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는 또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걸까 생각하다가 이내 괜히 이야기했다는 듯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고. 아직 꿈에서 나온 적은 없으니까….”
안 나왔으면 좋겠지만 나온다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그냥 기분이 나쁠 뿐이니까. 처음에 물었을 때에도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었고.
그러다 렌은 코로리의 이어지는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을 모호하게 한 코로리의 잘못일지, 아니면 제 착각이 문제일지. 코로리를 처음 만난 것은 아주 비현실적인 감각이었지만 울고 웃고 딸꾹질하고 놀라는 모습은 너무 인간적인 것들이라 이내 잊어버리고 만다. 여전히 잠의 신인 코로리는 모르는 것 투성이고ㅡ코로리는 무언가를 정확히 설명하는 편은 아니다ㅡ 자신은 그저 코로리의 한 단면만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럼 꿈 속에서 만나는 코로리 씨는 다 가짜 코로리 씨겠네요.”
이제 헷갈릴 일은 없을 터였다. 꿈에 코로리가 나올 일은 없겠지만 꿈에서 또 코로리를 만나면 그 때처럼 놀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뭔가 왠지 놀림받은 기분에 렌은 이마를 짚었다가 이내 심술을 담아 키 작은 코로리의 까만 머리통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리려 했을 것이었다.
“어쨌든…. 제 꿈 속에는 찾아오지 마세요. 찾아오면 친구 안 할 거야.”
코로리가 다른 사람들 꿈에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피터팬인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제 꿈속에 몰래 들어와 제 꿈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찾아온다고 진짜로 친구 안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정도의 금제는 되지 않을까. 평소에 꿈을 많이 꾼다거나 잠을 잘 못잔다거나 하지는 않으니 괜찮을 거라 지레 짐작한다.
앞의 이야기가 어찌 흘러가든 신사를 구경하고 비밀 이야기를 듣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었다. 그나저나 사랑을 맹세하는 건 맞춘 건가? 그리고…
“동화 같은 이야기이네요.”
말 그대로 동화같은 이야기인 것 같다.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입맞춤이라니 말이다. 이곳에 있는 신사라고 함은 아오노미즈류카미님의 신사인 것일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에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넓은 신임에 분명했다. 자신이 신이라면 제 신사 앞에서 이름 모를 커플들이 계속 찾아 오는 것은 싫을 것 같다고 생각해버린다.
뭐, 사실 저 신사는 신사라기보다는... 신계와 인간계를 이어주는 통로 같은 곳이기도 해서. 신이 저기 저 신사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신계로 통하는 통로가 형성된답니다. 우연히 휘말리는 이들도 있는데... 그런 이들이 바로 카미카쿠시된 이들이에요. 공식 설정입니다. 이거.
"지칭어가 굉장히 특이하십니다? 음, 어쨌거나 그런 경험도 있었다는 이야기군요. 그에 비하면 저는 참 사람답지 않습니까."
'존재님'이라는 표현은 꽤 이상하지 않은가. 꼭 정말 사람이 아니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어쩌면 토와가 정말로 인간 아닌 무언가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 세상은 넓으니 그럴 수도 있는 법이지. 가미즈미만 해도 신들이 한가득인 판에. 아무튼간에 그런 의미에서 자기가 사람답단 호언은 그리 틀린 말은 아니리라. '아암, 그렇고말고'라고 말하듯이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찬을 한다. 제 나름대로 신경써서 특이하게 굴지도 않았고, 비인간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평범한 사람은 자신의 평범함을 어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한다.
"어, 정말입니까? 그럼 꼭 끝까지 노는 겁니다? 그러면 말이죠, 이야기 꺼낸 김에 이제 동굴부터 가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는 한층 더 들뜬 기색이다. "저도 마침 그리하고 싶었는데, 저희 하이파이브-라도 할까요?" 기색만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인 모양이다. 다른 건 몰라도 가미즈미의 명물(아마도)이라는 샘에는 꼭 가야 한다! 인간들이야 그런 것쯤은 그냥저냥 들어줄 만한 지역 전설이라 생각하겠지만 신으로서는 그리 여길 수 없다. 모처럼 높은 신이 문을 열어주었으니 들러야 신지상정이다.
웅장한 샘이 주는 괴리감을 무섭다고 표현하니 옆에서 손 꼭 잡고 있으란다. 이미 잡고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새삼 잡은 손이 의식되는거 같아서, 괜히 고개를 반대로 하고 중얼거린다. 그래도 놓진 않았으니 싫은 건 아니라고 보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손을 잡은 채로 샘물을 마실거냐 물었고, 코세이는 안 마셔도 되겠다고 했다. 그 대답에 요조라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 을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니 대답은 모를 일이다.
