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한번씩 의외인 것을 이야기할 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의외인 것을 이야기하네요."
샘에 대한 전설이 있다고 들었고 그것을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이요, 아오노미즈류카미라는 말이 나오자 아키라는 두 눈을 깜박이며 그 물음에 대답했다. 아오노미즈류카미. 적어도 자신은 그녀에게 그 신의 이름을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 하지만 여기서 오래 살았으면 못 들을 이름도 아니었다. 신에게 관심이 있고, 혹은 나이 많은 어른들 중에선 이름을 알 수도 있었으니 그것을 경유해서 못 들을 것은 없었으니까.
허나 그렇다고 한들 여기서 전설에 대해서 언급할 거라고는 그로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세이 렌. 그 남학생이 주변에 이야기를 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을 잠시 하지만 그래도 굳이 그 의문점에 대해서 말을 꺼내진 않으며 그는 일단 고개를 끄덕인 이후,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아오노미즈류카미. 잊혀진 이름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겐 기억되는 이름. 시미즈 가문이 아닌 이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의외라면 의외네요. 아니. 그보다는... 샘의 전설을 거론하는 것이 더욱 의외지만요. 그 전설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적어도 저희 또래중에는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뭐,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렌이라던가. 그때 자신이 이야기를 한 것을 떠올리며 아키라는 두 눈을 깜빡인 후에 가볍게 손을 털었다. 그리고 걸음을 살며시 멈춰, 고개를 그녀 쪽으로 완전히 돌린 후에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는 것은 어차피 개인의 자유니까 시미즈 가문은 물론이고 저도 크게 말을 꺼내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그 전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진 않을 것 같고... 그 전설을 알려달라는 말로 받아들이면 될까요?"
자구 일어났어?! 지금? 여기서?! 킁, 코 끝에 걸리는 향이 달았다. 달콤한 디저트가 있다거나 누군가 뿌린 향수 향이 그런 거라면 좋을텐데, 이 파릇한 단내는 양귀비에게서 맡아지는 그 향이었다. 풋사과 씨, 원래도 양귀비였지만 왜 더 피었어?! 코로리가 잠의 신이라서 알아챈 이 향기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피곤해보이는 모습에 코로리의 고개가 갸웃거린다. 수학여행에서 많이 놀아서 피곤한 거라면 좋을텐데, 이전 시험 대체 같이 과제를 하게 되었을 때 나누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면 수학여행에 와서도 공부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풋사과 씨, 완전 시들었어. 상했는데!"
의자에 푹 기대 앉아있던 코로리는 몸을 조금 틀어서 풋사과 씨 사과 해야하는데! 를 바라보았다.
"보이면, 타겠지... 아, 후룸라이드는... 있어도, 마지막 쯤, 일까... 젖으니까..."
렌의 물음에 일일히 대답은 해주고 있었지만, 얼핏 보면 그런 류의 기계인형 같기도 하다. 아니, 인공지능일까. 질문을 하면 그에 맞춘 대답만 딱딱 나오는 인공지능. 그것과 다른 점을 찾으라면 요조라의 대답엔 개인의 의향이 섞여있다는 점이다. 인간미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요조라의 손놀림은 익숙하게 머리카락을 꼬아 하나의 타래로 만들어간다. 제법 굵게 꼬았으니, 설겅설겅 엮은 털실 장식물 같다. 다 땋은 머리를 뒤로 넘기려다가, 넘기지 않고 어깨 앞으로 내려둔다. 뒤로 넘기면 뒷사람의 얼굴을 때린다고, 전에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준비를 일단락하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옆에선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요조라는 힐끔, 렌을 곁눈질하고 중얼거린다.
"유령도, 아니면서... 말, 참 많다... 너..."
못 알아들을 걸 알지만 요조라가 그걸 설명해줄 리는 없다. 물어도 대답은 해주지 않겠지. 알아듣던가 말던가 식으로 중얼거린 요조라는 슬슬 열차가 오는 낌새를 느끼며 가방을 크로스로 고쳐메었다. 끈이 몸 중간을 푹 눌러서 조금 불편했지만, 타는 동안만 이러면 되니까, 눌린 셔츠를 조금 손 본 뒤 요조라는 말했다.
"안내, 맨 앞, 부터니까... 거기부터, 타겠지..."
궁금한 거를 포함해 말 참 많다고, 당연히 생각했다. 그래도 귀찮은 기색이나 짜증은 아직 내보이지 않았다.
