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꺼내든 방법이란 가장 기본적인 갈등 해결법이다. 일단 생각이든 감정이든 멈춰보라 한 후에 대화로 푸는 거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다. 진정하라 말하긴 했지만 상대는 조금 삐졌을 뿐이지 화가 난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달래주어야 하나? 기본적인 소통은 가능해도 후미카의 대화 능력은 처참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어주겠다는 말에 우선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상태로 침묵이 길었다. 그는 현재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같이 무덤덤한 정자세로 있지만, 은근하게 눈 돌려가며 생각하는 심정을 이모지로 표현한다면 🤔와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리 심도 깊게 할 이야기는 아니구나. 삐졌다면 화 풀어달라고 하려던 참이야."
결국 그는 이실직고를 했다. 없는 말을 쥐어짤 수도 없는 노릇인 데다 이런 말을 꺼내게 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그렇게 급하게 오르기만 하면 이곳까지 온 보람이 없지 않니?"
조용한 곳을 찾기에 이곳을 추천해줬는데, 기껏 와서는 강도 높은 운동만 한다면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을 테다. 등산을 하러 온 게 아니라 조용하게 쉴 공간을 찾으러 왔다면 더더욱. 뭐, 오는 길에 테츠야의 생각이 바뀌어서 열심히 땀을 흘리겠다 마음먹은 거라면 말릴 생각 없다.
다소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뒤로 했던 몸을 바로하고, 아니 그보다 좀 더 숙이고 턱을 긴 상태에 심드렁한 얼굴이 드러났다. 심드랑하다기보다는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그게 나의 날것 그대로의 얼굴이다.
"그냥 보면 짜증나고 하는 짓도 굼떠서 별로고 귀염성도 없고-"
결국 늘여놓는 것은 악담이라,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힐끗 너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턱 괴인 탓에 입꼬리 부분에 살이 밀려 뭉개져있었다. ...말이 너무 심했나?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속으로 꿍얼거린다. 그렇지만 난 잘못없다. 아무튼 없다.
"네 잘못은 딱히 아니고."
이건 결단코 변명이 아니다. 그냥,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는 나의 자비로움이라고 해야할까. 한번 입 열면 수문 열린 듯 입에서 줄줄 다른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지금이 그때인데 나는 단지 너에게 네 문제 아니라 일러주고플 생각뿐이었는데 어느새 주체 없이 헛소리를 내뱉고 마는 것이다. 이를 테면...
"넌 근데 왜 이렇게 웃음이 없어? 짜증나. 좀 웃고 다니면 어디 덧나나? 칙칙한 그 머리카락도 좀 밝게 염색해보는게 어때? 그래, 푸른 색이 좋겠다."
바로 바보가 아니라는 말에 딱 잘라 부정해버린다. 양귀비에게 칭찬을 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못해 없다고 봐도 좋았다. 칭찬을 한다해도 못난 양귀비는 못났다는게 코로리였다! 어딘가 토라진 듯이 말했지만, 토와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형뽑기 기계 앞으로 가면 코로리도 따라 일어서 쫓았다. 구해주려는 거야?!
"나는, 이미 엄청 많이 졌는데에."
있는 돈을 다 써버린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 건 아니었다. 차라리 인형을 돈주고 사는 것이 나았을지도 몰랐을 만큼이었다. 다시금 인형뽑기 기계 앞에 오니, 의욕도 의지도 기운도 상실하게 되어서 조용히 구경을 하는 걸 선택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코로리가 그렇게 열심히 매달려 있을 때는 영영 구할 수 없도록 높은 탑에 갇힌 햄스터 인형을 드래곤 서너마리가 지키고 있는 것만 같았는데, 토와는 인형도 뽑고 햄스터도 순조롭게 구출 중이었다!
"나, 내가 해도 되는거야?!"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이라는 느낌으로 기계에 돈이 들어가면, 버튼에 불이 들어오고 인형뽑기 기계 안쪽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몇 번이고 들었던 발랄하고 신나는 멜로디가 긴장된다. 조심스레 심기일전하면 과연 햄스터를 구출할 수 있을까! 밉다고 해서 미안해, 인형뽑기 씨ー 악몽 꾸게 안 할테니까 도와줘!