요조라가 나가자고 하기 전에 코세이가 나갈까요, 하고 물어와서, 고개를 끄덕이곤 샘과 동굴을 뒤로 했다. 들어올 때처럼 사람들에 조금 치여가며 나오자, 미지근하게 와닿는 공기가 제법 반갑다. 감상하느라 내부의 서늘함을 눈치 못 챘었는지 드러난 팔다리가 조금 차구나 싶다. 하지만 밖은 후덥지근하니 금방 더워지겠지, 생각하며 잠시 옷에 뭔가 묻지는 않았는지 살핀다. 고개를 살짝살짝 돌려가며 치마자락 같은 부분을 보다가 옆에서 코세이가 묻는 말에 반사적으로 시선이 향한다. 놀란건지 어쩐건지, 동그래진 요조라의 눈이 깜빡깜빡한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휙 바꾸고 고개도 앞으로 돌리고 대답한다.
마츠리의 이름이 호타루마츠리니까, 메인은 샘이 아니라 반딧불 구경인 거다. 마침 여기서 내려가는 길이 구경하기 좋은 길이라 했으니 일단 그 길로 내려가고 나서 뭘 할지 정하면 될 것이다. 그러고보니 등불 구경하는 곳 근처에서도 뭔가 한다는 거 같았는데, 뭐였더라, 가보면 알겠지, 같은 생각을 가볍게 한 요조라는 저멀리 반딧불이 보이는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손을 잡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이끄는 모양새가 되었겠지.
올라왔던 길보다 훨씬 짙은 어둠이 깔린 그 길은 평소라면 선뜻 걸음을 내딛기 어려웠겠지만, 지금은 수많은 반딧불들이 등불을 대신해 반짝이고 있어서, 되려 홀리듯 걷게 된다. 그래도 어두운 건 어두운거니 천천히 걸어야 했고 다들 그런 모양인지 붐빈다는 느낌은 덜하다. 길을 제외한 숲과 수풀 속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움직이는 반딧불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걷던 중, 요조라가 말을 꺼냈다.
"아까... 왜, 해피엔딩... 아니라고, 생각, 했어요...?"
어둠 속에서 반딧불을 보던 요조라의 눈이 소리없이 코세이에게 향한다. 요조라는 단지 그 한마디를 하고 다른 말은 더하지 않는다. 재촉도, 사양도, 권하지 않고, 말하고 싶으면 하고 말라면 말라는 식이다.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반딧불 쪽으로 돌렸다.
"예전에는 요비스테.. 비슷하게 했었습니다만.. 지금은 뭐라 불러야 할지 애매해서 그렇지요." 사람답다는 마이리의 말에는 동공을 조금 좁히기는 하지만. 평범해보이려 노력하는 듯함을 조금..눈치는 챌 수 있을까? 그렇다 해도 굳이 평범하게 보이려고 굳이 노력하지는.. 같은 말을 하지는 않겠지. 그걸 왜 말하나..
"저야말로요." 동굴부터 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는 아이스크림을 조금 핥습니다. 입술이 묘하게 반짝반짝거리는 걸 본인은 모른다니. 아쉽긴 하네. 그래도 입가가 반짝이는 게 아니라 다행 아닐까? 마이리의 질문에 조금 고민합니다.
"체력 자체는 나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앉아서 하는 일이나 평지는 나쁘지 않습니다." 산은 호언장담은 할 수 없겠네요. 라고 말하며 작은 물이랑 군것질거리 정도는 있는 게 좋겠네요. 라고 생각하네요.
"그럼.. 먹으면서 가볼까요?" 사람은 많으니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는 점은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로 저쪽을 가리킵니다. 완벽하게 샘이 있는 방향이군요.
웹박수로 문의 들어온게 하나 있는데 일단 현 상황은 알고 있지만 제가 공식적으로 뭔가를 얘기할 그건 아닌 것 같기에 현 시점에선 노코맨트 할게요. 사실 제가 그 관련으로 뭔가를 얘기하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번 이벤트가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저는 우선 조용히 있겠습니다.
벌써 호타루마츠리라니~! 아미카는 시간이 빠른 것 같다고 느껴졌다. 오늘은 뭘 하며 즐겨볼까, 그렇게 친구와 연락하며 집을 나선지 3분 후, 친구가 갑자기 위급한 일이 생겼다며 축제에 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연락을 해왔다. 아미카는 당황했고, 어찌해야할지 가만히 서서 생각했다. 그래도 일단 나왔으니 축제를 즐기는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일단 가보기로 했던 동굴로 가보기로 했다. 아미카는 동굴로 가는 속도를 내보기로 하며 슬슬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반대편에서 나온 남자와 부딪히고 말았던 것이다. 해머링이라도 맞은 듯한 충격에 아미카는 머리를 만지며 부딪힌 남자에게 말했다.
미미한 탐색의 기류가 서로에게 감돌건 말건, 이제 그는 이 주제에 관해선 관심이 떠났다. 토와에게 자신은 모를 경험이 있거나, 자신의 정체가 신이라는 사실은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고, 눈앞의 관심사로 인해 휙 밀려나버렸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 묻으셨습니다."
