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곳에 데려가준게 고맙다던가, 같이 돌아다니는게 즐겁다던가, 그런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저번에도 이번에도, 요조라는 그런 걸 알려주려 하지 않았고 데려가준 것도 아니다. 단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을 뿐이고, 뭘 해서 무슨 기분을 느꼈건 그건 전부 상대가 마음대로 굴어서 생긴 기분일 뿐이다. 그러니 감사를 들을 이유가 없다. 그런거, 들어봤자, 기쁘지 않아.
코세이가 가미즈미에 온지 3년 밖에 안 되었다는 건 처음 들었지만, 그게 뭐 어쨌냐는 생각을 한다. 가미즈미가 토박이만 사는 마을도 아니고, 누구든 왔다가 누구든 나가는 그냥 사람 사는 곳에 불과하다. 무슨 이유로 왔는지 같은 건 궁금하지 않다. 요조라는 줄곧 앞만 보고 걸었다. 말없이, 반응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가다가 말없이 길을 바꾸니 뒤에서 급히 따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계속 한 길만 걸었으니 그쪽으로만 갈 거라고 착각할 만도 하다. 미리 말을 안 한 것도 있긴 하겠지만, 멋대로 따라오는 사람에게 요조라가 하나하나 설명해줄 의무가 있을까? 요조라는 담담히 바뀐 길을 따라 걷고, 곧 따라온 코세이의 말에 대답한다.
"아뇨. 딱히."
칼같이 자른 듯 끊어지는 말투는 전혀 아닌 거 같지만, 요조라는 그 이상 말해줄 거 같지도 않다. 그 전엔 가끔 주던 시선도 앞으로만 고정 되어있다. 코세이가 눈치를 봐도 마주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계속 나아가기만 한다.
그렇게 가던 중, 길 옆으로 다소 뜬금없이 세워진 건물이 나온다. 그 건물은 외관상 서양식 목조저택으로 보였는데, 그곳이 나오자 요조라는 다시금 걸음을 돌려 건물로 다가갔다. 다가가서 문에 달린 도어벨을 누른다. 아는 사람의 집인걸까? 그러나 문이 열리고 나온 사람이 하는 말이나, 내부의 풍경은 이 건물이 그냥 집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어서오세요. 몇분이신가요?" "두명... 2층, 창가, 쪽으로요..." "네, 2층 창가, 안내해드릴게요."
정갈한 유니폼을 차려입은 여직원이 요조라의 말에 대답하며 안으로 안내한다. 문 안은 1층인 듯한 곳이 바로 보이는데, 큰 홀에 테이블 여럿이 있고 한쪽엔 와인바가 있으며 몇몇 테이블엔 사람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다. 공기에서도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여기가 그 점심을 먹으러 온 곳이구나 하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요조라는 안내를 하는 여직원의 뒤를 따라간다. 1층 홀을 지나쳐 목조 건물 특유의 삐걱이는 계단을 올라가자 나온 2층도 1층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있다. 여직원은 그 중에서도 어느 열린 창문 옆에 자리한 2인석 테이블로 안내를 하고, 미리 준비된 잔에 물을 따라 놓은 후 주문이 정해지면 벨을 누르라는 말을 하고 돌아간다. 요조라는 별 말 없이 자리 중 한쪽에 앉아 가방을 의자 등받이에 걸어두는 둥 했다. 그리고 잠시간은 물을 마시며 여태 걸은 피로를 푸는 듯 했다. 요조라의 시선은 이제 테이블 옆 창 밖을 향해 있었다.
요조라를 따라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았다면, 여태 본 울창한 숲이 보일거란 예상과는 달리 숲은 살짝만 보이고 산 너머 바다가 길게, 넓게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한낮의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래사장과 희게 몰려오고 부서지는 파도가 선명한, 한 폭으로는 담기 어려운 그림 같은 풍경이 말이다.
아쉽게도 반짝거리는 물 그림자는 놓쳐버렸지만, 폭포라는 단어에 꽂혔다. 미즈미의 곧게 뻗어 내리는 하얀 머리카락이 전부 하얗게 핀 거품꽃으로 쏟아지는 폭포수라고 생각하니, 강물을 갖고 놀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벚꽃잎이 내려앉으면 강물 위로 벚꽃잎이 동동 흘러 내려가는 것이고, 땋아버리면 물길이 굽이굽이 치는 것인데 자전거씨, 너 악몽 꾼다! 바퀴 훔쳐가는 꿈 꾸게 해버릴거야?! 자전거는 잠을 자지 않지만, 흔들거리는 자전거에 두 손이 미즈미를 붙잡고 있느라 머리카락 갖고 장난을 못 치는게 얄미워서 이렇게라도 으름을 놓고 자전거를 노려본다.
"여왕님이 엄청엄청 아프면, 자전거씨는 엄청엄청엄청 아플거야."
