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물귀신인 줄 알았던 분은 본 적 있지요?" 말을 도대체 누가 붙여야 할지 곤란하다고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말을 걸게 되었기도 하고요. 라는 말을 하다가 그때도 여름이었네요. 라고 약간은 아련해지는 표정을 짓습니다. 여름의 아른거리는아지랑이가 가냘픈 분위기를 더해주는 것 같기도 하나요?
"부딪히고 결국은 합의를 봤지만요" 느리게 말하며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내듯이 눈을 반쯤 접어 미소를 짓고는. 재미없게 놀아준다는 말에 약속을 어겨서라면 돌아볼 필요는 없으니까요. 라고 말하며 입가를 가리고 미소를 짓나요?
"아. 그렇죠." 가자는 말에 발을 떼면서 민트초코는 아닐 거라는 것은.. 다행이면서도 다행이지는 않지요. 가끔 짖궂은 사람이 눈깔이 녹색이고 머리카락도 염색하면 갈색이니까 그야말로 민트초코 컬러링! 그러니 민트초코도 좋아할 것이다라는 이상한 논리를 댈 때가 있다니까요? 민초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런 논리를 대는 이들에게는 단호하게 반민초입니다. 라고 말해줄 수 있습니다.
"처음 보는 아이스크림이네요. 맛 설명만 잘 듣는다면 뭘 먹어도..." "음. 저 새카만 건 빼고요." 입 안이 완전 새카매지면 어두운 곳에서 입을 벌리고 무어라 말하는 게 호러가 될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하면서 마치 밤하늘에 펼쳐진 은하수같은 군청색과 파란색이 섞인 가운데 은색의 팔이 반짝반짝한 아이스크림에 관심을 가집니다. 마치 은하수 밤하늘에 보이는 반딧불이같은 모양이네요.
도발적인(아님) 스즈의 답장은 나를 놀라게하기 충분했다. 딱 낮잠 잘 시간이 끝나가던 차에 온 제안인지라 나는 내가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전에 만난 잠의 신이 나에게 장난이라도 치나 했다. 언제 깨나 시계도 두어번 보고 핸드폰으로 재미있는 영상도 보고 밤잠 잘때가 되어서 하품에 나올때쯔음에 이게 꿈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러겠노라 답하고 가만히 누워 곰곰히 생각했다. 데이트할 때는 뭘 입어야하지?
여하튼, 나는 유카타를 챙겨입고 답지 않게 머리도 높게 묶어 비녀로 장식했다. 팔찌도 골라끼고 웃는 연습도 잘 해내었다. 어영부영 모양새를 냈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여지껏 데이트 신청을 해본 적은 있어도 받아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다소 설레어 있는 상태였다. 나는 동굴을 향해 걸음을 나섰다. 후덥지근한 열기가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나는 잠시 서서 한산한 거리를 훑다가 천천히 걸음을 이어나갔다. 날이 좋았다.
"스-쨩. 일짝 나왔네?"
봄날에 만난 스즈라는 인간은 사교성도 좋아서 곧잘 나에게 말을 붙이고는 했다. 나 역시 목적이 있고 말을 먼저 거는 편이라 우리 둘은 자주 대화했다. 그 덕에 나는 어색하지 않게 스즈를 대할 수 있었다. 나는 스즈에게 다가가다 말고 너를 재빨리 훑었다. 꿇어앉은 뒷모습조차 화려하다. 내 후각이 너의 냄새가 달라졌음을 인지한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신경쓴 티가 났다고 해야하나. 야베- 엄청 꾸미고 나왔잖아. 게다가 나는 평소보다 일찍 출발한 터라 10분 일찍 온 상태였다. 그런데 먼저 와 있는 너의 모습을 보니 내가 너를 얕봤나보다. ...나도 뭐라도 더 할 걸 그랬나. 나는 내가 더 꾸미고 자시고 할 게 없는 걸 알면서도 그리 생각했다.
"예쁘게 꾸미고 왔어요. 빛나는 것 같아."
나는 그리 말하며 마구 박수를 쳐주었다. 그래, 내 인간 세상 경력으로 이렇게 꾸미려면 적어도 2시간... 그 시간이면 낮잠을 자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나는 너의 팔짱을 슥 끼며 동굴 앞에 선다. 차가운 바람이 동굴로부터 밀려나왔다.
