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생각하시는 거네요.." "그건 그래요. 같이 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하지만.." 아직 교우관계가 그렇게까지 깊은 분은 거의 없는 느낌이더라고요. 라고 말하다가. 어라. 장난스럽게라도 말할 만한 분이 회장님이라니. 나 너무 공부에만 매몰되어 있었나? 라고 깨달았다는 듯 말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그렇겠지요? 대신하는 건 영 그렇긴 해요" "유즈키가 있었으면 그냥 바로 같이 가자고 말하는 건데 말이지요" "좋은 기회였을 테지만.. 같이 본 것들은 좋은 풍경이긴 했으니 괜찮았겠지.." 작년에는 못했다는 것에 아쉬운 듯. 아쉽지 않은 듯.. 그 애매한 표정을 짓다가..
"저야 작년엔 가미즈미에 없었으니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는 문제없이 진행된다면 혼자도 괜찮겠네요. 어쩌면 누군가에게서 같이 가달라고 할지도 모르거나.. 아니면 우연한 만남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라고 말하고는 중고거래 같은 데에 디저트 2인권은 올릴까 고민합니다.
생판 처음 듣는 이름인 유즈키의 등장에 아키라는 살며시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자신이 학생회장이라고 해도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냥 그의 교우관계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역시 일반적이겠거니 생각하며 아키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애초에 잘 생각해보면 있었으면 이라고 말을 했으니 지금 여기에는 없는 사람이니 다른 곳에 있는 친구겠거니 하며 그는 금방 결론을 내렸다.
"우연한 만남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마츠리에서 만나는 인연은 괜히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렇다면 자신에게도 그런 인연이 있을까? 아니. 그런 것은 굳이 생각하지 말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정작 자신은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결국 자신은 일을 돕는다고 바쁘니 아마 시간적으로 안되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다시 도착했고 이내 그는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결론으로 돌아섰다. 기회가 있으면 말은 해보겠으나 없으면... 뭐, 어쩔 수 없지 않을까? 그렇게 가볍게 결론을 내려보며 아키라는 다시 쭉 기지개를 켰다.
"아. 참고로 북쪽 산에 있는 동굴에 위치한 성스러운 샘은 진짜 크고 넓거든요. 가끔 거기서 수영을 하려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거기서 수영을 하면 큰일나요. 저희 부모님도 다른 것은 다 그냥 넘어가도 거기서 그러는 것은 진짜 무서워지기 때문에."
어쩌면 경험이 있었던 것일까? 말을 하던 아키라는 오한이라도 든 듯, 자신도 모르게 몸을 아주 가볍게, 살살 떨었다.
아가를 만났던 곳이, 여기서 왼쪽이니까ー? 코로리는 길치라기보다는 목적지로 가야하는데 이곳저곳 발이 빠지는 곳이 많았다. 가는 길에 있는 조그만 가게, 벽돌이 예쁜 담장, 아름드리 그늘을 펼치는 나무 아래에 발이 묶이고는 해서 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길 자체는 잘 찾아가고 있었고, 지금도 어디서 길을 새었는지 되짚어보며 다시 카페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치만 아가가 악몽을 꿔서 잠에서 깼다구. 다시 자장자장 해줄 수 밖에 없었다구! 그렇지만 아무래도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길목을 노니는건 길 잃은 것처럼 보이기 십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코로리는 자신이 어딘가를 향할 때 남들보다 시간이 배로 든다는 것을 알아서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출발했다는 것이었다. 다만, 렌은 코로리에게서 약속까지는 너무 이른 시간에 코로리가 지금 출발한다고 보낸 메시지를 받았을 것이다.
"여기서 오른쪽이다!"
소곤소곤, 길찾기 성공과 함께 무사히 약속 시간 내에 카페에 도착하기 또한 성공이었다. 더위를 타는지라 그늘로 이동하던 코로리는, 카페 앞까지도 그늘 속 아래로 쏙 들어갔다. 이리저리 조금 많이 걷기는 했지만 학생 구두 대신 단화를 신고 있어서 앉고 싶다는 생각은 덜했다. 자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하고 있었지만, 후링씨랑 친구하려면 참을 수 있어! 비밀 유지를 위한 속셈이 또렷하다. 아무튼 약속 장소에 무사히 도착한 코로리는 폰을 꺼내 들었다. 렌이 이미 도착해서 카페 안에 있는지, 오고 있는 중인지 등을 확인하려면 연락을 해야만 했으니까! 코로리의 폰 화면에 후링씨라고 적힌 통화 연결 화면이 뜬다.
"아...." "전애인이네요." 되게 폭탄발언 같은데 굉장히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토와입니다.
