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고둥은 제 권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땅을 톡톡 두드렸다. 저 밑에 흐르고 있을 지하수를 가리킨거지만 어찌되었건 나 역시 육지의 것이었으므로 어느쪽이건 틀린 해석은 아니다.
"그래서 연기처럼 보였군요?"
같은 신이래도 워낙 다채로운 자들이었기에 나는 보통의 시선으로 이해하는 것은 포기했다. 나에게는 위인 것이 이들이게는 아래일 수도 있고 나에게는 선인 것이 이들에게는 면인 것이 세상사다. 따라서 나는 생각이 없고 의심도 없이 네 말에 끄덕거렸다.
"그러면 코로짱은 악몽에 빠져버리지 않게 조심해야겠어요. 자전거가 꾸는 악몽에 그대로 퐁당 들어가버리면 큰일이잖아요-!"
그때는 내가 꺼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큰일이다. 뱀이 모자가 된다면 못 도와줄 일도 아니고 배가 터진 것도 아니니 문제가 되지 않겠다만야 너는 그렇지 않지 않은가.
나는 네가 꿈처럼 내민 벚꽃잎을 받아들이고 손에 쥐었다. 아까와 받은 선물과는 또 다른 선물이다. 맥락에 따라 선물 역시 다르게 받아들여야한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좀 간다. 나는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린다. 누구에게 소원을 빌어야할지 고민하다가, 벚꽃잎 신에게 빌어야하나, 과연 그 신에게 이런 사소한 소원을 받아줄 능력과 공물 없이 받아줄 아량이 있을까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혼잡한 가운데 웃고 있는 널 보니 뭐든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랬다.
"그러면, 자전거 주인에게 들키지 말자고 빌어요."
나는 꽃잎을 가운데에 두고 합장하듯이 손을 그리쥐었다. 제대로 소원을 빈 적이 없어서 속으로 10초 정도 셈해보기도 했다. 이렇게 하는 게 맞긴 할까 의문이다.
"자, 이제 문제 없어요."
나는 온통 뒹구느라 구겨진 옷을 탁탁 털고 주변을 살폈다. 저 밑에 하천이 하나 흐르고 -콘크리트로 덮여있는지라 온전히 자연의 것은 아니다- 주변에 떨어지는 벚꽃도 눈처럼 펑펑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하늘을 보다가, 기숙사로 돌아갸야할 시간이 되었음을 직감했다. 물론 담임에게 들키지 않게 바다에서 애꿎은 모래나 괴롭힐까 싶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다. 나는 너를 바라보며 말했다.
"흠- 아무튼 무사히 잘 도망도 갔으니 해피엔딩-이에요.."
받은 것이 많은지라 완전한 작별을 선언하기 전에 돌려줄 것을 찾아본다. 주머니에는 네가 나에게 준 벚꽃잎만 덜렁 있다. 음- 이래서야 신 체면이 말이 아니다. 역시 돈을 선물로 주는 게 좋으려나? 인간들은 나에게 곧잘 금은보화를 바쳤으니 돈을 선물로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를... 한창 고민중에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으니 팔찌 하나다. 게르 마늄- 팔찌. 음... 뭐, 비록 효능이 없지만-이걸 주문하고 나서야 알았다니- 악세사리는 곧잘 좋아하는 나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자, 이건 선물"
나는 너에게 팔목을 두르고 있던 팔찌를 스윽 내밀었다. 나는 또 한참을 골몰하다가 느즈막히 덧붙인다.
"...몸에 좋대요."
//막레각~~~ 잡아왓어 내가 너무 오래 잡고 있어서 미안했는걸...~~~ 그래도 코로리 왕귀엽고.... 일상도 즐겁게 했어... 응응
솔직히 대답하면서도 싫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아서 조금 긴장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런게 아니라서 속으로 한숨을 길게 내쉰다. 평소 같았으면 별로 신경도 안썼을껀데 오늘따라 유난히 이러는게 마음은 안들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을. 대답 자체는 일단 긍정적인 방향이라서 다행이다.
