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가 내릴 건지 아침부터 제비가 아주 낮게 날았으며, 대기는 전기를 잔뜩 머금었더니만, 하굣길 툭툭 한 방울씩 쏟아지던 비가 어느새 바닥을 세차게 때렸다. 세게 내리는 비 때문에 어깨가 아프다. 배구부의 하루키는 어서 지나가야지 싶어 가방을 머리 위에 대충 올렸다. 그러자 어디선가 야옹 소리가 들렸다. 멈춰 서서 고개를 돌리자 전봇대 옆으로 다 찢어진 상자가 보였다. 삐약, 다시금 고양이 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다가가니, 상자 안에 고양이가 있다. 주먹을 들어 보니 크기가 엇비슷한 걸 봐선 아주 어린 새끼 같다. 고양이는 눈도 뜨지 못하고 기운 없이 웅크려있었다. 상자 안에는 물도, 밥도 없다. 꼬질꼬질한 고양이가 불쌍해 웅크려 앉아 허리를 숙였다. 손바닥으로 배를 완전히 감쌀 수 있을 만큼 조그마한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하루키는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이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그 결과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히 인생과 직결되는, 파장이 큰 결정은 급하게 내려서는 안 된다. 척척하게 젖은 손을 쑤셔 넣고 뒤적거린 주머니 안에는 꼬깃꼬깃 접힌 1천엔 지폐 2장과 길에서 주워 어느 나라의 것인지도 모를 동전 하나가 전부고, 아르바이트는 험악한 인상 때문에 여자아이가 무섭다며 받아주지 않는다. 부모님은 고양이를 데려오면 싫어할 것이다. 집 마당에 이미 노견, 타로가 있기 때문이다. 타로의 나이는 벌써 열 살이 넘었기 때문에 돌봐줘야 하는데 이렇게 어린 고양이마저 돌볼 여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주변에서 고양이를 키울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애초에 하루키에겐 제대로 된 친구가 없었다. 하루키는 180에 가깝고 험악한 인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비를 막아주기 위해 고양이를 품에 더 꼬옥 안자 다 젖은 셔츠 너머로 따뜻한 온기가 닿았다. 아직 이렇게 살고 싶어 하는데, 죽으면 얼마나 슬플까? 고양이의 뺨을 엄지로 어루만지던 하루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너, 착한 아이구나?"
누군가 마찬가지로 비를 맞으며 하루키를 바라보고 있있다. 마주 본 사람은 키는 하루키보다 작았다. 올려 묶은 머리카락은 남색보다 조금 더 밝고 화사하며, 먹구름이 껴 어둑어둑한데도 새하얀 눈동자에 웃음이 가득했다. 하루키는 하오리 속 정갈하게 차려입은 셔츠에 넥타이 대신 맨 리본을 보고 나서야 같은 학교의 학생임을 깨달았다. 꼭 여우 같은 인상이다. 학생은 길게 손톱이 뻗은 손가락으로 품속의 고양이를 가리켰다.
"불행하구나, 불행해." "응?" "그 고양이는 아주 불행해. 열병에 걸려있어서, 곧 눈이 보이지 않게 될 테야. 네가 같이 있으면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길 테지만 그 불행이 옮아서 병원비는 크겠지. 네가 같이 있으면 너도 불행해질 텐데, 그래도 키울 거야? 차라리 두고 가는 게 낫지 않아?" "……."
하루키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학생을 쳐다봤다. 생글생글 웃는 낯이 무서울 정도로 태연해서, 하루키는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무슨 뜻인지 한참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저 학생의 말이 맞다. 품 속의 고양이는 따뜻한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여름이라고 해도 비가 세차게 내려 습하고 체온이 내려가 몸은 추운데, 고양이를 하나 안았다고 이렇게까지 따뜻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픈 고양이니 고작 2천 엔으로 치료를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다. 그건 정말 잔인한 일이고, 생명을 죽이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하루키는 웅크린 몸을 일으키며 학생을 내려다봤다.