.dice 1 100. = 64 에서 나온 숫자가 .dice 1 100. = 61 보다 같거나 크면 인형뽑기 성공! ( ´∀`)
렌은 미즈미의 말에 눈만 꿈뻑꿈뻑일 뿐이었다. 제가 싫은데 이유가 없단다. 이유가 있다면 그냥 제 생긴 모습이 짜증나고 제 하는 모양이 짜증났던 것 같다. 가끔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고 싫은 사람. 이성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그냥 싫은 사람. 보통은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싫다고 하지 않는데 이 미즈미라는 여학생은 자신이 엄청 싫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제가 엄청나게 싫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
렌은 물속에 잠긴 제 발을 내려다보았다. 물고기들도 제가 싫은 모양인지 몇 마리만 발가락에 붙어서 간지럽힐 뿐이었다. 시무룩 쳐진 모양새는 아무래도 비에 쫄딱 맞은 강아지같은 모양새이다. 렌도 가끔 거울을 보면서 제가 아버지를 너무 닮아 싫을 때가 있는데 남이라고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좀 웃고 다니라고, 염색이라도 하는 게 어떠냐고 하는 말에 조금 렌은 어처구니가 없는 심정이었다. 렌이 조금 한숨을 쉬고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눈동자만 굴려 미즈미를 바라본다.
"...네가 그렇게 말하는데 퍽이나 웃고 싶은 마음이 들겠다. 염색은... 나도 생각해 본 적은 있는데, 탈색을 여러번 해야하는데다... 푸른색은 물이 빠지니까, 나 수영부인데 같은 부원들한테 민폐이기도 하고."
렌이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더니 이어 말했다.
"...그리고 탈색하고 염색을 자주하면 강이 오염된다고 어머니가 그랬단 말이야."
그 말은 안 하는 게 좋았을까. 좀 마마보이 같은 발언이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저도 염색을 생각하긴 했지만 어머니가 반대하셨는 걸...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도 사랑한다고 했었다. 내심 속으로는 거짓말이라고 조금 생각했지만.
다, 다른 존재의 입장? 다른 존재?! 다른 존재가 누군데?! 신이라는 걸 들켰나 싶은 코로리는 순식간에 긴장했다. 플라네타리움에서도 수상하단 의심을 받아버렸는데, 설마 토와에게도 무언가 의심살만한 행동을 했었나 싶어진 것이다. 아까 전에 말을 하다 말고 바꾼게 역시 어색했던 건지, 별 다른 움직임 없이 인형뽑기 앞에 서있을 뿐인데 머릿속은 우왕좌왕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바쁘다! 하지만 인형이 나오는 출구 속에서 뽁 햄스터 인형을 꺼내면 깜빡 잊어버린다.
"풋사과 씨가 한 거 망칠까봐ー 그래도 구했으니까!"
인형뽑기 씨가 사과 들어줬나 봐! 그치만 사과 취소야ー 악몽 꾸게 할거니까! 코로리는 자고 있다고 말한, 방싯 웃고 있는 인형이 말랑말랑해 보인다. 코로리의 품에 안길 정도의 크기를 가진 이 인형을 기어코 인형뽑기 기계 안에서 구해낸게 신난다! 방글방글 웃으면서 인형을 꼭 안아본다.
"응, 풋사과 씨 덕분이니까 고마워!"
코로리는 사쿠라마츠리 다음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더니 있었던, 풍선다트 노점에서 1등 경품으로 있던 것과 같은 커다란 곰인형에게 '쿠쿠' 라는 이름을 지어주고서 친구 삼았다. 친구의 친구는 친구니까 쿠쿠쨩한테 친구가 생겼어! 이 햄스터 인형에게는 무슨 이름을 지어줄 지 고민하고 있었다. 후보는 '타타' 와 '무무' 로 두가지였는데, 토와가 인형뽑기를 도와주었으니 이름짓는데에 어느 정도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