무서운 꿈이 된다는 건 무서운 일을 겪은 거잖아! 이런, 안심하라고 설명해주었겠지만 이번에는 악몽을 꾸느냐고 걱정을 하는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걱정하는 눈치다! 인간 세상에 무서운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악몽도 끝없이 다양해서 어느 일을 겪었는지 알 수가 없다. 뭘 좋아하는지는 친해지면서 차차 알아가는 거랬는데, 싫어하는 것도 똑같을까. 코로리는 눈을 도르륵 굴린다.
"더 친해지면 싫어하는 거도 물어봐도 돼?"
아까 전 아기자기하게 소품을 파는 노점을 발견했을 때, 코로리는 렌을 이름 말고도 후링과 웬디로 두번 더 불렀다. 그때 피노키오가 없었던 이유는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쟁이 피노키오보다는 서로 비밀을 아는 친구가 더 좋았기 때문에 사라졌다.
"…그래서 매일매일 조심하고 있으니까아."
나 미워하거나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소리 매일매일 듣고 있는걸. 좋은 소리도 분명 있겠지만, 싫은 소리가 먼저 들리고 오래 남는 건 신이라고 별 다를게 없었다. 잠이 길어지면 죽음이랑 다를 바 없고 잠이 가까우면 위험하다는 건 안다. 그래서 렌이 무엇이 위험하다고 한건지는 모르지만 그저 위험할 것 같다는 말 때문에 조금 풀이 죽었다가, 나도 잠 자기 싫다는데 자장자장 해주고 싶지는 않단 말야, 근데 안 자면 힘들어 하잖아! 푹 잘 수 있게 하느라 얼마나 고생하는 지도 모르면서. 나쁜 꿈 막아주고, 깨워주고, 많이 꾸고 싶어하는 꿈도 빚어주고ー시계토끼보다 바쁘다구, 나! 나 귀한 줄 모르면 바보랬지! 두 손으로 뺨을 꾹 밀어 올려 생각을 환기한다. 마침 커다란 동굴이 보였고 동굴 앞에 세워진 낡은 신사도 하나도 눈에 들어왔다.
마음대로 하라니까 사양도 없다. 예상은 했지만, 게다가 대답하자마자 바로 요조라라고 불러버리는 바람에 기분이 묘해진다. 그러고보니 최근엔 계속 이름 아닌 성으로만 불리거나 가족들과 사요에게 약칭을 불린 적 밖에 없었다. 이름 그 자체를 불렸던 건, 아마 초등학교 때가 마지막이었던거 같은데, 그러면 낯설만도 하다. 단지 그 뿐이라며 요조라는 생각한다.
"...괜찮아요..."
사람들에 밀려 부딪히자 코세이는 잡은 손으로 요조라를 끌어당겼다. 거리가 있는 것보단 가까이인게 확실히 덜 부딪히고 걷기도 수뤌하다. 아니, 코세이가 길을 터주기 때문일까. 그러면서 미안하다길래, 요조라는 됐다고 하려다 말을 바꿨다. 괜찮다고, 그렇게 대답하고 가다가, 자신도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냐는 물음에 코세이는 흔쾌히 대답한다. 언제든 환영이라는 대답에 요조라는 힐끔 보고 고개를 작게 끄덕이기만 했다.
어느새 꼭 잡은 손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다보니, 길은 점점 산길로 바뀌고 특유의 서늘한 공기도 흐른다. 가는 동안은 그저 걷는 거에 집중하느라 별 대화는 없었다. 말없이 걷다보니 개방된 동굴 입구가 보여 조심히 그 안으로 들어가본다. 머리가 부딪히지 않게 살짝 숙이며 들어가자 동굴 안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운, 거대한 공동이 나온다. 샘이라기엔 너무 거대해 호수라 불러야 맞을 것 같은 그 규모를 보고 요조라도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여태 살았던 마을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었으니까.
"여기, 오는 건, 처음인데... 엄청나네요... 그렇지만, 조금, 무서울지도..."
신성한 기운을 느끼지 못 하는 요조라에게 이 어마어마한 샘의 전경은 뭐랄까, 의식이 살짝 어그러질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무서운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비유하자면 그렇다. 아마 혼자였다면 곧장 나가버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요조라는 말없이 생각했다.
"저기, 샘물... 마시는 거, 같은데... 마실 거에요...?"
