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은 얼떨떨한 표정의 코로리 때문에 조금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생각했던 반응 보다도 더 격한 반응에 더 민망해져서, 조금 더워지고 만다. 아니, 여름이니까 더운 게 당연하겠지만.
코로리가 손 위에 올려둔 모란을 가져가자 이내 손이 가벼워진다. 아니 마음이 가벼워진 것일까. 아냐, 생각보다 모란이 무거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닌가, 무거운 건 마음이었나. 어찌되었든 선물을 받아주니 다행이다.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기뻐해주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바로 모란꽃을 머리카락에 고정시키는 모습에 렌은 잠시 그 모습을 보며 기다려주었다. 거울도 없는데 금방 장식을 달아내는 것이 대단하다. 너무 무겁거나 장식하기 어려울까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잘 어울려서,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내 코로리가 빈 손을 두 손으로 꼭 쥐자 순간 말을 먹고 숨을 먹었다.
“……..”
렌은 잡히지 않은 손으로 뒷목을 쓸어본다. 뜨끈뜨끈하다. 바닥으로 간 코로리의 시선과 달리 렌의 시선은 잠시 밤하늘 어딘가를 떠돈다. 물에 빠졌을 때에는 늘 침착해야 한다. 렌은 조금 숨을 고르며 다시금 코로리의 까맣고 동그란 머리꼭지를 내려다본다. 횡설수설한 코로리의 말이 끝나자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가 가까스로 다시 열었다.
“…잘 어울려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말주변이 없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는데, 이 순간은 조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손은 여전히 목덜미를 매만진 채 잠시 시선은 옆으로 도망친다. 잡힌 손은 어찌할 바 모른다. 세게 잡힌 것도 아닌데 마치 그물에 걸린 것 같다.
>>779 오.... 반딧불이가 예쁘긴 해도 어쨌든 벌레인데 손 위에 올려놓고 아무렇지도 않다니 아키라 대단해....
>>78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코로리를 위해 햄스터 모양 무선마우스를 보여주고 싶어... 그리고 오그루라는 단어도 있었구나.... 처음 알았어 :ㅇ 죽을 때까지 기억해야지...(?)
>>783 단발에...... 복슬복슬......? 이건 햄스터...? 다람쥐....? 아기천사....??? 흑임자모찌떡....???? 갸악 어떡해 너무 귀여워..~~!! 실제로 머리 이렇게 잘라볼 계획은 아직 없으려나~~
>>785 뒤에서 눈총만 주지 않는다면 몇 번 실패하고 앗!하고 터득하지 않을까~ 키오스크는 그래도 (본인 기준)컴퓨터보다는 친절하다고 생각하는 타츠미야 씨야.... 그치 역시 청춘은 메이드복이지~~~ 그러니까 다들 축제 때 메이드복 입어주기다? 믿는다? 진짜 믿고 있다???
"집중하는데 왁 하고 놀래켰다가 원망을 듣고 싶지는 않아서요." 원망같은 거 하실 거였나요? 같은 말을 물어보는 토와입니다.
"올챙이도 나쁘지는 않지만..올챙이는 기르다가 놓아주어야 한다던가. 하는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아니. 아니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하고는 완전 실패한 뜰채를 보고는 한번 더 할까. 싶다가도... 그리고는 마이리의 사정을 듣고는... 아쉬운 대로 놀고 있다는 말에. 슬쩍 쳐다봅니다. 상관없다고 여겨서 그런 것이었을까?
"그런가요.. 저도 혼자이긴 합니다. 이것 참.." "으음. 저는 같이 가겠다고 말할 이가 없어서 그냥 혼자 다니기로 했으니까요." 처지가 비슷하네요.라고 말하며 토와는 한 판 더 해봅니다. .dice 1 10. = 4
"농담이긴 합니다만. 같이 다니시지 않겠습니까?" 호타루마츠리의 본행사 같은 것도 혼자서 즐기기엔 그렇고..라고 말하면서도 진지하지 않네요. 받아들일 거면 받아들이고 아닐 거면 안 하라는 쿨함?
