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잘 자야 미인이 되구, 키가 크구, 똑똑해지구, 튼튼해져서 사과 씨 되는건데 싫은거야?! 아니면 사과가 싫은 거야? 잠만 잠녀사과 말고 다른 녹빛 과일을 상상해본다. 처음 사과를 떠올린 것도 토와의 눈을 보고서 떠올린 것이었어서, 이번에도 토와와 눈을 맞추려고 했다. 풋귤이라던지, 청포도 같은게 생각나기는 했지만 사과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라 코로리는 꽤나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잘 놀구 있지 않잖아ー"
완전 꽃밭이야, 양들이 안 보여! 손을 뻗어본다. 토와가 피하지 않는다면 코로리가 가볍게 통통 쓰다듬어줄텐데, 수학여행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꿈을 꾸지 않게 해주려는 것이었다! 코로리는 수학여행에 오고서 왠지 양귀비 향이 더 짙어진 것 같아서 묘했다. 놀러와있는 3박 4일 동안의 시간이 짧아서, 그래서 잠을 더 쪼개고 피곤하더라도 더 열심히 놀고 있기 때문이려나 짐작은 가능했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잠의 신 입장에서는 입술 삐죽이고 만다. 심지어 풋사과 씨는 공부도 하잖아!
"아냐, 뽑는게 아니라 구해주는 거라구. 갇혔잖아! ...못 구해줬지마안."
코로리도 다시금 시들시들 풀이 죽었다. 토와에게 시들었다느니 상했다느니 하더니만 코로리도 그래지고 만다. 인형뽑기에 돈을 얼마나 썼느지도 모르겠고, 얄미운 인형이 뽑히지 않는게 제일 시무룩하게 한다.
"나중에 레지던트나 의사 일정 보시기라도 하면 굉장히... 놀라실 것 같네요." 밤샘 3교대라던가. 자다가도 콜 오면 받아야 한다.. 같은 걸 알게 되면 코로리가 양귀비 싫어! 라고 하는 걸 상상해버린 토와주~
"그래도 평소 공부하는 것보다 적은 양이니까요?" 원래 공부 잘하는 이들 중 최상위권은 수학여행은 안 가고 학교에서 자습하며 죽어라 공부하고 4시간 자고 그러는 것에 비하면 토와는 잠을 잘 자고 할 거 다 하면서 그러는 편이라.. 토와가 속사정을 안다면 제법 억울해할 만했다.
"...?" 쓰담쓰담하는 걸 피하지는 않고 나서 꿈을 꾸지 않게 된다면 무언가. 안심하면서도 복잡한 마음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는 구해주러 왔다는 말에 그렇게 여기는.. 건가..? 라는 표정으로
혼잣말을 어렴풋이 듣긴 했으나, 딱히 자신에게 하는 소리는 아닌 듯 해서, 요조라는 말없이 있었다. 타인의 생각에 깊게 파고들어봐야 성가실 뿐이다. 재차 말을 걸어온다면 그건 반응하겠지만, 아니라면 그저 가만히 있는다. 요조라는 다시 빨대를 물고 끝을 느릿하게 씹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 아키라가 얘기를 시작했을 때도, 그 도중에도, 빨대를 입에 문 채 들었다.
듣는 도중, 요조라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을 듯 싶었지만, 한 구절에서 눈이 살짝 커지는 반응을 보인다. 과거에 내려온 신이 셋이라는 구절에서다. 그야 요조라는 마히루에게서 개방되는 샘이 가미즈미의 근원이고 아오노미즈류카미라는 신과 연관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 가미즈미의 재생에 그 외의 신이 관여했단 건 못 들었다. 히루, 다 알면서 일부러 덜 알려주고 그로 하여금 직접 얘기를 듣게 만들었겠다, 돌아가면 그 옆구리를 성치 못 하게 만들어주리라, 속으로 다짐한 요조라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싸하게 내려뜨며 이를 뿌득 간 걸 눈치채지 못 했다. 그것도 모르고, 얘기가 끝난 아키라를 보고 말했다.
"긴 얘기, 들려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몇 개... 질문이, 있어요..."
요조라는 아키라가 그랬던 것처럼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낸다. 대각선 아래로 향한 눈빛은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을 품은, 혹은 굴리는, 그런 눈빛이다. 잠시 후, 나름 정리가 끝났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인 요조라가 질문을 꺼낸다.
뭐든 보이면 들어갈 것이고 있는대로 탈 건데, 귀신의 집이라고 다를게 있을까. 그렇다고 대답하려던 요조라는 열었던 입을 다시 닫는다. 그대로 정면을 주시하고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뭔가 생각하는 듯 하다. 그건 싫다고 대답하려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잠시 뒤 요조라가 내놓은 대답은 상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근처에 가게 되면 꼭 가봐야겠다고, 이따 내리면 지도를 보자고 생각한다. 그런데 렌은 유령이 싫은가보다. 요조라가 한 타박에서 유령은 말이 없지 않냐며 대꾸하길래 힐끔 쳐다보니, 명백히 싫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 표정을 지그시 응시하던 요조라는 지나가듯 한마디 툭 내뱉는다.