샘과 동굴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샘 가장자리 어디쯤이었나, 준비된 바가지 같은 걸로 샘물을 떠서 마시는 사람들이 보이길래, 요조라는 그쪽을 가리키며 묻는다. 자신은 딱히 마실 생각이 들지 않지만, 코세이는 그럴 생각이 있을지도 모른다. 대신 요조라는 샘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으니 가겠다면 손을 놔주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릴 셈이었다. 아니라면 조금 더 보고 나가자고 할 것이다.
"그, 별 건 아니고. 친구랑 같이 호러 컨셉 방탈출을 하러 갔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사실적이고 무, 아니 꺼림칙하게 만들어 놔서, 꿈에 나오면 좀... 많이... 싫을 것 같아서요."
저렇게 걱정스러운 눈치로 조심조심 물어보는데 굳이 말하지 않을 이유도 없어서 이야기를 하지만, 그래도 괜히 민망하고 부끄러운 탓에 말이 조금 뚝뚝 끊긴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평소에 무서움을 많이 타는 건 아니고, 그냥 만들어낸 공포물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게 좀 싫어서..."라고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사실 저도 모르게 불쑥 나온 혼잣말이었고, 위험하다는 게 그 뜻이 아닌데 제 말을 오해했는지 코로리가 푹 풀죽는 모습에 도리어 렌이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코로리 씨가 위험하다는 게 아니라요. 제가 코로리 씨한테.... 그러니까, 제가 조심해야 할 것 같아서. 잠결에, 그 꿈결에 그.... 코로리 씨한테 실수 할까봐...."
렌은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얼굴을 잠시 손 그늘 아래 가린다. 당황해서인지 괜히 귓가가 홧홧하다. 원래 잠결이나 꿈결에는 현실성이 없다보니 충동적이기도 하고 감정적이기도 하지 않는가. 게다가,
"그리고... 꿈 속에 코로리 씨가 나타나면 제 기억 속의 코로리 씨인지 진짜 코로리 씨인지 모를 것 같으니까 더.... 게다가 전에 꿈 속에서도 다짜고짜 잡아당겼었던 것 같은데...."
처음 코로리가 꿈에 나타났을 때, 물에 빠진 사람인 줄 알았었다. 사실 코로리 씨가 꿈에 나타났을 때 진짜인지 아닌지 구분할 자신이 없다.
"어쨌든 코로리 씨가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사실 무해함에 더 가깝지 않나 싶고...."
말 한 마디 잘못 꺼냈다가 중언부언 말이 길다. 렌은 시선을 돌리며 뒷머리를 만지작거린다. 제가 지금까지 본 코로리는 그랬다. 순수하고 솔직하고 아이같아 보여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자신이 코로리를 많이 본 것은 아니니 다른 면모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느새 도착한 동굴 주변에는 낡은 신사가 하나 있었다. 하지마 그 신사는 낡았을지언정 초라하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쓸고 닦고 하며 관리하는 태가 났다. 렌은 궁금증에 신사의 쪽으로 가까이 갔다. 동굴이 개방되어서일까. 조금 물내음이 나는 듯 했다. 렌은 신사 앞에서 합장을 하며 신의 공간에 발을 디딘 것에 인사를 올렸다.
그리곤 코로리에게 물었다.
"결혼 의식이라고 하면.... 사랑의 맹세 같은 걸 하는 건가요? 혼인서약서라던가... 아니면 혼인신고서 같은 걸 제출하나...?"
영 엉뚱한 곳을 짚는다. 인간의 결혼식이 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결혼을 했다고 함은 혼인신고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코로리가 결혼식장이라고 했지만, 고즈넉한 신사는 결혼식장보다는 동사무소에 가까운 것 같아 보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누군가와 깊은 연이 있었겠다는 건 추론할 수 있었지만 아마츠코토시로는 낭만 없고 그다지 마음씨 고운 신도 아니라서, 그저 고개를 갸웃하며 분위기 깨는 소리나 하고 있다. 어떻게 만나서 무얼 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알 수 없으니 우습고 맥빠지는 상황밖에 떠오르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럼요. 약속을 어겼다는 서로 간의 신뢰도 문제지만 말입니다, 계획이 어그러지는 순간부터 돌려놓아야 할 절차와 사태가 더욱 복잡해지니 저는 그 문제를 더 싫어하는 편이랍니다. 이런 약속 정도야 중대한 것은 아니라 그나마 다행스런 일입죠."
