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보다가 놓쳐버렸다. 미즈미의 손에서 탁탁 바닥치는 소리가 들려서 뒤늦게 고갯짓으로 쫓아보면 물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소라 껍질에 귀를 대보면 바닷물이 저 멀리서 밀려오는 소리가 들린다는데, 비록 미즈미는 강이였지만 물 밀려와 부딪히는 소리도 어느 정도 비슷하니까 강의 소리도 소라가 들려줄 지 모른다. 코로리는 인간계에 내려와 만나본 신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신의 능력을 본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신기해한다. 미즈미가 있는 곳 언저리에 손을 뻗어본다. 젖어서 색이 짙은 흔적도 없이 그저 바닥이었다.
"밋쨩이 사는 곳은 소라고둥이야?"
그래서 방금 파도 소리가 집으로 돌아가서 사라진 거지?! 분명 방금까지 물방울 튀는 소리가 났지만 물이라고는 없는 광경은 꿈 속에서나 볼 일인데!
"나는 선이 없으니까ー"
현실과 꿈, 코로리에게는 꿈 속을 돌아다니는 것도 현실이었다. 여기까지는 현실, 저기서부터는 꿈이라고 선을 긋고 다니는게 코로리여서 오히려 코로리 자신에게는 선이 없었다! 구분하고자 한다면 할 수는 있겠지만 딱히 그래야하는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인간계에 내려온 몇년 간은 현실임에도 꿈 같았다. 지금처럼 강의 신과 함께 벌청소를 도망치고,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다 넘어져버리더니 벚꽃잎을 떼어주는 일은 몇 백 몇 천 겪은 신계에서의 일상을 떠올리면 꿈같은 일이었다.
"응, 물기만 해야 할거야. 삼켜버리면 모자가 될 지도 몰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코로리는 미즈미에게서 떼어낸 벚꽃잎을 바라보다가, 손으로 잡지 않았어도 어쨌든 잡아낸게 아닌가 싶어졌다. 코로리는 미즈미가 뻗은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다른 손에는 벚꽃잎을 꼭 잡고 있었다. 미즈미에게 꽃잎을 보여주며 곤란할 것 하나 없다고, 걱정 드리운 그늘없이 말갛게 미소짓는다.
렌이 무얼 좋아하는지 알았더라면 그것들만 골라서 시킬 수 있었을텐데, 참 억울하다. 꽃점도 못 맞추는데 나는 어떻게 맞춰, 난 잠의 신이라구. 꽃잎을 떼다보면 해야할지 말아야할 지 갈리는데, 수많은 카페 메뉴를 하나하나 꽃잎을 떼어내며 주문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을리가 없다. 이 중에 하나는 웃는 꽃잎일 거라고 믿으며 시켰지만, 역시 많이 시켜서 0점짜리 주문인걸까 생각하니 우울해지고 침울해진다. 코로리는 신이라는 것도 들켰고, 어떤 신인지도 들켰는데 렌의 카페 디저트 취향을 몰라서 이렇게 되다니! 푹신한 소파에 앉는 소리가 기운없이 가벼운 소리가 난다. 코로리는 테이블에 영수증으로 만들어진 종이배를 세워놓나 싶더니 손가락 끝으로 톡 쳐서 넘어뜨려버렸다.
"응? 빙수도 케이크도 후링 씨거야!"
코로리는 많이 시켰다고 말했으니, 당연히 렌이 부담스러워하거나 곤란해할 줄 알았다. 그래서 먼저 종이배를 넘어뜨리고, 0점짜리 주문임을 확신하고 있었는데 딱히 그런 것 같지 않다! 나 새우잡이 배 안 타?! 0점짜리 배라면 제일 안 좋은 점수를 가진 배였고, 코로리가 아는 배 중에 두번째로 위험하고 못된 인식이 있는 배가 새우잡이 배였다. 제일 위험하고 못된 배는 해적선이었는데, 이미 후크 선장을 무찌르고 왔으니 해적선은 위험하지가 않았다. 때문에 새우잡이 배가 등장한 것이었는데, 0점짜리 주문이 아니라면 새우잡이 배를 탈 이유가 없다. 코로리의 눈이 깜빡깜빡 의문을 표한다. 손가락 끝이 종이배를 슬며시 세워본다.