"너,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으응? 그야 너, 여의치 않아 보이잖니?" "그렇다고 해도 두고 지나칠 수는 없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 그 이후의 인생에서 큰 짐이 될 텐데도?" "상관없어!" "너, 착한 아이구나, 착한 아이야."
작은 소년은 길쭉하게 웃더니 손을 뻗었다. 하루키는 고양이를 향해 뻗는 손인줄 알고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소년은 까치발을 들어 대뜸 하루키의 머리를 아이 다루듯 토닥토닥 쓸어주더니 뒷짐을 졌다.
"뭐 하는 거야?" "착한 아이에겐 요시요시란다, 응! 얘, 네가 선택한 불운이 가장 큰 행운이 될 테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 "네 아버지는 이 근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구나. 전철을 타고 오는 길이 있어, 그렇지?" "……응.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네 아버지께 말씀드리렴, 오늘 오는 길에 복권을 딱 두 장만 사세요. 알겠지? 세 장은 안 돼, 두 장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갑자기 고양이를 버리라고 하더니 복권을 사라고? 뭘 믿고?"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믿어보련. 타로는 지금 다니는 병원 말고 다른 곳 병원을 가보는 것이 좋아." "너 진짜 뭐야? 스토커야? 어디 가? 야-"
하루키가 목이 터져라 외칠 때, 기묘한 학생이 방울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길을 걷다 사라진 모습에 하루키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고양이를 세게 끌어안았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 학생은 비가 그렇게나 쏟아지는데 젖지도 않았지. 삐약, 고양이가 울자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아빠.. 부탁할 게 있는데.. 복권 두 장만 사 와줄 수 있어? 응, 응.. 부탁할게.."
집에 돌아왔을 적, 어느 나라의 것인지 몰랐던 동전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루키! 하루키!"
배구 경기를 보고 반했다며 금세 친해진 친구들과 함께 하고 돌아온 하굣길, 하루키는 급하게 달려 나와 어깨를 붙잡는 아빠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ㅇ, 왜?"
대차게 말아먹은 성적표를 들켰나? 큰일이다, 변명거리도 준비하지 못했다. 하루키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아빠가 아무도 없는 주변을 둘러보다 속삭이는 소리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라지 말고 들어라, 네가 사 오라 했던 복권 말이다..!" "응..?" "당첨이야!! 하나는 꽝인데, 하나는 1등이라고! 1등!" "뭐?!"
하루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저 멀리서 삐약 소리가 들린다. 비록 한쪽 눈이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집안에서 오자마자 사랑과 걱정을 독차지한 아기 고양이, 치즈는 하루키를 바라보다 크게 기지개를 켠다. 타로는 그런 치즈의 목덜미를 조심스레 물더니 종종걸음으로 거실을 향해 들어간다.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타로도 시름시름 앓아서 걱정이었는데, 병원을 다른 곳으로 옮기니 병세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약을 먹는 건 나이가 들어서도 싫어하지만, 그래도 호전세를 보이니 다행이었다. 엄마는 그런 타로의 등을 몇 번 토닥여주다, 이럴 때가 아니라며 벌떡 일어나 외식을 하자고 호들갑을 떤다. 가족 전체가 복권 당첨이라는 꿈만 같은 일에 잔뜩 들떠 밖에 나가 시가지로 걸어갈 적, 화사한 남색 머리카락을 질끈 올려 묶은 소년이 어느 나라의 것인지 모를 동전을 튕기며 잡기를 반복하며 하루키를 스쳐 지나갔다. 하루키는 잠깐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아하, 그게 문제라. 나는 너의 말을 이해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깊은 면眠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다. 뱀들이 으레 그렇듯 나 역시 겨울잠에 들었다 여겼다. 유감은 없다. 잠이 든 자아에는 다만 감정이 없고, 배움이 없어서... 그리 생각하니 나는 너에게 부탁하지 않는게 좋겠다 결론 내렸다.
