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거리는 두 손에서 손톱이 틱틱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직접 겪어보지는 못 했어도 보고 들은 것은 많아서 안절부절거렸다. 그런 꿈은 거의 다 악몽이었단 말야. 대부분이 악몽이었고 꾸고 싶지 않은 꿈으로 여겨졌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욱 어쩔 줄을 몰랐다. 하고 싶지 않은, 달갑지 않은 이야기라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게 오지랖일 것 같아서도 말을 못 했다. 코로리는 정신차리자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고, 작지만 방긋 미소를 걸었다. 렌이 담담해 보이는데, 혼자서 이런저런 걱정에 묻혀 있으면 안 될 거 같았다. 그래도 안 아프면 좋겠다아.
"응, 동화처럼 예쁘게 끝나면 없던 것처럼 된다구 했어. 아니면 벌 받구."
서로가 받아들인 헤어짐, 무릇 동화책이 끝맺을 때 하는 말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이 고운 작별이었다면 없었던 일이 된다. 코로리는 그랬길 바랐다. 벌을 받는 쪽이라면, 누군가 배신을 해서 댓가를 치루게 된다는 쪽이라면 정말로 깊은 상처가 남았을게 분명하니까 그렇지 않았으면 했다. 의식을 안 했을 수도 있겠고, 렌의 어머니가 신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거면 닿지 않는 소원을 빌었다구 넘기면 되는데, 만약ー 만약에 전부 맞는 퍼즐이면 이뤄지면 좋겠으니까.
"어, 안 되는데에."
렌이 딸기 이야기를 해주어서 다행이다! 코로리는 퐁 생각의 미로에서 빠져나왔고, 오늘 카페는 렌이 계산하겠다고 했을 때와 똑같은 말을 했다.
"뇌물이니까 딸기들은 양보 못 해, 전부 후링 씨거야."
왼손의 검지와 오른손의 검지가 엇갈려 X 모양을 만들었다. 코로리는 X 모양을 쳐다보았고, 그 너머로 렌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물어봐도 되는 거 아닐까?! 다음 뇌물은 완벽하게 성공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입을 열게 했다.
노업레스로 문의가 들어왔는데 일단 노업레스는 저도 파악하고 있고 누가 그리 쓰는지도 이미 파악했어요. 일단 참가자중 한명이긴 한데 딱히 노업을 악용하는건 아닌것 같기도 해서 그냥 조용히 보고 있는중이랍니다. 어그로였으면 바로 대처했겠지만 그건 아니니끼요. 일단 문의에 답 드리고 다시 가볼게요.
누구나 안아들고 두드리면 편안해지기 마련이다……. 평온하게 말하지만 사람에 따라 이유 모를 압박감이 느껴질지도 모르는 발언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려줄 수는 없었다. 인간 심리에 어두운 후미카도 짐작한 것이다. 찰나의 시간 동안 생각을 해 보니, 들기만 해도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데 이대로 내려준다면 처음처럼 순순히 들려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실랑이를 해야 할지도 모르고……. 후미카는 팔을 낮추는 대신 남학생을 진정시키려 그를 받쳐들었다. 아이를 어르듯 두어 번 흔드는 그 동작에서 묘한 리듬이 느껴진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천여 년 전의 요령이었다.
"쉿. 소리 지르면 사람들이 보잖니. 공공장소에서 소란 피우면 안 돼."
묘하게 어린애 다루듯한 말투처럼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니리라. 제 행동이 이상했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기에 후미카는 곧바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걸이는 여전히 사뿐했다. 출입구로 트인 공간을 향하는 걸음이 당당하다. 자신보다 큰 남고생을 들고도 걸음이 낭창한 데 없어 그 보무로부터 역설적인 우아함이 느껴질 지경이다.
후미카는 결연한 태도로 계속해서 발을 옮겨 관측소 밖으로 걸어나가려 했다. 테츠야가 반항하지만 않는다면 그럴 수 있을 테다.
렌이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벌을 받았을까. 어렸지만 그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신이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배신했던 것이라면 천벌이라는 것을 받는 걸까? 사실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겼던 만큼 그 이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더 이상 물을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확실히 정해진 것이 아닌 가정일 뿐이더라도 이 정도라도 알아낸 것이 어디랴. 어머니가 자신에게 비밀로 하는 일이라면 굳이 들춰낼 생각도 없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음.... 자신이 없긴 했지만.
제가 말을 돌리자 무거운 분위기는 확연히 밝아졌다. 그런데 렌은 코로리의 뇌물이라는 말에 작게 웃었다.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는 것에 코로리라는 작은 신님은 꽤나 직설적인 성격이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저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비밀은 지킬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마음으로 선물을 받아도 기쁘지 않은 걸요. 내가 못미더워서 계속 무언가 주는구나 생각해버리니까요."
렌이 웃음기를 담아 질문에 대한 답 대신 다른 말을 해보였다. 불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면 그것들을 어마무시하게 가져올 것 같아 두려운 것도 있었고. 그러면서 렌은 빙수 위에 있는 딸기를 쿡 찍어 입 안에 넣었다. 여기 디저트 맛이 꽤 좋았다. 한적한 것에 비해서 말이다.
"약점 잡혔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서로의 비밀을 아는 친구로는 어때요? 뭘 좋아하는지는 친해지면서 차차 알아가는 거니까."
렌이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서로 남들에게 말 못하는 것을 주고 받았으니 비밀을 주고받은 것이 맞겠지 싶었다. 뭐든지 자연스러운게 좋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고 그걸 억지로 떠안기는 것은 언뜻 보면 좋아보일지 몰라도 자연스럽지는 않은 것이었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언제나 탈이 나기 마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