어떤 것이 맛있을 지 몰라서 많이 시켰다는 걸까? 코로리의 말은 뭔가 모두 다 의문을 일으킨다. 명확하게 뜻을 알 수 없으니 곤란하기도 하나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 바탕에 깔려있는 감정이 투명하기 때문일까? 어쩌면 신의 대화법이란 그런 것인 거리도 몰랐다. 신탁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다 모호하지 않던가. 아무래도 렌은 신이라는 존재를 코로리밖에 못만나봤으니 모든 신의 기준이 코로리로부터 시작되는터라 다른 신들이 억울해할만한 오해가 쌓여간다.
코로리가 침울하게 소파에 앉아 영수증으로 만든 종이배가 픽 쓰러지는 것을 본다. 아니면 혹시 저게 새우잡이 배인가?
"...? 제 몫이에요?"
반문했다가 이어 말하는 뇌물이라는 말에 이제야 모든 게 이해된다는 듯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이 앞의 작은 신님이 제가 비밀을 지켜주길 바라는 의미에서 주문을 많이 했다가 제 눈치를 살핀 셈이었다. 빙수도 케이크도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잘 먹을게요. 하지만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을 것 같은데 나눠 먹을까요?"
혼자 다 먹을수 있는 양이었지만 그래도 혼자 다 먹는 것은 민망하다. 아무래도 코로리도 나눠 먹을 생각으로 사오지 않았을까. 아니, 조금 엉뚱한 면이 있던 것으로 봐서 제가 말하지 않으면 자신이 먹는 것을 멀뚱멀뚱 보고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수수꺠끼 같았던 말을 주고받다보니 주문한 것들이 다 나왔다고 알렸고, 렌은 코로리보다 먼저 일어나 쟁반 가득히 담긴 것을 가볍게 들고왔다. 아무래도 코로리가 들기에는 여러모로 걱정이 되어 선수친 것에 가까웠지만. 쟁반을 자리에 올려두며 렌이 가볍게 질문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코로리 씨가 ㅅ, 아니 그.... 피터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날 우연히 쌍둥이 분을 만났었거든요. 혹시 무슨 이야기 들으셨어요?"
신이라는 말을 꺼내면 안될 것 같아 고민하다가 서로간의 암호같은 말로 바꾸어 말했다. 아마 알아듣지 않을까 하고. 그 때 코세이 씨가 꽤나 친밀해 보였었지. 헤어지고 나서도 종종 실수한 건 없으려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친한 사이면 서로 비밀 같은 것도 공유할 것 같았으니. 작은 궁금증이었다.
내놓아진 결과에 눈썹이 꿈틀. 난생처음 맞이해보는 trpg 세계에서의 죽음이다. 죽음의 속성이 그러하듯 느닷없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며 찾아오는 것. 하지만 그렇다곤 하나, 이렇게 허무히 죽어버렸단 말인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게냐. 설마 이대로 끝인게냐...?"
시로하가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으로 물었다. 아니, 믿기지 않는다고 할지...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죽은 것을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놀이에서의 죽음은 곧 게임오버를 뜻하는 것이지만, 이런 류의 놀이를 접해본 적 없는 그녀로서는 더더욱 와닿지 않는 것이기도 한 것일테다.
그리고 웹박수로 사람들이 일상을 오래 붙잡는 경향이 좀 많다보니 사실상 일상을 돌리려고 해도 돌리기 힘들다는 건의가 하나 들어왔는데..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텀이 다 다르기도 하고 그렇다보니 뭐라고 하기는 좀 힘들기도 하고.. 제가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돌린 것이 좀 너무 길어졌다...라고 느껴진다면 둘이서 협의해서 적당히 마무리 짓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래서 제가 사쿠라마츠리 때도 그 상황으로 돌릴 수 있는 마지노선 기간을 주기도 했고.. 아무튼 일단 문의가 들어왔으니 제 생각을 말하자면... 텀이 있으니까 그걸 딱 기간으로 정하긴 힘들고.. 그래도 너무 길어지면 두 사람이 협의해서 적당히 끝내는 쪽으로 가는 것도 답안이라고 말씀을 드릴게요. 사실 캡틴은 2주~3주동안 한 사람하고만 한 일상을 계속 돌리는 그런 것이 아니면 크게 붙잡고 싶진 않기도 해서..(시선회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