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준다고 해서 평범한 소녀가 사람 한명을 들 수 있는 세상이라면 나도 힘을 주어서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조금 위험하긴 하겠지만 어떤 상황이든 이런 부끄러운 상황보다는 나을거라 생각하며 몸을 이리 저리 움직이려 해 보지만 꼼짝달삭을 하지 않았다.
이게 뭐야. 무서워.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볼텐데?"
어차피 결과는 똑같은데 무슨 의미가 있단말인가! 아아, 많은 학생들이 나의 추태를 보고있어! 게다가 이런식으로 애취급이라니! 나보다 연하이면서 뭐가 이렇게 자연스러운걸까! 평소에 애라도 돌봐주는거겠지! 얼마나 착한 학생일지! 하지만 그 상냥함이 나한테 이런식으로 가해지는건 너무나도 싫다!
이건 폭력이야!
"아아아아.."
역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도 빠져나오긴 힘들어보였다. 정말 진심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면 머리부터 떨어질 가능성도 있으니 그건 힘들고. 그저 얌전히 빌려온 고양이처럼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을 듯 했다.
코로리는 자신이 신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다. 떠받들어지거나,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안다거나, 성대한 신사로 모시고 축제가 열리거나 하는 신들과 같은 신이라는 것이다. 비록 코로리는 이름도 없고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지만! 고맙대! 도움됐대! 나 상담 잘 했나 봐! 아, 아냐, 아냐ー! 원래 나는 위엄있고 존경받는 신이니까 당연한 거라구. 뿌듯하게 배시시 웃어버리던 코로리가 헛기침을 큼큼 하더니, 묘하게 으스대는 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간 이유였다.
"비밀 지키는 거 때문 아닌ー 맞기는 한데에."
코로리가 렌에게 뇌물을 주는 이유는 비밀을 잘 지켜달라는 것도 있었지만, 친구가 되고 싶어서도 있었다. 그래서 아니라고 답하던 중, 친구를 하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비밀에서부터 비롯됐었다. 렌의 말을 들으니 코로리가 생각하고 있던 속셈이 너무 음험해보인다. 몇 백 몇 천년 살아온 시간이 부끄럽다!
"후링 씨랑 친구하면, 친구 비밀에는 자물쇠가 더 많이 걸릴테니까 친구하자! 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잘 보이려고 했구, 응. 렌 씨 말이 다 맞아ー 하나 빼구. 렌 씨 많이 믿으니까."
그런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양치기라구 했지만, 거짓말쟁이 양치기라구 했지만 진짜 거짓말쟁이 양치기 아니니까! 순순히 속셈을 다 털어놓았다. 이루어질리 없는 속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걸 알면 상담을 아무리 잘 해줬어도 친구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 것 같았다. 코로리는 마주볼 수가 없어서 시선을 디저트들로 떨어트리고서 말했다. 맛있게 생긴 디저트들이 얄미웠다. 방금까지만 해도 웃고 있었는데 금방 풀이 죽었지만, 또 다시 금방 표정이 바뀐다.
"친구해도 돼?!"
누가 봐도 기대감 가득찬 표정이다! 하늘에 고래떼 있다 연락하구 그래도 되는거야?! 몰라도 상관없을 것을 같이 알고 싶어서 연락해도 되는 관계, 남이지만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존재가 친구라고 생각했다. 뇌물 공세를 10년 해도 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렌이 먼저 친구는 어떻냐고 물어본다면, 역시 들뜨고 만다.
우미노카리는... 음. 나중에 더 자세하게 공개를 하겠지만 토너먼트로 벌어지는 일종의 대결 게임이에요. 가미아리는 아무래도 바다가 근처이기에 어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착안해서 파도가 치는 워터파크의 파도풀 속에 들어가 일정시간 내에 로봇 물고기를 많이 소쿠리로 잡아내는 대결이랍니다. 옛날에는 실제 살아있는 물고리를 썼으나 물고기들의 스트레스 문제와 안전상의 문제가 있어 이제는 위험하지 않은 로봇물고기로 대체했어요. 아무튼 일정 시간내에 많이 잡으면 이기는 그런 경기에요.
덧붙여서 대회에 참가하는 경기조가 있고 대회에 참여를 하지 않지만 경기를 보며 누가 이길지 배팅을 해서 포인트를 따내는.. 당연하지만 실제 돈이 아니라 그냥 포인트에요! 아무튼 그런 재미로 하는 작은 도박판 같은 것도 있답니다. 말 그대로 이길 것 같은 사람에게 배팅해서 이기면 포인트를 그만큼 받아내고, 지면 그만큼 포인트를 잃는 방식이에요.
