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한숨을 쉬고, 딱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는데도, 어쩜 저렇게 한결같을 수 있을까. 요조라는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정말 보기 드문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이니까 한계는 있을거고, 요조라는 가만히 기다릴 뿐이다. 상대가 이제 됐어, 라고 말하는 때를.
"그래봐야, 기분탓... 이겠죠... 패턴은, 그대로니까..."
최근 잠을 잘 자게 되었어도 패턴 자체가 바뀐 건 아니니, 잘 잔다는 느낌도 그저 기분 탓일거라고, 요조라는 말했다. 날씨도 풀렸고 계절도 벌써 여름이니까, 그래서일거라고, 한낱 드림캐쳐가 뭐 그리 대단하겠냐고 생각한다. 그러다 시선이 느껴지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 옆으로 굴렸다가 되돌린다. 정면 어딘가, 도로 저 멀리 어디쯤을 보며 말한다.
"그러세요... 이 정도면, 저한테는... 딱인데..."
코세이가 무슨 볼일이 있는지 어딜 가는지는 요조라에게 전혀 관심사가 되지 못 했다. 애초에 마주칠 걸 생각도 못 했는데, 갑자기 마주쳤다고 해서 없던 관심이 생길 리가 있을까. 요조라는 날씨가 덥다는 둥 하는 말에 자신은 지금이 좋다며 정반대의 말을 하고, 타야 할 버스가 제법 걸리는 것을 확인했다. 어차피 오늘은 남는게 시간이니 얼마가 걸리든 상관없다. 대신 자리를 조금 옆으로, 코세이와 반대쪽으로 한칸 정도 옮긴다. 앉았던 자리에 가방을 살짝 내려두고 대답한다.
"점심은... 갈 곳이, 있어서요..."
오늘 중에 정해진 예정은 없었지만 점심을 먹으러 갈 곳은 미리 정해뒀었다. 꽤 전부터 벼르던 곳이라, 오늘 하루가 엉망이 되어도 거기만큼은 꼭 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따로 볼일이 있는 코세이와는 같이 먹을 수 없겠다는 말을 하곤, 요조라는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 기분도 컨디션에 영향을 끼치니까요. 기분탓이어도 그렇게 느껴진다면 컨디션에도 분명 영향이 갔을거라고 생각해요. "
물론 정말 기분탓일리는 없다. 그렇게 치부하고 있을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그걸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테니 웃어넘길뿐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보니 그냥 저 멀찍이 보고 있는듯했다. 여전히 재밌는 소녀라고 생각하면서 입가의 미소는 조금 더 짙어진채로 그녀의 말에 답했다.
" 확실히 저번엔 추위를 좀 타는 편인것 같았으니 여름이 괜찮으실지도 모르겠네요. "
으 태양빛이 강하다. 이럴줄 알았으면 모자 같은거라도 쓰고 오는건데. 하필 햇빛의 위치가 버스 정류장 안쪽에는 그림자를 지게 하지 않아서 직사광선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정말 태양의 신님, 이 빛 좀 어떻게 해주시면 안될까요하고 마음속으로 작게 빌어보지만 안된다고 하며 호쾌하게 웃는 그분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와 거리를 두며 앉고서는 그 사이에 가방을 둔다. 더운 마당에 붙어 앉을 생각은 없었기에 가방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나도 정면을 바라본다. 아스팔트 도로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간간히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지독한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 오 ... 혹시 뭐 먹으러 가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
점심은 따로 갈 곳이 있다는 말에 물어본다. 나중에 검색해보고 괜찮다싶으면 리리라도 데려가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가미즈미 마을에 내려온지 3년차이지만 역시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니트족과 가까운 생활이라 안가본 곳이 생각보다 많았다. 물어봐도 안알려줄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거절은 이미 익숙하다.
" 같이 가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건 불편하실 것 같으니까요. "
슬쩍 떠보기는 하지만 확률 낮은 도박이다. 어차피 밖으로 나온 이상 점심은 해결하고 들어가야했기에 기왕이면 누군가와 같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게 요조라가 될지는 몰랐지만.
말이라면, 무슨 말인들 못할까, 요조라는 그 한마디가 목끝까지 올라왔지만 그냥 삼켰다. 일일이 대꾸 해봐야 체력 낭비다. 오늘은 이제 시작했을 뿐인데, 여기서 기운도 체력도 다 쏟고 돌아가는 바보 같은 짓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오늘, 잠도 안 자고 나온 의미가 없어진다. 요조라는 오늘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기 싫었다.
"그러세요."