앗, 또 성공해버렸다. 생각지 못한 데서 재능을 찾은 걸지도 모른다. 나 의외로 금붕어 잡기 천재였을지도. 제 몫의 통 안에서 헤엄치는 고기들 내려다보며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그는 이어지는 말에 눈썹을 아래로 휙 휘며 우습다는 듯 웃었다.
"저 그렇게 속 좁지 않습니다. 만일 토와 씨 때문에 놓쳤대도 고작해야 뜰채 하나 값인데 그리 쪼잔하게 굴면 사람이 참 못 씁니다."
이건 진심이다. 신이 되어서 고작해야 올챙이 한 마리 값 때문에 잔뜩 골내는 일은 좀… 추하지 않은가. 절대 그런 신은 되지 말아야지.
그리고 그는 슬쩍 저를 향하는 시선을 느끼고는 눈을 반짝이며 저 역시 상대를 마주본다. 왠지 모르게 좋은 예감이 든 탓이다. 이것은 단순한 직감이 아니라 전령신의 감각이 말하는 사실로, 인간이 뜨겁고 찬 온도를 피부로 느끼는 감각에 틀린 데 없듯이 그가 느낀 순간부터 아마츠코토시로의 '앎'은 곧 사실이 된다. 기다린 대답이 돌아오자 그는 반색을 했다. 어찌나 반가웠는지 진심이 가득 담긴 몸짓에 실수로 제 통을 쳐서 엎어버릴 뻔하고, 그것을 겨우 붙잡아 세우는 난리가 잠깐 있었다. "어, 올챙이 얘기를 했더니 이 녀석이 들었나 봅니다. 어떻게 딱 이게 잡힌답니까." 민망함을 감추려 딴소리를 하고서 그는 잠시 목소리를 골랐다. 큼, 하는 군기침까지 하고서야 대답을 이을 수 있었다.
"그 말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농담이라며 취소해버리는 일 없어야 한다는 것 아실 거라 믿습니다. 아니면 저, 두 번이나 버려지고 상처 받아서 인간불신이 생겨버릴지도 모릅니다."
바닥에 그림자가 있다. 등불이 이리저리 비추어서 옅은 그림자가 흔들린다. 마츠리의 거리는 노점들과 이리저리 오가고 웃고 떠들며 가득 차있었기 때문에 어지럽다. 꿈 속에 들어와있는 것 같았다. 꿈 속에 들어가면 꿈의 주인의 것이 코로리에게 스며드는데, 지금도 전혀 낯선 느낌에 코로리의 것이 아닌 무언가가 발끝부터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아니, 이미 풍덩 빠졌다. 말도 여전히 횡설수설에 얼굴도 계속 더우니까. 공양 받으면 이런 느낌일까?! 이런게 선물이라서, 다들 그렇게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나 봐. 코로리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릴 것 같았다.
"렌 씨가 잘 골라서, 잘 어울리는 거니까!"
얼굴에 열감 느껴지는게 수줍었지만 웃었고, 렌을 바라보았다. 잡았던 손도 놓을 수 있었다. 그저 한 가지 바랐다. 모란보다는 뺨이 덜 붉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서 코로리는 놓은 손 안에서 데구룩 구르는 것이 있어서 바라보면 아까 빼두었던 파랑과 노랑 실핀이다. 깜빡깜빡 실핀을 보다가 렌을 바라본다. 렌 씨도 밤하늘인데ー. 검은 머리카락에 파랗고 노랗게 반딧불이었던 것이 렌에게도 똑같이 가능했다.
"렌 씨, 렌 씨. 숙여줄 수 있어?"
렌이 높이를 맞춰준다면, 렌이 피하지 않는다면 코로리는 조심조심 실핀을 꽂았을 것이다! 코로리가 처음 하고 있던 것처럼 X 모양으로. 렌이 선물해준 머리장식에 비하면 소박했지만, 보답하고 싶다며 머리장식을 사오는 것보다 이 실핀을 덜 부담스러워할 것 같았다.
올챙이를 한 마리 잡았습니다. 토와.. 사격은 간지나게 잘 했으면서 여기에서는 연전연패인가.. 뭐 상관없지만? 마이리가 그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야.. 그냥 혼자서 다니면 상관없잖아? 싶은 토와의 냉랭함이랑은 다르다고...