"유령... 의외로,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
의미를 모르는 렌에겐 그저 으스스한 장난식 말 정도로만 들렸지 않을까.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니 어느새 차례가 왔다. 요조라는 렌의 다음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옆에 앉게 되었다. 자리에 앉아서 안전벨트로 가방 위치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놓고, 안전장치를 내리며 작게 윽, 하는 소리를 낸다. 롤러코스터의 안전장치는 살짝 깊게 내려오니까 말이다.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지만, 열차가 덜컹이며 출발하면 그런 불편함 따위는 별거 아닌게 되어버린다.
덜컹,덜컹,덜컹,덜컹...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는 롤러코스터는 완만한 경사의 레일을 차차 올라간다. 경사는 점점 가팔라지고, 지면은 그에 비례하여 멀어진다. 열차에 탄 사람들 사이로 실이 당겨지듯 긴장감이 도는 와중, 어느새 가장 높은 레일에 도착한 열차는 잠시 멈춘다. 놀이공원을 얼추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높이에서 주변을 한바퀴 돌아본 요조라가 문득 중얼거린다. 너무도 담담하게...
"떨어지기, 좋은, 날이네..."
그 직후 열차는 급하강하며 레일을 따라 종횡무진 달린다. 레일에서 이탈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빠르고 과격하게 열차가 달리는 동안 같이 탑승한 사람들은 각자 비명을 지르고 때론 환호한다. 그 속에서 요조라는 태연히, 풍압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뜬 것 외엔 표정도 변하지 않고 소리도 없이 열차를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레일이 어느새 끝에 다다랐을 쯤엔, 느긋히 하품까지 하면서 말이다.
두 번째 신과 세 번째 신에 대해서 알려달라는 말에 아키라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물론 그 이름을 알고는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은 것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되었건 자신의 집에 제대로 전승되는 신은 아오노미즈류카미니까. 그 외의 신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오노미즈류카미처럼 제대로 아는 것은 아니며 그냥 어렴풋하게 아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일단 질문이 들어왔다면 그에 대해서 답을 하지 못할 것은 없었기에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두 번째 신. 그건 호타루노히카미. 솔직히 말해서 저도 자세하게 아는 것은 없지만 반딧불 형태의 신이라고는 들었어요. 상징이라고 해야할지. 일단 호타루마츠리의 라인을 따라가면 가게 되는 해안가 부근에 신사가 하나 있긴 한데. 굳이 상징을 말하자면, 호타루마츠리 첫 날에 바다에 띄우는 등불이 아닐까 싶은데. 혹은 반딧불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세 번째 신. 사쿠라하나노히라카미. 녹색 식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신이라고는 하는데. 정확하게 아는 것은 없어요. 그저 가미즈미에서 가장 오래된 벚꽃나무에 깃들어 살고 있다는 말은 있어요. 그러니까 상징이라고 하면 역시 그 가장 오래된 벚꽃나무겠지요."
정확하게 아는 것은 없었다. 그저 자신도 전승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 들은 내용을 읊을 뿐. 단지 그 뿐이었다. 물론 이게 그녀에게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물어보는 것에 답은 최대한 하려고 하나 마지막 물음에 대해서는 그도 잠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땅을 지키게 된 사람. 그 사람의 후손이 시미즈 가문이냐는 물음에 아키라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숨기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뭔가 스스로 말하기는 조금 무안한 탓이었다. 그는 이내 괜히 왼손으로 자신의 안경을 정리하고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어느 정도 짐작하고 묻는 거라면 되게 짓궂은 물음인 건 아시죠? 후손의 입으로 우리 조상님이 그랬대요. 라고 말하는 것도 되게 무안한 일인데. 짐작한 그대로에요. 방금 이야기는 우리 시미즈의 근원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 이후로 시미즈는 생명의 근원인 그 샘을 대대로 관리하고 지키고 있으니까요. 머지않아 이번엔 제가 거길 지키게 될테고."
렌에게 말할때도 느낀 것이었으나 역시 이런 사실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보통 무안한 것이 아니었다.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는 헛기침 소리를 냈다.
힘내고 있다구 말해버릴 뻔 했어! 사고칠 뻔 했다! 응원하고 있다고 무사히 말을 바꾸어서 다행이었지, 힘내고 있다고 말해버렸다가는 도대체 어떻게 힘내고 있단건지 수습하기 곤란할 뻔 했다. 안 놀랄려고 힘내고 있다는 정도밖에야 둘러댈 수 없을 것 같았으니, 힘내고 있는 분들을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며 두 손을 주먹 꼭 쥐었다. 화이팅! 이니까, 딸랑딸랑 응원하구 있어!
