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츠야의 해명에 더욱 의문스러운 기분이 드는지 고개를 기울이는 그녀. 놀이, 라고하면 보통 공차기나 칼싸움이 보통이라고 생각하는지라 쉽사리 와닿지 않는 것이다. 분명 인형이나 장난감을 이용한 놀이도 있다고는 하나, 이 긁는 목소리를 한 소년이 그런 여자아이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기에. ...그렇다면 아무래도 현세의 놀이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한다. 요즈음은 공간을 그리 차지하지 않고도 놀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좋은 것이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저 파소콤은 그것을 위함인가 싶어, 테츠야를 조르르 따라가 그 샛붉은 눈을 뜨고선 모니터 안의 자료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가미즈미에 이런 역사가 숨겨져 있었다는 말이냐?"
그러나, 혼란에 빠져버린 듯한 눈치의 도검 신. 설정집의 스크롤은 악신이 등장하는 배경설정에서 멈춰 서있으니, 그 목소리는 어둠에 잠기고 목소리와 몸은 동시에 파르르 떨린다. 그리고 이내,
"이, 이... 불경하구나!!"
하고 때엑- 테츠야는 알 수 없는 분노에 휘감겨 소리치는 그녀. 눈은 감겨있으나 가벼운 살기를 내비치며 그 얼굴이 시뻘겋게 올라와 있는 것이. ...아무래도 완전히, 그 설정들을 가미즈미에 실로 존재했던 역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정말 금방이라도 뛰쳐나갈듯 손에 들려있던 포에 싸인 막대를 휘두르는 그녀.
"지금 이 악신녀석은 어디에 있느냐! 감히, 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신성한 땅의 토지를 유린하고...! 어서 안내해라 후지모리! 내 당장 그 목을 쳐서...―흣."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그 난동도 사그러든다. 단순히 목소리를 높히는 것만으로도 목이 따가워져오고 귀가 먹먹해지는 여린 육체가 제지를 거는 것이었다. 도검 신이 제 풀에 연신 콜록이며 몸을 달싹이니, 그 사이 잠시나마 내쫓겨졌던 부실의 평화가 다시 돌아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1400년대는 좀 너무 옛날이구나 싶었다. 역시 화승총이 나오는 시기쯤으로 앞당기는게 좀 더 나오는 무기나 행동이 다양해졌을텐데. 물론 캐릭터중에는 총을 쓰는 캐릭터가 딱 1명이 있지만 사실상 신한테 도움받는 치트능력이고..
"제법 그럴듯 해 보이지 않나요?"
설정을 짜내는데 제법 많은 시간을 들였다. 시스템은 그냥 다른 trpg에서 가져와서 조금만 변형시켰으므로 사실상 가미즈미사가의 제작의 절반이상은 설정이었다.
아, 그래도 모니터를 볼때는 눈을 뜨는구나.
"엑?"
갑자기 화를 내는 그녀를 바라보고 이게 무슨 천지개벽이 일어난건가 당황했다. 게다가 그때, 죽도를 휘둘렀을때처럼 엄청난 기운이 느껴진다. 뭐야 이번엔! 패기사용자도 아니고! 아니, 애초에 왜 화를 내시는걸까요? 적어도 이유를 알아야 대응을 할텐데!
"그, 악신이 어떻게되어있는지는 못 알려드려요. 기밀정보인걸."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걸 알려주면 작품 전체에 대한 스포일러다. 알려 줄 수 있을리가 없다.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사람들도 모르는 정보인데. 아무래도 이 가미즈미사가의 전체적인 스토리에 감탄한게 아닐까 싶다. 그것때문에 화를 내는건 좀 몰입이 심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trpg는 몰입을 해야 재미있는거니까 문제없지 않... 모르겠다.
"아 정말. 기다려요."
구석에 방치해놓은 종이컵과 미적지근한 녹차를 꺼내 콜록이는 그녀에게 종이컵에 녹차를 따라서 건냈다.
한번도 싸워본적은 없지만 만약에 싸우더라도 이렇게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시무룩하던 분위기는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조금씩 생기가 돌고 표정도 아까보다 훨씬 밝다. 이렇게까지 화를 내본적은 손에 꼽지만 최근엔 그런 적이 없으니까 리리가 적응하기 힘들었던것도 있을 것이다. 막상 이렇게 보니 미안해지기도 하네.
