라고 답했고 나는 더 이상 그런 얼굴을 또 볼 자신이 없어서 등을 돌려 뛰었습니다. 이미 약속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입니다. 3류가...3류로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저 멀리. 밖의 이들은 무엇이 어긋났던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의 토와라고 칭하던 명백히 설정과는 다른 픽크루? 언젠가의 봄의 추정 나이보다 심히 어려보였던 언행? 아니면... tmi에서?
"후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랑에 의해서 살아간다는 것이 제 지론이라서요. 좋은 말로 표현해서... 일관성이있다-고 말해주셨으면 좋겠네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웃으며 말을 꺼낸 그녀였지만, 그녀라고 해서 단순히 사랑에 목을 매달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아름다운것은 좋지만, 개인의 호불호의 문제이고 취향의 문제일 뿐. 그녀가 바라는 아름다운것의 기준을 아주 간단하게 채워주는 것이- 사랑일 뿐인 것이다.
"에에, 물론 그렇지만 자아를 가진 생명체인이상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지 않나요.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리고 복권을 사고, 상에 당첨되고 싶어서 상가의 추첨을 돌려보기도 하는 그런. 자신이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ー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어디에도 없답니다."
그렇게 보면 그것 역시 사랑스럽지 않냐며 소년에게 동의를 구한 그녀는 표정을 숨기듯 소년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조금씩 느껴지고 있었다. 피부로도 느껴질정도로 강렬한 것이 저위에 있다. 다사가면 다가갈수록 어쩐지 조금공기가 무겁게 느껴지기도 할 정도였으나, 오히려 완전히 다가간 그곳은ー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 집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좋네요! 말 그대로 애정이 묻어나오는 이야기 아닌가요. 저, 이런것도 좋아한답니다? 사람이 노력해서 결과를 얻어내는 이야기는 어쩐지 조금은 흥분되기도 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나 황량했다던 곳이 이렇게 번영한 것을 본다면... 그 사람도 멋진 인생을 살았네요.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녀는 신사의 근처를 훑어보았지만 역시 이곳의 주인처럼 보이는 신들은 보티지 않았다. 제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이러는 걸까 아니라면 그저 원래부터 이런 곳이었을까. 생각이 머리를 채우고 지나가기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신사에 대해서보다는 샘물이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그렇게 말을 하면서 아키라는 잠시 말을 멈추고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허나 그에 대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으며 스스로 납득하며 그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오직 그만 알 일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것에 대해서 말할 일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혼자서 뭔가를 생각하다 혼자서 결론을 내리고 혼자 납득할 뿐이었다.
자신에게 동의를 구하는 그녀의 말에 아키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말은 충분히 맞는 말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질투하고, 이른바 부정적인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공감해야만 하는 것일까. 적어도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부정적이건 긍정적 결과이건 결국 자신이 모두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가슴 속으로 살짝 찔리는 것을 느끼며 그는 "카미야 씨가 그렇게 느낀다면, 카미야 씨에게는 그런 것이 아닐까요?" 라는 말로 대꾸했다.
"애초에 엄청 오래전의 사람이니까요. 정말로 존재했는지도 알 수 없는거고, 전승이니까 그 자체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가미즈미에서 대대로 살고 이 땅을, 정확히는 생명의 근원인 물을 지키는 사명을 지녔다고 하니, 가미즈미 어딘가에는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피를 이은 사람들이."
아주 당연하게도 뭔가 생색내는 느낌인 것 같아 아키라는 그게 '시미즈'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아무튼 가보자고 하는 그녀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굴 안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좁은 감이 있긴 했으나 그렇다고 못 들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발밑을 조심조심하라는 말을 하면서 그는 앞장서며 발에 채이는 작은 돌멩이를 일부러 옆으로 살짝 차면서 길을 정리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마 신인 그녀에게는 고위신의 기운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끝에 도달해, 옆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거대한, 그 끝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 거대한 샘이 눈에 보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맑고 투명한 그 물에서 인간은 느낄 수 없는 강렬한 고위신의 천의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으니 누군가는 위압감을 느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경외감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익숙하게 바닥도, 그 물의 끝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샘을 바라보던 아키라는 그 샘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신성한 샘. 이 가미즈미의 생명의 근원인 샘이에요. ...우리 시미즈가 대대로 지키고 있는 가미즈미의 명물이기도 하고요."
첫만남에도 유령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유령이라니. 하지만 싫지는 않은 소리로 들렸기에 처음과 다르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 내가 머리로 손을 가져가자 마치 금방이라도 피할듯이 빤히 쳐다보던 요조라였지만 내 손이 가까이 가자 고개를 살짝 숙여준다. 평소처럼 긴 머리가 아니라 칸자시로 틀어 올려져 있었기에 살짝 밖에 쓰다듬지 못했지만 이 정도로 만족이다. 손을 내리자 천천히 가자는 말이 들려왔고 그녀의 얼굴이 아직도 붉은 기색이 서려있었기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글쎄요, 저는 신일까요? "
장난스런 기색으로 반문하며 손을 이끌어서 자연스럽게 해안가로 가던 걸음을 근처 수풀로 옮긴다. 숲길에서 나온지 얼마 안된터라 근처에는 아직도 높은 나무들을 금방 찾을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향한 나는 손을 놓고서 그녀와 살짝 떨어지며 마주 보고 섰다.
" 이건 비밀이지만요. "
신은 인간에게 정체를 들키면 안되지만, 적어도 앞으로 많은 것을 공유해야하는 사람에게는 밝혀야한다고 생각하기에 한걸음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한 세걸음 물러났을때 마치 밤하늘의 별빛이 좀 더 반짝이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고, 네걸음째 걸었을때는 평소랑은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다섯걸음 물러섰을때, 은색으로 빛나던 하얀 머리카락은 어느새 밤하늘과 같은 짙은 머리색이 되어있었다.
" 인간계에서는 이자요이 코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 사실은 이름없는 별의 신, 밤하늘의 모든 별을 관장하며 그 움직임을 관찰하는, 신도도 없고 신사도 없지만 동시에 밤하늘 아래의 모든 인간들이 믿고 있는 신이에요. "
인간한텐 정체를 들키는게 처음이라 좀 긴장되기도 했지만 요조라니까, 조금은 더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