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감하다고 한다면 대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스릴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스릴을 느껴도 태연하다는 의미인걸까? 마치 인터넷 짤에 나오는 그 무표정하게 후룸라이드를 즐기는 그런 부류인걸까? 머릿속에 여러 궁금증이 떠올랐으나 어차피 곧 보게 될테니 별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굳이 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아니요. 안쪽에 앉을게요. 저는 어느 쪽도 상관없어서."
무엇보다 그녀가 그곳에 앉으려고 했던 것 같았기에, 어쩌면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안쪽에 앉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아키라는 가만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숨을 약하게 내쉰 후 바로 있는 힘껏 줄을 꽈악 잡았다. 누가 봐도 다른 이들이 잡는 것보다 훨씬 더 세게 잡는 모습이 누가 봐도 힘을 꽉 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뒤이어 숨을 괜히 더 크게 내쉬면서 아키라는 앞만 바라봤다.
"슬슬 움직이려는 모양이네요. 서로 각자 알아서 잘 즐겨보도록 해요. 가능하면 앞만 바라봤으면 하고."
이내 천천히 놀이기구가 작동하고 어트랙션이 회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네는 당연히 천천히 떠올랐고 그에 따라 아키라의 손에 쥐어지는 힘도 더더욱 커졌다. 손목에 핏줄이 잔뜩 설 정도로 아주 꽈~악 잡으면서 아키라는 이내 으아아아아. 소리를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 자세히 보면 눈도 아주 살짝 감고 있는 모습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미카는 평균적으로 밤에 9시간, 낮의 쪽잠은 합계 3시간으로 보통 12시간은 잤다. 하지만 지금은 수학여행이 아닌가, 아미카는 자신의 친구들과 놀러다니느라 낮잠을 잘 겨를이 없었다. 결국 아미카는 하루종일 돌아다녀 피곤한 상태에서 8시간밖에 자지 못한 것이다.
아침에 힘겹게 일어난 아미카는 세안을 하고 아침을 먹는등 일정을 소화했지만 친구들과 다시 같이 놀러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아미카가 워낙 피곤해보였던 터라 친구들도 내심 미안했는지 어디 가서 좀 쉬고 있어도 괜찮다고 아미카에게 권유했다. 아미카는 자신의 상태를 한탄하면서도 이를 따랐다. 그래도 일단 이곳저곳 즐겨보는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린 아미카는 여유롭게 쉴만해 보이는 플라네타니움으로 가보기로 했다. 더운 날씨에 땀에 젖은 아미카의 모습은 썩 좋지 않아보였다. 아미카는 입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털석 주저앉곤 천장에 보이는 별들을 감상한다고 해야하나 그냥 멍을 때리고 있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보고 있었다.
즉시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고개를 홱 돌리며 지나치게 직설적인 반문을 하는데, 표정이 처음부터 내내 무표정하니 초면인 사람에게는 이것이 되받아치는 건지 단순한 물음인지 분간하기 힘들 테다. 후미카의 속내는 당연히 그저 물어본 것일 뿐이지만.
테츠야의 간접적인 원망은 안타깝게도 묵살되었다. 정확히는, 후미카는 눈치채지 못했다. 상대가 괜찮다 하고 넘어간 일이었으니 해결됐겠거니 하고, 조금 전의 일에 더는 신경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가 자신을 바라보니 할 말 있냐는 듯 테츠야의 눈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한다. 무심한 표정이 참 당당했다. 그것에 보태어 또 한 번 곧이곧대로 묻는 것이다.
"시원한 곳으로 가야겠다는 뜻이니?"
그에게는 아직 맥락의 언어가 어렵다. 사람들이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날씨 이야기를 하는 등의 기본적인 화법은 그도 알고 있지만, 때로 중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말은 틀리는 일이 잦다. 간접적으로 가겠다 말한 것인지 친교 목적의 의미 없는 푸념인지 헷갈린다. 후미카는 긴 머리를 한쪽 어깨 앞으로 끌어모아 끄트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생각이 필요할 때 나오는 습관이다.
