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이란 갈피를 못 잡을 때 찾아드는 시련 같은 거라 생각하니까요" 약간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무엇을 보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조심스러운 우산의 물이 떨어지는 걸 보고는 토와도 둘에게 잘 안 튈 법한 곳으로 살짝 기울여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도록 했다. 후미카가 질문하는 것에 어쩐지 굉장히 늦게 말해진 것 같다. 라는 감상이 있었을까?
"가미즈미 고교에 다니는 토와 엔이라고 해요." 그렇다면 저도 통성명을 부탁드릴까요? 라고 말하며 이름을 이야기합니다. 미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바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여름? 짠물? 넖게 펼쳐진 푸른색? 커다란 배와 상어? 어찌되었건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먼저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어쩌면 그런 존재들을 알고있지 않으니까 바다에 대한 막연한 상상만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걸까?
그것들을 의식하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는 미지의 생물들이 넘실거리는 물속에서 언제 다리를 잡아챌지 모르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녀의 경우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우리가 길거리를 지나며 마주치는 여러 사람, 그들의 반려동물, 차도를 스치는 크고작은 차량들,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에 일일히 놀라지 않듯 그녀는 제 주변에 물고기가 기웃거리다 간대도 아무렇지 않을것이다.
무엇이 위험한지, 무엇이 안전한지는 대강 알고있을 뿐더러 애초에 위험한 행동 자체를 하지 않는게 그녀의 신조니까.
...라곤 해도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오래 있던 탓인지, 뭍으로 올라왔을 때에는 이미 하늘마저 점점 파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어둑해지진 않은 적당히 노을진 하늘, 들어가기 전까진 그래도 몇몇 무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는 그 주변을 돌아다닐뿐 모래사장까진 발을 들이지 않거나 행여 거기까지 들어왔다 해도 갑자기 물속에서 나오는 여자애를 보고 흠칫하던가 나와서 몸을 말리고 있을때를 겨우 본 정도일까?
그녀와 눈을 마주친 이가 어느 타이밍에 왔건, 시선이 맞닿았을 때에는 서로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바쁜 눈빛이 오갔을 것이다.
호타루마츠리는 유일하게 시미즈 가문이 주최하고 진행하는 마츠리였다. 그런만큼 당연히 아키라는 이 시기가 상당히 바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원래라면 이렇게 바쁘진 않았으나 올해부터는 자신도 호타루마츠리를 본격적으로 돕게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하는 일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북쪽 산에 위치한 동굴에서 성스러운 샘을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동굴에서 나와 길을 쭉 걸어가면 반딧불이들이 많이 모여있는 길목이 있으며 그 길목에서 반딧불이를 구경하다가 쭉 내리막길을 통해 내려오면 '호타루노히카미'를 모시고 있는 신사가 나오며, 그 신사의 계단을 따라서 쭉 내려오면 바로 이 해안가까지 오게 되는 직선형 루트였다. 그리고 아키라는 혹시나 위험요소가 없는지, 잘 다닐 수 있는지. 그것을 체크하기 위해서 북쪽 산에 위치한 성스러운 샘이 고여있는 동굴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었다.
일단 루트상 큰 문제는 없었기에 그 부분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크게 하품을 하며 쭉 기지개를 켰다. 그러는 와중 바다에서 막 나오고 있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학생의 모습이 그의 눈에 비쳤다. 마을 사람인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자신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먼저 저쪽에서 말을 걸었으니 자신은 그 말에 대답하는 것이 맞겠거니 생각하며 아키라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네. 안녕하세요. 바다에서 수영하고 있었나봐요? 바닷물 온도는 좀 괜찮아요? 이제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차가울 것 같은데."
더위가 주변을 후끈하게 달아오르게 하기까진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그 전에는 아무래도 바닷물이 차갑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키라는 별 의미는 없을지도 모르나 그렇게 물었다.
"여기서 갑자기 개가 나온다는 말이냐?! 으음, 역시 그냥 도망가게는 두지 않는구나..."
팔짱까지 낀 채 고민에 접어드는 그녀. 사냥개의 등장은 확실히 갑작스러운 것이다.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 상대는 단순히 활만을 쏘는 상대가 아니었던건가. 강의 물살을 가로지르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터이니... 게다가 그 앞은 황무지이니 건넜다 하더라도 문제로다. 또한 캐릭터인 무인은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 그런 잠시간의 고민 끝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곳에서 기다리다가 먼저 덤벼오는 사냥개 하나를 빠르게 베어버리자꾸나."
짐승을 이용한 공세는 확실히 위협적이나, 달리말하자면 이성이 없어 깊은 꾀를 꾸미려 하지 않는다. 한 쪽을 빠르게 제거하여 1:1의 상황을 만드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말하자면 역으로 기습하는게다."
모공(謀攻). 손자병법이 그러하듯, 싸우기로 결심했다면 기지를 최대한 발휘하는 것. 쫓기고 있다는 상황을 이용하여 공격의 선두를 잡는다. 물론 이것이 잘 통할지는 주사위의 농간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지만.
사실 입을열어 먼저 인사를 한것은 큰 이유는 없던 그녀였다. 단지 어쩌다가 눈이 마주쳤을 뿐이고, 상대방도 저처럼 학생인것 같았기에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넸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그게 영 틀려먹은 생각은 아니었는지 상대방 또한 가벼운 목례와 함께 인사가 되돌아온 것이다.