나는 인간 안내원이 시키는 대로 다리를 쭉 뻗는다. 가만보니 나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다리를 훤히 드러내놓고 자기가 먹히는 줄도 모른다. 바보같기는. 구태여 먹이를 자처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괜히 첨벙거리다가 주의를 받기 전에 잽싸게 너에게 물 튀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재빠르게 살아야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난 굼뜬 편이지 않냐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
"네- 제 이름을 기억하시네요? 그쪽은 렌씨 맞으시죠?"
내가 비록 너에게 꽤 자주 안면을 비추고는 했으나 너의 머리에 알박힐 정도로 인상이 깊었을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 던져서 맞추기 3번, 괜히 화단에 물뿌리는 척 물튀기기 2번, 그외 사소한 일이 있었지만 그정도는 평범한 온나노코의 도짓코 속성으로 넘어갈줄 알았는데 말이지. 나는 혀를 굴려 끝내 발음하지 못한 너의ㅡ코노에의 성을 꿀꺽 삼켜낸다. 세이. 그 성은 나의 것이 아니고, 또 나의 핏줄도 아니니 괜히 너의 뿌리에 관해 왈가왈부하지 못함을 안다. 내가 괜히 심술을 부리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너에게 고정되었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내 다리를 보았다. 물고기들은 내 다리에 여럿 맴돌지 않았다. 나의 다리에는 그들이 먹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리라. 나는 시선을 도르륵 굴려 알게모르게 너의 다리를 살핀다.
"용건이라도 있는 모양이죠?"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려니 왼쪽 입꼬리가 내려가고, 그 반대로 하자니 또 같은 문제가 생긴다. 나는 예전의 코노에처럼 귀엽기 굴지 않는 너도 괘씸하고, 요즘의 코노에도 괘씸하다. 나는 네게서라도 내가 잃은 것을 찾으려 노력했으나, 저 반짝이는 보석알은 내가 잃은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심술이 얼마나 옹졸하고 또 쓸모없는 일인지 깨닫고 만다. 탄력감 잃은 몸이 팔에 겨우 기대어 천장쪽을 향해 비스듬이 기울어졌다.
"...그래, 내가 그동안 너한테 심술을 좀 부리긴 했어. 눈치 챘니?"
나는 존댓말도 잃고 웃음도 잃고, 더이상 잃을 것이 없어 아주 그냥 싹다 내팽겨치기로 했다. 어째 한숨처럼 들리는건 내 착각일까.
//혹시 잇기 힘들면 말해줘,,,, 하아 이것참 우리 아이가 이렇게 꼰대가 아닌데 아잇, 그 손가락 내려라 미즈미야; 같은 기분이야 미안하게 됏어,,,
의외일까. 아키라와는 전에 신에 대해 얘기한 적도 있으니, 그렇게 의외는 아니라고 요조라는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있다. 타인과 어긋난 시간은 시점도, 흐름도, 조금씩 어긋난다. 그 차이에서 오는 다름은 익숙하다. 익숙하지만,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그 뿐이다.
아예 없었던 건 아닌가. 이전에 누군가가 아키라에게서 그 전설을 들은 일이 있었나보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한두명 쯤은 있을 법도 하다. 뭐, 그건 그거대로다. 요조라는 아키라를 따라 걸음을 멈추고 역시 고개를 돌려 아키라에게 향했다. 어느새 물고 있던 빨대를 잘근거리다가, 놓고서 말한다.
그 혼잣말은 요조라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그야말로 별 의미가 없는 호시즈키당의 사람들에게 하는 한탄 같은 말들이었다. 물론 단순히 그 전설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주 약간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잠시 말을 고민했다.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어디서 어떻게 정리를 하는게 좋을까. 라는 생각 정리 때문이었다.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정리를 해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약하게 숨을 내뱉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주 오래 전 옛날. 가미즈미는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 수많은 피가 흐르고 수많은 생명이 그 목숨을 잃은 황폐해진,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었어요. 생명의 근원이 없었기에 그 어떤 것도 기를 수 없었고, 그 어떤 생물도 살아갈 수 없는 그야말로 죽음의 땅. 수많은 이들이 가미즈미를 그렇게 만들고 버렸지만 단 한 명만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그 땅을 다시 살리려고 했으나 모두 다 실패로 돌아갔다고 해요. 당시의 환경은 식물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서 자신의 눈물과 땀방울까지 동원했다고 하네요. 물을 다른 곳에서 구하고 사와도 마치 저주라도 내린 것처럼 물은 그대로 말라없어졌다고 하고요."
