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미가 손을 내민 이유는 모른다. 또 악수를 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었겠지만, 코로리는 이미 상상해두었던 퍼포먼스를 즐길 뿐이다! 악수하듯이 손바닥을 맞대어 잡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부분을 쥐듯이 해서 손을 잡으려 한다. 손등에 입 맞추는 인사가 어디서 어떻게 유래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왕님한테는 이렇게 인사해야지! 연극부라도 들었으면 부활동을 정말 재밌게 했을텐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안타까울 정도였다. 코로리는 미즈미가 손을 잡게 두었다면 손등에 입 맞추는, 척 할 것이다! 입 맞추는 척까지 하고 난다면 낙엽 굴러가는 것도 아니고,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을 나이도 아닌데 웃음 소리가 높았다. 잘도 하기는 했겠다만 낯간지러운 건 견디기 어려웠다.
"제일제일은 안 태워줄거야, 꿈은 환상이야."
너무 단꿈도, 너무 쓴꿈도 안 된다. 활짝 웃는 얼굴을 마주하고도, 생글거리는 살가운 낯을 하고서도 뚝 끊어내는게 단호했다. 제일제일 행복한 것도 현실에서, 제일제일 슬픈 것도 현실에서 만나야 해!
"그러면 아침 달이 안 보이게 되잖아!"
기숙사에서 엉엉 울고 말거라는 말에 퍼뜩 놀랐다. 코로리에게 미즈미는 아직까지 아침달신이여서, 아침달신이 엉엉 울어버린다면 그 눈물이 비가 되어서 주륵주륵 하늘을 가리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아침 달을 볼 수가 없게 될테고, 아침 달은 늘 비구름에 가려지게 되고 말겠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다! 코로리는 밋쨩이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부르는 것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엑, 들켰어?!"
코로쨩이라는 애칭을 듣는 즉시 코로리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결국 한자는 정하지 못 하고 지은 이름이었지만, 殺이 이름에 쓰일 뻔 했었다! 코로리는 잠과 죽음이 가깝다고 말했고, 깰 수 없는 잠은 죽음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코로는 殺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치만 죽어! 라고 바라지는 않으니까, 무섭잖아! 양떼구름 위에서 회전목마 타는게 좋잖아! 다만 코로쨩은 미즈미만 부르는 애칭이고, 미즈미가 자신을 무서워하지는 않는 거 같아 상관없다 싶은 코로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밋쨩, 여왕님. 여왕님은 벌 같은 거 안 받지이?"
선배가 되어서 못된 짓만 하려고 든다! 벌청소 그만하고 도망가자는 뜻 밖에 안 되는 말이나 하고 있다.
"그 정도 였어요? 요루가 받기엔 과분한 칭찬이네요, 저녀석, 정말로 내키는 그림만 그리니까요. 게다가 저런 건 저대로 두기도 애매하고 처리하기도 아까워서 솔직히 좀 그래요." "실패한, 과자... 보다는, 나아..."
남매의 말에 꼭 한번씩 태클을 거는 저 행동이 과연 사춘기일까, 아니면 그저 남매이기 때문일까. 그건 몰라도 이게 일상적이란 느낌은 분명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마히루가 준 젤라또를 얌전히 먹는 요조라였으니까.
젤라또라고 해도 그냥 아이스크림이니까 편하게 맛보라고 마히루는 말했다. 먼저 먹기 시작한 요조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물대면서 아키라가 한입 떠넣자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아키라가 충분히 맛보고 생각할 수 있게 기다리던 마히루는 작은 감탄이 나오자 짐짓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어진 평가와 조언들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듣는 모습이었다.
"음, 음, 맛 평가 정도만 해주면 되는 거였는데, 디자인 아이디어까지 들려줘서 고마워요. 그것들을 포함해서 여러가지 어레인지를 시도해보고 조만간 제대로 된 걸 내놓을테니, 나중에 꼭 먹으러 와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마히루는 아키라의 반응과 조언이 정말로 기뻐보인다. 극찬에도 눈빛 하나 바뀌지 않던 요조라와는 정말 천지차이다. 그럼에도 닮아보이는 것이 기묘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조라는 잠시 먹던 걸 멈추고 말했다.
"맞다, 히루... 여름, 호타루, 마츠리... 있대..." "작년에 못 했던 그거? 그럼 마츠리용 과자도 따로 구상해야겠네. 바빠지겠는데. 요루, 이번에도 구상 도와줄거지?" "몰라... 아마도..."