아키라가 안쪽에 앉겠다고 하며 자리를 잡고 앉자 아미카도 바깥쪽에 앉은 뒤 벨트를 맸다. 이후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미카는 자신의 핸드폰이 주머니에 제대로 들어 있는지 잠깐 긴장하며 조금 더 깊숙이 주머니에 밀어넣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가능하면 앞만 보자는 아키라의 말에 아미카는 따르려고 했으나 얼떨결에 아키라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아키라는 손에 강한 힘을 주고 있었다. 그래, 무서워하고 있던 것이다. 아미카는 애써 외면하려고 했지만 소리까지 내자 자기가 괜히 같이 타겠다고 못타는 사람을 데려온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상당히 당황했다. 일단 조심스럽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느린 것은 또 아니었다. 공중에 붕 떠서 흔들흔들거리는 놀이기구의 특성상 어떻게 보면 조금 아슬아슬한 면도 있었다. 롤러코스터럼 강한 속도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붕뜨는 무중력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아키라는 이런 놀이기구들에 꽤 약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이 기분이 은근히 짜릿하고 내릴 때의 쾌감이 컸던지라 그는 이런 놀이기구들을 그렇게 강하게 잘 타는 편은 아니었으나 좋아했다.
괜히 줄을 두 손으로 꽈악 잡으면서 아키라는 막 들려오는 말에 겨우겨우 눈동자만 데굴데굴 옆으로 굴렸다. 바로 옆에서 마찬가지로 비슷하게 흔들거리는 그네에 타고 있는 아미카의 모습이 아키라의 두 눈에 들어왔다.
"부, 부정은 하지 않겠지만 괘, 괜찮아요! 놀이기구는 원래 이런 맛으로 타는 거니까. 으어어...아아.."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얼굴에 강타할 때마다 그는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속도감이 살짝 올라가자 절로 바람과 스쳐지나가는 속도감이 그대로 그의 눈에 전해졌다. 야주 미세하게 떠는 것은 있었으나 그래도 내리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을 똑바로 뜨는 것은 아니었고 팔에 힘만 꽉 주고 있었다.
"그, 그러니까 이타니 씨도 이쪽은 신경쓰지 말고 즐기시는게... 우와아아아!"
이내 줄이 가볍게 흔들리자 그는 괜히 다시 한 번 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웃는 것이 일단은 즐기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무언가 좀 이상한 상황 같긴 했지만 그래도 즐기고 있는 것 같긴 해서 아미카도 바람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조금씩 중간에 뜨며 움직일때마다 약간씩 움찔하긴 했지만 바람도 비교적 시원했고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옆에서 아키라가 소리를 내자 계속 걱정되는건 변함이 없었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어쩌겠는가. 놀이기구를 탈 때의 이 감각이 너무 짜릿한 것을. 바들바들 떨리면서도 뭔가 조금 조마조마하면서도 아슬아슬함. 스릴에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이 또 은근히 짜릿했기에 그는 이런 놀이기구를 좋아했다. 잘 타냐, 못 타냐. 라고 하면 당연히 못 타는 편에 속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란 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바람이 다시 한 번 얼굴을 강타하며 시원하게 얼굴을 식히자 그는 절로 두 눈을 꽉 감았다. 자연히 스릴감이 조금 더 느껴지는 것 같아 그는 절로 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타기 전, 딱 한 가지 걱정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으나 어차피 학생회장의 위치상, 1학년 학생을 자주 볼 일은 없었다. 어쩌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고 자신은 올해가 지나면 졸업하지 않는가. 별 문제는 없으리라.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속으로 중얼거리던 아키라는 아주 살짝 눈을 뜨다가 다시 확 감았다.
꽉 잡고 버티는 와중에 점점 놀이기구가 끝이 날 생각인지 속도가 줄기 시작했고 그는 가볍게 그네가 완전히 멈추자 벨트를 풀고 땅으로 내렸다. 방금 전까지 꽉 주고 있던 힘을 풀며 아키라는 상쾌한 표정으로 두 손을 탈탈 털면서 미소를 지었다.
"재밌네요. 역시 놀이기구는 이런 맛으로 타야 재밌는 법이지. 이타니 씨는 재밌게 즐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