토와의 대답을 잠자코 듣던 그는 대답 대신 딴소리를 했다. 입가를 톡톡 두드리고선 실웃음을 짓는다. 당연히 사람은 무언갈 먹으면 입술에 자국이 남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신조차 다르지 않다. 그러는 저도 입 밖으로 은근하게 녹진거리는 끈기가 신경쓰였는지 손등으로 입술을 톡톡 더듬고 있었다.
"으음, 이것 때문에라도 물은 있어야겠습니다. 아니면 수돗가에 가거나."
그 말을 하고서 그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가까운 매점으로 가 물 두 병을 구해왔다. 냉장고에 넣어 알맞은 온도로 식은 물병을 척하니 내밀고서, "가십시다!"라며 외친다. 하지만 의욕은 한가득이래도 그만큼 속도가 나지는 않았다. 사람이 많아 척척 올라가면 다른 사람을 밀쳐버리게 되니 조금 그렇다. 몇 걸음을 가다가 잠깐 멈추고, 잠시 쉬었다 다시 몇 걸음을 올라가니 체력관리는 어렵지 않을 테다.
이 마을의 동굴에는 샘이 있고, 가미즈미사가의 컨셉은 이 샘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축제에서 불법적인 침입을 하지 않아도 그 샘을 구경할 수 있었으니 설령 혼자라고 해도 반드시 동굴에 가야만했고 모두가 친구나 가족. 그리고 연인과 같이 샘에 왔을때 쓸쓸히 평소에 입는 옷과 다르지 않게 빠르게 갈아입고 그 장소로 갔다. 그저 동굴 안에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크고 깊은 호수. 그것을 보고 역시 오기를 잘 했다는 만족감에 혼자 작게 미소를 짓고 이제 목적은 다 했으니 돌아가려는 찰나ㅡ
"아이고!"
머리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분명 여기서 더 같은 충격을 더 받았다면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이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조심했어야지!"
한번은 부딫힌 상대에게 그리고 한번은 자신에게 충고하며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키가 작은걸 보니 중학생일까.
"뭐, 나는 괜찮아. 너는 어때?"
머리를 부딫혀서 머리에 피가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테지만 나중에 이 일로 귀찮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하며 물어보았다.
종잡을 수 없는 곳이자 널뛰는 곳이어서 엉터리 꿈에도 꿈인 줄 모르고 빠져든다. 훨씬 더 무서운 꿈을 꿀 수도 있는거고, 그게 바로 오늘밤일 수도 있는 거구ー 친구니까 남들보다 한 번 더 볼 수도 있는 거지! 향기나지 않는 꽃 장식이 어색한가 했더니, 늘 맡던 꽃단내가 드물어서였다. 코로리는 손을 뻗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꿈 속으로 찾아갈 때 그랬던 것처럼 손가락 하나만 쥐려고 했다. 이번에 쥐었다면 가만히 쥐고 있는게 아니라 코로리의 손가락 끝이 톡톡톡 세번 두들겼을 것이다.
"응, 렌 씨가 만든 가짜."
꿈 속에서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고 다녔다가, 꿈 꾼 사람들이 깨어나고 나서 코로리를 알아보기라도 하면 어떡하겠나! 모두의 꿈 속에 나타나는 한 사람이라니 괴담같은 이야기고, 이상하게 여겨지기 좋으니 드러내지 않는다. 툭툭? 노크한거야? 렌의 손이 닿았던 곳을 한 번 쓰다듬어보고는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고민해보지만 알 수 없다. 눈을 뎅글하게 뜨고서 깜빡거린다. 자장자장 잘 자라고 남들 쓰다듬어준 적이야 많아도, 코로리의 머리를 인간이 만진 적이 있던가. 심지어 툭툭 두드린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후링 씨가 엄청 힘든 꿈 꾸고 있어도?"
머리에 손이 닿았던 것보다 더 놀랄 일이 남아있다니, 얼마나 놀랐으면 이번에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말을 하려는 듯 열었다가 닫히고, 무슨 말을 못하다 겨우 눈썹을 추욱 늘어뜨리고서 입을 열었다. 친구하지 못 하는 건 싫은데 꿈 속에 찾아가야만할 때는 어떡해야할지 몰랐다. 꿈에서 괴로워하면 잠을 지켜주는 것이 업 중 하나였는데, 제 업과 친구를 저울에 올려둔다니 저울질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싫다고 하면, 지금 친구 안 하게 되는거야? 답을 듣기 전이었디만 고개가 느릿히 끄덕거린다. 그럴 일 없기를 바란다.
"나는 인간들 이야기가 더 동화같아ー 성 같은 곳에서 왕자님, 공주님처럼 입고서 약속하는 거!"
코로리에게는 이 신사야 신계로 넘어가는 대문이고, 남의 집 앞인 느낌이었다. 인간의 이야기가 더 동화같은 건 인간이 신화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일까 싶다. 문득 신사 너머 동굴을 바라보면, 동굴 안쪽으로 나 고위신이라고 외치는 기운이 슬금슬금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