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당연히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은 전부 다 인간이다. 어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당연히 사망하면 끝. 더 이상 진행을 할 수가 없다. 어쩌면 차라리 빨리 캐릭터가 사망한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계속 다른 사람이 하던 캐릭터로 계속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러다가 원래 플레이어보다 더 많이 진행하게되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도 하고..
"마지막에 운이 안 좋았네요. 성공만 했다면 상대를 이길 수 있었을텐데."
하필이면 거기에서 대실패가 뜨는건 무어란말인가. 하지만 이것또한 trpg의 묘미. 운빨망겜이다.
"어, 어쨌든 이런 전투도 있고 특정 지역을 탐험해서 어떤 일이 일어난건지 알아보거나 해서 즐기는겁니다."
아. 저건 텀의 문제라기보다는... 한 일상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으니 일상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이 일상을 구해도 돌릴래야 돌리기가 힘들다는 뉘앙스의 말이기 때문에. 그런 쪽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캡틴은 진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2~3주 동안 혼자서 독점하는 그런 느낌만 아니면 크게 잡을 생각은 없어요.
렌의 반문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었다. 싫어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걱정과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섞였다. 코로리는 굳어있지도 웃지도 못했고, 우물쭈물 갈팡질팡거리는 심정이 얼굴에서 다 보였다. 여즉 그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고, 렌이 조그맣게 웃음을 터트리면 팡 하고 터진 폭죽에서 내린 종이 꽃가루 하나가 머리 위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 웃는다거나 싫다고 말하지 않는다거나, 잘 먹겠다는 인삿말까지! 웃는 꽃잎이지! 코로리도 방긋 웃었다.
"응! 다음에는 렌 씨가 제일 좋아하는 꽃들만 데려올게."
오늘도 나쁘지 않은 뇌물, 음식 공세였지만 다음에는 기필코 좋아하는 음식들로 렌이 혼자 먹을 수 있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만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꽃점을 보는 족족 성공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리는 나눠먹기로 한 디저트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딸기 빙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이 올라가 그 위에 딸기 하나가 장식을 하고 있었고, 층층이 과일이 쌓여있는 생크림 케이크도 위에 딸기 하나가 동그러니 올라가 있었다. 초콜릿케이크의 위에는 초콜릿 장식이 있었다. 위에 올라간 딸기들이랑 초콜릿, 렌 씨가 먹게 해야지! 나눠먹기로 했어도 뇌물은 뇌물이니까!
"그 날, 그."
후링씨 비행기야?! 코로리가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나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서 휑하니 떠나버린 렌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영수증을 배가 아니라 비행기 모양으로 접었어야 싶었다. 렌이 돌아오면 물어보려고 했는데, 자리로 돌아오면서 먼저 질문을 받아버렸다. 선수를 두번이나 뺏겨버린 코로리는 입술을 삐죽이고 싶었는데, 렌이 물어본 이야기가 입술 삐죽이지도 못 하게 했다. 인간에게 정체를 들킨 날이자, 쌍둥이를 화나게 해버린 날이고 혼난 날이었다. 이야기를 들었다면야 렌과의 일을 사실대로 고하고 혼난 이야기였다. 추욱 처졌다. 화해하기는 했어도 세이 안경 벗었다구! 울음 꾹 참았었기 때문에 방글방글 웃을 수는 없었다.
"세이한테 혼났, 아. 세이오빠ー 쌍둥이 오빠한테 혼났지이."
쌍둥이의 애칭과 렌의 성이 같아서 쌍둥이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고 바뀌었다. 코로리는 혼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시선 떨군채 눈 깜빡이자니, 렌 때문에 혼났다는 것처럼 들릴까봐 퍼뜩 고개를 들고 렌과 눈을 맞췄다.
두 번이나 보긴 했지만 별은 계절에 따라 볼 수 있는 종류가 달라지곤한다. 1년 내내 볼 수 있는 별자리가 있는가하면 각각의 계절에만 볼 수 있는 별자리들도 있으니까. 마주친 두 눈은 빨려들어갈 것 같이 검었다. 어쩌면 내 본 모습일때의 머리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추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말했다.
" 제가 마음대로 하는 것과 호시즈키양이 그것에 응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하니까요. "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건 내가 혼자하는 일만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여기에 오는 것도 그녀가 싫어했다면 따라 오지 않았을 것이다. 막무가내처럼 보여도 남이 싫어하는 짓은 하지 말자는 주의기도 하고. 바람에 흐트러지는 앞머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정리한다. 여전히 아무런 흥미도 없는 눈이다. 이러니까 좀 호승심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으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 제가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은 하지만요. "
그야 나는 이곳에 속한 존재가 아니니까,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걸 의미하는게 아니라는걸 잘 알고 있기에,
" 그게 호시즈키양이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자부할 수는 없겠네요. "
시켜둔 에이드를 한 입 마시면서 목을 축인다. 평소에 즐겨먹는 볼로네제 스파게티를 포크에 돌돌 말아 한입 먹어본다. 그렇게까지 맛있지는 않네. 맛집은 아니고 그냥 뷰가 좋은 식당이라고 머리에 넣어둔다. 여기도 언제 다시 와볼지는 모르겠지만 리리도 데려오면 좋아하지 않을까. 그렇게 음식을 천천히 먹던 도중 무언가 생각난 나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 호타루마츠리날 저녁에 시간 있으면 같이 구경가지 않을래요? "
나도 낮에는 하는 일이 있으니까 저녁시간밖에 시간을 내지 못한다. 하지만 애초에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더 활발해지니까 나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정이다.
" 이것도 제 마음대로 한번 말해보는거에요. "
그리고 이걸 받아들이는건 요조라의 의견에 달린 일이다. 이걸 강제하고 싶은 마음도 이유도 없으니까. 열린 창가로 바닷바람이 한번 더 살짝 불어온다.
욕심, 또 욕심인 건가. 사람은 누구나 욕심쟁이라지만 그걸 스스로 말하지는 않는다. 바람이 있어도 없는 척, 원해도 아닌 척, 가끔은 자신의 진심에도 눈을 돌리며 솔직해지지 못 하는게 사람이다. 어쩌다 말해도 당당하지 못한 사람 역시 대부분인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요조라는 코세이를 보며 그리 생각했다.
코세이가 마음대로 하는 것과 요조라가 그에 응하는 것은 별개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같이 온 것도 결국 요조라가 응했기 때문이라는 걸까. 마음대로 하라는 말이 그런 의미였던가. 요조라는 쉽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면 따라올 걸 알고 있었으니까. 알면서 말했고, 정말로 따라오는 걸 봤을 때, 요조라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조용히 말줄임표를 붙인다.
나온 음식을 먹는 동안 요조라는 별다른 말을 꺼내진 않았다. 평소 느릿한 행동과 달리 식사속도는 보통 사람들과 비슷했으니, 코세이의 볼로네제와 요조라의 나폴리탄은 비슷하게 줄어갔을 것이다. 코세이가 무슨 말을 하던, 묵묵히 포크에 스파게티면 감아서 입으로 가져가던 요조라의 손이 잠시 멈칫한다. 멈칫, 한 순간 포크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 그릇 가장자리에 부딪힌다. 일순 달그락 소리 나고, 멈춰있던 요조라는 천천히 손 내려 놓친 포크를 다시 쥔다. 이미 말아놓은 면을 조심히 입에 넣으며 그대로 식사를 이어갈 줄 알았으나, 소리 없이 음식을 삼킨 요조라는 손을 멈춘 채로 입을 열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