"우연히 이름이 같았던 존재였긴 했네요..." "우연한 만남... 그것도 사실 나쁘지는 않겠네요" 그렇지만 이름이 같다는 말에서는 약간 아련해보이는 표정을 짓고는. 토와는 씨익 웃고는 성스러운 샘이라던가. 수영이라던가라는 말을 듣고는 아키라를 다시 봅니다. 약간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습니다. 살살 떠는 것도 그렇고...
"....경험이 있는 것처럼 들리는 말이네요." 수영은 그닥 잘하진 못해서요. 라고 말하는 토와입니다. 그야. 배운 적도 없는데 잘하면 그건 사기지. 운동치는 아니지만 수영과는 큰 연관은 없었다..
"안되는 건 팜플렛이나.. 주위 표지판에 설명되어 있겠죠..?" 그런 샘에서 물을 떠다 마신다거나 발을 담근다거나 그런 것을 상상한 모양입니다.
뭔가 엄청난 것을 들어버린 것 같아 아키라는 순간 움찔했다. 아니. 그보다 전애인이라면 이미 헤어졌다는 건데 아무렇지도 않게 마츠리를 보자고 권유를 할 수 있는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괜히 고개를 또 살며시 기울였다. 자신은 어떠한가? 자신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 날 이후로 자신은 단 한 번도 연락을 한 적이 없고, 그녀 쪽에서도 자신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정말로 그 이후로는 단절되었기에. 지금까지 잊고 있었을 정도로.
"...대단하시네요. 토와 씨는."
괜히 그런 말을 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 씁쓸하게 느껴졌다. 허나 곧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평소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온 아키라는 들려오는 말에 살며시 시선을 회피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적어도 자신의 입으로는 그 진실을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 시절, 거기서 수영을 했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만인이 사용하는 물의 근원에 이게 무슨 짓이냐면서 엄청 혼이 났던 것을 떠올리며 아키라는 괜히 다시 한 번 몸을 약하게 떨었다.
"동굴 안이니 팜플렛이나 표지판은 없어요. 대신에 시미즈 가문의 사람이 옆에 서서 안내를 하거나 설명해줄 거예요. 물을 마시는 것까진 괜찮지만 떠가는 것은 안되고 수영도 안되고 발을 담그는 것은 안돼요. 아. 뜬 물로 손을 씻는 것까진 괜찮아요."
그리고 아마 자신도 며칠 정도는 거기서 일을 돕거나 안내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즉. 우리 학교에서 누군가가 페어로 온다면 어지간하면 제 눈에는 포착이 된다는 이야기죠."
"...뭔가 전애인에게 마츠리를 보자고 말할 수 있다니. 같은 생각을 하신 것 같은데요" 상식적으로 당연한 반응이므로 토와가 그런 반응을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 말이지만..." "부탁을 한다면 응해주겠다고 한 건 그쪽인걸요." 그게 마츠리이던. 심지어 마음을 바꿔서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라고 한 건. 그 존재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단하다는 말을 하는 쓴 표정의 아키라를 보고는 글쎄요...라고 옅은 미소와 함께 말끝을 흐립니다.
"그런가요.. 물을 마시거나 뜬 물로 손을 씻는 정도라." 그정도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에..." 페어로 오면 눈에 띈다니. 너무하네요. 라는 말을 하지만. 사실 신경 안 씁니다. 와 나빴다.
"저야..우연히 만날 확률이 더 높겠지만.." 같이 온 이들 중에 같은 학교나 반이 있으면 관심이 가려나요.라고 생각하면서 쇼핑백을 흔들며 저는 이제 기숙사에 놓아두러 가야겠네요.라고 말하려 합니다.
뭔가 속을 파해쳐진듯한 기분이 들어 아키라는 살며시 시선을 회피했다. 아니. 내 얼굴이 그렇게 읽기 쉬웠나? 나름 포커페이스를 지켰다고 생각했는데.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지만 그 목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일은 사실상 없었다. 허나 한가지 확실한건 그 역시 전 애인과 마냥 좋게 깔끔하게 헤어진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아키라는 어느 쪽이 더 쓰린가..같은 것을 잴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잴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아무튼 너무하다는 말을 하지만 아키라는 역으로 비밀은 지킬거니 별 문제는 없다고 두 어깨를 으쓱했다. 애초에 마츠리는 친구들끼리도 자주 오는 것이니 설사 자신이 본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없지 않나 하는 마음이 더 크기도 했고.
"사실 온다고 해도, 저는 전교생을 모두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그래봐야 저희 반 멤버들과 몇몇 아는 다른 이들 정도만 알 것 같네요."