"아, 자주 하는 버릇이어서 말이죠~ 수영... 이라기보단 저 아래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들어간 것에 가깝겠지만요~"
당연하게도 자신의 차림새 하며 행동역시 누가 봐도 바다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살갑게 웃어보이며 이어진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듯 한손을 입가에 가져다대었다.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현대의 소년치고는 꽤 원숙하고 굳센 생각이다. 그런 삶의 태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의지를 바로 세우고 북돋는 데는 시련만한 고난도 없으니까. 후미카는 말을 뱉은 후 가만히 생각을 하다, 자신이 결론만 툭 던져 말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대뜸 가미즈미 학교 얘기만 한 건 뜬금없게 보일지도 모른다. 검지로 턱을 짚은 채 생각을 하다 상대방의 물음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곳에 다니니 그렇다면 언젠가 다시 마주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서 말이야. 토미나가 후미카라 한단다."
말을 하고선 한 차례 뒤를 돌아보았다. 주변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해본 것이다. 이제는 이름을 알게 된 토와처럼 모르는 사이 또 길을 막고 있지는 않았을까 해서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후미카는 드리운 넝쿨 앞을 벗어나 길 가운데로 나왔다. 능소화도 크게 자라면 나무라, 으슥하게 드리운 꽃 그늘을 벗어나니 주변이 새삼스레 밝게 느껴진다.
"돌아가야 한다 했었지? 내가 오래 잡아둔 게 아니었으면 좋겠구나."
이런 때에는 으레 잘 부탁한다거나 헤어지며 잘 가라는 인사말이 나와야겠지만 그런 말을 해줄 만큼 후미카는 성격이 싹싹하지 못하다. 그저 토와가 움직일 때까지 가만히 있거나, 움직이지 않는다면 자기 먼저 가보겠다며 걸음을 떼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저 그뿐이라는 듯, 추적추적 내리는 비만큼이나 사늘한 사람이다. 아니, 그저 무신경이 지나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토와에게는 어느 쪽이든 상관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추위에 강한 사람인가? 아니면 그런 것을 신경조차 쓰지 않을 정도로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일수도 있겠구나 싶어 아키라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가미즈미에 사는 사람들 중에선 바다를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기에. 물론 그녀가 가미즈미의 사람인지, 아니면 관광객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외부인이라고 하더라도 바다를 좋아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따개비와 바닷물고기라. 따개비라면 저쪽 방향으로 가면 바위가 많은 곳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많이 있을 거예요. 바닷물고기는 아무래도 얕은 해변가에는 잘 없으니까 깊은 곳으로 가면 많을 거예요. 스쿠버 다이빙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거기로 가면 많이 볼 수 있을걸요? 항구가 있는 곳에 가서 찾아보면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역시 바닷물고기를 보려면 스쿠버다이빙만한 것이 없었다. 전문 장비를 끼고 물속 깊게 들어간 후에 바라보는 바다속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었고 거기서 헤엄치는 물고기들도 보통 예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게 아니라 그냥 가깝게 볼 수 있는 바닷물고기들을 보고 싶다면 해변가를 따라서 쭉 걸어가도 볼 수는 있을 거예요. 가미즈미는 물로 유명한 곳인만큼 바다도 맑고 깨끗해서 가까운 해변가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들도 은근히 있거든요. 그렇게 큰 건 아니지만요."
나름대로 위치 설명을 말하다가 용왕이라는 단어에 아키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용왕이라고 하면 바다의 왕이라고 불리는 그 용왕인 것일까? 잠시 생각을 하던 아키라는 이번엔 자신 쪽에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가미즈미의 바다에 용왕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전승에 따르면 황폐해진 땅에 물을 제공하고 부여한 신은 있다고 해요. 이름으로 생각해보면 용왕은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인간들에게 물을 제공했으니 어지간한 곳은 다 허락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위험한 곳에 가면 안된다고 필사적으로 막을 것 같은데."
"당신의 예상대로 당신의 앞으로 가장 먼저 온 것은 사냥개였습니다. 당신은 망설임없이 당신의 목을 물어뜯으려고 달려드는 사냥개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아, 공격. 주사위를 굴려주세요."
하?
"20..? 대성공. 달려드는 속도 그 대로 당신의 검으로 달려든 사냥개는 목을 베여 그대로 즉사했습니다. 뭐, 대성공이 뜰 때가 가끔은 있죠."
대성공만 아니었으면 상황에 따라 사냥개가 검격을 회피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번만큼은 운이 따라줬다. 그리고 여태까지 별 의미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캐릭터는 신과 계약 한 상태. 이 쯤에서 개입이 없어서야 개연성이 떨어진다.
"허공에서 '오오, 무사여. 다 죽어가고있구나! 저쪽이 사람을 돕는데 내가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겠지. 나는 시간을 관장하는 신. 시간의 굴레를 움직이는건 별 것도 아니다!' 라는 명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고, 아직 남아있는 사냥개의 움직임이 눈에띄게 느려집니다. 사냥신의 대리자보다 더 뒤에있는 사냥개가 당신에게 도달하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할 듯 합니다."
조금만 다이스 결과값이 좋으면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다. 으음, 이건 내가 원한 결과가 아닌데.
"그 뒤로 달려온 적은 즉사한 사냥개에 놀란 느낌이지만 당신과 어느정도 안정적인 거리를 유지 한 채로 당신에게 화살을 날렸습니다. 다음 행동을 정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