대화를 보아하니 가게와 노점의 과자는 어느 정도 요조라의 손도 쓰인 모양이다. 아마 모양이나 조합에 관련해서지 않을까. 먹는 만큼 일하라며 요조라의 머리를 기습적으로 쓰다듬은 마히루는 미리 포장해놓은 포장봉투를 내려 아키라에게 내밀었다.
티격태격하는 남매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키라는 아주 잠시지만 조금 부럽다는 생각을 품었다. 외동아들인 자신에겐 정말로 자신 혼자밖에 없었으니까. 자신에게 형이나 누나, 혹은 동생이 있었으면 저런 느낌이었을까.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지만 딱히 그려지는 이미지는 없었다. 어쩌겠는가. 자신에겐 따로 형제가 없었으니까. 물론 사촌이야 여럿 있었지만, 사촌과 친동생, 혹은 친형, 친누나는 조금 다른 느낌일수밖에 없기도 했고.
"그럴게요. 뭔가 이번만 먹고 넘기기엔 조금 아쉬운 맛이거든요. 어떻게 어레인지가 되고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하고요."
바로 나오긴 힘들테고 여름 중순쯤 오면 아마 관련으로 제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키라는 나름대로 날짜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아마 그때쯤이면 방학때일까? 수학여행이 끝나고 기말고사가 끝나는 시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대략적으로 예상하며 아키라는 우선 포장봉투를 받은 후에 떨어지지 않게 확실하게 챙겼다. 그 와중에 들려오는 구상이라는 단어에 아키라는 살짝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면 여기의 화과자들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녀의 아이디어도 어느 정도 섞여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차후에 여기서 간식을 살 때 괜히 더 디자인을 볼지도 모르겠다고 아키라는 생각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의 그림을 그릴 정도의 이니 디자인 면에선 과연 어떤 센스를 보일까? 하는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서비스까지 넣을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고맙고 또 올게요. 호시즈키당의 화과자들은 상당히 맛이 좋아서 정말 입에 잘 맞거든요. 최근 온천이나 스파에 찾아온 외부에서 온 손님 중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많고요."
적어도 스파 쪽에선 자신이 살짝 홍보를 하고 있지만 그것까진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슬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계산을 위해서 카드를 내밀었다. 그리고 요조라를 바라보면서 미소와 함께 이야기했다.
"좋은 그림 고맙고 또 볼 수 있으면 봐요. 푹 쉬세요. 호시즈키 씨."
/주말은 오기 힘드니 슬슬 막레 느낌으로 쓰긴 했는데 이것을 막레로 받으셔도 좋고 막레를 따로 쓰셔도 괜찮아요!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는 아키라의 말에 마히루는 과자가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사쿠라마츠리와 그전 메뉴들을 생각하면, 분명 여름에도 특이한 메뉴들이 나올 것은 분명했다. 그것도 아키라의 예상보다 빠르게, 말이다. 마히루 역시 요조라와 같은 시기를 거친 호시즈키의 자식이었으니.
"덕분에 외부 손님이 많이 늘어서 시미즈 가엔 늘 감사하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제가 만드는 것들도 많이 나올테니, 그것도 입에 맞으면 좋겠네요."
마히루는 카드를 받아 계산하며 말했다. 그리고 카드를 돌려주며 조심히 들어가요, 라고 인사했고, 요조라도 아키라를 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히, 가세요..."
살갑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되려 건조한 인사는 무척이나 요조라답다. 그래도 아키라가 밖으로 나갈 때까지 지켜보다가 다시 엎드렸으니, 예의 정도는 차린 셈일까. 아키라가 그걸 알든 모르든 말이다.