학생회장이 모든 전교생을 다 외우는 것은 사실상 만화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은 그 정도 능력은 아니었기에 괜히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젓다 이내 그가 기숙사로 가야한다고 말을 하자 아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들어가보려고요? 그러면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오늘 당첨 많이 된 거 축하하고요."
이어 그는 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토와에게 작별인사를 보냈다. 또 학교에서 보자는 말을 하면서.
양호실에서 코로리를 만나고 난 뒤로 시간이 꽤 지났다. 그 때는 봄이었는데 벌써 여름이던가. 아직 초여름이지만 후덥지근한 날씨에 벌써부터 여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코로리와 메시지를 몇 번 주고받다가 이전에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고, 어쩌다보니 주말 느즈막한 오후에 약속을 잡게 되었다.
사실 상담을 받는다고 했어도 그냥 학교 내의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하게 되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외곽의 카페까지 오게 된 것에 조금 민망함도 있었다. 마치 데이트 신청같은 느낌이지 않던가. 아니 그런 이야기를 하기엔 상대는 신님이니까 아무런 상관이 없을 지도 몰랐다.
생각보다 일찍 출발한다는 코로리의 연락에 렌은 너무 거리가 있는 곳으로 약속 장소를 잡은 것이 아닌가 고민하며 렌 또한 일찍 집을 나섰다. 흰색 무지티에 짙은 갈색의 면바지를 입은 렌은 생각보다 더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해버려서 카페에 양해를 구하고 안에 들어와서 코로리를 기다렸다. 이내 약속시간이 가까워지자 카페 창 밖으로 코로리의 모습이 보였다.
일어나서 문으로 향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코로리가 먼저 전화를 했는지 렌의 휴대폰이 웅웅 울렸다. 코로리 씨, 라고 적힌 휴대폰을 받는 대신 문을 열면서 렌이 코로리에게 인사했다.
“저 여기 있어요. 좋은 오후네요, 코로리 씨.”
렌이 작게 웃으면서 들어오라는 듯 문을 활짝 열었다. 코로리가 안으로 들어온다면 이어 물었을 것이었다.
“집이 여기서 먼 편인 거에요? 좀더 학교랑 가까운 편이 좋았으려나요.”
렌이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학교랑 가까우면 또 학생들을 마주칠까봐 일부러 먼 곳으로 온 것인데 그것 때문에 불편했다면 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또 딸꾹질이야ー! 첫만남이 어땠는지 상기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폰 너머에서는 착신음 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들려온 렌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버렸다. 일부러 일찍 나섰고 약속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렌은 그것보다도 더 일찍 도착해서 카페에 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리 없다! 놀라서 폰을 놓치지 않게 꼭 잡았고 딸꾹질 소리가 새지 않게 입을 틀어막았다. 딸꾹거리는 몸까지는 숨길 수 없었고 코로리는 동그란 눈으로 렌을 바라본다. 양호실에서와 다른 점이라고는 옷 정도였다. 교복의 하얀 셔츠 대신 하얀 원피스다.
"후링ー 렌 씨, 안녀엉."
또 딸꾹질 해버리고, 렌의 상담이라는게 어떤 건지는 몰라도 신한테 하는 상담인 건데, 나 오늘도 위엄 바닥이잖아! 멋진 신처럼 보이는 연습이라도 해야했었나 싶고, 존경받는 신이 어딨는지라도 수소문해서 찾아가 겉흉내라고 내볼 것 그랬다 싶다. 지금 코로리가 할 수 있는 건 생글생글 눈웃음 지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뻔뻔한 척이었다! 카페 안으로 걸어들어갈 때 딸꾹거리지만 않았다면 안 들킬 수 있었을 지도 모를만큼 훌륭한 뻔뻔함이었다.
"아냐! 그ー"
오는 길게 귀여운 뜨개 장식을 걸어둔 가게를 봐서 구경을 했다거나, 크게 그늘을 펼친 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나뭇잎 틈새로 비치는 햇빛이 파랗게 반짝이는게 예뻐서 멈췄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할 수 있었다. 다만 오는 길에 어떤 아기가 악몽을 꾸다 낮잠을 설쳐 울길래, 몰래 악몽없이 다시 잠에 들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이야기는 이렇게 할 수 없었다! 카페에서도 외진 곳에서 속삭거리는게 아닌 이상 선뜻 입을 열지 못했고 그저 딸꾹거렸다.
"후크 선장을 무찔렀어."
렌이 코로리가 웬디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해서, 아마도 신이라는 정체와 관련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라고 예측하길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