그리고 아키라는 주사를 어릴 때는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무서워하진 않아요. 다만 따끔거리는 고통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주사를 맞을 땐 눈을 꽉 감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답니다.
후미카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제 힘에 관해 말하자면 할 말이 없는 처지라, 거짓말을 하기도 무엇하니 그저 입을 다문 것이다. 소심한 저항은 부드럽게 묵살한다.
"그렇지만 조용히 나가는 것보다 더 눈에 띄는 건 사실이잖니."
후미카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슥 훑어보았다. 과연 연이은 소란으로 인해, 관람객들이 한 마음으로 이쪽을 향해 눈살 찌푸리고 있…지 않았다. 그런 평범한 반응을 보이기에는 지금 상황이 썩 괴상하고 비범해 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몇은 아주 재미난 구경거리 보는 눈을 하고 있었다. 후미카는 이건 조금 잘못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상냥한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얼굴이라도 가리겠니?" 그 물음이 너무 늦어버려 문제였지만.
자박자박 조용한 행선이 이어졌다. 관람실의 나서 복도를 걸어, 마침내 출구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한순간 환한 햇살이 둘을 덮쳐왔다. 날씨는 맑고 활기찬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쏟아지는 햇볕이 야살스럽게도 밝았다……. 후미카는 근처에 놓인 벤치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가 남학생을 내려주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그 길을 걸어왔음에도 호흡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밖이구나."
그래, 밖이다. 무슨 말이든 먼저 하게 두겠다는 양 뜻 모를 소리로 운을 뗀다. 화창한 태양 아래, 빛 받은 머리결이 불그스름하게 빛난다. 상대방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울지는 짐작하지 못하고, 후미카는 햇빛을 쬐니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어두운 실내에서보다 표정이 조금 풀어진다. 초면인 사람이 보기에는 별달리 변화를 알아채기는 힘들겠지만.
원래 신이라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인걸까. 쉽게 놀라고 쉽게 웃고 금방 시무룩했다가 금방 밝아지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맑은 물 아래에 자갈들이 모두 비춰지는 것처럼 속마음과 기분이 빤히 들여다보이니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사람과 마주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
"네. 친구 해요, 우리."
들떠 보이는 코로리의 모습에 렌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아마 남은 시간들은 빙수와 케익들을 나눠먹으면서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을까. 렌이 수영부이고 수업시간에 종종 존다는 이야기나 방학 때 종종 워터파크나 스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 같은 작은 이야기들. 이제 뇌물 아니니까 렌이 남은 딸기를 먹으라고 코로리에게 권했다가 거절당한다면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이 딸기 먹기로 하자며 내기를 걸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카페에서 이야기하다 디저트를 다 먹으면 다음에 또 보자며 헤어졌을 터였다.
/막레! 텀이 길어서 오래걸렸네. 코로리랑 일상 너무 재미있었구! 자잘하게 얘기했다가 헤어졌다고 하면 좋을 것 같아. 코로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줬을지 궁금하네~~
그저 무심히 가만히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밖의 벤치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제법 먼 거리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혀 힘든 내색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뭘 어떻게 살아오면 이걸 전혀 힘들지 않고 해낼 수 있는거지..?
"정말 믿을 수 없는 힘이네. 혹시 평소에 데드리프트라도 하는거야?"
그 사이에 이미 발은 아픔을 잊었다. 역시 그 때에만 아팠을 뿐 많이 다친건 아니었나보다. 그럼 굳이 공주님안기로 여기까지 운송 될 필요는 없지 않았나..?
"그래, 밖이야."
그 어둡고 바람도 안 부는 장소보다는 더 쾌적했다. 여름의 햇빛이 조금은 덥긴 했지만 여태까지 계속 실내에서 쉬었으니 가끔은 상관없다. 뭔가 여러가지 말하고 싶은건 많았지만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여러가지로 부끄럽긴 했지만 상대방이 뭐 나쁜 뜻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었고. 이것도 결국은 수학여행의 작은 해프닝으로 끝나겠지.
"어쨌든 고마워. 원인이 어떻든 누군가를 들어올려 다른곳으로 옮겨주는건 쉬운 일은 아니지."
그렇게까지 고마운 기분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상대방의 호의는 일단 감사해두는게 상책이다. 언제 어떤일이 일어날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