이전에도 렌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 전설을 이야기하며 그는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설마 이 이야기를 자신의 또래에게 두 번이나 이야기하게 되다니. 정말 상상도 못한 이야기였다. 한편 말을 하며 조금 미묘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찌되었건 이건 자신의 본가. 시미즈와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세 신이 내려왔다고 해요. 첫번째 신은 자신의 힘을 사용해 땅에 다시 생명이 싹틀 수 있도록 생명의 근원, 즉 물을 내려줬고 두번째 신은 땅에 생명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그 생명을 인도하는 빛을 이 땅에 쬐어 수많은 생명이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고, 마지막 신은 이 땅에 뿌리를 내려 땅을 다시 녹색빛으로 바꿨다고 해요. 그 신들의 힘으로 인해 황폐했던 죽음의 땅이 생명이 살아 숨쉬는 땅으로 바뀌었고 신은 유일하게 그 땅을 지킨 이에게 그 죄악을 평생 그 땅에서 생명을 돌보고 지키는 것으로 갚으라고 했다나봐요. ...그리고 개방되는 샘은 바로 그 첫번째 신이 내려준 물이라고 해요. 성스러운 물. 그야말로 가미즈미의 모든 생명의 근원인 성스러운 샘."
굳이 전설 속에 나오는 그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아키라는 깊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게 자신의 집안이다라고 말하기는 조금 애매했으니까. 그렇기에 전설에 대한 것만 이야기하며 최대한 시미즈가 거론되는 일은 없도록 그 관련 부분은 애매하게 넘어가면서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게 그 성스러운 샘에 전해지는 이야기이자 가미즈미에 전해지는 근원에 대한 이야기에요. 첫번째 신. 물을 내려준 신이 바로 당신도 언급한 아오노미즈류카미. 이제는 수많은 이들의 기억속에서 지워져버린 잊혀진 신이에요."
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보이는 놀이기구는 족족 다 탈 생각인 것 같았다. 꽤나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편인 걸까? 겉으론 그렇게 즐거워하는 표정은 아니지만 이정도의 진심이라면 속으로는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서 수학여행을 올 정도가 아닐까.
“음…. 귀신의 집도?”
요조라가 귀신의 집을 무서워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놀이기구의 무서움과 귀신의 집의 무서움은 다르지 않는가.
머리를 다 꼬아 묶은 것을 어깨 앞에 내려 둔 요조라가 이번에는 자신을 향해 말이 많다고 타박을 한다. 유령, 유령이라니…. 으으….
“윽, 유령은 말이 없지 않아?”
조금 싫다는 듯 표정을 지어보인다. 말이 많은 유령이라니…. 딱 질색이었다. 생각해보면 공포영화들을 보다보면 말 많은 유령이 있지만ㅡ그만큼 한이 많을테니ㅡ 공포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 렌에게는 유령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나름 딱 자신의 앞에서 끊기면 타고 싶은 자리를 스스로 정할 수 있는데, 요조라는 딱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채워 앉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 모양이었다.
“아, 이번에 탈 수 있겠다.”
안내를 받아 앞자리부터 채워 앉다보니 .dice 1 10. = 9번째 자리에 앉게 되었다. 렌은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안전벨트를 매고 안전장치를 내렸다.
렌은 어리둥절했다. 이거 일부러 물 튀긴 거 맞지? 그렇게 큰 데미지는 없었으나 이 학생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이 맞다며, 또 제 이름을 기억하는 것을 보고 무어라 말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고기들은 렌의 다리에도 그렇게 많이 몰려들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수영부이다보니 물에 들어가 있는 일이 많고 샤워도 저절로 자주 하게 되기 때문에ㅡ게다가 집에 오면 꼭 목욕도 잊지 않고 한다ㅡ 그렇게 각질이나 그런 것들이 생길 일이 없는 것이었다. 괜히 물고기들도 자신을 싫어하는 것만 같다.
“뭐어, 용건이라고 할 만한 건 없지만….”
무작정 왜 너 나 싫어하냐, 라고 묻기에는 렌은 좀 소심했다. 하지만 저보다 더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름 아닌 미즈미였다. 방금까지의 존댓말이나 모르는 척은 버린 듯이 싸늘한 표정으로 하는 말에 렌은 뺨을 긁적였다.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그, 사실 원한 살 일은 별로 안 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너한테 잘못한 일이라도 있어?”
이미 상대방이 먼저 말을 꺼낸 겸 렌도 궁금증을 물어본다.
/ㅋㅋㅋㅋㅋㅋㅋ 전혀 힘들지 않으니까 괜찮아! 흥미진진한걸. 이정도면 이정도면 약혐관이니까 재미있어~! 푹 쉬고 천천히 이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