"아-뇨- 못 사라져요."
결단코 성 나지 않았다. 그와 별개로 꼬여버린 오해는 풀어주는 것이 옳아보여 나는 너에게 진실 한자락 고한다. "사실 저는 달이 아니에요. 전 항상 별님 아래에 있으니까요." 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내리는 것이 자연의 성질이었다. 밤이면 밤마다 뜰 수 있는 위의 것들과는 엄연히 다른 존재였다.
"남들은 무서워해요?"
어렴풋이 자아의 영면은 죽음이라는 개념이 들어와있었으나, 나는 아직 실감하지 못한다. 나의 자아는 비교적 늦게 생긴 것이었으며, 왕성하게 작동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설령 영원히 잠에 든다 해도 나는 여전히 위에서 아래로 흐를 것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죽음만은 아닐 것이다. 때문에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 대신 너에게 되물었다. 인간을 둔갑해 작아보이는 이 신은 아무래도 미움받는 걸 두려워하는 모양이었다. 몹시 낯설고 멀어보이는 감각이다. 나는 툭 튀어나와버린 어금니를 핥듯 그리 느꼈다.
나는 너의 제안에 조심히 손을 뻗어 깍지를 끼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손이 아이의 그것처럼 따뜻하다. 작고 부드러운 너의 손은 마디마디 툭 튀어나온 내 앙상한 손과는 다르다. 음-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손끝을 꿈틀거린다. 차갑던 손이 너의 온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된 것도 그쯤이었다.
"거기! 너희들! 어디가!"
이크! 어느새 창문에 몸을 쭉 뺀 담임이 크게 소리친다. 나는 조용히 가는 것은 틀렸다 싶어 너를 끌어 걸음을 재촉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까지 향하면 저 인간도 어찌할 바가 없을터이다.
"아이참! 정문으로 가요!"
정문 앞에는 관리가 엉성하게 되어있어 묶여지지 않은 오래된 자전거도 꽤 있었다. 그 중 하나를 골라 잡고 도망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쯤은 밤의 학교에 와보고 싶은 마음도 렌은 이해가 갔다. 뭔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담력시험을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속으로는 다시금 아키라 선배에게 이야기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도와주려는 듯 자신에게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설명하라는 말에 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해바라기 들판을 그리고 싶었어. 아, 이거 해바라기야. 해바라기처럼 안 보이겠지만…. 그, 티비에 보면 가끔 해바라기 들판이라고 해바라기가 잔뜩 피어 있는 곳이 있잖아. 그냥 실제로 보면 어떨까 하고…. 사실 뒷 배경은 노을진 공간을 그리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냥 파란 하늘로 그릴까 고민하고 있었어….”
렌은 요조라가 제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한쪽 손은 제 의자 등받이를 짚고 서자 조금 거리가 가까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말이 우물우물 줄어들었다.
“봤었던 풍경은 아니고…. 언젠간 한 번쯤 보고 싶어서…?”
사실 해바라기 꽃밭이라고 주제를 잡은 것도 그렇게 큰 의미는 없었기에 말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별 것 아닌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했고. 그리고 그림도 별볼일 없어서 더 민망하기도 했고. 렌은 살짝 옆으로 눈동자를 굴려 요조라의 표정을 살폈다. 아마 제 말에 별 생각이 없는 표정일 것 같았지만.
"어휴, 털!!" "뭐!" "털 날리는 것 좀 봐! 제발 인간 모습으로 좀 있어주시면 안 됩니까? 적어도 털갈이를 할 때만이라도!" "뭐어어? 네가 뭘 알아! 인두겁이 얼마나 불편한데!! 너희는 대체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거야?" "태어날 때부터 이런 모습이었으니 불편함은 없었습니다만.. 두 발로 걷지, 중심 잘 잡지, 손으로 이것저것 쥘 수 있지.. 괜찮지 않습니까?" "…앉아서 뒷발로 목을 긁을 수 없단 말이야!" "……정말 그게 문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