글쎄. 과연 어떨런지. 정확하게는 자신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 날이 되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끝자락에 둘러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며 아키라는 일단 최소한의 희망은 가지고 있기로 마음 먹었다. 혹시 아는가. 운 좋게 어떻게 일정이 생겨서 누가 되었건 적당히 둘러볼 수 있을지도. 만약 그렇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가미즈미의 자랑이자 명물인 '물'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아무런 말 없이 두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시미즈의 전승 이야기라. 신기하네요. 신이라던가 그런 것들은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아니면 그다지 관심도 안 가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의 집안의 전승 이야기를 말해달라고 하는 것은 의아한지 아키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알려달라고 하면 못 알려줄 것은 없었기에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까 그는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들은 고문서 같은 그 내용 그대로를 이야기할 순 없지 않겠는가. 지금은 고전국어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가미즈미는 원래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 수많은 피가 흐르고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은 그런 황폐해진 땅이라고 해요. 수많은 이들이 가미즈미를 버렸을 때 단 하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 땅을 버리지 않고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정말 여러가지로 노력한 이가 있었으나 그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서... 정확히는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해요. 물을 어떻게든 다른 곳에서 구해와도 생명을 싹트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당시 그 사람은 자신의 눈물을 모아서 물을 주는 것까지 고려를 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고 하네요."
말 그대로 처음은 가미즈미의 첫 환경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연히 존재하는 이곳에는 처음에 물이 없었고 그로 인해서 그 어떤 생명도 살아숨쉴 수 없었다는 그 말을 그대로 믿을지, 아니면 전승 특유의 비유일진 알 수 없었으나 일단 아키라는 덤덤하게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세 신이 내려왔다고 해요. 첫번째 신은 자신의 힘을 빌려 이 땅에 다시 생명이 싹틀 수 있도록 물을 내려줬고, 두 번째 신은 생명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이 땅에 빛을 쬐었고 마지막 신은 이 땅에 뿌리를 내려 이 땅을 다시 녹색빛으로 바꾸었다고 하네요. 황폐했던 죽음의 땅이 다시 생명이 살아 숨쉬는 땅으로 바뀌었고 신은 유일하게 땅을 지킨 이에게 그 죄악을 갚고 싶으면 평생 이 땅에서 그 생명을 돌보고 지켜라... 라는 말을 했다는 모양이네요. 그게 바로 시미즈고요."
시미즈. 자신의 성을 입에 담으며 아키라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툭툭 쳤다. 허나 이내 그는 헛웃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동굴에 있는 그 물이 신이 내린 물이고 그 이후로 대대로 우리 시미즈 가문은 이 땅에서 그 물을 관리하고 지키는 일을 해왔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전승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온전히 믿기는 힘들 것 같고 그냥 시미즈 가문이 왜 동굴 속의 성스러운 샘을 관리하고, 그 옆의 신사를 돌보고 있느냐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어찌되었건 저도 가미즈미를 떠날 생각은 없으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런 것처럼 저도 이 땅에서 관리를 하고 살아가게 되겠죠. 그 샘이 더럽혀지고 오염되지 않도록 말이에요."
이내 그는 말을 마치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했다. 이야기해달라고 해서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 이야기가 과연 렌의 흥미를 당길진 알 수 없었기에 아키라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렌은 아키라가 신에 대한 이야기는 어르신이 아니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줄 알았다는 그 말에 뺨을 긁적였다. 그 신이라는 존재를 직접 봤다거나 신기한 체험을 했다고는 말할 순 없었기에 그저 단순한 호기심으로 보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가미즈미는 원래 황폐해진 땅이었다니, 전쟁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중 한 사람만 잘못을 뉘우치고 노력했었다니 그래도 세 신이 내려와서 가미즈미가 다시 소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하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랬기에 자신이 이 마을에서 잘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특히 물을 내려주었다는 것이 뭔가 마음에 들었다. 렌은 물을 좋아했으니까.
“고리타분하지는 않아요. 뭔가 신기하다고 생각해요. 저 사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거든요. 이곳에서 살면서도 말이죠. 요즘에는 이런 얽힌 이야기같은 스토리가 있으면 홍보에도 쓰이고 그러니까 널리널리 알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축제라거나 아니면 온천이라거나 그 곳에 얽혀있는 전설이나 신화 같은 것이 홍보의 목적으로 많이 쓰이지 않던가. 꼭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보통은 가업이라는 걸 잘 잇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도 많은데, 아키라 선배는 가미즈미에 대해 애정도 많고 늘 최선을 다 하시는 것 같아서 멋있다고 생각해요. 방금도 뭔가 명확한 목표가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요. 전 요즘 고민이 많아서요.”
렌이 진심을 솔직하게 말하며 뒷목을 매만졌다. 아키라가 자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참 멋있고 대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물을 주었다는 신이 아오노미즈류카미 님인건가요? 아, 뭔가 알고 있다는 건 아니고 잠꼬대로 그렇게 말하시길래, 왠지 이름이 그런 뜻인 것 같아서요.”