"농담이라고 말할까 고민하긴 했지만..." "인간불신이라니. 인간이 아니기라도 하신 건가요...는 농담이지만요?" 물론 농담입니다. 인간인데 인간불신이 걸리는 경우도 좀 있는 편이니만큼. 다만.. 실제로 그러한 존재들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니. 왜 같은 학생인 것을 인지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런 쪽과 관련이 있을까. 하는 것에 신경이 좀 쓰이는 걸까요. 신경을 안 쓰는 게 좋을 텐데도, 자꾸 한번씩은 은근슬쩍 찔러보고 싶어지는 경향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원하신다면 같이 가죠." 슬슬 사람들이 마츠리를 즐길 타이밍이니. 적당히 산길을 걸어도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 토와입니다.
코로리는 정말 기쁜 모양이었다. 상기된 얼굴이 그것을 더 잘 보여주었다. 공양은 처음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이 작은 신님은 이제껏 받은 것 없이 계속 인간들을 돕기만 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사실 코로리가 어떤 일을 하는 신인지는 잘 몰랐지만 그래도 밤에 일하고 낮에 잔다는 것은 조금 알았다.
코로리가 손을 놓아주자 렌은 편히 내쉴 수 있었다. 악수… 같은 거지? 고마우니까. 응. 그럴 것이었다. 괜히 오해하면 불편해지니까. 요즘 여자애들은 손을 덥썩덥썩 잡으니까. 음, 그런 것이다.
렌은 코로리가 손에 남은 실삔은 보다가 다시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러다 숙여달라는 말에 “네?” 하고 되물었다가 어느정도 감을 잡고 몸을 숙여주었다. 예상처럼 한쪽 머리카락에 실삔을 꽂는 듯 했다. 눈 앞에 손과 흰 팔이 왔다갔다 하고 조금 집중하는 듯한 코로리의 표정을 슬쩍 구경하다 이내 손이 떨어지자 조금 민망한 듯 웃었다.
어떻게 꽂혀졌을지는 거울을 보지 않는 한 모르는 일이지만 렌은 아마 코로리가 했었던 것과 같은 X자 모양이 아닐까 생각했다. 렌은 코로리의 반응을 잠시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너무 길 한가운데에 오래 서있었던 것 같아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음, 이제 다시 갈까요? 아무래도 오늘은 샘이 개방되는 날이니까…. 그 쪽으로 가는 거죠?”
그렇게 이야기한 건 왜였을까. 최근 들어서 연락을 하는 빈도가 잦았고 이따금씩 만나기도 했으며 학교에서도 잔뜩 아는 척을 하고 친하게 지내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한들 미즈미와 알고지낸 시간이 다른 친구들보다 많느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었으며 오히려 압도적으로 적은 편에 속했다. 그런데도 조금은 용기를 내서 그렇게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최근 들어 같이 보내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과 왜인지 모르게 같이 있으면 편하고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잘 기억해주고 있기도 하고.
그렇게 하자는 허락을 받은 후에 스즈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 심장이 몇 번인가 더 콩닥거리며 뛰는 것이 느껴졌고 괜히 뱃속이 간질간질하며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 날이 무슨 대단한 날이라도 되는 것 마냥 스즈는 몇 번이고 옷을 골랐다. 이전에 입었던 후리소데로 할까 하다가도 이번엔 새로운 것이 나을까 싶어 이것 저것을 몇 번이나 몸에 대보고 어떤 향수가 좋을지 몇 번이나 시향을 반복했다. 화장이며, 머리 세팅이며 하나하나 신경쓰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동굴 앞에 도착해서도 몇 번이나 작은 파우치에서 거울을 꺼내보며 머리를 정리하고 화장은 잘 되었는지 확인했다. 옷도, 화장도, 향수도 만족스러웠다. 몇 번이나 신경쓴 보람이 있다는 것일까. 데이트하자고 말을 꺼냈으면 정말 데이트처럼 해야겠지. 그러니까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완벽한 하루의 데이트를 위한 준비였다는 셈이다. 향수도 조금은 아찔한 향이 나는 어른스러운 것으로 골랐고 옷도 몇 번이나 몸에 대어보며 제일 예쁘고 귀여운 것으로 골랐다. 악세사리 하나하나도 신경써서 골랐고 심지어는 어떤 색으로 화장을 해야 제일 어울릴지도 고민했다.