그가 느낀 앞일은 어연간해서는 바뀌지 않지만, 하늘의 일은 하늘의 존재에게서 내려오는 법. 다른 신이나 영적 존재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다면 어긋나거나 오차가 생기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그러면 이제 전령신은 아찔한 뒷목과 쓰려오는 배를 붙잡고─신이라서 나빠질 혈압도 위산도 없지만─ 일을 틀어지게 한 신에게 찾아가 양해를 구하거나, 그것마저 거절당하면 처음부터 내사를 다시 살피며 전언의 오류를 다잡고 제 신격이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매끄럽게 수정한 후 다시 전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과정이 특히 어렵다. 기껏 위엄 있게 이런 일이 생길 것이다 예고했는데 며칠 뒤에 다시 나타나서 '아~ 실수했네, 미안!' 이렇게 말해버리면 제 위엄은 어디로 가겠는가. 생각하려니 다시금 지난날의 업무 스트레스가 떠오를 것만 같다……. 아무튼 그런 이유에서 일정이 망쳐지는 일은 싫다. 그가 토와를 올려다보며 개구진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말입니다. 제가 친구와 꼭 가봐야겠다 마음먹은 장소도 오늘 다 구경할 생각인데, 저와 오래 어울려 주시겠습니까?" 샘에 들렀다 반딧불 구경하고, 바다에도 갈 생각이다. 느긋하게 둘러볼 예정이라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토와의 눈길이 향한 곳은 밤하늘과 은하수를 닮은 아이스크림이다. 이왕 사먹을 거라면 각자 다른 것을 골라도 좋겠다 싶어 그도 간판을 기웃기웃 살핀다. 검은 것도 궁금하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이에 검은 물이 끼게 생겼다……. 지저분해 보이니 그건 싫다. 대신에 빨간 건 없나? 그는 붉은색을 좋아했다. 황갈색 시선이 늘어놓아진 글들을 죽 훑어 내려가다 사진 하나에서 멈추었다. 바다에 뜬 등불을 표현하듯 주홍과 노랑이 어우러진 모양의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럼 저는 저걸로 하겠습니다."
두 명 몫의 계산을 마치고 판매원이 내어준 아이스크림을 받아 한 입 먹은 그의 표정이 묘해진다. 맛은 있는데 이것저것 섞여서 정확히 무슨 맛인지 헷갈린다.
"그건 어떤 맛입니까? 저는, 음……. 이게 뭐지? 자몽에 치즈케이크? 그런 느낌입니다."
"아니요.. 탑돌이하던 중에 나타나셨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젖어 계셨거든요. 그 존재님은 발목까지만 담그셨다 주장하시는데 그렇게 젖어계시면..." 그 말을 듣고는 할말을 잃어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네...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기 때문에 슬쩍 얼버무리고는 어그러진다. 같은 말에 그런가.. 싶습니다.
"그렇군요..." 약속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구나. 정도로 끝납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야... 토와 엔은 전령신의 업무같은 거 모르는걸요?
"그건 제가 말씀드려야 하는 부분인걸요." 샘물 마셔보는 거에. 반딧불에. 등불에. 포크댄스까지 알뜰하게 하려는데. 빼시면 저도 곤란한걸요? 라는 말을 가볍게 하다가 아이스크림을 받아들려 합니다. 자몽에 치즈케이크라는 말을 듣고는 토와도 아이스크림을 베어뭅니다.
"음....음...." "블루베리나 산딸기 계열맛에... 라벤더가 옅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오. 톡톡 튀기도 하네요." 음. 가장 비슷한 건 슈팅스타같은 느낌일까? 하는 말을 합니다.
"맛이 괜찮네요." 다만 입술에 반짝이가 옅게 발라져서 립글로즈를 바른 듯한 느낌은 되었지만...?
평소에는 개방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샘의 크기도 크기지만 맑음의 정도도 남달랐다. 관광지로 열어둔다면 분명 금방 더러워지겠지. 거기에 여기서 느껴지는 신력은 정말 엄청난 것이라, 이곳을 더럽힌다면 신의 진노를 살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감탄하면서 샘을 보고 있으니 옆에선 무섭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 그럼 손 꼭 잡고 있어요. "
우리 같은 신들이 아닌 인간들에게는 어쩌면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그냥 샘을 보는 것뿐인데 뭐가 무섭냐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직접 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자연이 주는 위압감이라는 것은 직접 겪어봐야만 아는 법. 마치 절벽 끄트머리에 서있는 사람을 보기만 해도 발끝이 간지러운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샘물을 바가지로 떠서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다.