그래서 다소 딱딱하게, 말끝이 늘어지지 않는 한마디를 툭 던졌다. 바보 같은 언쟁은 싹이 트기 전에 잘라버리는게 좋으니까.
추위에 약한 요조라가 여름에 강한 건 맞지만, 그래도 한여름에도 남들과 비슷하게 더위를 탄다. 하지만 꼭 있다. 겨울에 약한 사람은 여름을 잘 버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이 사람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눈을 가늘게 좁히며 옆으로 흘겨보는 시선은 그런 의미였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죠..."
그 생각을 꼬집듯이 말하고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린다. 요조라는 가장자리에 가깝게 앉아서인지 얼마 되지 않는 그늘이 얼굴에 드리웠다. 덕분에 따가운 햇살을 어느 정도 피하며, 다시금 버스 전광판을 본다. 시선을 전광판에 둔 채 말한다.
"갈 곳, 이, 있댔지... 먹을 걸, 정했다곤... 안, 했어요..."
요조라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갈 곳이 있다고.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는게 뭘 먹을지 정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요조라가 그곳에 가려는 건 그 장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소에 의미가 있지, 뭘 파는지는 부가적인 요소라 생각해두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말한 요조라는 하, 작은 한숨을 다시 내쉰다. 표정이 바뀌었을 것 같지만, 고개를 제법 크게 돌렸기 때문에 보이는 건 늘어진 검은 머리 뿐이다.
"일,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의미, 없는, 소리... 적당히, 하세요..."
그런 대화 도중, 때마침이라고 해야 할지, 전광판으로부터 타야 하는 버스의 도착을 알리는 안내가 나온다. 요조라는 기껏 내려놓았던 가방을 다시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서서 버스가 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듣던지 말던지, 하듯 중얼거린다.
"아니면, 전처럼, 마음대로, 하시던가..."
버스는 곧 도착한다. 요조라는 하얀 가방의 끈을 어깨에 걸고 서있다가 버스가 멈추면 천천히 올라탔을 것이다. 그리고 비어있을 뒷자리 2인석으로 가 창가쪽에 앉아, 익숙하게 시선을 창 밖으로 향했을 것이다.
최-상위권 학생 치고는 매우 효율적인 수면으로 잘 자는 편이긴 하죠..?(1시 2시까지 공부하고 6시에 깨는 이들이나. 게임하느라 밤샐 뻔하는 이들을 감안하면) 1시 2시.. 거의 3시까지 공부하고 6시에 깨고 그러는 학생으로 어긋나기를 바라시는 건가요? 라고 조금 장난스럽게 묻겠네요~
유난히 더위에 약한 편이었다. 겨울은 햇빛의 기세가 약한데다 기온도 낮으니 잘 견딜 수 있지만 여름은 그게 안되니까. 그렇다고 추위를 덜 타는건 아니고 그냥 여름이 겨울보다 더 싫은 것뿐이다. 휴, 얼른 버스가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녀가 바라보는 눈빛을 보긴 했지만 모른척한다.
" 아, 점심에 간다길래 맛있는 곳이라도 가시는줄 알았어요. "
맛집이 아니었구만. 조금 부끄러워져서 볼을 긁적인다. 사실 모르는 맛집을 알 수 있는걸까, 하는 기대도 약간 있었기에 더 그랬다. 한숨소리가 들려왔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모른척한다. 싫었으면 진즉에 대화를 끊고 갔을 사람이라는걸 이젠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아서 그랬다.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얘기겠지.
" 엑, 의미 없는 소리나 하는 실없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에요. "
아무 말이 주저리주저리 내뱉는 것 같지만 모든건 목적이 있고 의도가 있는 말이다. 애초에 학교에선 남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도 많이 없고 어디까지나 들어주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너무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으면 먼저 말을 걸곤 하지만 ... 아, 그런 모습을 보여준적이 없어서 그런가. 하지만 뒤이어서 나온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 그럼 오늘도 같이 실례 좀 해도 될까요? "
괜히 즐거운 느낌이 들어서 싱글벙글한 미소와 함께 정류장으로 오는 버스를 바라본다. 마침 더위에 지쳐가고 있을 때라 나이스 타이밍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를 따라서 버스를 올라탔다. 무더운 날씨라 버스 안은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두고 있었고, 차가운 공기는 마치 생명의 기운처럼 느껴졌다.
" 생각해보니 이번 호타루마츠리에도 노점으로 나오시겠네요. "
뒷좌석 창가쪽에 앉은 그녀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고서 물었다. 저번 마츠리에도 나왔으니 이번에도 노점으로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대목을 노릴 수 있는 기회인데 그날 노점을 나오지 않는 상가가 드물기는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