자전거는 꿈을 꾸지 않지만, 기름칠이 되지 않고 눈비 아래 방치되어 녹스는 꿈이라도 꾸게할 건가보다.
"아야."
자전거가 고꾸라졌는데 딱히 아파보이지 않는 신음 소리 한 번 후에 미즈미를 바라본다. 잠결에 넘어지면 아픔에 조금 더디고, 꿈에서는 아픔을 아예 느끼지 못해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볼을 꼬집는다. 잠에서 태어난 코로리는 그래서인지 조금 둔했다. 아픈 것보다야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에 좀 더 밝았다. 나 소라고둥 속에 빠진거야? 바닥에 발라당 누워서 보인 하늘이 파란게 파도 소리가 잘못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벚꽃잎이 달라붙었고, 코로리는 상체를 일으키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꽃잎을 털어내다가 미즈미의 목소리에 갸웃 고개를 향한다.
"꿈에서는 안 다치니까, 응! 밋쨩은 또 벚꽃 피었네ー"
벚꽃이 강 따라서 바다로 놀러가는 길인가봐. 코로리는 미즈미의 얼굴로 손을 뻗는다. 파란 하늘 아래서 자전거 타고 가다가 굴렀는데 방긋이 웃으며 얼굴에 붙은 벚꽃을 떼어주려 한다. 그러다가 슬쩍 똑같이 넘어져있는 자전거를 곁눈질하더니, 미즈미에게 속삭인다. 손을 올려서 남들이 입 모양을 보지 못하게 가림막까지 만들어서, 매우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잡았다.
그 부분에 대해선 코세이주가 나름 잘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바쁜 사정이야 있을 수 있긴 하지만 당일에 가서 바쁘기에 접속을 안하거나 잠수를 타거나 혹은 파트너에게 바빠서 힘들 것 같아요. 라고 해버리면 아무래도 저로서는 좋은게 좋은거다.. 라고 해버리긴 힘들기도 하고 그렇기에. (흐릿)
말로는 아니라지만 말투는 이미 화가 난 것 같은데. 여기서는 나라도 더이상 대화를 이어가긴 힘들었다. 그렇기에 길을 가는 동안에도 그저 침묵만이 이어질뿐이다. 바다쪽이 아니라 산쪽으로 길을 틀었기에 계속해서 숲길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길 옆으로 서양식 목조주택이 보였다. 건물 근처에 가자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기는게 ... 여기 식당인가?
벨을 누르자 안내인이 나오고, 그 사람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큰 홀이 보이고 거기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 몇몇도 눈에 띄었다. 이런 곳에 이런 식당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요조라를 따라서 2층으로 향한다. 창가 자리로 안내 받은 나는 그녀의 맞은 편에 앉아서 무심코 창 밖을 바라보았고,
" 와 ... "
숲으로 한참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창 밖은 잠깐의 숲 너머로 바다와 함께 수평선이 보였다. 정말 경치 하나만큼은 손색없다는 생각과 함께 핸드폰을 들어서 사진을 하나 찍어둔다. 수평선과 지나다니는 배들, 그리고 파도에 따라서 이리저리 반사되는 햇빛들까지..
" 먼 거리를 오는 값어치는 확실하네요. "
나는 요조라쪽을 바라보며 말했다가 다시 창가쪽을 보고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실 이런 기온에 그렇게 길을 따라 걷는건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실내는 시원했기에 다시 컨디션은 괜찮아졌고 나는 그저 조용하게, 그나마 가끔 검지손가락을 서로 톡톡 부딪히는 것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 이건 테이블에 둘테니까 쓸꺼면 써요. "
아까 주머니에 넣어둔 머리끈을 테이블에 올려두며 말했다. 머리가 기니까 무언갈 먹을땐 불편할거란 생각이 들어서였지만, 본인이 필요 없을수도 있으니 그냥 테이블에 올려놓기만 했다. 어차피 점심을 먹으러 왔으니 무언가를 시켜야하기에 나는 가장 일반적인 메뉴와 에이드 하나를 주문했다. 그리고선 나는 요조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호시즈키양은 참 신기해요. 제가 말할 주제가 없어진건 꽤나 오래간만이라서요. "
보통은 상대방도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거나 대화에 간간히 주제를 던져주곤 하니까 이야기를 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평소엔 내가 대화를 끊어지지 않게 해주는 쪽인 경우가 많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 같은 경우는 또 오랜만에 겪어서 그런가 신선하기도 했다.
" 사실 전에도 좀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더 알고싶어졌어요. 어쩌면 언젠가 같이 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
검지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어번 톡톡 두드린다. 갑자기 초조한 기분이 드는건 어째서일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다시금 작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 그러니까 저한테 시간을 더 내어주실 수 없을까요? "
태연한척 하지만 조금 초조한 것은 기분탓은 아니다. 이런 감정이 드는건 간만인데다 이유도 잘 모르겠으니 숨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