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랄만한 얘기를 한것 같지는 않은데 요조라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는 깜빡인다. 반응이 귀여워서 살짝 웃어버렸지만 금세 바뀐 표정에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잠깐 본 것에 만족하고 있으니 반딧불을 구경해야 한다며 자연스럽게 반딧불이 보이는 곳으로 앞서간다. 자연스럽게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천천히 걸음을 맞추어 평소라면 짙은 어둠이 깔려있을 숲길로 향한다. 숲길은 평소와 다르게 수많은 반딧불들이 날아다니고 있어서 어둡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신비로운 분위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 아까 그 이야기 말하는거에요? "
신사에서 신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인간은 죽고 난 뒤에 살아서 영원에 가까운 삶을 함께 한다는 이야기. 많은 설화는 이렇게 엔딩을 짓는 경우가 많고 해피엔딩이라고 결론 짓는다. 그리고 나도 분명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녀의 물음에 살짝 웃어버린 나는 잠깐 고민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인간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유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그 중에선 분명 소중한 사람도 있을거에요. 그렇다면 ... 영원을 살아가는 인간은 그런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떠나가는걸 버틸 수 있을까요? "
정확히 말하자면 영원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다. 지금 이자요이 코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름 없는 별의 신도 손을 잡고 있는 이 소녀의 삶을 몇개를 이어 붙이더라도 도달할 수 없는 시간을 살아왔으니까. 그리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 이젠 더이상 만날 수 없음에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데.
" 그리고 그런 인간을 사랑하는 신은 ... 그런 인간을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
그것이 두려워서, 나는 한발자국을 내딛지 못하고 결국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감정이란 무뎌지기 마련이라서 너무나도 슬펐던 감정도 지금에 와서는 그저 한켠이 아려오는 정도로 끝이 나지만, 그런 아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느끼고 감내하는 것을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 어쩌면 그 신은 겁쟁이일지도 모르죠. "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지레 겁먹었으니 겁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녀의 손을 더욱 꼭 잡을뿐이었다. 이런 미묘한 거리감을 좁힐 수 없는 것도 어쩌면 내가 겁쟁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조금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 같아서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선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 여기는 어두우니까 별이 참 잘보일꺼에요. 저번에 얘기했었죠, 같이 별을 보고 싶다고. "
지상에는 반딧불이 빛나고 밤하늘은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하늘과 그녀를 이따금 번갈아보면서 해안가로 이어진 숲길을 쭉 따라 걸어갈 뿐이었다.
그 일단은 인간이 자신의 생을 다 한 후에 그 영혼이 저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따로 신으로서 태어나게 되는 방식이거든요. 읽다보니까 뭔가 혼인 의식을 치룬 그 시점에서 바로 신이 된다는 식으로 읽어버려서! 혹시 그 점으로 잘못 아시는 것이 있으면 정정해주려고 했는데 제대로 아시는 것 같으니 다행이에요!
그 이왕 말이 나왔으니 아무래도 신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다 아는 사실이기에 혼인 의식에 대해서 다시 설명을 하자면...
일단 인간과 신이 서로 사랑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천의 기운과 지의 기운이 모이는 포인트 지점에서 영원을 맹세하며 입맞춤을 하게 되면 서로의 눈에만 보이는 고유한 문양이 서로의 손등에 세겨지는 방식이에요. 신의 몸에 그 인간이 흐르고 있는 지의 기운이 공유되어서 신의 경우는 바로 고위신이 되는 방식이에요.
단 목적을 달성했다고 신이 인간을 배신하게 되면 그 즉시 신은 더 이상 신이 아닌 무언가. 정말로 추악하고 괴상한 무언가가 되어 평생을 고통 속에 떠돌아야하고 인간이 신을 배신하게 될 경우 그 인간도 죽음이 차라리 나을 정도의 천벌을 받게 된답니다.
인간의 경우는 생을 다 하고 저승으로 가야 하는 영혼이 저승으로 가지 않고 신으로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방식이고요. 그렇게 영원이라는 기간이 약속되는 것이랍니다.
신들은 기본적으로 다 아는 이야기니까 혹시 헤깔렸다 하는 분들은 다시 한 번 복습해주세요!
왜, 요즘 사람들은 이런 '옛날 이야기'나 재미있는 볼거리 없고 몸도 움직여야 하는 등산 같은 거라면 질색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자신과 같은 오래 묵은 것들이 완전히 사장되진 않았나 보다. "그렇지만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힘내봅시다." 그가 싱글거리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둥그렇게 솟은 동굴의 위쪽 벽이 이제는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보인다. 사람 하나가 편안하게 몸 펴고 있기에도 불편해 보일 만큼,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작은 굴 같기도 했다.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신의 기운이 아니었더라면 전령신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음, 그냥 동굴 감상하고, 동굴 공기나 쐬고 물 마시는 정도? 특별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아무리 그래도 신의 내려준 자리인데 여기서 술을 퍼마시거나 게임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이 샘의 주인이 흔쾌히 이곳을 관광지로 열었고, 편하게 노는 것 좋아하는 전령신이라지만 이런 장소에서는 최소한의 엄숙은 갖추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런 행동은 인간들 상식에서도 금지고.
길게 늘어섰던 줄이 점차 줄어들어 어느새 코앞까지 오고, 안내를 받아 좁다란 통로를 천천히 걸었다. 바람 없는 길목이 한동안 이어지다 어느 순간 청량한 수기水氣가 훅 끼쳐온다. 샘의 앞까지 도착한 것이다. 호수라 이름 붙여도 정확할 듯한 물을 보니, 괜스레 제 기분 역시 시원하게 풀리는 듯하다. 잠시 조용히 샘의 밑을 내려다보던 그가 씩 웃으며 옆을 돌아보았다.
"그렇네요... 사람이 많은데.. 반딧불은 잘 있으려나요.." 보통 사람이 많으면 흩어지는 편 아닐까 싶지만. 잘 있다면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차례가 되어서 들어가면 뭔가. 청량한 듯한 기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은 생각을 하다가 뭔가 묻어둔 것을 들추는 듯한.. 그런 오싹한 감각이 느껴집니다.
-ㅇㅖㅇ...적ㅇㅣㄴ... -그건 치자라고 생각하자꾸나. 감동이라던가. 있는가 없는가.같은 말이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모를 표정으로 호수를 빤히 쳐다봅니다. 마치 파란 등 두 개가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아득함을 느끼다가. 마이리의 말에 대답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정신을 다잡아야죠.
"조금.. 숨이 막히네요." 왜 그런건지 모른다는 듯 조금 숨이 거칠어진 느낌입니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물을 떠서 조금 마시고는 손을 씻으려 합니다. 온당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태워버리는 것처럼.
"어째서 그게 떠오른 걸까..." 떨리는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말하고는 마이리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는 객관적으로는 대단한 곳이네요. 라고 말하는 토와입니다. 달콤한 향은 환상입니다.
"항상 구경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계속 있어도 좋겠지만.." 반딧불이나 등불을 보려면 지금은 나가야 하겠네요. 라고 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