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물음에 잠시 뜸을 들였다가 대답하는 요조라의 말투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기에 나는 그녀를 슬쩍 바라보았다. 용기내서 한걸음 내딛었는데, 요조라가 한발자국 멀어진다면 결국 그대로니까. 하지만 평이한 말투와는 다르게 빨개진 귀 끝을 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 미안해요, 내가 좀 겁쟁이라. "
평소에는 말도 잘하면서 이럴때만 왜 이렇게 뱅글뱅글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서 그런거 아닌가 싶었지만 ... 이런게 익숙한게 더 이상한게 아닐까. 그녀의 말에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서 그녀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그러니까, 사귀어줄래요? "
으, 남이 하는거 볼땐 되게 이상했는데 그걸 내가 할 줄이야. 하지만 기분이 간질간질하면서 심장이 너무 뛰어서 폭발할 것 같았다. 아직도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음악 소리는 분명 같은 거리에서 듣고 있음에도 아까보다 희미하게 들리는듯 했다. 그야 지금은 모두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할지 온 신경이 쏠려 있으니까 그런게 아닐까.
렌은 코로리가 머뭇거리자 괜히 물었을까 생각했다가 이내 솔직하게 말을 해주는 모습에 조금 안심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조금 흥미롭기도 했다.
샘에 대해 얽힌 아오노미즈류카미의 이야기는 아키라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코로리에게서 정말 확인받듯이 하자 신기했던 터였다. 하지만 코로리에게 그 신에 대해 얽힌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 괜히 싫지 않을까 싶어서ㅡ별 생각없이 한 이야기가 비교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ㅡ 말하지는 않았었지만. 그리고 아키라와 같은 반인데다가 투닥거리기도 한다니. 렌이 아는 아키라는 늘 용모단정에 모범적인 이인데다가 어른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아키라가 코로리와 투닥거리는 모습이 상상이 안되었던 탓이다. 괜히 궁금해진다.
코로리는 그런 이야기가 부끄러운 듯 했다. 손을 꼭 잡아오며 반딧불이 보러가자고 말을 돌리는 것에 렌은 목덜미를 매만질 뿐 그에 대해 묻지 않는다. 대신 걸음을 옮기며 소소한 다른 이야기를 건넨다.
"...오늘도 서로 비밀 이야기 한 거네요. 그래도 물이나 좁은 공간 같은 것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아무래도 그런 것들은 일상생활에 불편하기도 하고."
자신도 공포스러운 것들이 무.... 아니, 싫다고 이야기했고 코로리도 남들에게 하기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주었으니 비밀 이야기인 셈이다. 물론 혼인 의식에 대한 이야기도 비밀 이야기였지만.
손은 여전히 잡은 채였다. 둘 다 이에 대해 말이 없으니 모른척 계속 잡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녹색 불빛 하나가 눈에 띌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또 다른 곳에 하나.... 이런 식으로 점점 녹색 불빛들이 많아지더니 어느새 정신 차리고보면 마치 반딧불이들에게 포위 당한 듯 사방으로 반짝임을 뿌리고 있는 녹색 빛들이 사방에 가득할 것이었다.
>>코로리 진단 1. 그렇게 특별하게 따뜻하다 차갑다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일반적인 온도이지 않을까 싶네~ 미지근한 정도...? 사실 추위를 덜 타는 편이고 더위를 타는 편이긴 한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여름을 좋아한대. 물을 좋아하는 건 더위를 많이 타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2.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여기서 반대항 축구 하고 있다가 또 좀있으면 저기서 농구하고 있고 계주 등등 운동부인데다가 또 이런 저런 체육 활동 좋아해서 나름 반 친구들이 시키기도하고 해서 다 한다는 편이지~
3. 방학이라고 연습 없는 것 아니니까....? 더불어 여름방학엔 워터파크 알바 한다거나, 겨울에는 스파 알바를 한다거나 해. 연습 시간 피해서 파트타임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건 아닌데 돈도 주고 물도 보고 하는게 좋다고.... 나름 놀러만 워터파크 가려고 했으나 장렬하게 큐알코드 실패....
"그렇게 버려놓고 즐기다 돌아와서는 다시 어울리자니, 아무래도 배포가 좁아 보일 것 같아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도 그다지 인륜이나 도덕 잘 준수하는 신은 아니지만―오히려 꼰대 반열에 드는 편이다― 요점은 위에서 내려다볼 때라면 몰라, 이렇게 인간과 직접 관계를 맺게 된 이상 얄미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실 한순간이나마 남의 상태가 안 좋든 말든 상관없다 생각했었단 사실은 싹 잊고 참 당당하게 말한다. 그러다 토와를 바라보며 은근한 목소리를 낸다.
"토와 씨. 당신 말입니다… 운이 굉장히 좋으십니다?"
한쪽 눈썹이 슬쩍 올라가며 눈이 가늘어진다. 카페 무료이용권에 워터파크와 스파 이용권을 딸 만큼 히트 앤 붐 고득점까지 하고, 운 좋다는 건 빈말이 아닌 진심이다. 아니꼽게 보일만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오해는 말자, 단순한 감탄의 표현이다. 본인은 참치캔도 못 따고 부러워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런 영문 모를 표정도 곧 깔끔하게 지워졌다. 같이 뷔페 가자는 말을 싫어할 이유가 있겠나. "아무튼, 같이 가도 된다 하시면 저는 좋습니다. 물주는 당신이니 그때 보게 된다면 극진히 모셔 드립죠." 공손하긴 한데 묘하게 간신배 같은 말투로 말할 건 또 뭔지.
길목으로 발을 들이니 저문 숲의 내음이 몸을 감싸온다. 아직은 초입이라 볼만한 빛이 없지만, 멀리 내다보자니 조금 더 아래에는 조그만 빛 덩어리 한둘은 보이는 것도 같다. 내리막길은 숲이 우거져 내리쬐는 달빛마저 잡아먹으니 사위가 더욱 어둑했다. 조명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호타루마츠리라는 특성상 반딧불을 가리면 안 되니 쨍하게 밝지는 않다. 조심해서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앞서 가다 내려가기 전 뒤를 돌아보고선 "넘어지면 큰일이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이렇게 당부를 했다. 집중이 조금 흐트러져서일까, 말하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든 채 가지런히 모아 잡았다. 산길을 내려가면서 취하기엔 이상한 폼이지만 본인은 편안한지 더없는 안정감까지 느껴진다.
그 말을 끝으로 발밑에 흙 바스라지는 소리를 제하면, 내려가는 동안에는 고요가 감돌았다. 묵묵히 아래를 보고 걷던 그가 불현듯 고개를 든다. 피어오르듯 아른거리는 초록과 노랑, 곳곳에 떠다니는 형광螢光이 한순간 시야에 범람한다. 그 광경에는 심미에 무관심한 그조차도 경탄성을 내뱉게 된다. 아름다운 풍경 감상하기에 잠시 말이 없었으나 마냥 감동만 하고 있으면 타츠미야가 아니다. 그는 또다시 실없게도 웃으며 이런 소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