먼저 동굴 앞에 도착한 스즈는 답지않게 인삿말까지 고민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예뻐보이고 싶다. 귀여워 보이고 싶다. 스즈를 보는 모든 사람이 저 아이와 연인이 되고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들고 싶다. 그래서 모두의 머릿속에 확실히 기억되고 각인되고 싶다. 잊혀지지 않도록, 더 깊게 이어질 수 있도록. 스즈는 괜히 거울을 들어 한 번 더 용모를 체크하고 손목을 들어 향수의 향을 체크했다. 약속시간보다 15분이나 일찍 나온 것은 미리미리 못다한 준비를 하기 위함도 있지만 이렇게나 시간약속을 잘 지키는 아이랍니다? 라는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함도 있었다. 하나하나 전부 계산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데이트라는 것은 이렇게나 치밀하게 하나하나 계산해서 완벽히 상대방을 꼬시기 위한 것이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정복전이라는 것이지.
" 아아- 모르겠다. 그냥 만나면.. 그럼 어떻게든 되겠지.. "
문제라면 그렇게 거창하게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머리가 안돌아가고 지겨워지는 법이다. 스즈는 모르겠다- 하고 말하며 옷이 더러워지지 않게 쪼그려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인간이 아니기라도 하냐는 말에 그는 멀뚱히 두 눈을 깜빡인다. 보통 인간불신이라는 말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보통인가? 반사적인 의문에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하는 모습은, 보통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영문 모를 반문에 알쏭달쏭하는 평범한 반응처럼 보였을 것이다. 괜히 손가락으로 턱 짚고 과장해가며 고민하는 척을 하던 그가 흠, 하는 헛기침과 함께 답을 내었다. 눈을 가늘고 뜨고 검지를 척하니 세우며 근엄하게 말한다.
"제 정체를 눈치채다니 죽어주셔야겠습니다."
그 말을 하는 어조가 너무도 산뜻하여 어쩌면 없던 설득력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토와는 영리하니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서도. 당연히 그런다고 헛소리가 명언이 되는 일은 없었다. 그는 곧 실없이 웃었다.
"……저도 농담 해봤습니다. 그래도 방금 농담이라고 말해 버리셨다면 정말 인간 그만두기로 했을지도 모른답니다?"
농담의 농담, 이중적인 헛소리다. 평범한 인간을 가장하는 타츠미야가 인간을 그만둬봤자 쓰다듬어 달라는 침대 위의 순한 짐승(백수)밖에 더 되겠나. 읏차, 그가 기합소리와 함께 가뿐히 몸을 일으켰다. 가기 전에 금붕어부터 해결해야 했다. 조금 생각해봤는데, 기껏 잡았지만 직접 키우기는 역시 귀찮다. 그는 그깟 금붕어라고, 사고방식이 조금 구세대에 가까운 신이지만 한 번 맡아버린 일에는 의지가 집요해지는 성정이다. 그것을 본인도 알기에 금붕어 키우기에 진심이 되기 전에 노점 주인에게 돌려주고 나오기로 한다.
"완-전 감사죠. 고마우니 제 것 사는 김에 하나 사 드려도 되겠습니까?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팔더랍니다. 이번 축제 분위기에 맞추었는지 모양이 특이해서 한 번쯤 먹어보고 싶었답니다. 게 청춘 같으니 좋지 않습니까."
청춘을 운운하며 그런 늙은이 같은 말투를 쓴다는 점에서 이미 아웃이라는 걸 본인만 모른다.
실핀을 잘못 꽂으면 아플테고, 머리카락에 걸리면 따가울테고. 코로리는 인간에 비해서 자신은 통각에 조금 둔하다는 걸 알아서 꽤 신중했다! 입술 꼭 다물고 예쁘게 잘 꽂았다 싶으면 방긋 웃는다.