" 굳이 안마셔도 될 것 같아요. "
마시려면 가까이 다가가야하는데 요조라는 가까이 안올 것이고 그럼 손을 놔야한다. 무섭다고 했는데 손까지 놓으면 좀 걱정되기도 하니까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 나는 샘에서 거리를 두고 좀 천천히 돌아보고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 구경 많이 했으니 나갈까요? "
많이라고 할 것도 없이 이런 전경을 봤으면 된거니까. 사진이라도 남겨둘까 했지만 다음에 와서 찍겠다고 마음 먹으며 천천히 밖으로 나가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잠깐 인파에 휘말렸지만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고, 동굴을 빠져나와 시야가 탁 트이자 나는 숨을 길게 내쉬고선 말했다.
" 다음은 등불을 보러 갈 차례인데, 그 전에 아까 먹고싶다는 것들 사러 갈까요? "
분명 가는 길에도 노점이 한가득일 것이다. 물론 해안가로 내려가는 길은 숲길이라서 큰 노점이 들어서긴 힘들긴 하지만 ... 노점 수레 정도는 들어와있을법 하니까. 정 없으면 해안가에서 사도 괜찮을 것이다.
걱정한 것보다는 큰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렌이 말하면서 유달리 말이 뚝뚝 끊기길래 무서운 걸 싫어한다는게 부끄러워서 그런가 싶었다. 무서운 걸 싫어하는 사람은 정말 많아서 코로리는 고개를 갸웃였다. 무서워하길래 깨운 잠이 몇 밤인지 세지도 못해! 그리고 코로리도 그런 류를 좋아하지 않았다. 잠을 자는데 방해되는 카페인을 싫어하는데, 악몽꾸기 좋은 공포 소재들도 비호감인 편이었다.
"후링 씨가 양귀비되는 건 싫은데ー"
렌에게 자신의 힘을 담아서 줄만한 물건이 없어서 고민이다. 머리핀을 주기에는 새것도 아닌 물건이고, 양귀비는 이미 너무 많다구. 놀겠다고 안 자, 공부한다고 안 자, 일 한다고 안 자, 맨날 안 잔대.
"렌 씨, 그. 정말 내가 옆에 있어도 악몽은 안 꾸지만 내 힘이라구 할까, 담아주거나 전해줄 수도 있으니까아."
안절부절한 목소리에 오해가 털실뭉치처럼 엉켰다는 걸 알았다. 렌이 말한 위험은 그게 아니었고, 코로리가 말했던 나는 이 몸을 말한게 아니었고. 코로리는 하도 꿈 속을 돌아다니다보니, 몸은 분명 쌍둥이와 같이 지내는 집에 자고 있어도 저 멀리 도심 속 아파트에 사는 양귀비에게 가있고는 하니 몸에 묶여있기에는 조금 광범위했다. 코로리의 오해는 풀렸으니 렌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설명하는데, 나… 신처럼 안 보이는 거야? 렌의 목소리로 자신이 조심해야할 것 같다거나, 무해하다거나 하는 말이 이어진다. 보건실에서 저가 렌을 순식간에 훅 재워버린걸 까먹어버린걸까 하는 생각도 드는 코로리다. 신이 인간한테 조심하는게 맞잖아! 나 무서워하는 건 싫지만, 나쁜 신은 아니지만! 원래 인간들은 신 같은 거 보면 조금은 겁내는 거 아니었냐구! 신이라는 걸 들켰을 때는 신이 아니라고 생각해달라 간절했는데, 지금은 신이 맞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졌다. 초대받지 못한 요정님처럼 모두 자장자장해버릴 수도 없는데!
"나 꿈에서는 꼭꼭 숨어서 안 보여! 렌 씨 꿈에는… 렌 씨 찾아간거니까 보이게 한거구."
무엇보다 코로리가 직접 재우려고 하면 물건에 힘을 담아주거나, 몇 번 닿아서 힘을 전한 것과는 달리 쉽고 깊게 잠에 빠져버린다. 그래서 꿈 속까지 직접 깨우러 간 것이기도 했다! 사고치고서 수습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영원히 사랑해ー 하고 약속하고서 입맞추는 거가 혼인의식이랬어."
신사에 들어갈 때는 그렇게 인사하는 건가봐! 렌을 따라서 합장을 올리고 인사했다. 이 신사가 모시는 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신사가 신들의 결혼식장으로 쓰이고 있다는 건 알까 궁금했다. 그러고서 렌의 질문에 답을 하더니, 검지를 입술 위로 올리고 이것도 비밀이야? 라며 생글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