" 당연하지. 항상 곁에 있어줄꺼니까. "
동생이 필요로 한다면 언제나 가까이 있어준다. 신이라는 자각을 하고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빼먹지 않은 생각이다. 언젠가 나보다 타인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할때가 올테고, 그때가 될때까진 내가 그 자리에 위치할 생각이다. 평생 웃는 모습만 봐도 모자라다니까.
" 내가 반짝반짝해서 별들도 반짝이는거야. "
별의 신이니까 별들은 당연히 날 닮는거지. 언제 화를 냈냐는듯 평소의 분위기처럼 농담도 하면서 꼼꼼히 머리를 빗어준다. 이러다가 잠드는게 아닌가 몰라. 아직 저녁도 안먹었는데 잠들면 이따가 깨웠을때 배가 고플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하고싶은데로 하는게 제일 좋을 것이다. 괜히 또 잔소리를 하기는 싫다.
" 그렇게 말한다면 ... 내일은 맛있는걸 먹어볼까? "
어차피 내가 먹고싶은건 리리가 먹고싶은거랑 같은거니까. 정크푸드를 좋아하는만큼 내일은 햄버거를 먹어볼까 고민해본다. 그러면 설거지도 할 필요 없으니까. 머리를 다 빗어주면 같이 저녁을 먹고 각자의 할 일을 하러 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밤의 쌍둥이니까 말이다.
벚꽃이 모두 떨어지고 중간고사를 치루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며 하늘의 태양빛이 조금씩 강해졌다. 여기저기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학생들의 복장은 조금씩, 조금씩 하복으로 바뀌어갔다. 바닷가 마을 특유의 더위와 습기는 어쩔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물로 유명한 가미아리인만큼 시원한 피서지는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몇개월이 지난만큼 학생들은 점차적으로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고 있을 것이고, 적응을 마친 학생들. 정확히는 신들은 자신과 혼인의식을 치룰 반려를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여름의 청춘을 즐기기 위해 제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움직였다. 그런 학생들을 응원하듯 학교에 설치되어있는 수영장이 본격적으로 개방되었고 가미아리의 워터파크 역시 개장하며 시원한 물공기를 풍겼다.
"그럼 올해 수학여행은 공부의 일환이라기보다는 휴양지로 가는 것으로 정하겠습니다."
수학여행을 시작으로 기말고사, 그리고 방학으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상반기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학생들의 청춘 타임을 응원하듯, 여름 태양은 정말로 찬란하게 반짝였다.
/드디어 여름타임!! 4월 25일부터 5월 29일까지 여름타임이에요!! 미리 공지를 하도록 할게요!
아무도 없는 심야의 학교, 요조라가 그 풍경을 생각해낸 건 최근 코드를 찍겠다고 방과후의 교내를 이곳저것 돌아다닌 덕이다. 소리도 인적도 없이 다만 길게 뻗어있는 복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했더란다. 그런 생각 중에 수행평가 주제를 들었고, 중구난방 정해지지 않던 풍경 중에 하나가 정해졌다. 그게 한밤중의 학교 복도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보고싶은 풍경은 아니다. 그건 이미 그렸지만, 제출할 수는 없었으니까. 적당히 만든 대용품일까. 과제로서 받아들여지면 그만인, 여흥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 건.
요조라가 도와준다고 하니 옆자리 학생은 정말이냐며 되묻고, 전혀 싫지 않다며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엄청 막막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표현하는 모습이 요조라와는 정반대다. 뭐, 이게 보통이겠지. 그리고 그려놓은 스케치만 봐도 막막한 건 충분히 알 만 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요조라도 잠시 망설일 정도다. 그야 이건 이 학생이 그리고 싶은 풍경이지, 요조라의 심상엔 없는 풍경이다. 그럼 일단 무얼 그리고 싶은지부터 확실히 해야겠지.
"일단은... 뭘 그리고, 싶은지, 설명부터, 해 봐... 이 안에, 어떤 풍경이... 담겼으면, 하는지..."
요조라는 책상 옆에서 물러나 학생의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의자는 가져오지 않고 옆에 서서, 스케치북을 살짝 밀어 전면이 보이도록 놓고서 말한다. 어느 시간, 어느 때의 어떤 풍경을 그리고 싶은 건지, 자세히 설명부터 해보라고 말하며 고개를 약간 숙이자 내려묶은 머리카락이 어깨 앞으로 흐를락말락 움직인다. 고개를 따라 몸이 앞으로 기운 탓에 요조라는 한 손을 학생이 앉은 의자 등받이에 짚었다. 시선은 스케치북에 내리고서 남은 손은 자신의 허리에 짚고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