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인간이 된 뱀이 있고 그 앞에 뱀이 된 신이 있다. 간만에 올라온 뭍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뒤죽박죽 뒤섞인 세상에 정신을 차리면 거꾸로 서있는 기분이 들고는 했다. 그러나 나는 다만 어찌되든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서 네 말을 순순히 따르는 것도 나의 마음, 나의 여흥이다. 나는 너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 손을 내민다.
"선배가 원한다면, 여왕님이 될게요!"
...그런데 일본은 천왕 아래 공주만 있고 여왕은 따로 없는 것으로 안다. 여왕이 되려면 천왕이 될 남자와 결혼하던가, 천왕을 죽이든가 해야하는데 둘 다 어려운 일이니 큰일이다. 나는 국가를 대상으로 테러를 일으키기도 무섭고 천왕이 될 남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니.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너에게 덧붙인다.
"근데 여왕이 되려면 조금 걸릴지도? 조오금?"
나는 거기에 덧붙였다. "100년? 아니 1000년...?"
"에엥? 그말은 즉슨 어- 비행기 타듯이 꿈을 정해줄 수 있다는 소리죠?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제일 행복하고 제일제일 슬픈 꿈을 꾸게 해주세요."
그것만큼은 정말로 기쁜 일이어서 나는 활짝 웃는다. 나는 빗자루질을 잠시 멈추고 -사실 아까부터 같은 자리만 헛돌고 있었다- 너에게 다가간다. 나는 내가 결혼한 사람들이 그렇듯 행복하게 웃고도 싶고, 배신 당한 사람처럼 애달프게 울고도 싶었다. 그 감정들을 아직 소화시켜내지 못했으니 나는 무정하고 무감할 뿐이다. 감정의 폭은 좀처럼 넓혀지지 못했다. 네가 나에게 도움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엇! 절대 좋으니까 계속 애칭 불러주세요. 애칭으로 안부르고 미즈미-양- 하면서 거리두면 저는 분명 기숙사에서 엉엉 울고 말거예요. 비참하게-!"
나는 밋짱이라는 애칭이 퍽 마음에 든다. 사실 밋짱이 아니라 애칭이라면 뭐든 좋다만야, 아무튼 미즈미양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호칭인데다가 어감이 귀엽기도 해서 말하는 사람도 귀엽고 그 말을 듣는 나도 귀엽고 말하는 사람도 귀엽, 어라- 아무튼 귀엽다.
당신은 수풀에 숨어서 강가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휴식중인 상대에게 무라타 18년식을 겨누어 격발했고, 나아간 소총탄은 성공적으로 상대방의 왼쪽 다리를 관통했습니다. 하지만 다리를 관통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이동에 지장은 없습니다. 상대방은 걸어서 이동하는게 아닌, 공중에 살짝 뜬 상태로 바닥에 마치 도화선처럼 불을 내며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재장전.
당신은 무라타 18년식의 볼트를 당기고 다시 소총탄을 집어넣었습니다.
상대방의 오른발은 태양처럼 타오르고있으나 그가 그로인해 고통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멀리에서도 그 화염의 열기를 느낍니다.
기술, 조준사격. 주사위를 굴려주세요. 성공.
당신은 그의 머리를 조준하여 무라타 18년식을 격발하여 무난히 그의 머리를 맞추는것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즉사하지 않고, 머리쪽이 불타오르는 채 당신에게 다가갔고, 열기는 이미 가마안에 있는 것 같이 엄청나게 느껴집니다.
재장전.
당신은 무라타 18년식의 볼트를 당기고 다시 소총탄을 집어넣었습니다.
상대방은 당신에게 접근해 광범위하게 불꽃을 흩뿌렸습니다. 공기중에 흩뿌려지는 금방이라도 사그라들지만 당신에게 피해를 주기에는 충분한 열기를 담고 있습니다.
회피. 불가능. 신체 -14.
이동. 강가.
당신은 피하는것조차 불가능해보이는 불꽃을 피해 강가쪽으로 달려갔고, 몸 구석구석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강렬한 고통으로 인해 몸을 움직이는 모든 행동에 제약이걸립니다.
공격. 불가능. 강물에 들어간 당신의 총은 물에 젖었고, 화약이 젖어 일정기간 탄환을 발사할 수 없습니다.
이동. 강가.
당신은 강가의 하류로 이동합니다. 뒤에서 느껴지는 화염의 열기는 점점 더 커지기만 합니다. 뒤에서 '저주받은 땅은 정화되어야한다' 라는 중얼거림이 들려옵니다..
미즈미가 손을 내민 이유는 모른다. 또 악수를 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었겠지만, 코로리는 이미 상상해두었던 퍼포먼스를 즐길 뿐이다! 악수하듯이 손바닥을 맞대어 잡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부분을 쥐듯이 해서 손을 잡으려 한다. 손등에 입 맞추는 인사가 어디서 어떻게 유래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왕님한테는 이렇게 인사해야지! 연극부라도 들었으면 부활동을 정말 재밌게 했을텐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안타까울 정도였다. 코로리는 미즈미가 손을 잡게 두었다면 손등에 입 맞추는, 척 할 것이다! 입 맞추는 척까지 하고 난다면 낙엽 굴러가는 것도 아니고,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을 나이도 아닌데 웃음 소리가 높았다. 잘도 하기는 했겠다만 낯간지러운 건 견디기 어려웠다.
"제일제일은 안 태워줄거야, 꿈은 환상이야."
너무 단꿈도, 너무 쓴꿈도 안 된다. 활짝 웃는 얼굴을 마주하고도, 생글거리는 살가운 낯을 하고서도 뚝 끊어내는게 단호했다. 제일제일 행복한 것도 현실에서, 제일제일 슬픈 것도 현실에서 만나야 해!
"그러면 아침 달이 안 보이게 되잖아!"
기숙사에서 엉엉 울고 말거라는 말에 퍼뜩 놀랐다. 코로리에게 미즈미는 아직까지 아침달신이여서, 아침달신이 엉엉 울어버린다면 그 눈물이 비가 되어서 주륵주륵 하늘을 가리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아침 달을 볼 수가 없게 될테고, 아침 달은 늘 비구름에 가려지게 되고 말겠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다! 코로리는 밋쨩이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부르는 것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엑, 들켰어?!"
코로쨩이라는 애칭을 듣는 즉시 코로리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결국 한자는 정하지 못 하고 지은 이름이었지만, 殺이 이름에 쓰일 뻔 했었다! 코로리는 잠과 죽음이 가깝다고 말했고, 깰 수 없는 잠은 죽음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코로는 殺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치만 죽어! 라고 바라지는 않으니까, 무섭잖아! 양떼구름 위에서 회전목마 타는게 좋잖아! 다만 코로쨩은 미즈미만 부르는 애칭이고, 미즈미가 자신을 무서워하지는 않는 거 같아 상관없다 싶은 코로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밋쨩, 여왕님. 여왕님은 벌 같은 거 안 받지이?"
선배가 되어서 못된 짓만 하려고 든다! 벌청소 그만하고 도망가자는 뜻 밖에 안 되는 말이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