"렌 씨한테도 해주고 싶은데ー"
귓가에 장식한 모란을 톡 건들인다. 꽃잎 팔랑이는게 느껴졌다. 머리장식만 강요하자니 아직까지는 조금 부끄러워서, 원래 그러려던 척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듯 했다. 턱에도 닿지 않게 짧고 단정하게 잘린 옆머리카락은 넘겨도 다시 앞으로 스르르 내려온다.
"나는 꽃 없으니까 반딧불이야."
코로리는 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 이야기할게 있다고 했는데, 까마득히 잊고 마츠리에서 한껏 놀아버린 것 같다. 걸음을 맞춰 걷다보면 마츠리의 소리가 멀어져간다. 등이 걸려있는 대로 북쪽 산을 오르다보면, 신님들 결혼 너무 어려운데서 하지 않아?! 일부러 고른 것이 아니란 건 알아도 산을 오르다보면 있는 동굴 근처 신사에서 혼인 의식이라니, 정장과 드레스를 갖춰입고 결혼식을 올리는 인간들이 들으면 놀라겠다 싶다. 정장과 드레스 입고 누가 산을 타겠는가!
“으음, 그래도 꽃은 저랑 안 어울릴 것 같아서…. 어울리는 코로리 씨가 많이 하는 게 꽃에게도 좋을 것 같고….”
렌은 도르륵 눈동자를 굴리며 딴청을 피워본다. 그렇지만 코로리가 지금이라도 당장 이런저런 꽃을 가져와서 머리카락을 장식한다고 하면 왠지 거부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럼 그 모습을 하고 마츠리를 돌아다니면 아키라가 볼테고 나중에 놀릴 것이 분명했다. 으으음…. 다행인 점은 지금 코로리에게 꽃이 없다는 점일까.
“반딧불이 고마워요, 코로리 씨.”
렌은 작게 웃었다. 반딧불이라며 머리에 실삔을 꽂으며 준비하는 모습이 상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머리에 예상치 못한 삔을 꽂은 채 렌은 코로리와 함께 산을 올랐다. 아침마다 로드워크를 하고 부활동 동안 수영을 하는 렌에게는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으나 코로리는 아닌 모양이었다.
“피터팬이니까, 날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지 못할 걸 알면서 괜히 장난스러운 농담을 친다. 등불이 밝히고 있어도 아무래도 인적이 드믄 곳이라 으슥한 느낌을 준다. 현실에 이런 것은 무섭지 않지만 무서우라고 꾸며놓은 것들ㅡ귀신의 집이나 공포 영화 같은 것들ㅡ은 솔직히 무섭…지 않다. 그냥 싫을 뿐이다. 그래서 일부러 피하는 편인데 최근….
“코로리 씨, 궁금한 게 있는데요. 혹시 악몽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세요?”
정곡을 찔렸을 때, 아니라고 할 법도 하건만, 그걸 또 곧이곧대로 들켰다고 말해버리면, 아, 이 사람은 정말 성가시다. 이래저래 정말 성가신 사람이다. 매번 그리 생각하면서도 매번 매몰차게 밀어내질 않는다. 않는건지, 못 하는건지, 요조라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관둔다. 그러지 못할 걸 알면서도, 잠시 눈을 돌리고 그런 척을 한다.
물러서서 마저 먹고 가자 하니 코세이도 순순히 그러자 대답해온다. 아마 같은 판단을 했으리라, 여기며 같이 길 옆으로 비켜서서 각자 남은 타코야키를 먹는다. 요조라는 하나씩 집어 답삭답삭 입에 넣지만, 고명도 제대로 올리고 소스도 싹싹 긁어가며 말끔히 종이그릇을 비워낸다. 가까이 있던 쓰레기통에 빈 그릇 버리고 입가에 묻진 않았는지 손등으로 살짝 눌러보다가, 코세이가 손을 내밀며 묻는 말에 또다시 손 한번, 얼굴 한번 본다. 대답은 손 잡기 전에 나왔다.
"초코바나나... 랑, 아이스크림... 지금, 말고... 이따가..."