" 기왕이면 호시즈키양도 즐거웠으면 좋겠는걸요. 제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겠지만요. "
그때 말했던 웃는 모습을 보고싶다는건 정말 진심이니까요. 작은 목소리로 덧붙인 나는 그녀가 건네준 머리끈을 다시 받아서 가방에 넣었다. 아까보다 많이 줄어든 에이드를 마지막으로 다 마셔버린다. 쪼르륵, 하는 소리가 나고 같이 가자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조금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라 등받이에 몸을 잠깐 기댔지만 나가자는 말에 그녀와 함께 일어선다.
밥값은 당연히 따로 계산할테니 내 몫의 음식이 얼마인지 계산하고 있었는데 요조라는 돈이 아니라 쿠폰 두 장을 건네준다. 어디서 이벤트로 받은걸까 싶었지만 당연히 내 몫은 공짜가 아닐테니 내 몫의 계산을 마치고선 그녀의 뒤를 따라 가게를 빠져나간다. 아까보다 시간이 지나서일까 숲길에는 그늘이 져있어서 걷는데 무리는 없어보였다.
" 당연히 따라가야죠. 그리고 이건 방금 먹은 몫이에요. "
요즘 같은 시대에 현금을 들고다니는 사람은 많이 없지만 평소에 현금을 쓸 일이 자주 있기에 일정한 금액은 항상 들고다니는 편이었다. 지폐로만 줄 수 있는 금액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가 가는 길을 같이 따라간다.
"이자요이 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 일지도... 모르죠. 그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코세이의 말에 요조라는 그런 한마디를 내놓는다. 여전히 건조하고 무감정한 얼굴로는 말의 의미를 읽을 수 없다. 그렇다고 더이상 설명도 해주지 않고 1층으로 내려갔으니, 다수의 경험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지금 다시 물어도 별다른 대답은 듣지 못할 거란 걸.
같이 내려온 코세이가 밥값을 치르려 하면 카운터에선 이미 값을 지불했다며 받지 않고, 나와서 요조라에게 주려고 해도 고개를 저으며 거절한다. 됐어요, 라는 말로 딱 잘라 거절하며 말한다.
어차피 써야 하는 걸 썼을 뿐이라며, 코세이가 내밀었을 것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저 따라올 테면 따라오고, 아님 말라는 식으로 걸어가기만 한다. 길 전체에 드리운 그늘 덕분에 식후 산책으로 딱 좋은 길이었을 것이다.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구불구불하게 내려가는 길을 따라가던 중, 얼마 전 이벤트에 대한 얘기에 코세이를 힐끔, 본다. 요조라는 그 이벤트로 원하는 것을 포함한 이것저것을 얻었기에, 대답은 금방 나왔다.
"목표였던, 향수랑... 이것저것... 얻었네요... 끝에, 포인트가... 잘 떠서..."
정말 운이 좋았다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었다. 종료를 앞두고 포인트가 거의 두배로 뛸 줄 누가 알았을까. 덕분에 용돈으로는 살 수 없는 고가의 향수와 스파권 등등을 교환했었다. 아, 맞다. 요조라는 걸으면서 어깨에 멘 가방을 앞으로 끌어와 안을 뒤적거린다. 여러 소지품이 달각대는 소리 잠시 나고, 뒤적이던 손은 얄팍한 봉투 쥐고서 가방에서 나온다. 그걸 그대로 코세이에게 내밀며 요조라가 말했다.
"이거... 줄게요... 드림캐쳐, 답례... 아직, 이었으니까..."
연한 녹색으로 물들인 종이 봉투는 사이즈가 딱 지폐나 상품권이 들어갈 정도다. 그렇다. 그 안엔 이벤트 때 교환한 2인 스파권이 들어있었다. 은은한 청귤향이 나는 봉투는 코세이가 받을 때까지 요조라가 들고 있었을 것이다. 얼른 받지 않는다면, 조금은 투덜대듯이, 팔 아프네... 하고 중얼거리는 걸 들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