"쪼금이어두 가시에 찔리면 아파, 바보 풋사과 씨."
꿈도 꾸지 말구 자장자장, 푹 자구 사과 씨 되기ー. 쓰다듬는 걸 피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코로리는 쓰다듬고나서 손을 뗄 때 방긋 웃었는데, 이제 수학여행 끝날 때까지 푹 잠들 수 있게 해주었고 그렇다면 조금 덜 핀 양귀비가 될테다. 그것에 대한 만족감으로 인해 나온 미소였다.
"저ー기 있는 커다란 햄스터. 자구 있어서, 꼭 구해주고 싶었는데에."
자고 있다기보다는 웃는 것처럼 보이는 햄스터 인형이었지만, 코로리가 보기에는 행복한 꿈을 꾸고 있어서 미소지으며 자고 있는 햄스터로 보일 뿐이었다!
아키라요? 아키라는 수학여행을 즐기고 있지요! 아마 지금쯤이면 아쿠아리움을 적당히 둘러보고 있을 것 같긴 한데! 수학여행이 끝난 이후에는... 마츠리 준비를 돕기야 하겠지만 일단 오늘자 결과에 따라서 첫날에 적당히 돌아다닐지, 아니면 일에 올인을 할지가 정해질 것 같네요!
"전 바보는 아닌데요..." "가시는 아프긴 한데.. 비유인가.." 작게 웅얼거리듯 생각이 살짝 새어나옵니다. 미소를 짓는 건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대체 왜 그러는지를 몰라서 그런 걸까요? 신이라는 걸 알았으면 나름 납득했겠지만요. 코로리가 가리키는 햄스터를 보고는 저건 웃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아하... 몇 번 해볼래요?" 해피시공인 내옆신 월드에는 일부러 심각하게 약하게 해서 절대 못 뽑는다. 를 하는 사기꾼은 없을 것이므로. 토와가 적절히 손끝을 조정해서 하나 둘씩 치우고(뽑고) 햄스터를 섬세하게 집어서 조금만 툭 밀면 뽑을 수 있게 만드는 데에는 대략 1회 100엔이라면 10번 정도의 횟수가 소모되었을 것이다.
"조금만 밀면 될 것 같네요." 이자요이 씨가 마무리를? 이라면서 말랑말랑한 인형을 들고는 바라봅니다. 여기서 실패해서 굴러떨어지면 어쩔 수 없나..?
방탈출 카페에 가본 적이 있었지만 꽤 재미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호러는 싫어.... 평소 외진 길로 다니고 어두운 곳도 잘만 다니면서 은근히 귀신이나 무서운 이야기 같은 종류는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낡은 고택에 혼자 살면서 그런 걸 무서워하는 것은 이상하긴 했지만 호러 특유의 귀신의 모습이라거나 갑자기 튀어나와서 놀래킨다거나 하는 것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그, 그런 말 하지마, 호시즈키 씨. 귀신은 자기 말 하면 찾아온댔다고."
렌이 투덜거리 듯 말했다. 귀신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ㅡ신은 봤었지만ㅡ 옆에 있다고 해도 볼 수 없으니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러했다.
안전장치를 꽉 조이는데 옆에서 불편해하는 소리를 내어 잠시 보았지만 문제는 없어 보여 다시 시선을 앞으로 보냈다. 덜컹덜컹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 렌은 뭔가 기분좋은 긴장감을 느끼며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놀이공원의 전경을 둘러봤다. 그러다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옆에서 들리는 혼잣말에,
"그런 날이 어딨...."
어, 라고 하기도 전에 열차가 훅 바닥으로 꺼지듯 떨어졌다. 렌은 입을 닫고 엄청나게 쏟아지는 속도를 느끼며 숨을 참았다. 안전 손잡이를 꽉 잡고 훅 내려갔다가 빙글빙글 돌았다가 구조물에 부딪힐 듯 아슬아슬 곡예하는 열차에 타서 세찬 바람을 맞았다. 눈을 가늘게 뜨면서도 앞을 보려고 하며 속도감을 즐기다가 열차가 천천히 멈추며 끝으로 다가가자 숨을 푸욱 내쉬었다.
"하아.... 재밌었다."
덜컹덜컹하는 소리를 내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렌은 고개를 도리도리 털면서 바람을 맞은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했다.
"기다리는 시간에 비해 너무 짧은 거 같지."
재밌지만 아쉽다. 조금 더 타고 싶은데. 열차는 정류장에 도착했고 안전바가 저절로 풀렸다. 안전벨트를 풀면서 렌이 요조라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