지금은 아무래도 뭘 사서 들고 다니기 애매하니까 말이다. 일단은 샘을 보고 나온 다음에 뭘 하던지 말던지 해야 할 것 같아, 이따가, 라고 덧붙인 요조라는 다시 손을 잡았다. 아까보다는 익숙하게, 약간의 머뭇거림을 담고서, 조심스레 손을 잡던 요조라는 하고 싶은 말, 에 고개가 자연스럽게 코세이에게 향한다. 딱히 들을 말은 없는데, 라고 의아하던 표정에 아주, 아주 약간의 놀람이 별빛마냥 스쳐간다. 반짝, 하고 지나간 표정 뒤로 고개를 얼른 돌려버린 요조라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짧게 대답한다.
"마음대로 해요... 상즈케(~~양/~~쨩 하는거)는, 하지 말구요..."
어린애 취급 하는 거 같으니까, 라며 반쯤 투덜거리듯 말하고 아까처럼 먼저 걸음을 내딛는다. 그렇게 다시 들어선 길을 따라 느릿느릿,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모두가 샘을 향해 가고 있으니 흐름만 따라가면 길을 잃을 일도 없어보인다.
말없이 앞인가 그 아래 바닥 어디쯤인가를 보며 걷다보니, 늘어난 사람들 탓에 밀린 요조라가 코세이 쪽으로 가까워진다. 그러면서 두어번 팔이 스치거나 어깨가 닿거나 했을지도 모른다. 그 중에 한번은 요조라가 눈길을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시선이 마주쳤을지는 또 모를 일이다. 마주쳤다면 재빨리 눈을 돌렸을거고, 아니라면 조금은 길게, 몇걸음 걷는 동안은 보았을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다시 앞을 보고 걷다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꺼낸다.
"저도, 그... 이름, 으로, 불러도... 괜찮... 으려나요..."
그 말 하며 잡은 손 아주 살짝 움직인 걸, 코세이는 눈치 챘을까, 아닐까. 돌아본들 요조라는 늘 같은 표정으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언제 그런 말 했냐는 듯이 말이다.
웃음 소리가 났다. 코로리가 소리내면서 웃었고, 맑은 소리가 조금 울리다 흩어진다. 렌이 딴청 피우는 것을 듣고서는 그렇게 즐거웠다. 코로리가 금방이라도 꽃을 모아다 화관이라도 만들어 씌울 상상을 하고 있는 걸 콕 집혀 들킨 것 같아서였다.
"반딧불이는 후링 씨랑 어울려? 다행이다ー"
실핀을 빼낼 수도 있을테니까. 코로리는 반딧불이와 후링, 두 단어를 묶어보니 지금 종이봉투에 담겨 있는 후링이 생각났다. 비닐로 포장되어서 소리는 안 나겠지만 괜히 종이봉투를 살랑인다.
"팅커벨이 없는데!"
팅커벨의 날개에서 떨어지는 요정 가루, 그것이 하늘을 날 수 있게 돕는다! 장난스러운 농담에는 코로리도 장난기 묻은 답을 하면서, 얼른 동굴이 나오길 바랐다. 아니면 팅커벨 나오면 좋겠어ー. 코로리는 등불 사이에서 팅커벨이 뽀르르 날아오르는 풍경을 상상했다.
"후링 씨, 악몽 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못 맡았나?! 르꽃단내를 못 맡았다. 다른 양귀비들의 향이 너무 짙어서 자고 일어났더니 오늘 꿈은 별로다, 싶은 정도의 악몽으로 뒤숭숭한 정도는 맡기 힘들기도 했다. 렌에게 가까이 가보지만 잘 모르겠다. 고개 갸웃이며 눈 깜빡이다 악몽 피하는 방법을 ㅁ떠올린다. 악몽을 피하는 방법이라고는 해도, 잠에 빠진 기억을 토대로 빚어지는 꿈을 코로리가 강제하지는 않았다. 꿈은 언제나 자유로웠다. 다만 잠에 방해가 되면, 특별한 꿈이 필요하면 그럴 때만 꿈을 직접 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