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첫비가 내린다. 하늘이 우중충하게 흐려도 시커먼 구름이 끼지는 않았다. 물 머금은 공기를 들이쉬는 감각이 마치 부슬비 맞는 느낌과 비슷하여, 얼굴 스치는 바람에 제 우산을 제대로 쓴 것인지 멈추어 확인하게끔 하는 날씨다. 며칠간은 비가 내릴 예정이란다. 이 시기가 지나면 습도가 본격적으로 높아져 한동안은 꼼짝없이 찌는 듯한 열과 습도를 맞아가며 지내게 될 것이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 온화한 계절의 마지막을 느껴두려면 때가 오래 남지 않았다.길을 걷던 중 공연히 어느 한곳에 눈길이 가, 평소에는 가지 않던 골목에 들어선 데엔 그런 이유가 있었다.
후미카는 어느 주택의 담장 앞에 멈추어 섰다. 마당을 넘어서 주렁주렁 내린 덩굴이 담장까지 내려와 벽 한 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 끄트머리에 핀 꽃은 언뜻 붉은 듯하다가도 노란 빛이 선명한 주홍색이다. 물에 젖어 어둑한 채도의 세상에서 생생하게 밝은 색에 눈길이 간다. 짧은 폭 안으로나마 능소화 핀 다발이 고왔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후미카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빗물이 튀어 신발 끝이 조금씩 젖어들 만큼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을 것이다.
그가 잠시 잊은 것이 있다면 이 길목의 너비가 좁은 편이라는 사실이다. 옆으로 돌아선 채로 어깨에 걸친 우산이 툭 튀어나와서 골목의 절반 정도를 막고 있었다. 처음에야 자신 말고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으니 괜찮았겠지만 언제까지고 그러리란 법은 없다.
자, 상대는 부무장 없이 활만 사용하는 사냥신의 대리자. 사냥신의 대리자는 인지능력이나 은밀행동이 일정이상 높아야 평범헌 상황에 만나고 그게 아니면 이런식으로 안 좋은 상황에 조우하게된다. 그녀의 말 대로 전형적으로 검을 들든 말든 비겁한 캐릭터.
"당신은 호기롭게 외치며 칼을 들고 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동과 공격, 주사위를 굴려주세요. 각각 17과 9."
이동에서 이렇게 좋은 다이스값이 나오다니, 운이 좋다. 공격다이스는 아슬아슬하긴 한데..
"당신은 화상을 입은 몸으로 거의 최선으로 발을 움직여 그에게 도달하는데에 성공했고, 그의 가슴팍을 향하여 세게.. 그야말로 반으로 갈라버릴 횡베기를 했으나 적은 기민한 움직임으로 가까스로 그 공격을 피하는데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옷의 끝자락이 베이며 그 옷은 오염된 기운에 침식당합니다."
역시나 오염된 물품의 효과는 기가막히다. 일부러 대부분의 효과를 오버파워로 해놓았지만서도.
"상대방은 거리상의로 가까운 당신이 성가신지 '칫..' 하고 혀를 차며 활대를 당신의 안면을 향해 휘둘렀습니다."
이동의 성공의 결과가 여기서 나왔다. 너무 가까운 거리라서 활의 시위를 제대로 당길 수 없으니 근접공격을 하게되었다.
아, 짧은 소리와 함께 우산이 돌아간다. 우산을 든 몸도 함께 돌아 목소리 들린 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후미카는 그러며 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자신이 본의 아니게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치고는 서두르는 눈치 없이 동작이 느긋했다.
"꽃을 보고 있었단다. 오늘 같은 날에도 색이 화려하니 눈이 가기에."
대답하고는 가만히 상대편을 올려다보았다. 들고 있던 우산이 젖혀지니 흰 셔츠에 녹색 리본, 수수한 조형의 얼굴까지 서서히 드러난다. 대답을 했으니 물어본 만큼의 일은 끝이라는 듯 한동안 말 없이 상대를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 더 할 말이 없는지를 가만 기다리다가, 조금 늦게서야 담장 쪽으로 몸을 붙이고 길을 비켜주었다.
토와의 우산은 단색 우산이었습니다. 새카만 우산이어서 오히려 토와를 더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색감이었을까요.. 꽃을 보고 있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비에도 지지 않는 정도의 꽃이라 짐작한 토와는 후배라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후배인지. 선배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니까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길을 가려다가 마는 상대의 반응을 보고 조금 의문이 들었으나, 그다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이 정도의 가벼운 변심은 흔한 일이고, 후미카 역시 별다른 의도 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때가 있기도 했으니까.
"나도 꽃에 해박하지는 않지만……."
꽃에 대해 이야기하기로는 아마 카미야가 적격일 테다. 이런 일에 사사롭게 부를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잡다한 생각은 치워두고, 꽃을 봐야겠다는 말에 후미카는 손을 들어 제 앞의 담장을 가리켰다. 불그스름하면서도 가운데는 샛노랗고, 언뜻 주황색으로 보이기도 하는 마당의 꽃 넝쿨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능소화란다. 이맘때부터 피는 꽃인데, 이름의 한자는 업신여기거나 능가하는 凌자에 하늘의 霄자를 쓰지. 벽이나 다른 나무를 타고 오르며 하늘을 보고 자라는 모습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 하더구나."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꽃으로 눈길을 돌린다. 상대의 고운 웃음에도 표정은 다른 것 없이 그대로다. 눈앞의 상대가 눈치를 보는 성격이었더라면 틀림없이 상황을 어색하게 느끼기기에는 충분하리라. 그렇지만 그런 성격은 아닌 듯하니 다행일까.
>>283 노말 유니버스...ㅋㅋㅋㅋㅋ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로군요! 아무튼 잠버릇은... 인간일때도 보통은 누워서 자니까 배가 하늘로 오르지 않나요? 그리고 다리 한 쪽이라. 뭔가 자다가 엄청 불편할 것 같은 예감 아닌 예감! 아니.. 그와중에 복불복 초콜릿?! (동공지진) 그리고 여우라서 그런지 유부를 정말로 좋아하는군요! 그리고..ㅋㅋㅋㅋㅋㅋ 아닛..ㅋㅋㅋㅋㅋㅋ 은근히 신경쓰는군요! 그리고 저를 벼락부자로 만들어주세요!!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